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바이든 후보의 대선 승리에 환호하는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민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4일 바이든 후보의 대선 승리에 환호하는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민들. ⓒphoto 뉴시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칼럼을 썼다. 미국 대선의 승패가 걸렸던 경합주이자 공화당의 텃밭인 남부 조지아주에서 바이든이 이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비결은 조지아주의 주도인 애틀랜타에 미국의 대표적인 물류기업(홈데포·델타항공·코카콜라)들이 위치해 있고, 고밀도 개발로 애틀랜타의 집값이 안정화되자 고학력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든 덕분이라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줬던 연구 주제인 도시경제 지리학을 이용해 조 바이든이 조지아주에서 트럼프를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을 해설했다.

민주당의 조지아주 승리 비결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애틀랜타시를 포함한 애틀랜타 메트로(greater Atlanta)의 인구는 조지아주 전체 인구(1062만명)의 57%를 차지하고,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석사학위 이상의 고학력자수는 위스콘신이나 미시간주보다 많다. 빌 클린턴의 승리 이후 30년 만에 민주당이 조지아주에서 공화당 대선후보를 이길 수 있었던 기반은 이 같은 인구 통계 특성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가 주장한 “고밀도 개발과 학위 취득은 함께 간다(Density and diplomas tend to go together)”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은 셈이다. 그는 덧붙여서 미국 남동부의 물류 거점인 애틀랜타를 고밀도로 개발한 결과, 집값이 IT산업의 본거지인 샌프란시스코보다 20% 이상 저렴해져 대기업과 고급 인력이 지속적으로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주었던 이론은 “현대의 경제 성장은 지식기반 산업에서 비롯되고, 지식 산업은 고학력 노동력을 확보하기 쉬운 대도시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대도시는 더욱 커지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지식노동자들이 대도시로 몰린다”라는 것이었다.

<그림>의 샌프란시스코 주택가격은 명목가격 상승률에서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질가격의 추이다. 위 그림이 가리키듯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은 2012년을 기점으로 애틀랜타의 가격보다 상승 속도가 무척 가팔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베이 에어리어(Bay Area) 지역은 2000년에서 2020년까지 물가상승률을 공제한 뒤의 실질가격 기준으로 약 80% 상승할 정도로 폭등했다.

샌프란시스코가 집값이 계속 상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타임스 기자 코너 도허티(Conor Dougherty)는 그의 저서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쉼 없는 집값 상승은, 샌프란시스코시가 1950년대에 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시민운동으로 무산시킨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시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등에 업은 환경단체의 반대로 고속도로 건설이 수포로 돌아간 뒤 시정부와 주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었고, 급기야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캘리포니아의 환경보호운동은 ‘개발을 반대하는 행동주의(Anti-growth activism)’로 확장되어 주택 시장까지 악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도허티는 “도시 확산을 막으려는 착한 의도에서 시작한 운동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변질되었고, 추상적이고 모호한 언어로 표현된 캘리포니아 환경관리법은 일반 시민들에게 해안선 토지의 필지 분할이나 도심의 나대지 개발을 가로막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넘겨줬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시민들의 입김이 강해지자 샌프란시스코 시정부는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상황에서 토지 이용 규제를 완화해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할 생각을 포기했다. 대신 규제를 더욱 강화해 기존 집주인들의 애완견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이다. 이것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부족이 만성화되고 주택 부족이 ‘문화’가 된 이유다.

경제학자 마이클 핸킨슨의 논문(‘When do renters behave like homeowners? High Rent, Price Anxiety, and NIMBYism’)에 따르면 님비즘 현상은 집주인과 임차인 모두에게서 관찰된다. 그가 샌프란시스코 시민 1660명과 미국 전역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시 차원의 주택 공급은 호응하지만 자기 동네에 집을 짓는 것은 집주인뿐만이 아니라 임차인들도 반대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시정부가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가난한’ 임차인들에게 각종 복지 혜택을 제공할 수 있고 그러면 자신들의 세금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집주인들이 고층 임대주택 개발에 반대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다.

핸킨슨은 집주인들의 님비즘 때문에 단독주택이 아닌 임대주택 목적의 고층 집합주택(multifamily housing)을 짓지 못해 미국 대도시의 주택 부족이 심각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 전역에서 적용되는 일반적인 토지 이용 규제는 대개 단독주택 개발을 허용하고 아파트 개발은 금지한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시는 단독주택 용지가 전체 주거용 토지의 94%나 된다. 캘리포니아에 홈리스가 많은 이유다.

물론 역대 미국 행정부가 주거 시장 악화를 수수방관하지는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도시의 주택 공급을 촉진하려고 토지 이용 규제를 완화하지 않는 지자체에 연방기금 지원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조처를 취했었다. 고밀도 주거 개발을 지원하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 기조는 트럼프 정부 초기에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벤 카슨을 경질했다. 벤 카슨은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토지 이용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얼마 전 대선 기간에 트럼프는 대도시 교외 단독주택 거주자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여러분의 이웃에 저소득자용 주택을 짓지 못하게 하겠다”라는 치졸한 선거 구호를 남발했다. 트럼프가 고밀도 주거 개발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조 바이든은 선거운동 기간에 주택의 대량 공급을 전제로 지역 개발에 연방정부가 기금을 제공하고, 추가적으로 각 주의 토지 이용 규제를 제거하기 위한 용역비로 3억달러의 자금을 내놓겠다는 공약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2019년에 미니애폴리스가 그랬듯이 단독주택 전용 주거지역을 철폐해 고밀도 개발을 허용해야 주거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진단을 내린 까닭이다.

일부 전문가는 코로나19로 대다수 주 정부의 곳간이 비어 있어 연방정부에 손을 벌릴 것이므로 바이든 행정부는 예산을 지원하는 대가로 주 정부에 고밀도 개발을 위한 도시계획 제도의 대폭 개편을 약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주택 부족에 시달리는 대도시에 주택이 대량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대되는 조 바이든의 주택 정책

영국 런던의 주거 사정은 샌프란시스코만큼이나 어렵다. 2020년 9월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향후 2년간 런던시의 임대료 동결 권한을 런던시장에게 부여해 달라는 서한을 정부에 보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가 지속되어 임차인들의 주거비 지불이 어려워지자 런던시장이 임대료 동결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런던 민간 임대주택 전체 거주자 220만명의 25%인 50여만명은 임차료 지불을 연체했거나 연체할 가능성이 있어 여전히 셋집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보도다.

현대 도시계획의 발상지인 영국 런던은 어쩌다가 이처럼 심각한 주택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가? 세상은 변하는데 80여년 전에 만들어놓은 고리타분한 법령을 고집하고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80년 전의 런던은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현대적인 도시계획법’을 만든 도시였다.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주택 시장의 ‘선수’로 변신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런던과 각 도시에 수백만 호의 주택을 지어 시장가격 밑으로 국민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정부가 전쟁의 고초를 겪은 참전용사들에게 보답하고 국민들을 위로하려는 감사의 선물이었다.

정부는 이와 동시에 런던 주변에 5㎞ 폭으로 빙 둘러싼 그린벨트를 설치하여 민간의 토지 이용을 규제했다. 1947년 제정된 ‘도시 및 농촌 도시계획법(Town and Country Planning Act)’은 민간의 토지 이용을 규제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었다. 그 시절 그린벨트는 런던과 인근의 수많은 공장이 배출하는 각종 오염물질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현대적인 도시계획으로 평가됐다. 이 법령을 입안하던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여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드높아 정부의 권한은 전시 정부 수준으로 막강했을 것이다. 따라서 주택 공급은 당연히 국가의 책무로 여겨져 민간의 주택 공급은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었을 듯하다. 그러나 이 법은 민간 부문의 주택 건설을 옥죄고 공공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주택 공급에 관한 민간의 창의성을 말살해 런던의 만성적인 주택 부족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경제학자 브렌든 하르의 평가다.

지금의 비평가들은 그린벨트를 만든 당시의 계획가들이 미래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인간 수명의 증가와 이민자 급증 등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이혼율의 상승으로 런던의 주택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할 거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또한 그들은 1930년대의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된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은 세대였다. 장차 사람들의 소득이 2배, 3배 이상 증가하고, 필요로 하는 1인당 주거면적이 커질 거라는 생각은 결코 못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린벨트를 만들었을 거라고 브렌든 하르는 지적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정부는 런던 도심의 슬럼가를 모두 없애고 주거지와 생산시설은 도심과 교외를 가로질러 설치되는 그린벨트 너머에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따라서 당시의 도시계획가들은 낡은 도심을 재개발하고 지식기반 산업을 도심으로 유턴시키는 지금의 경제성장 모델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핵심은 시대 변화에 따라 경제 정책이 변하면 도시계획 정책 역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여느 나라가 그러했듯이 악화된 주택 시장을 개선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1980년대 초 집권한 뒤 ‘집을 살 수 있는 권리(right-to-buy)’를 주창해 내 집 마련을 권장했다. 그는 국민의 자가 소유 촉진을 목적으로 영국 정부가 소유한 공공주택을 민간에 헐값에 팔도록 조치했다. 공공주택 매각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정권의 정치적 색깔에도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정책은 전체 인구 90% 이상이 내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했던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의 주택 정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왼쪽)와 영국 런던 도심부. ⓒphoto 뉴시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왼쪽)와 영국 런던 도심부. ⓒphoto 뉴시스

보리스 존슨의 토지 개혁은 성공할까

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8월 주택 공급 제도를 쇄신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현재 주택 공급 계획 승인을 관청에서 얻는 데 걸렸던 평균 7년의 소요 기간을, 청년 주택 등 긴급한 주택 공급의 경우에는 30개월 이내로 단축시키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또한 중소 규모의 주택 건설업체의 주택 공급을 늘려 빠른 시간에 총 주택 재고를 늘린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30년 전에는 중소건설업체들의 주택 공급 비중이 시장의 40%를 차지했는데 그동안 정부의 인허가 절차가 까다롭고 규제가 많은 탓에 현재의 시장 비중이 12%로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주택 공급을 빠르게 늘려 주택 부족 사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현재의 영국 근로자들은 근무시간

1시간 중에서 23분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버는 소득을 오직 주거비를 납부하는 데 지출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보리스 존슨 총리는 토지 이용 규제를 개편하겠다는 청사진으로 과연 주택 부족이 빚어낸 가격 급등과 사회의 생산성 하락을 해결할 수 있을까? 영국 정부가 시대의 변화, 경제체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80여년 전의 낡은 도시계획 정책을 고집한 탓에 그 후유증은 최소 수년간은 지속될 듯하다.

지금까지 정부의 낡은 규제로 인해 주택 공급이 부족해져 집값이 급등한 샌프란시스코와, 한동안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였던 런던의 주택 부족과 급등 원인을 살펴봤다. 나라와 도시는 다르지만 주거난의 공통점은 토지 이용 규제에 있고, 그 기반은 님비즘에 있다는 것이 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서울의 주거난은 성격이 다르다. 서울의 주거 불안은 님비즘보다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책이 촉발한 서울의 주거난

민주당 일각에서 주택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주택부를 만들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유는 미국 등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 땅에 주택 업무를 독립적으로 취급하는 정부 부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국토교통부에는 주택 부서가 없어서 주택 정책을 시행하지 못했다는 뜻인가?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이제는 별스러운 주장을 다하는 것 같다. 굳이 ‘주택’이라는 표현을 넣고 싶으면 현재의 국토교통부를 미국처럼 ‘주택도시개발부’로 바꾸든지 ‘주택국토교통부’로 이름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자신들이 심사숙고하지 않고 임대차 법률 등을 통과시켜 나타난 시장 불안의 본질은 방치한 채,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아 국민들이 사건의 본질을 놓치도록 하려는 직업정치인들의 꼼수는 결코 국민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의 최고지도자들이 토지 이용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겠다는 주택 정책을 이 땅의 정치인들도 따라 하는 것이 주택 부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주택부를 만들면 이 정부 들어서 발생한 주택 문제가 전부 해결된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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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WJ부동산연구소 대표·건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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