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나이키 생산공장 컨베이어벨트에서 근로자들이 ‘에어조던’ 운동화를 만들고 있다. ⓒphoto 나이키
중국의 나이키 생산공장 컨베이어벨트에서 근로자들이 ‘에어조던’ 운동화를 만들고 있다. ⓒphoto 나이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은 연쇄살인범 누명을 씌우고 고문까지 했던 백광호(박두식)에게 사과의 의미로 선물을 건넨다. 하얀 상자에 담긴 건 나이키 운동화. 선물을 본 백광호의 아버지는 “아이고 뭐 이런 걸 다…”라며 감사해한다. 하지만 운동화는 나이키가 아니라 짝퉁 ‘나이스’였다. 1980~1990년대 ‘나이키 운동화’는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상품 중 하나였다. 당시만 해도 다른 국산 브랜드 운동화에 비해 값도 비싸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야 겨우 신을 수 있던 신발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이키 운동화의 위상은 그 시절과는 다르다. 백화점과 인터넷 쇼핑몰부터 ABC마트, 레스모아 같은 멀티스토어에서도 쉽게 살 수 있고, 길거리에선 청소년뿐만 아니라 중년부터 70~80대 노인들까지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나이키 운동화는 가격 면에서 장점을 가졌다는 평가가 많다. ‘조던 시리즈’나 축구화 같은 일부 프리미엄 상품을 제외하면, 시중의 매장에서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운동화는 10만원 안팎의 가격이다.

특히 나이키 운동화는 다른 재화에 비해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예컨대 ‘스테디셀러’라고 평가받는 나이키 ‘에어포스원 로우’의 경우 2006년 10만9000원에 판매됐는데, 2020년 현재 12만9000원(나이키 공식 온라인스토어 기준)으로 약 18%가 올랐다. 식료품과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흔히 생활물가의 대표 항목으로 꼽히는 자장면이 같은 기간 약 43% 오른 것에 비하면 완만한 상승률이다. 그럼에도 나이키의 매출액은 2006년 149억5500만달러(17조7515억8500만원)에서 2020년 374억300만달러(44조3973억6100만원)로 상승했다. 나이키 운동화는 오히려 중고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농구화 에어조던 시리즈 등은 온라인 중고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희귀템’이다.

2017년 기준 나이키의 전 세계 운동화 시장 점유율은 21.1%로, 2위 아디다스(4.7%), 3위 스케쳐스(3.8%)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때는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나이키 운동화가 부담 없는 ‘국민 운동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인건비 절감이다. 1964년 미국에서 설립된 나이키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생산시설을 인건비가 저렴한 중남미와 아시아권으로 옮겼다. 이런 공장들에서 나이키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OEM이란 생산을 위탁받은 공장에서 주문자의 상표를 붙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키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41개국에 총 523개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고, 이 중 약 120곳이 신발을 전문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523개의 생산시설에는 총 110만여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국가별로 따져보면 베트남이 48만9000여명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은 인도네시아 22만여명, 중국 15만여명, 태국 4만여명 순이다. 본고장 미국은 정작 49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창신INC, 태광실업 등의 나이키 OEM 생산시설에서 2800여명이 일하고 있다.

나이키가 베트남에 가장 많은 근로자를 두고 있는 이유는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최저시급 대신 월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고 있는데, 하노이 등 월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1지역의 경우 2020년 기준 442만동(약 22만6000원)이다. 인도네시아의 최저임금 역시 지역별로 다르지만 월 400만루피아(약 35만5000원) 안팎이다. 세계적으로 신발 산업은 낮은 인건비와 풍부한 노동력이 바탕이 되는 국가에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때문에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서만 전 세계 신발 생산량 중 86%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은 신발 생산량에서 아직까지 세계 1위를 지키고 있지만, 평균임금 상승 등의 이유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이 중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또 나이키는 생산공정의 자동화 설계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각 단위별 공장에 기계 공학·공정 분석 등에 대한 인력을 양성해 대량생산에 적합한 자동화 설비를 늘리고 있다. 이러한 자동화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끼워 맞추는 조립 방법, 재봉하지 않고 ‘짜맞추는(KNIT)’ 방식 등으로 진행된다.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오리고 붙이는 수공업에서 디자인을 입력하면 기계가 알아서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제품 생산 외에 나이키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문은 마케팅과 광고다. 나이키는 2020년 한 해 마케팅과 프로모션 등에 35억9000만달러(약 4조2600억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키는 브랜드 관리 컨설팅회사 브랜드파이낸스(Brand Finance)가 올해 발표한 글로벌 500대 의류 패션 브랜드 가치에서 지난해보다 7% 증가한 347억9200만달러로 지난해에 이어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나이키 역시 코로나19 사태를 피해가진 못했다. 특히 중국의 판매장 중 약 75%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폐쇄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 탓에 나이키의 올해 2분기 순이익은 지난 분기 대비 38% 감소한 63억1000만달러였다.

2017년 기준 전 세계 신발 매출액의 약 81%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나머지 19%가 온라인 및 홈쇼핑 등을 통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온라인 매출 비중이 18.3%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2년 9%에 비해 두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온라인 쇼핑 이용 비중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나이키는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이커머스 아마존에 제품 판매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유통사를 거치는 경로를 줄이고, 회사가 소비자에게 직거래하는 ‘D2C(Direct to Consumer)’ 방식에 주력하겠다는 의도였다. 나이키는 현재 3만여곳의 유통 파트너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대폭 줄이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덕분에 나이키의 D2C 매출은 2011년 13.8%(29억달러)에서 지난해 31.6%(118억달러)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D2C 비중이 40%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나이키는 소비자가격의 50~60% 수준으로 도매업체에 제품을 판매하는데, 직접판매 비중이 늘면 자사가 가져가는 수익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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