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주식 공모에 31조원이 몰린 SK바이오팜. ⓒphoto 뉴시스
개인 주식 공모에 31조원이 몰린 SK바이오팜. ⓒphoto 뉴시스

주식 상장 시장이 뜨겁다 못해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 수십조원이 넘는 투자자들의 돈이 상장 전 공모주 청약에 한꺼번에 몰려들며 시장 관계자들은 물론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 관계자들까지 놀라고 있다. 올 초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정부와 한국은행이 경쟁적으로 시중에 쏟아낸 돈의 힘, 즉 유동성의 힘이 주식시장에서도 상장 시장을 펄펄 끓게 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코로나19 공포에 생산과 소비 등 경제활동이 멈춰 서며 깊은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다른 분위기다. 코로나19가 발원지인 중국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쏟아진 지난 3월,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하지만 이 폭락은 쏟아져 나온 돈의 힘으로 빠르게 회복됐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천문학적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0%), 심지어 무제한적 양적완화 조치까지 이어지며 돈을 찍어내고 있다.

수십조원 쏟아졌는데 갈 곳 못 찾아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미 상반기에 1차 11조7000억원, 2차 12조2000억원 등 총 24조원에 육박하는 추경(추가경정예산)으로 천문학적 재정이 시중에 풀리고 있다. 현재는 무려 30조원이 넘는 3차 추경까지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 중이다. 여기에 한국은행 기준금리마저 지난 3월 0.75%로 급락했고, 지난 5월 28일에는 다시 0.5%까지 떨어졌다. 이런 초저금리가 시중 유동성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이런 천문학적 돈을 소화해줄 곳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기업 등 민간 부문의 경제활동이 예상을 넘어설 만큼 심각하게 위축되며 ‘돈을 풀어 기업의 생산과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희망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생산과 투자 모두 마이너스 상태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을 만큼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푼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모든 가구에 대해 정부가 최대 100만원(4인 이상 가구)에서 최소 40만원(1인 가구)씩 지급하고, 이를 8월 31일까지 무조건 쓰게끔 기간을 제한한 긴급재난지원금의 효과로 5월 들어 상대적으로 소비가 회복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8월 말까지 돈을 모두 소진해야 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의 성격상 이번 소비 회복이 단기적,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재정과 한국은행으로부터 짧은 시간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사용 기한이 정해진 일시적 소비시장 이외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확대된 유동성 상장 시장으로 이동

이렇게 시중으로 풀려나온 거대한 자금이 움직인 곳이 결국 수익을 좇는 자산시장, 그중에서도 공모주 중심의 주식 상장 시장이다. 이 같은 유동성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SK바이오팜 공모주 청약이다. 지난 6월 23일과 24일 이틀간, SK바이오팜은 개인투자자들을 상대로 상장 전 공모주를 청약했다. 이 주식을 배정받겠다며 청약에 쏟아져 들어온 시중 자금이 무려 30조9889억원이다. 한 기업의 상장 공모주 청약에 31조원에 육박하는 돈이 몰려든 것은 한국 주식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다.

지금껏 기업 상장 전 공모주 청약에 가장 큰돈이 쏟아져 들어온 것은 2014년 2월 제일모직(현재 삼성물산) 주식 공모 당시 30조635억원이다. 제일모직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재계 1위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 기업이다. 상장 당시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배자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지분이 23.24%였고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과 제일모직 이서현 사장도 각각 7.75%,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3.45% 등 삼성 이씨 오너일가의 지분이 무려 42.5%에 육박했다. 당시 삼성그룹 출자구조상 삼성가 오너일가에 제일모직은 그룹 전체 지배를 위해 절대적인 기업이었다.

즉 제일모직 상장은 삼성 오너일가에 그룹 지배력을 더 강화하는 열쇠인 동시에 가장 쉽고 빠른 재산 이전과 증식 방법이었다. 특히 삼성 오너일가를 중심으로 제일모직의 가치를 향후 어떤 형태로든 빠르게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이것이 현재 불거진 ‘이재용 부회장 사태’를 불러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제일모직이었기에 상장 직전 주식 공모에 무려 30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돈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사상 최대 31조 밀려든 SK바이오팜

그런데 삼성그룹 제일모직의 이 기록을 지난 6월 SK그룹 계열 SK바이오팜이 가뿐히 깨버렸다. 그것도 제일모직 상장 당시 공모주 청약보다 무려 9200억원 이상 많은 돈이 SK바이오팜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주식시장, 특히 상장 시장을 놀라게 한 것이다.

SK바이오팜은 중추신경계 관련 신약 개발에 암 관련 신약 개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SK그룹의 바이오·제약 계열사다. 현재 수익성은 좋지 않지만 ‘세노바메이트’ 등 뇌전증 신약 물질 개발과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약 판매 허가를 받으며 성장성 면에서 한국 바이오·제약 기업들 중 선두권으로 평가받았다. 또 상장을 위한 주식 공모 이전부터 SK그룹 지주사인 ㈜SK가 지분 100%를 보유해 사실상 ㈜SK와 한 몸이라는 배경까지 작용하며 일찍부터 상장 대어로 불렸다.

상장을 한다면 거대 자금이 몰려들 것이라는 전망이 컸던 게 사실임에도 무려 31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의 유동성 잔치가 벌어질 것을 예측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3월부터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수십조원의 천문학적 유동성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수익성을 좇는 주식시장, 그중에서도 손실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상장·공모주 시장으로 밀려든 것이다. 지난 7월 2일 상장과 함께 SK바이오팜 주가는 곧장 상한가로 올라섰다.

현재 시장의 관심은 상장 시장으로 향하고 있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SK바이오팜 주식 공모 이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다. 우선 SK바이오팜에 몰려든 31조원 중 실제 SK바이오팜 주식을 배정받은 돈이 불과 1조원 남짓이다. 결국 30조원이 시장으로 다시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SK바이오팜 주식을 노렸던 30조원뿐만이 아니다. 주식 투자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 역시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나 있다. 올해 초만 해도 30조원대이던 예탁금이 6월 말 50조원을 넘었고, 7월 들어 51조원에 육박할 만큼 빠르게 급증하고 있다.

이런 성격의 돈만이 아니다. 낮은 이자에도 불확실성이 큰 경제 침체기, 안전성 등을 이유로 은행권 (정기)예·적금 상품에서 잠자던 거액의 자금 역시 3월과 5월 연이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하락에 조금씩 들썩이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으로 몰렸던 예·적금 잔액이 기준금리가 0.5%로 떨어진 후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5월 말 3조3000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전체 은행권 정기예금에서 이탈했고, 주요 시중은행인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에서는 4월과 5월 두 달간 무려 8조6000억원에 육박하는 정기예금(성) 잔액이 줄어들었다.

2017년 12월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해외진출 유공 대통령표창을 받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 ⓒphoto 뉴시스
2017년 12월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해외진출 유공 대통령표창을 받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 ⓒphoto 뉴시스

주식 투자 대기자금 빠르게 급증

시장 전문가들은 정기예금을 이탈한 수조원의 돈 상당 부분이 은행과 증권사의 수시입출금 상품으로 흘러들었거나, 아예 예탁금에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짧은 시간 폭발적인 유동성 확대와 수익을 얻기 힘든 초저금리를 피해 언제든 수익을 좇을 수 있는 주식 투자 대기자금으로 시중 자금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거대한 유동성이 SK바이오팜 이후에도 상장 시장으로 계속 몰려들 가능성이 크다. 주식 상장 규모 면에서 SK바이오팜 못지않다는 평을 받는 기업이 2020년 하반기 상장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현재 아이돌그룹 중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을 보유한 연예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상장을 준비 중이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지난 5월 28일 이미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회사는 2019년 매출 5872억2447만원에 영업이익 987억4246만원, 순이익 724억2409만원을 기록했다. 실적만 보면 소위 3대 연예기획사로 불리는 SM과 JYP, YG를 넘어선다. 시장에서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캐시카우가 있어 실제로 상장할 수 있다면 연예산업계 최상위 기획사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공모 시 거대한 시중자금을 끌어들여야만 수익을 키울 수 있는 증권사들의 입장까지 묘하게 얽히며,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상장 규모를 3조~5조원대로 부풀려 놓은 증권사들이 상당수다. 개인 공모주 청약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금이 밀려들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장력과 기업의 안정성 면에서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취약하다는 분석도 크다. 현재 방탄소년단의 인기에 매출과 수익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들의 인기와 수익성이 떨어질수록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수익성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기업들 “유동성 커지는 지금 상장해야”

카카오 계열 카카오게임즈 역시 지난 6월 11일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중에게 익숙한 ‘카카오’ 브랜드 효과와 코로나19 사태가 투자시장에 일으킨 언택트(Untact) 열풍으로 카카오게임즈의 주목도가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910억4000만원, 순이익은 88억6500만원이었다. 하지만 2017년과 2018년보다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고, 2018년 한 차례 상장 시도가 실패한 약점도 있다.

지난해 9000억원대 매출을 올린 전자부품사 솔루엠파워도 상장을 준비 중이다. 이들 외에도 대형 게임사와 온라인 기반 IT기업, 콘텐츠 기업들 사이에서 유동성이 넘쳐나는 지금 상장에 나서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SK바이오팜에서 나타났듯, 마땅히 갈 곳을 찾기 힘든 수십조원에서 많게는 수백조원의 천문학적 유동성이 단기 수익성을 좇아 공모주 등 상장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한 시장 전문가는 기자에게 “‘정확하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몇몇 언론에서 현재 시중 유동성을 3000조원까지 추론하는 상황”이라며 “50조원을 넘어선 예탁금 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상장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도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경제 상황, 재정 상황은 더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지만 천문학적 규모로 풀려나오고 있는 유동성의 힘이 주식시장, 특히 상장 시장을 펄펄 끓어오르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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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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