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모바일 퍼스트’ 시대, 가장 급변하고 있는 시장이 광고시장이다. 지난해 미국의 인터넷 광고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었다. 이 중 모바일 부문 광고 매출은 699억달러로 2017년보다 40% 급증했다. 인터넷 광고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TV, 신문, 라디오 등 기존 미디어 광고시장은 비상이 걸렸다. 2017년 이미 디지털 광고 매출은 TV 광고를 앞질렀다. 최근 SK텔레콤도 디지털 광고회사인 인크로스를 인수하면서 광고시장에 뛰어드는 등 시장이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다. 광고시장의 무게중심이 디지털로 이동하면서 기존 미디어에 기반한 종합광고대행사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대표 종합광고대행사들의 매각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광고시장이 ‘디지털’ 전략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하바스코리아 이요셉(49) 대표를 만났다. 하바스는 프랑스가 본사인 글로벌 광고 미디어 그룹으로 1835년 설립됐다. 시가총액 36조원, 업계 1위다. 세계 140개국에 진출해 있고 직원은 2만여명에 달한다. 이 대표는 2016년부터 하바스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중학교 때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학을 나와 영국 스털링그룹 광고영업, 제일기획 유럽법인 삼성전자 구주총괄 마케팅 팀장, 런던 원에이전시(제일기획 소속) 대표 등을 거쳤다. 이 대표가 맡은 후 하바스코리아는 매출도 직원도 3배 늘었다. 전통적인 광고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례적인 수치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바라본 광고시장의 전망은 어두웠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이 대표로부터 국내 광고시장의 문제점과 하바스의 생존전략을 들어봤다.

“광고 채널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지상파만 있던 시장에 종편, 케이블 채널, IPTV에 더해 유튜브, 넷플릭스, 아프리카TV나 각종 소셜미디어까지 채널별 전략을 세워야 하니 광고회사들로서는 너무나 복잡한 환경이 됐습니다. 페이스북은 지고 인스타그램이 뜨는 등 트렌드 변화 속도도 너무 빠릅니다. 게다가 인플루언서들이 광고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셀프 광고도 얼마든지 가능해졌습니다. 시장이 세분화되니 마이크로 매니징을 해야 합니다. 과거처럼 TV 광고 하나로 끝나던 세상에 비하면 광고회사들로서는 변수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이 대표는 “광고 시간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30초짜리 TV 광고에서 이젠 유튜브의 6초짜리 범퍼광고(다른 영상으로 넘어갈 때 나오는 광고)가 대세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소비자를 사로잡을 시간이 짧아졌다. 6초에 승부를 봐야 하는 만큼 강렬한 임팩트와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해졌다. 미국 소비자조사기관인 컴스코어는 “밀레니얼 세대가 광고에 시선을 빼앗기는 시간은 5~6초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가장 큰 도전은 소비자들의 무관심”이라고 말했다. “뇌과학적으로 영국의 경우 소비자 개개인이 상업 메시지에 노출되는 것이 하루에 4000건이라고 합니다. 반면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걸 극복할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과거엔 라이프스타일 등이 획일적이었기 때문에 접근이 쉬웠지만 이젠 세대별·성별·취향별로 맞춤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별·플랫폼별로 영상이 달라져야 합니다. 광고가 한 편이 아니고 수백 편, 수만 편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개인에 따라 인터넷에서 노출되는 광고가 다른 것처럼 한 브랜드의 광고도 개인에 따라 다른 영상이 제공되는 시대가 될 겁니다.”

소비자 사로잡을 키워드는 ‘신뢰’

환경의 변화 속에서 광고에 꼭 필요한 요소는 뭘까. 이 대표는 “신뢰”라고 말했다. 하바스그룹에서 33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소비자의 75%가 ‘신뢰’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았다는 것이다. 신뢰받는 브랜드가 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대표는 미래 소비자를 사로잡을 키워드가 ‘콘텐츠 마케팅’이라고 했다. 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콘텐츠에 광고를 녹여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지극히 이기적입니다. 가성비를 따집니다. 실질적인 도움이 돼야 하고 개인적인 요소에다 공동체의 가치까지 융합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이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광고에 노출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고민입니다. 어쨌든 소비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죠.”

나라별로 소비자의 특성도 다르다. 한국 소비자는 특히 감성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한국 소비자는 감성이 70퍼센트, 이성이 30퍼센트 작용한 반면 영국, 일본은 반대로 이성이 70퍼센트를 좌우합니다. 미국은 50 대 50입니다. 미국에서도 열정적인 히스패닉, 라틴계는 감성이 강하고 유럽 북부 백인은 이성이 강합니다.”

광고는 짧은 순간에 소비자도 모르는 소비자의 마음을 건드려야 한다. 소비자와의 ‘6초 전쟁’인 셈이다. 이 대표는 위기의 광고시장을 위해 ‘고민클럽’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라고 했다. 광고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는 시대, 하바스도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고 있다. 광고회사의 가장 큰 무기는 ‘아이디어’이다. 창의성을 활용해 다양한 업종과의 협업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최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주유소 프로젝트’이다. 전기차·수소차 시대에 대비해 폐업하는 주유소를 새롭게 변신시키는 프로젝트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다. 기존에 없던 제품을 개발해 판매이익을 나누거나 실버산업에 체험을 더한 사업도 고민 중이다.

하바스처럼 글로벌 광고회사들에 한국 시장은 더 힘들다. 한국 광고시장은 인하우스 문화이다. 대기업 소유 광고회사가 계열사의 광고를 도맡아 하고 있다. 글로벌 광고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구조다. 말하자면 내부거래인 셈이다. 게다가 광고 대행료도 광고료에서 15% 정도를 떼는 커미션 형태이다. “해외에서는 광고회사가 일한 만큼 대가를 주는 피(fee)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커미션 문화는 아이디어나 시간 등 무형에 대한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국내 시장도 피 베이스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 광고시장의 규모는 2017년 12조8000억원, 2018년 13조6000억원이었다. 이 대표는 “프랑스보다 더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광고시장을 통해 보면 세상의 변화가 더 잘 보인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프로그래매틱 기법이 확산되는 등 광고판이 급속하게 진화되고 있는 만큼 광고시장의 생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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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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