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2016년 7월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인 ARM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AI 시대의 준비에 나섰다. ⓒphoto 조선일보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2016년 7월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인 ARM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AI 시대의 준비에 나섰다. ⓒphoto 조선일보

지난 7월 4일 한국을 방문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날 오후 2시께 청와대를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손 회장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물었다. 손 회장은 말했다.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AI),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다.” 대답을 들은 문 대통령이 한국의 인공지능 인재 육성과 투자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자 손 회장은 “그러겠다(I will)”고 답했다.

원래 두 사람의 만남 시간은 40분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대화는 90분간 이어졌다. 대통령이 상대방에게 할애한 대화 시간은 상대방의 비중을 뜻한다. 예정보다 50분을 더 만났다는 건 그만큼 손 회장에게 얻을 것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우리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 아이디어를 손 회장에게 묻고 자극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1998년 2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을 만난 손 회장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브로드밴드(초고속 인터넷망)”라고 조언했다. 지금 우리는 그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를 향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속망을 가진 국민, IT 강국이라는 평가를 얻게 됐다. 21년이 지난 뒤 돌고 돌아 다시 청와대를 가게 된 손 회장이 이번에 강조한 것은 AI였다. 당연히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손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래의 ‘빅뱅’을 말하려고 한다. 그리고 소프트뱅크가 그 주제에 어떻게 접근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그의 AI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된 게 아니다. 소프트뱅크에는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라는 학교가 있다. 다음 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곳으로 내부 직원 270명, 외부인 30명을 뽑아 수업을 진행한다. 이곳에서도 가장 강조되는 건 다음 시대의 모습이다. 지난 2015년 직접 강의에 나선 손 회장은 “30년 후에는 1인당 1000개의 사물들이 연결된다. 지구 전체로 보면 10조개의 AI를 갖춘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싱귤래리티 국면으로 진입하면 인간의 생활은 극적으로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이 자주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다소 생소할지도 모를 ‘싱귤래리티’다. 기술적 특이점을 말하는데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인류 본연의 지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손 회장에게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상징하는 핵심 용어다.

“반도체 칩이 신발에 들어가면 신발이 당신보다 더 똑똑해진다. 더 똑똑한 그걸 당신이 밟고 다녀야 한다.” 201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도 그의 화두는 AI와 그 AI가 사람의 지능을 뛰어넘는 싱귤래리티였다. “조만간 인공지능이 수퍼지능이 되는 게 실현될 거다. 이 수퍼지능은 모든 디바이스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30년 안에는 로봇 100억대가 인간을 도울 것이고 우리의 생활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바뀔 것이다.”

지난 7월 4일 문재인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청와대 본관에서 만나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4일 문재인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청와대 본관에서 만나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photo 뉴시스

“30년만 지나면 모든 산업은 재정의”

그는 AI가 모든 산업을 재정의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만약 모든 산업이 새롭게 정의될 때 어떻게 접근해 가는 게 좋은 것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손 회장은 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는 건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30년 뒤에는 직접 핸들을 잡는 일이 마치 승마처럼 취미가 될 수 있다. 이런 상상이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실제로 AI에서 성과를 보인 기업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그럴 때마다 손 회장은 아이폰을 언급했다. “그런 비판은 10년 전 아이폰이 등장한 직후, 스마트폰의 기능을 알고 있던 사람이 적었던 때와 비슷한 현상이다. 10년 후만 돼도 AI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될 거고 그래서 기업이 지금이라도 더욱 개발에 집중해야 하는 분야다. 알고 있다면 하루라도 더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

그가 상상하는 AI 시대의 그림은 무엇일까.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ARM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016년 7월 19일 소프트뱅크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세계 2위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234억파운드(약 35조원)에 인수했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당시 인수 이유를 묻자 손 회장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기술업계의 패러다임 변화에 먼저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ARM은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는 회사다. ARM은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인데 반도체 중에서도 AP(Application Processor)를 설계한다. AP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CPU로 이해하면 쉽다. 현존하는 애플이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AP의 대부분은 ARM의 설계에 기반을 둔 제품이다. 매출은 삼성전자나 인텔과 비교하면 수십 분의 1 수준이지만 영향력만큼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AI 시대의 지휘자가 되고 싶다”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했을 때 손 회장은 “왜 소프트뱅크 같은 통신사가 ARM을 인수하는 건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월드 2018에 등장한 그는 답을 내놨다. “2017년 단 1년 동안 전 세계에서 약 15억대의 스마트폰이 팔렸다. 대략 30억~40억대의 스마트폰이 전 세계 70억명의 사람들 손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 스마트폰에 100% 존재하고 있는 게 ARM의 프로세서다. 자동차로 말하면 엔진에 해당하는 거다. 세상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은 이제 없으면 생활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됐다. 이런 현실 속에서 100%의 엔진 설계를 맡고 있는 것이 ARM이다. 그리고 이 ARM의 프로세서는 이제 스마트폰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자동차, 가전, 게임기 등 모든 것에 들어간다.”

손 회장은 ARM이 만든 1조개의 AI칩을 2030년까지 전 세계에 뿌리는 게 목표다. 1조개를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해 거기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자율적으로 학습하고 분석해서 전 지구적 패러다임 변화를 선두에서 끌어가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결국 AI가 만들어낼 진화는 이런 방대한 데이터를 통한 예측력의 진화인 셈이다. 이런 예측력을 통제하는 쪽이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여기에서 그는 어떤 역할을 맡으려고 하는 걸까. 지난 6월 19일 소프트뱅크 주주총회에서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그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지만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지휘자로서 AI 혁명의 주인공인 전문가 집단에 투자해 투자처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AI를 바탕으로 이뤄질 생태계 조성에 꽤 앞서 있다. 갖고 있는 무기는 막대한 자본이다. 그가 중심이 돼 운영하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1000억달러, 우리 돈 118조원 규모를 자랑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를 중심으로 소프트뱅크, 아부다비 국부펀드, 애플, 폭스콘, 퀄컴 등이 출자했다. 투자를 받은 기업은 잘나간다는 하이테크 기업들이다. ARM을 비롯해 원웹(위성통신), 우버(차량공유), 위워크(공유오피스), 엔비디아(그래픽처리장치), 쿠팡(전자상거래), PAYTM(모바일결제)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따지고 보면 서로 얽혀 있는 관계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들.

1000억달러 ‘비전펀드 2’ 유치

예를 들어 인공지능 컴퓨팅 기술을 갖고 있는 엔비디아를 보자. 반도체 칩에 AI를 탑재하는 건 엔비디아의 몫이다. 곳곳에 뿌려진 칩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건 위성통신 스타트업인 원웹이 담당한다. 비전펀드가 1조원을 투자한 영국 스타트업 원웹은 약 700개의 인공위성을 고도 1400㎞ 이하의 저궤도에 발사해 지상 어디서든 초고속 인터넷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가까이, 더 촘촘하게 위성으로 둘러싼다면 그 어느 오지에서도 AI칩이 들어간 사물인터넷(IoT)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엔비디아는 완전한 무인 자율주행차가 완성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도 제공해준다.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줄 수 있는 ‘페가수스’(초당 320조회의 연산이 가능한 로봇택시용 인공지능 컴퓨터) 같은 AI 컴퓨팅 시스템은 엔비디아가 제공한다. 비전펀드의 투자처인 우버에 5500억원을 함께 투자한 도요타는 현재 엔비디아와 기술제휴를 맺고 있다. 도요타는 이미 소프트뱅크와 모빌리티 산업에 진출하기로 제휴를 맺은 우군이다.

소프트뱅크가 중국의 알리바바에 투자해 큰 이익을 본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분야의 거대 기업은 이미 소프트뱅크의 우군이다. 한국의 쿠팡, 인도의 플립카트, 인도네시아 토코피디아 등도 이미 비전펀드의 투자를 받았다. 아시아의 주요 전자상거래 시장은 소프트뱅크를 중심으로 한데 묶여 이커머스 블록을 만들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전 세계로 상품을 배송하는 건 플렉스포트가 담당할 수 있다. 기업을 대상으로 온라인 화물운송 예약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데 비전펀드로부터 10억달러를 유치했다. AI를 활용해 항공에서 해상, 트럭, 철도까지 효율 높은 운송 경로를 찾고, 최적의 수송 과정을 이뤄내는 게 플렉스포트가 추구하는 비즈니스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나 샤프트가 만드는 보행 로봇은 쿠팡이나 플립카트, 토코피디아 등의 거대한 물류 창고에서 작업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라지브 미스라 비전펀드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진 곳에 투자한다. AI를 통한 자동화로 비즈니스를 혁신하는 곳에 투자하고 투자 회사들 사이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곳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이런 원칙 아래 손 회장은 차근차근 AI 시대를 준비해왔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AI가 보편화된 시대를 상정해 과감하게 테크기업에 투자했고 그들을 연합군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손 회장은 1000억달러의 ‘비전펀드2’를 유치해 다시 한 번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서겠다는 구상까지 발표했다. 새로운 펀드는 철저하게 AI 관련 기업에만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AI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가진 건 손 회장만은 아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소프트웨어는 세계를 먹는다. 그러나 AI는 소프트웨어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AI가 세계를 먹는다’로 수렴되는데 손 회장이 그리는 웅대한 미래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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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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