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일 촬영한 서울 강서구 마곡동 엠밸리 6단지 아파트의 모습. 단일단지로는 마곡 최대의 규모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19일 촬영한 서울 강서구 마곡동 엠밸리 6단지 아파트의 모습. 단일단지로는 마곡 최대의 규모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엠밸리’란 브랜드의 아파트가 15단지까지 들어선 서울 마곡지구는 서울시가 주도한 마곡도시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1단지에서 15단지까지 총 1만2821가구가 공급될 예정인데, 가장 늦게 분양된 9단지와 10단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단지는 2014년부터 시작해 이미 입주를 완료했다. 앞으로 2년 뒤에는 9단지와 10단지도 입주를 완료할 예정이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에 걸쳐 있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으로 개발한 위례신도시와 달리 서울시와 SH가 단독으로 개발을 추진했다.

서울 마곡지구는 ‘소셜믹스’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곳으로 꼽힌다. 소셜믹스는 경제적 계층이 다르거나 다양한 인종을 섞어 주거지를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주로 경제적 계층이 다른 이들을 섞는 것을 말하며, 특히 한 단지 내에 일반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섞인 단지를 말할 때 사용한다.

소셜믹스는 비교적 오래전인 2003년부터 국내에 개념이 소개됐다. 학계에서도 논의가 활발한 편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소셜믹스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별로 없다. 국내외 여러 연구에서 혼합주택단지는 분양단지와 임대단지가 따로 조성된 단지에 비해 주민 융합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혼합주택단지 중에서도 분양가구와 임대가구가 잘 구별되지 않을 때 주민들의 주거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연구도 있다. 반면 분양단지와 임대단지를 따로 조성할 경우 사회적 위화감이 심해지고 임대단지가 슬럼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이다.

정부가 최근 8·4 대책에서 13만2000가구에 이르는 서울·수도권 아파트 공급대책 중 5만가구 안팎은 대규모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소셜믹스가 앞으로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정책처럼 대규모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면 주위에 있는 분양주택들과의 공존은 불가피하다. 8·4 대책에서 정부는 공공 재건축·재개발 때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허용한다는 조건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한다고 했기 때문에 소셜믹스 단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울·수도권에서 가장 최근에 분양된 택지 중 혼합주택단지가 대거 조성된 곳이 바로 마곡지구다.

일반과 임대가 혼재된 소셜믹스

임대주택은 현재도 서울·수도권 대부분의 공공개발 공동주택에 의무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현행 공공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령에 따르면 택지를 공공이 보유한 공공주택지구의 경우 전체 주택 중 35% 이상은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 민간이 주도하는 재개발·재건축의 경우에도 임대주택을 특정 비율 이상 공급해야만 건축 허가가 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임대주택 공급비율을 법으로 강제해 혼합주택단지를 조성하도록 하자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주택을 분양받은 이들과 임대로 사는 이들이 한 단지에 살면서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는 임대주택이 있는 10층 이하의 저층부와 일반분양주택이 자리 잡은 11층 이상 고층부 간에 비상계단으로 막혀 있어 논란이 됐다. 서울의 다른 단지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임차인들로 구성된 임차인대표회의와 갈등을 벌인 끝에 임차인 대표가 전직 입주자 대표와 맞고소전을 벌이기도 했다. ‘휴거(휴먼시아로 대표되는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부르는 별칭)’로 상징되는 어린 자녀들 간 갈등 역시 충격을 불러왔다. 임대주택의 경우 출입구를 따로 쓰도록 하고 커뮤니티센터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임대주택에 사는 이들을 차별하는 행위도 빈번히 발생해 사회문제가 되어왔다.

마곡지구의 경우 태생부터 혼합주택단지로 설계됐기 때문에 이런 갈등과 문제들로부터는 자유롭다. 우선 마곡지구 엠밸리 아파트들은 임대가구와 분양가구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상가 형태로 낮게 지어져 구분된 임대동이 한 귀퉁이에 따로 있는 최근 서울시내 민간 재건축·재개발구역과는 다른 점이다. 임대단지가 아예 따로 조성되는 판교, 위례 등 LH 주도 공공택지지구와도 다르다.

SH가 LH와 함께 개발한 위례신도시의 경우 임대주택과 일반분양주택들의 단지가 따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마곡지구에 비해 혼합주택단지의 비율이 낮다. 반면 마곡지구는 엠밸리 1단지부터 15단지까지 모든 단지가 혼합주택단지 형태로 지어졌다.(13단지 제외) 이 중 장기전세주택은 SH가 2007년부터 처음 공급을 시작한 공공임대주택의 한 종류로, 과거 시프트(Shift)라고 불리던 주택이다. 영구임대나 국민임대주택에 비해 훨씬 넓은 면적이 전세 형태로 제공된다는 특징이 있다. 국민임대주택은 전용 59㎡ 이하로 30년 동안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가 가능한 임대주택이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70% 이하의 서민계층에 한해 공급된다.

마곡지구는 “주위 임대아파트가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의 반대 사례로도 꼽힌다. 마곡지구에서 가장 최근 공공분양한 마곡 엠밸리 9단지의 경우 단지 내 임대 비율이 37%에 달하지만 1순위 청약 경쟁률이 146.82:1에 달했다. 전용 59㎡ 기준 분양가가 평균 5억원대, 84㎡ 기준 분양가가 평균 6억7000만원대였다. 그런데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엠밸리 8단지와 13단지의 실거래가는 11억~12억원을 상회했다. 반면 임대아파트가 없는 근처 노후아파트 단지들은 엠밸리 단지에 비해 가격이 절반 수준을 웃돌 뿐이다. 임대아파트가 속한 혼합단지라고 해도 인접 단지에 비해 가격 측면에서 전혀 불이익이 없는 셈이다. 마곡지구는 2017년부터 보면 집값이 서울에서 가장 많이 오른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엠밸리 6단지 아파트 옆에 있는 상가 1층의 사무실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2014년부터 입주한 신축 아파트라는 점이 가장 컸다”며 “LG 등 대기업이 마곡지구에 들어오고 지금도 기업들이 속속 들어온다는 점이 집값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줬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 마곡엠밸리 1단지와 3단지. 6단지와 마찬가지로 혼합주택단지로 조성됐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강서구 마곡동 마곡엠밸리 1단지와 3단지. 6단지와 마찬가지로 혼합주택단지로 조성됐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법령·제도적 뒷받침 마련돼야

그렇다면 마곡지구는 혼합주택단지의 이상적인 미래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마곡지구에 대해 SH 강서센터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마곡지구도 아직 소셜믹스란 측면에서 성공한 혼합주택단지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혼합주택단지는 태생적으로 갈등 관계를 내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수(受)분양자들은 소유권을 갖고 입주한다. 반면 임차인들은 자기 집이 아니라 SH의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소유권에서부터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갈등 관계를 갖고 있다. 소유권을 지닌 사람과 SH의 주택을 임대한 사람은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의 갈등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숙제일 것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분양주택 소유권자와 임차인을 어떻게 한데 섞이도록 할 것인가’가 당장 주어진 숙제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법령과 제도 정비다. 혼합주택단지의 경우 여러 법령을 동시에 적용받으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내재하고 있다. 현재 분양주택은 주택법과 공동주택관리법을 적용받고, 임대주택은 공공주택특별법과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받는다. 혼합주택단지의 경우 한 단지 내에서 여러 법을 모두 적용받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상충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법령과 제도의 개선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결국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일단 싸게 많이’ 공급한다는 기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간 공공임대주택은 서민들에게 싼값에 장기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주거불안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서울 노원구, 강서구 일대에 대규모로 공급된 임대아파트가 그 시초다.

하지만 실제로 요즘 공급되는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이미 중산층 대상으로도 적절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런 현실에서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게 관건이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울 대형 건축사무소의 한 건축사는 “국내에서는 임대라고 하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50㎡의 면적을 시세보다 아주 많이 싸게 주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지만 그건 다양한 임대 종류 중에 영구임대일 뿐”이라며 “중산층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공공임대의 목적이라고 할 때 이제는 기존의 서민 임대에서 새로운 중산층 임대로 패러다임을 확실하게 전환해 공공임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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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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