상하이 푸둥신구 허우탄의 SK타워.
상하이 푸둥신구 허우탄의 SK타워.

최근 상하이 황푸강 허우탄(後灘) 변에 하얀색 초고층 빌딩 한 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274m 지상 59층의 빌딩으로 2010년 상하이엑스포의 주 무대였던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황푸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루푸대교를 지나갈 때면 여의도 63빌딩(249m)보다 높은 이 빌딩이 훤히 보인다. 행정구역상으로 상하이시 푸둥(浦東)신구에 속하는 이 빌딩은 초고층 경연장인 푸둥에서도 손꼽히는 높이의 빌딩이다. 세계 두 번째, 중국에서 가장 높은 상하이센터(632m)를 필두로 한 푸둥의 높이 200m 이상 초고층 오피스빌딩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다.(2019년 4월 현재) TV 중계탑으로 사용하는 동방명주탑(468m)까지 포함하면 푸둥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이 빌딩의 주인은 다름아닌 한국의 SK그룹. 2010년 상하이엑스포 직후 상하이시로부터 해당 부지를 낙점받은 SK는 빌딩 신축에 착수했다. 2014년 말 착공에 들어가 베이징건공(北京建工)그룹이 시공을 맡았는데 올해 안에 완공을 앞두고 있다. 겉으로 보면 서울 종로구 서린동의 SK그룹 본사와 비슷한 각진 보수적 형태로 색깔만 하얀색으로 다르다. 골조공사는 모두 끝마친 상태로 현재 외벽을 마무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공사장 인근에서는 자재를 적재한 트럭과 인부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올 연말 완공하고 내년 초부터 입주가 시작될 것”이라며 “아직 입주시기가 좀 남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계열사가 이동할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상하이 SK타워는 1992년 한·중 수교 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현지에 직접 세우거나 매입한 빌딩 중 가장 높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역시 올해 말 준공과 입주를 앞둔 베이징의 중국삼성 본사 빌딩(260m)보다도 약 14m나 높다.

상하이 SK타워 완공 후 초고층 꼭대기에 SK그룹의 ‘행복날개’를 붙이면 SK그룹은 물론 상하이에서 한국 기업과 현지 교민들의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한국 재계 3위, 글로벌 500대 기업에 속하지만, 중국에서 B2B(기업 대 기업) 사업을 주로 하는 터라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 SK하이닉스(반도체), SK종합화학(에틸렌) 등을 중국 현지인들이 알 리가 없다. 일본계 화장품으로 미국 P&G에 인수된 ‘SK-Ⅱ’를 만드는 화장품 기업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사실 그간 중국 경제의 중심 상하이에는 제대로 된 한국계 빌딩이 없었다. 중국에서 한국 경제나 기업들이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 과거 김우중 회장 시절 대우그룹이 상하이 도심 번화가인 쉬자후이(徐家匯)에 89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부지까지 낙점받았지만 대우그룹의 공중분해로 무산됐다. 현재 이 자리는 홍콩계 부동산기업이 쇼핑몰, 호텔 등으로 복합개발 중이다.

그나마 상하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빌딩은 푸둥 루자주이의 씨티은행빌딩 옆에 있는 미래에셋빌딩 정도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높이가 31층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 대부분은 상하이총영사관이 있는 구베이(古北) 등지에 현지 빌딩을 임차해 셋방살이를 하는 신세다.

이는 상하이에서 일찍부터 부동산을 자체 개발하거나 매입해 자국 기업들의 전진기지로 삼은 일본 기업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상하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101층 환구금융센터(492m)는 일본의 모리빌딩이 지은 빌딩이다. 당초 일장기를 상징하는 형태로 설계했다가 상하이시 당국의 제지로 설계를 변경하기까지 했다. 이 밖에 상하이 도심에는 오쿠라, 닛코 등 일본계 호텔과 이세탄, 소고, 다이마루, 다카시마야 등 일본 간판을 내건 백화점도 수두룩하다.

중국 내 한국 기업 빌딩 중 최고 높이

신축 중인 상하이 SK타워는 지상 59층, 지하 3층 건축연면적만 20만345㎡에 달해 SK그룹 관련 계열사와 상하이에 진출해 있는 각종 한국계 기관들을 수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현재 상하이에 진출해 있는 SK그룹 각 계열사들은 상하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시너지를 못 내고 있다. 빌딩이 완공되면 상하이 SK타워를 중심으로 각지에 흩어져 셋방살이를 전전하고 있는 SK그룹 계열사 및 관계사들은 물론 한국계 기업과 관련 기관들까지 속속 입주할 것으로 기대된다.

상하이 SK타워는 상하이 지하철 7호선 ‘허우탄역’을 끼고 있어 도심과도 3~4개 역이면 연결된다. 이 일대 교통여건 개선을 위해 황푸강 아래를 가로질러 푸시(浦西)와 연결하는 하저터널도 한창 공사 중이다. 최근 상하이에 오피스빌딩들이 많이 공급되면서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은 것이 한 가지 걸림돌이지만, 랜드마크인 SK타워의 상징성과 편리한 교통, 입주자들의 구매력을 생각하면 한국계 주재원들을 주로 겨냥하는 한국계 프랜차이즈들도 대거 입주할 것으로 보인다.

빌딩 완공 후 상당한 평가차익도 기대된다. 사실 중국의 ‘부(富)’의 원천은 부동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10대 부호 가운데 부동산개발상이 몇 명이나 있는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1선 도시’들의 건물주는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막대한 평가차익을 얻었다. “중국에 공장을 짓는 대신 아파트나 빌딩을 지었으면 크게 돈을 벌었을 것”이란 자조 섞인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그나마 한국 기업들은 베이징에서는 ‘립스틱 빌딩’으로 불리는 LG트윈타워(140m)를 시작으로 삼성, 현대차, SK, 포스코 등이 자체적으로 부동산을 개발하거나 매입해서 기업 위상을 높여왔다. 올해 완공을 앞둔 베이징 중국삼성 본사 역시 높이 260m로 초고층 빌딩에 속한다.

상하이 SK타워가 자리한 허우탄은 상하이 도심과 가까운 신흥개발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상하이에서 ‘탄(灘)’이라고 하면 황푸강이 물굽이치는 곳을 지칭하는데, 상하이를 상징하는 단어다. 1920~1930년대 ‘동방의 파리’로 전성기를 구가한 황푸강변의 ‘와이탄(外灘)’을 비롯해 ‘탄’ 자가 들어가는 곳은 대부분 황푸강 조망권을 끼고 있다. 하지만 와이탄과 건너편 루자주이 일대에는 더 이상 부동산을 개발할 땅이 남아 있지 않다.

이에 상하이시는 2010년 상하이엑스포를 기점으로 와이탄 상류의 허우탄, 그보다 더 상류의 첸탄(前灘)을 집중 개발하기 시작했다. 첸탄에서도 높이 280m의 ‘첸탄센터’라는 초고층 빌딩이 신축 중이다. 허우탄의 SK타워와 첸탄의 첸탄센터는 향후 상하이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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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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