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궈마오 지역에 들어선 삼성타워(왼쪽 네 번째). (왼쪽부터) 궈마오센터3기 A동, 궈마오센터3기 B동, 중신타워(오른쪽). ⓒphoto 바이두
중국 베이징 궈마오 지역에 들어선 삼성타워(왼쪽 네 번째). (왼쪽부터) 궈마오센터3기 A동, 궈마오센터3기 B동, 중신타워(오른쪽). ⓒphoto 바이두

한국 기업이 중국에 세운 빌딩 가운데 최고층인 베이징 삼성타워가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오피스 수요가 급감하고, 주변에 비슷한 고층빌딩이 대거 들어서면서 입주자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베이징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차오양구(朝陽區) 궈마오(國貿·국제무역센터) 지역에 들어선 삼성타워는 높이 260m, 57층 빌딩으로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직접 건립하거나 보유한 빌딩 가운데 가장 높다. SK그룹이 상하이에서 이보다 조금 더 높은 높이 274m, 59층의 상하이 SK타워를 신축 중이지만 아직 준공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빌딩인 삼성타워는 건립 당시부터 베이징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을 대변하는 랜드마크 빌딩이 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삼성 측이 2011년 초고층빌딩 건립에 필요한 토지사용권을 낙찰받고 2014년 빌딩 착공에 들어갔지만 공사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공사 초기인 2015년만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국경절 천안문(天安門)광장 열병식 참석 등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한·중 관계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터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태’로 ‘한한령(限韓令·한국 기업 제한)’까지 발동되면서 살얼음판을 걷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삼성타워는 지난 2018년 사실상 완공되었으나, 베이징시정부 등 관계 당국이 줄곧 빌딩 사용과 입주에 필수적인 준공허가를 발급하지 않았다. ‘전력공급 문제’와 같은 기술적인 이유를 들었으나, 일각에서는 “사드 배치 문제로 준공허가가 고의적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준공허가를 받지 않으면 빌딩 사용은 물론 입주자 모집도 불가능하다. 2018년 사실상 준공을 마친 뒤에도 차일피일 지연되던 삼성타워에 대한 준공허가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3월 말경 드디어 발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타워 사업주체인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주변 빌딩 신축에 따라 중국 측에서 변전소를 지어주기로 했는데, 변전소 부지 확보 문제로 준공이 지연된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준공식도 못 열어

하지만 이번에는 입주자를 모집해야 하는 과정에서 터진 코로나19 사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중 간 하늘길이 줄줄이 끊어지고, 기업인용 비자발급조차 까다로워지면서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왕래가 어려워져서 준공식을 못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후 인천~베이징 간에는 여전히 직항편을 못 띄우고 있다. 삼성타워는 지난 2014년 착공 당시에는 최근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 이적 논란을 일으킨 장원기 전 중국삼성 사장을 비롯해 주중(駐中)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열었었다.

최근 베이징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궈마오 주변에 도심재개발과 함께 초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공실(空室) 폭탄’이 터진 것도 삼성타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선 삼성타워 바로 옆에는 베이징에서 가장 높은 높이 528m, 108층의 ‘중신(中信)타워’가 준공을 마치고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 중신타워는 중국 국유 투자기업인 중신그룹(중국국제투자신탁)이 세운 베이징 최고층 빌딩으로, 중국 전통의 제사용 술잔에서 모티브를 얻어 ‘중국존(中國尊)’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중신그룹 본사를 비롯해 중신은행 등이 이미 입주하면서 ‘중신타워’로 이름을 바꿨다.

또한 최근 2~3년 사이에 길 건너편 궈마오에도 높이 288m, 67층의 ‘궈마오센터3기 B동’ 빌딩이 완공되면서 공급이 크게 늘었다. 궈마오센터3기 B동은 지난 2009년 들어선 ‘궈마오센터3기 A동’(높이 333m, 81층)과 짝을 이루는 초고층 빌딩으로 베이징에서 세 번째로 높다. 자금성과 천안문광장을 중심으로 엄격한 고도제한이 가해지는 베이징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초고층빌딩 건축이 허용되는 차오양구에 2018년 이후 들어선 높이 200m 이상 초고층 최신 신축빌딩은 삼성타워를 포함해 모두 6동에 달한다. 최신 신축 초고층빌딩 사이에 치열한 임차인 모집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임대료 가장 비싼 곳

베이징 삼성타워의 경우, 언젠가는 입주하게 될 삼성 관계사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입주자를 모집하기가 여의치 않다. 최근 LG그룹이 베이징에 한국 기업 최초로 건립해 보유한 ‘쌍둥이빌딩’을 매각했지만 현대차, SK, 포스코 등 다른 한국 대기업들은 대부분 자체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관련 기관들은 대부분 이들 빌딩에 나눠 입주해 있다. 중국한국상회(商會)가 현대차빌딩에, 코트라 베이징무역관이 포스코센터에 입주해 있는 식이다.

삼성타워가 있는 궈마오는 베이징에서도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이라, 중소기업이나 기관들은 임대료와 관리비 부담 때문에 입주가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베이징의 오피스빌딩 중개업소에 따르면, 2005년 준공한 현대차빌딩이나 2015년 준공한 포스코센터의 임대료는 하루 기준 ㎡당 8위안에 형성돼 있지만, 최신 신축 빌딩인 삼성타워는 ㎡당 12위안에 나와 있다. 임대료만 놓고 보면 주중 한국대사관과 지척인 현대차빌딩이나 한국 교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에 있는 포스코센터에 비해 50%가량 비싼 셈이다. 삼성타워는 인근에 있는 SK타워(㎡당 10위안)에 비해서도 비싸다.

중국 기업들을 대거 유치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중국 기업들은 동일한 조건이면 외관상 좀 더 크고 화려한 빌딩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베이징 소재 기업이면 이 같은 경향이 더욱 농후하다. 하지만 삼성타워는 바로 옆 중신타워에 비해서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삼성타워는 초고층 설계에 특화된 미국의 건축설계사인 SMDP가 설계했지만, 외관만 놓고 보면 남대문 삼성본관의 키를 늘려 놓은 것과 같은 각진 형태의 평범한 모양이다. 사드 사태 때 ‘한한령’의 위력을 체감한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 간판을 달고 있는 한국 빌딩에 선뜻 입주하려고 할지도 미지수다.

베이징에 나가 있는 삼성 계열사들도 아직 입주시기를 못 정하고 있다. 삼성의 중국 사업을 총괄하는 중국삼성을 비롯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경제연구소 등 삼성 계열사들은 자체 사옥에 입주해 있는 현대차, SK, LG, 포스코 등과 달리 베이징 삼성타워 인근의 초상국(招商局)타워 일부 층을 임대해 ‘셋방살이’를 해왔다. 건물 소유주인 중국 국유기업 초상국그룹은 1999년 준공한 빌딩 외벽에 삼성 간판 부착도 불허할 정도로 텃세를 부렸다. 이에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현재 입주희망자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삼성 관계사 입주 시기 역시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