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황다오구에 있는 칭다오항 컨테이너터미널. ⓒphoto 바이두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황다오구에 있는 칭다오항 컨테이너터미널. ⓒphoto 바이두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이 중국 칭다오(靑島)항에 밀려 올해 세계 7위 항만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부산항은 지난해 2199만TEU의 컨테이너화물을 처리해 칭다오항(2101만TEU)을 누르고 세계 6위 컨테이너항만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물동량 급감 등으로 칭다오항에 이어 세계 7위로 밀려나는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지난 9월까지 올해 누적 컨테이너처리량은 부산항이 1604만TEU로 칭다오항(1605만TEU)과 거의 대등했으나, 지난 10월까지 누적 컨테이너처리량은 칭다오항이 1802만TEU로 부산항(1792만TEU)과의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24쪽 그래프 참조>

부산항과 칭다오항의 최종 순위는 아직 발표 전인 11월과 집계 중인 12월의 컨테이너처리량을 모두 확인해야 판가름난다. 다만 현재 추세를 보면 전망은 부산항에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은 초창기 강력한 방역정책 덕분에 하반기부터 경기회복과 함께 수출입 물동량 회복세가 현저하다.

반면 ‘K-방역’을 자화자찬하던 한국은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3차 대유행이 본격화하는 등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부산항이 불과 보름 남은 연말까지 물동량을 극적으로 늘리지 않는 한 순위를 뒤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연히 부산항은 2016년 국내 최대이자 세계 7위 해운선사인 한진해운 파산에도 불구하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유지해온 세계 6위 항만 자리를 칭다오항에 내어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부산항의 항만경쟁력 강화를 위한 항만 재배치와 대형화, 자동화 등은 더디게 진행 중이다. 부산신항 제2신항 계획도 지난 12월 1일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고배를 마시는 등 항만 대형화에 빨간불이 켜졌다. 해양수산부는 “규모를 줄여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다시 신청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당초 예정했던 2022년 제2신항 착공 일정도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항, 6위에서 7위로 하락 확실시

1995년 일본 최대 컨테이너항만이었던 고베(神戶)에서 터진 대지진 이후 한때 홍콩항, 싱가포르항에 이어 세계 3위 항만으로 부상했던 부산항이 홍콩항처럼 주변 항만으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대 항구였던 홍콩항은 지난해 1836만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해 부산항에도 뒤진 세계 8위 항만에 머물렀다. 홍콩항의 연간 순위 역시 2017년에는 부산항보다 높은 5위였으나, 2018년 7위, 2019년 8위로 떨어졌다. 홍콩 항만당국(HKMPB)에 따르면, 홍콩항의 지난 10월까지 올해 누적 컨테이너처리량은 1487만TEU로 톈진항(1553만TEU)에도 밀려 올해는 9위까지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반면 홍콩항과 지척에 있는 선전항의 경우, 지난해 2577만TEU의 컨테이너화물을 처리하면서 세계 4위 항만으로 부상했다. 선전항 북쪽에 있는 광저우항 역시 지난해 2324만TEU의 컨테이너화물을 처리하면서 세계 5위 항만으로 떠올랐다. 광저우항은 2017년까지만 해도 부산항보다 한 단계 아래인 세계 7위 항만에 머물렀으나,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선전항과 광저우항의 지난 10월까지 누적 컨테이너처리량은 각각 2149만TEU와 1902만TEU로 모두 부산항(1792만TEU)과 홍콩항(1487만TEU)을 웃돈다. 부산항으로서는 남 일 같지 않은 홍콩항의 추락이다.

사실 세계 1위 상하이항을 비롯 닝보-저우산항, 선전항, 광저우항, 칭다오항 등은 한때 부산항이나 홍콩항보다 항만순위가 한참 떨어지던 2류 항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 항만은 항만 대형화·자동화 등으로 컨테이너처리량을 비약적으로 늘리며 부산항과 홍콩항의 자리를 빼앗아갔다. 칭다오항 역시 옛 독일 조차지였던 칭다오 구(舊)시가에 있던 옛 항만에서 자오저우완(膠州灣) 건너편의 황다오(黃島) 첸완(前灣) 지역에 신항을 조성해 덩치를 키운 경우다. 2017년 개장한 칭다오 첸완항 컨테이너터미널은 아시아 최고의 자동화 설비를 갖춘 북중국 최대 환적항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나 부산항만공사(BPA), 부산시 등은 부산항의 추세적인 항만 순위 퇴보에도 불구하고, ‘세계 2위 환적항’이란 부분 순위만 강조하면서 자위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세계 1위 환적항만인 싱가포르항이 중후장대한 제조업 기반 없이도 항만 전체 순위에서 세계 2위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싱가포르 항만당국(MPA)에 따르면, 싱가포르항의 지난 10월까지 누적 컨테이너처리량은 이미 3000만TEU를 돌파했다.

부산신항 전경 ⓒphoto 이동훈
부산신항 전경 ⓒphoto 이동훈

경쟁 항에 비해 대형화·자동화 미흡

부산항의 최대 약점은 칭다오항과 같은 신흥 경쟁 항만에 비해 대형화·자동화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항만이 두 곳으로 분산돼 있는 것은 근본적 문제다. 부산항은 크게 부산 원도심에 있는 ‘북항’(17선석)과 부산 강서구와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걸쳐 있는 ‘신항’(21선석)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부산항의 모태인 북항의 경우, 1978년 국내 최초 컨테이너 전용터미널로 출범한 자성대부두 등이 있지만 도심 한복판에 있어 하역장 확보는 물론, 교통체증 등으로 성장이 정체돼 있다. 2014년 채 1㎞가 안 되는 북항 입구를 가로막는 부산항대교가 놓인 후부터는 선박 진출입이 불편하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북항의 경우 수심(水深)도 15~16m로 신항(17~18m)에 비해 얕다.

해수부와 부산항만공사는 부산항대교 안쪽의 자성대부두를 폐쇄하고 컨테이너항만 기능을 부산항대교 바깥쪽의 신선대부두나 부산신항 쪽으로 모두 옮기는 계획을 수립했으나 실제 이전은 지지부진하다. 자성대부두 운영사인 홍콩계 한국허치슨터미널의 반발에 밀려 당초 계획된 이전 시점도 2021년에서 오는 2022년으로 추가로 연장됐다.

터미널 운영사들 또한 경쟁 항만에 비해 소규모로 난립해 있어 항만경쟁력의 핵심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부산항에는 현재 북항 2곳과 신항 5곳 등 모두 7개의 터미널 운영사가 있다. 향후 부산신항 서컨테이너부두 확장이 이뤄지면 모두 10개 운영사 체제가 된다. 그나마 지난해 11월, 북항 운영사 통폐합을 단행해 1곳을 줄인 것이 이 정도다. 터미널당 선석(船席) 수도 5.4개로 상하이항(6.8개)이나 싱가포르항(7.7개)에 비해 적다.

부산항의 대형화를 이루는 방법은 부산신항으로 전면 이전하는 방법이 사실상 유일하지만, 정작 부산시는 미온적인 입장이다. 사실 부산신항의 경우 이름만 ‘부산신항’일 뿐이지 배후부지 등 대부분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속해 있다. 부산신항 중 온전히 부산시에 속한 곳은 북컨테이너부두 일부(1부두)와 남컨테이너부두(4·5부두)밖에 없다. 부산신항 북컨테이너 2부두 일부(3선석)와 3부두, 새로 확장되는 서컨테이너부두는 모두 창원시에 속해 있다.

부산신항을 확장하는 형태로 새로 조성될 예정인 제2신항 역시 경남도에 속하는 관계로, 해수부 역시 항만명을 ‘진해신항’으로 명명한 상태다. 부산시로서는 북항 기능의 신항 이전에 적극적으로 나설 하등의 이유가 없는 셈이다. 해운업계에서는 “부산시가 본업인 항만은 팽개치고 부업인 공항에만 매달린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산 원도심에 있는 북항이 모두 신항으로 이전해갈 경우, 고용 및 주변 상권에 미칠 충격파가 상당할 것”이라며 “항만이 빠진 부산은 여느 지방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앙꼬 빠진 찐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2신항 확장 계획은 빨간불

정작 공을 넘겨받은 경남도나 창원시는 국가 대표항만인 부산항의 항만경쟁력 강화 등을 다루기에는 부산시에 비해 행정역량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수부가 ‘제2차 신항만건설 기본계획’에 반영해 2022년부터 2040년까지 조성하기로 방침을 정한 부산신항 제2신항 계획이 정작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경남도와 창원시는 국가 중추항만인 제2신항 예비타당성 조사는 통째로 놓치고, 창원시 진해구 명동 마리나항처럼 소규모 레저항 예산 56억원가량을 따내는 데 그쳤다.

정작 내년도 해수부 예산에는 부산항보다 물동량이 월등히 떨어지는 광양항(3단계)과 군장(군산·장항)항(2단계) 확장 사업 등에 각각 570억원과 258억원이 책정됐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8년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내놓으면서, 부산항을 ‘동북아 메가포트’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으나 정작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오는 2040년까지 적용되는 해수부의 ‘제2차 신항만건설 기본계획’에는 부산신항을 비롯해 모두 12개의 신항만을 건설하는 것으로 돼 있다. 경쟁력 없는 지방공항의 난립 못지않게 지방항만의 난립 역시 고질적 문제다.

최대 수심 23m를 확보해 최대 3만TEU급의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을 수용할 것이라고 밝힌 부산신항 제2신항 역시 선석 규모가 ‘제2차 신항만건설 기본계획’에서 밝혔던 21선석에서 15선석 규모로 줄어든 상태다. 해양수산부 측은 “부산신항 제2신항 전체 사업이라는 마스터플랜하에 사업을 2개 단계로 나누어 예비타당성 조사를 재추진할 계획”이라며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전체 15선석, 총 12조4000억원) 중 1단계로 9개 선석(8조2000억원)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하여, 2021년 내에 사업추진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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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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