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펀드 사건과 관련해 옵티머스 측 인사들과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의 유착 정황을 보여주는 녹취록을 주간조선이 확보했다. 주간조선이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관련 음성파일 235개에는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수감 중)와 옵티머스 회장 명함을 가지고 다녔던 양호 전 나라은행장 등이 금감원을 상대로 로비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 녹음파일은 지난 10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민국 의원에 의해 일부가 공개된 바 있다. 당시 공개된 파일에는 “다음주에 금감원에 가는데 거기서 ‘VIP 대접’ 해준다고 차번호를 알려 달라고 해서…”라는 양 전 행장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주간조선이 확보한 이 음성파일을 전부 녹취록으로 푼 결과 강 의원이 공개했던 것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옵티머스 측의 금감원 대상 로비 정황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양 전 행장 등은 이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연관성을 부인해왔다. 하지만 김 대표는 돈을 투자받는 과정에서 꾸준히 양 전 행장과 옵티머스 고문으로 일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의 인맥을 과시했던 것으로도 나타났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의 옵티머스 로비 의혹 수사는 1차적으로 펀드 운영 과정을 둘러싼 금감원의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가려내는 데 초점을 맞춘 상황이어서 이런 녹취록 등은 향후 수사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단서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사 중인 옵티머스의 핵심 의혹 중 하나는 고위 전관들로 구성된 옵티머스의 초호화 자문단이 옵티머스의 펀드 판매와 이후 금감원 대응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다. 옵티머스 사태가 커진 것은 우선 사기금액의 규모가 큰 점도 있지만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 고위급 전관들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확전된 측면이 있다. 김재현 대표는 옵티머스 내에서 ‘회장님’이라고 불리는 양호 전 행장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펀드 관련 의논을 한다. 녹취록 내용을 보면 양 전 행장은 실제로 옵티머스에서 ‘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활동했다. 양 전 행장은 옵티머스주식회사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녹취록에는 김 대표가 회사 회장인 양호의 인맥을 과시하면서 투자자나 증권사 등 고객들을 안심시키는 대목이 다수 나온다. “은행장 출신이고 훌륭한 분이며 금감원장(당시 최흥식 금감원장)과도 동문이고 선배”라는 등의 내용이다. 이 같은 내용은 2017년 12월 8일 김 대표가 이모 상무라고 지칭되는 한 투자자와 통화한 녹음파일에 잘 담겨 있다.

투자자 현황이 궁금해서, 지금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건가요?

김재현 대표 회사요? 네, 회사는 정상 과정에 있습니다.

투자자 김재현 대표잖아요? 증자해서 들어와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전 대표(이혁진) 쪽에서 자꾸 그러는 거죠. 그게 투자해서 손실로 무슨 손실이 일어난 게 있나요?

김재현 대표 어떤 부분을 말하는 건가요?

투자자 지금 증자해서 대표이사 바뀌어서 사업을 잘 열심히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른 큰 문제 있나 해서.

김재현 대표 전혀 없습니다. (중략) 회사에서 내용 보시면 양호 회장님이 있는데, 그분이 이헌재 장관 친구분이시고 금감원장님 선배이십니다. 금감원장님이 고등학교(경기고) 후배이다 보니까 그분 힘으로 해서 이 회사 라이선스가 유지가 되고 있고, 경영개선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겁니다.

투자자 그럼 그걸로 이 사람으로 인해서 혜택이 많네? 사업이 살아날 수 있는 시간을 벌겠네요.

김재현 대표 실무적으론 금감원에서 인정할 정도로 저도 열심히 해서 금감원하고 우호적으로 도움 받아가며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너무 망가져 있고, 순자본이 마이너스 상태였어요. 원래 펀드도 만들면 안 되고 영업정지 시켜야 했는데 선의의 피해자이고 봐줘라 해서 경영개선안을 일주일에 한 번씩 제출해서 저희 자금 운용도 금감원 컨펌 받고 있습니다.

김재현 대표는 이처럼 이혁진 전 대표 측의 투서를 받은 투자자나 증권사 등에서 문의가 들어오면 양호 전 행장의 인맥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실제로 양 전 행장은 옵티머스에서 ‘회장’ 직함을 받았고 김 대표와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이름도 종종 언급한다.

녹취록에는 같은해 12월 19일 두 사람이 “대법원에 로비를 해야 한다”며 의논하는 대목도 있다. 김 대표는 양 전 행장과 옵티머스자산운용 대주주적격과 관련한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대법원에다가 어떻게 로비를 하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대법원한테 좀 빨리 해달라고 프레셔(pressure)한 건가?” 등의 얘기도 주고받는다. 이 같은 내용은 두 사람이 이혁진 전 대표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이기기 위해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빨리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재현 대표 이혁진 대표가 아직까지는 대주주지 않습니까. 증자 전이니까. 대주주를 변경해야 되는 이슈가 있습니다.

양호 전 나라은행장 대주주를 빼야 되겠네 그럼.

김재현 대표 빼야 되는데 본인이 우호적으로 할 가능성은 없으니까 질권자에게 양해를 좀 구했습니다.

양호 전 나라은행장 질권 사오면 그거 몇 푼 안 되죠. 한 1억 드나요?

김재현 대표 그래도 한 1억2000 정도는 예상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양호 전 나라은행장 그 사람 질권 비해선 훨씬 적게 주는 거죠. 밀어주겠어요?

김재현 대표 우선 우호적인 사람이니까 구두상으론, 전화상으론 얘기했고 법률적으로 그쪽도 한번 판단을 해보겠다 했고.

양호 전 나라은행장 그 사람도 우리가 안 사주면 팔 데가 없잖아.

김재현 대표 예예, 맞습니다.

양호 전 나라은행장 그 사람이 주주가 되는 건 아니죠.

김재현 대표 저희가 가져와야죠. 저희야 주주가 돼주면 더 고마운 건데 그렇게는 안 하려 하겠죠. 경영권도 안 가진 상황에서.

양호 전 나라은행장 그거가 되면 이혁진 문제는 끝나는 거네. 금감원 지시로.

김재현 대표 서류 맞추면 기관이 해줄 것 같아요. 그건 더 노력해봐야겠지만 더 무리는 없을 것 같고 펀드도 1000억까지 만드는 건 가시화는 됐습니다.

양호 전 나라은행장 어 잘됐네. (이헌재 전) 장관 내가 월요일에 4시에 만나기로 했거든요. 내가 부탁할 필요는 없잖아. 그죠? 사정 봐가면서 하면 되겠네.

김재현 대표 내일 오시면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양호 전 나라은행장 알겠습니다. 고생 많이 했습니다.

양 전 행장이 실제로 김 대표를 위해 금감원 측에 로비를 실행한 정황도 보인다. 두 사람은 2017년 12월 15일에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금감원에 다녀온 김 대표에게 양 전 행장은 “어땠냐”고 먼저 묻는다. 그러자 김 대표는 “그 변호사가 지금 금감원 담당의 바로 전임자더라.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말한다. “금감원에서 이 정도로 우호적으로 얘기하는 걸 처음 봤다”는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양 전 행장은 옵티머스펀드 관련한 자신의 역할을 부인하고 있지만, 녹취록에는 양 전 행장이 김 대표로부터 법인카드까지 받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있다.

옵티머스 직원이 김 대표에게 “(양호) 회장님께서 법인카드 분실했대요. 카드번호가 어떤 건지, 2989랑 8032 중에 어떤 건지 알 수 있나요?”라고 묻자 김 대표가 이를 확인해주는 대목이 나온다. 이런 정황은 양 전 행장이 옵티머스와 관련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양 전 행장은 옵티머스 사태의 핵심 키맨이지만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고 검찰로부터 기소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옵티머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여전히 미진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양 전 행장을 포함해 이번 사태에 이름이 등장한 이헌재 전 부총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 모든 증인의 채택이 거부된 상태다. 옵티머스의 무자본 M&A에 동원된 셉틸리언의 최대주주인 이모 전 청와대 행정관 역시 국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 전 행정관은 옵티머스의 지분도 9.85% 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홍모 본부장과의 범죄 모의

녹취록에는 김 대표와 옵티머스에서 PEF본부장을 맡았던 홍모씨가 함께 SPC(특수목적법인) 설립과 관련한 논의를 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들이 설립한 SPC들은 이후 옵티머스펀드 투자금을 빼내는 데 이용된다. 경영권 분쟁 중이던 시기부터 이런 모의를 한 것으로 볼 때 김 대표는 애초에 펀드 자금을 빼낼 목적으로 회사에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녹취록 내용에서 보면 두 사람은 서로 반말을 한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로, 이혁진 전 대표에게 김재현 대표를 소개해 옵티머스자산운용에 끌어들인 사람 역시 홍 본부장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2017년 11월 28일 구체적으로 회사채와 SPC 설립 관련 모의를 한다.

홍 본부장 SPC로 우선 하려고 하는데 돈을 어떻게 넣지? CB(전환사채) 발행해야 하나? 사모사채로 해? 그냥 회사채?

김재현 대표 응.

홍 본부장 관련 서류 줘봐. 등기 안 해도 되지? 내일 증자를 해야 하거든. 자본금이 적어서. 법인이 5억밖에 안 돼서. (중략) 그런데 우리가 이름을 바꿔야 해. 프라이빗 에쿼티 뭐.

김재현 대표 내가 참 그때 우편물 보고 얘기해주려 했는데 그런 거 쓰면 안 돼.

홍 본부장 따로 이름을 만들어야 하고 내일 증자하고 이름 변경을 같이 하려는 거야.

녹취록에서 두 사람은 수시로 “약속 있냐” “점심 먹자” 등의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 점으로 봤을 때 두 사람은 펀드와 투자금 관련 내용은 통화보다는 실제로 만나서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이 언급한 SPC는 정황상 나중에 펀드자금을 빼내는 데 이용된 4곳의 SPC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 등 옵티머스 일당은 이후 실제로 이 SPC가 발행한 사모사채를 사는 방식으로 펀드 자금을 빼낸다.

현재 김 대표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률 위반(사기·횡령),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첫 공판이 열렸다. 홍 본부장은 무자본 M&A를 시도한 다른 건으로 기소돼 지난 10월 17일 징역 3년에 벌금 3억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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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이성진·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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