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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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생산과 소비가 동시다발적으로 멈춰 서며 세계경제가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이렇게 추락하는 경제 상황 반전 카드로 세계 곳곳에서 금리 인하가 단행되고 있다. 한국 역시 금리 인하 대열에 합류한 상태다.

그런데 최근 이런 금리 인하 현상이 극단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미 제로금리(0%)나 0.1~0.2%대 초저금리로 인하 여력을 사실상 상실한 미국과 영국, 몇몇 유럽 국가들에서 ‘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0%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주요 경제국의 채권 등 시중금리까지 0% 아래로 진입하는 이른바 ‘마이너스의 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미 연준서 터진 ‘마이너스 금리’ 요구

마이너스 기준금리는 시중은행 등 금융사가 중앙은행에 예치하게끔 돼 있는 준비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정상적인 플러스(+) 금리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은 중앙은행에 예치한 돈에 대해 정해진 금리만큼 이자를 받아왔다.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일종의 이자수익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면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에 예치한 돈에 대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거꾸로 예치한 돈에 대해 중앙은행에 보관료를 지불해야 한다.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비용, 즉 손실이 발생한다.

이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 예치금 규모를 줄이는 것이다. 최소 규모의 돈만 예치하고 나머지는 회수해 고객 대출과 투자 등의 형태로 시중에서 자금을 운용한다. 결국 마이너스 금리는 이런 형태로 시중의 통화량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최근 금리 인하를 넘어 몇몇 국가에서는 이런 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통화 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에 마이너스 금리를 압박하는 국가도 나타나고 있다. 극단적으로 돈을 푸는 방법을 활용해 ‘코로나19로 급격히 얼어붙은 소비부터 일단 회복시키고, 이렇게 소비가 회복되면 재고소진과 생산확대를 동시에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바람이 마이너스 금리 카드에 대한 유혹을 키우는 것이다.

당장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마이너스 기준금리’ 요구가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12일 “다른 국가들이 마이너스 금리의 혜택을 받고 있는 한 미국도 이런 ‘선물’을 받아야 한다”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적으로 쓰는 등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로 인해 주저앉은 고용지표와 경제성장률, 여기에 각종 소비지수를 시급히 끌어올려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의 조급함이 마이너스 금리라는 욕구를 키우고 있다.

물론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과 상당수 연준 위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인 마이너스 금리 요구 다음 날인 5월 13일 “마이너스 금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즉각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제로금리’ 아래로의 금리 인하 가능성을 진화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6월 들어 제롬 파월 의장 등 연준의 ‘마이너스 금리 반대’라는 기본 기조에 금이 가는 듯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위 웬 이코노미스트와 브라이언 레인볼드 연구원이 “V자형 회복을 위해서는 공격적인 재정 및 통화 정책이 필요하다”며 “공격적인 통화 정책으로 마이너스 금리와 대규모 인프라 지출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제롬 파월과 연준 위원들이 이미 마이너스 금리 거부라는 선을 그어 놓은 상태에서 전체 연준 차원은 아니지만 연준 내에서 ‘마이너스 금리 요구’가 나왔다는 점이 미국 자본시장과 금융가를 흔들고 있다.

특히 1분기 -5%라는 최악의 경제성장률이 이미 확인됐고, 2분기는 물론 연간 경제성장률이 -5%대에서 -7%대 추락이 전망되는 상황에서 마이너스 금리는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천문학적 재정확대와 이미 실행 중인 제로금리와 무제한적 양적완화도 모자라 마이너스 금리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는 것이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은행 총재(왼쪽).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오른쪽). ⓒphoto 뉴시스
앤드루 베일리 영국은행 총재(왼쪽).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오른쪽). ⓒphoto 뉴시스

영국, -0.003% 금리로 국채 발행

유럽 최대 금융·자본시장인 영국은 금리 정책에서 미국보다 몇 발 더 나간 듯 보인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국은행(BOE)의 움직임 또한 당장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내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새를 향해가고 있다.

현재 영국의 기준금리는 0.1%로 사상 최저 금리다. 지난 3월에만 두 번에 걸쳐 총 0.65%포인트 떨어뜨리며 기준금리를 0.1%로 만든 것이다. 사실상 한 번만 더 금리를 떨어뜨리면 영국 최초의 마이너스 기준금리 시대가 열리게 된다. 지난 5월 초만 해도 0.1%가 유지되거나, 아무리 낮아도 미국과 같은 제로금리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 대세였다.

하지만 지난 5월 20일 영국은행 앤드루 베일리 총재가 영국 하원에 참석해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모든 수단을 적극 검토 중이며 마이너스 금리가 영국 금융시스템에 적합한지 연구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으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발언이 몰고 온 영국 내 파장은 상당하다. 코로나19로 경제성장률이 추락한 상황에서 소비를 회복시킬 선택지가 금리 인하 외에는 많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이 마이너스 기준금리 전 단계가 아니냐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5월 중순 2023년 만기의 금리 -0.003%짜리 37억5000만파운드 규모의 국채를 발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영국 최초의 마이너스 금리 국채가 자본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5월 발행된 -0.003%의 이 영국 국채를 사들인 투자자는 채권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0.003%만큼의 이자를 토해내야 한다. 이 국채가 발행되기 전 ‘채권 금리 하락 가능성’을 전망하긴 했지만 마이너스로 추락할 것이라는 예측은 많지 않았다.

영국의 마이너스 국채 금리는 그것 자체로도 시장에 충격이지만, 향후 영국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선택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예고편이라는 게 금융·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은 어떨까. 현실적으로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마이너스 상태로 떨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한국 경제는 올해 1분기 -1.3%의 경제성장률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4분기 이후 약 12년 만에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았다.

2분기에는 -2%대로 경제성장률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 상황 악화와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낙관론으로 일관해온 한국은행조차 지난 5월 28일 한국의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을 -0.2%로 하향 조정했다.

이와 함께 두 달여 전 한 번에 0.5%포인트를 떨어뜨리면서 0.75%로 급락시켰던 기준금리까지 다시 0.5%로 더 낮췄을 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불과 3개월 만에 총 0.75%포인트에 이를 만큼 빠르고 큰 폭으로 기준금리가 내려가고 마이너스 성장률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의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에 대해선 취재에 응한 경제학자나 금융·자본시장 전문가들 대부분이 강하게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화폐가치 하락 수준’과 ‘자금이탈 가능성’ ‘미국과의 금리 격차’ 등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를 더 내릴 수 있는 여력이 사실상 없는 상태라는 지적이다. 지난 5월 기준금리 하향조정으로 금리 정책의 여유를 사실상 소진했다는 뜻이다.

해외에선 일부 시중은행 보관료 부과

사실 한국에서 ‘마이너스 금리’ 징조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보다 시중은행들에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고객에게 제시하고 있는 예·적금 등 시중 이자율 하락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기자는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KB국민은행·우리은행 등 시중은행, BNK부산은행 등 지방은행은 물론 SH수협과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까지 총 18개 은행 51개 정기예금 이자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예금 중 1년(12개월) 기준 채 1%도 안 되는 0%대 이자 상품이 무려 59%에 달하는 30개에 이르렀다. 불과 연 0.55%의 이자율의 예금도 수두룩한 상황이다.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시중 체감 금리가 제로(0%)이거나 마이너스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경제 상황과 한국은행의 움직임에 따라 향후 고객이 맡긴 돈에 대해 은행이 ‘보관료’를 징수하는 날이 올 가능성도 있다. 예금 등 고객이 맡긴 돈에 은행이 보관료 명목의 비용을 요구하면 사실상 시중 금리가 마이너스 상태로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실제 스위스계 대형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와 UBS의 경우 고액 예탁자(금)에 대해 지난해부터 일정 비율 보관료를 부과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는 정상적인 통화정책이나 자본운영 방법은 아니다. 부작용도 상당하다. 스위스와 일본 등 실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국가의 경제 상황이 기대만큼 나아졌다거나, 의미 있는 수준의 회복 징후가 확인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화폐가치 하락과 자본이탈 등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만신창이가 된 세계경제 상황은 곳곳에서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유혹을 키우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몇몇 금융·자본 선진국들로부터 마이너스 금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해당국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다양한 형태의 부작용이 확인되는 상황에서 마이너스 금리는 사실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금리 조정 여력을 상당 부분 소진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우리 경제와 밀접한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이너스 금리 논쟁을 한가하게 쳐다볼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주요 경제국들의 소소한 경제 정책과 통화 정책 영향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자본이탈이 수시로 나타나는 게 한국 시장이다. 이들의 사소한 통화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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