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2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대주주 양도소득세 3억원 강행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2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대주주 양도소득세 3억원 강행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부가 동학개미의 노후를 보장해줄까? 오히려 리스크가 되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은 주식 이야기를 화제에 자주 올린다. “여름에 사둔 삼성전자 우선주가 꽤 많이 올랐네.” “지금 들어가도 될까?” 직장인 사이에서, 맘 카페에서 이런 대화가 흔히 오간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돈이 풀렸다. 넘치는 유동성은 주가를 끌어올렸다.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한다. 개인들은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나서고 있다. ‘영끌’ ‘빚투’가 흔하다. 투자자예탁금은 사상 최대치인 63조원을 넘겼다. 2020년 한 해 개인들은 100조원 가까이 주식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예전에 보기 힘든 주식투자 열기다.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대전환기’에 들어선 것인지 모른다. ‘열심히 입시 공부하고,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얻고, 결혼해 월급 모으고, 아파트 하나 장만하고…’ 이런 ‘중산층 성공공식’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든다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는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잘 안 된다. “기술의 발달이 일자리를 줄인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직장·결혼·자녀를 포기하는 3포족, n포족이 늘어난다. 가까스로 취업해 열심히 월급을 모아도 집값 뛰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미래를 위해선 과소비 대신 저축을 택해야 한다. 어쨌든 5000만원, 1억원 종잣돈은 모아야 한다. 그러나 현금을 차곡차곡 계좌에 쌓아두는 것만으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예전에 은행에서 연 10% 이상 이자를 줄 땐 저축할 맛이 났다. 저축으로 중산층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거의 제로금리다. 물가상승으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실질자산이 줄어든다.

직장인 중 상당수는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퇴직한다. 이직 시장은 죽어 있고 자영업자 폐업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행히 정년까지 직장생활을 한다 해도 대개 60세엔 은퇴한다. 이후 너무나 긴 노후가 남아 있다. 약간의 저금과 퇴직금, 연금으로 살기엔 막막하다.

자녀 사교육에 큰돈이 들거나 자녀가 제때 취업하지 못하는 악재라도 생기면 부담은 더 커진다.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 많은 국민이 불안을 안고 사는 게 현실이다.

‘월급만 모아선 죽었다 깨어나도…’

토마 피케티는 봉급 생활자들에게 이런 은은한 재앙이 닥쳐온다는 것을 2014년 이미 예측했다. ‘최근 10년 내 가장 중요한 경제학 서적’으로 꼽히는 그의 책 ‘21세기 자본’은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지면 자본을 소유한 최상위 계층에 부가 집중된다”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월급만 모으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부동산 투자자와 주식 투자자를 못 따라간다’라는 이야기다.

미국인들은 오래전에 이 원리를 깨달았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학자금 대출로 대학을 다닌 뒤 취업해 이 빚을 갚는다. 집값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기지로 집을 장만해 평생 이 빚을 메워나간다. 남는 급여·퇴직금·연금 대부분을 주식에 투자한다. 이 사이 집값과 주식 가치가 올라 중산층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주식시장은 시가총액 4경원 규모로 성장했다. 한국 코스피 시가총액은 1700조원 안팎이다. 코스피 지수 2800은 1980년 대비 시가총액이 28배가 됐다는 뜻이다. 1970년 시작된 미국 나스닥 지수는 1만2800을 넘어섰다. 미국이라고 투자가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모기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금융위기가 왔다. 이때 많은 미국 중산층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주식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인들은 부동산보다 주식에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처지에서 다우존스, 나스닥, S&P500은 절대 망해선 안 된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쇠락이며 3억3000만 미국인 전체의 몰락과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도 이를 잘 알기에 증시에 불리한 정책을 펴지 않는다.

한국 젊은이 vs 미국 젊은이

이제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도 ‘급여 수입만으론 안 되겠구나’ 하는 점을 피부로 느낀다. 부동산과 주식, 이 두 문제는 우리 국민에게 정말 중요해졌다.

그런데 정부는 서울 같은 요충지의 아파트를 사기 어렵게 온갖 규제를 걸어놨다. 미국의 서민가정 출신 젊은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손쉽게 주택 구매로 부동산자본가가 될 때 한국의 서민가정 출신 젊은이는 이렇게 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셈이다. 인생의 출발선에서부터 뒤처지는 것이다. ‘왜 한국 젊은이는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면 안 되는가?’ ‘투기 억제라는 미명으로 이렇게 막을 권리가 국가에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부동산 쪽이 막히게 됐으니 많은 사람이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동학개미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2020년 12월 외국인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연일 팔아치웠다. 예전 같으면 불안해진 개인투자자들의 동조 투매로 삼성전자 주가가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들은 외국인들이 내놓은 주식을 다 받아내 오히려 주가를 소폭 올렸다. 배당일을 앞둔 크리스마스이브에 외국인들과 기관은 삼성전자 주식을 다시 샀고 개인들은 순매도로 차익을 실현했다. 이 개인들에게 삼성전자는 산타클로스였다. 이 사례처럼 이제 개인들은 예전처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과 기관에 쉽사리 휘둘리지 않는다.

주식투자는 여전히 ‘초고위험 금융투자’로 평가된다. 가격을 결정하는 기존 변수는 너무 많고 몇몇 변수는 돌발적으로 새로 나타나 합리적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심지어 바이러스(코로나19)까지 등락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 투자자들은 결국 자기판단으로 결정해야 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며 변동성에 따른 ‘마음고생’도 각오해야 한다. 몇몇 금융인은 “나스닥이나 S&P500의 상위 종목들에 분산투자하는 ETF(상장지수펀드)를 사는 것이 수익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낫다”고 주장한다. 경이적인 수익률을 낸 ‘QQQ’나 ‘ARKK’ 같은 미국 ETF는 이제 한국 ‘주린이’ 사이에서도 익숙한 이름이 되고 있다. 그러나 ETF도 초고위험군에 속하긴 마찬가지다.

향후 15년 상장기업이 인류사 바꾼다

거시적 시각으로 볼 때 2030년대 중반까지 약 15년간 인류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전대미문의 기술적 진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전기차, 가상현실, 생명공학 같은 분야는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암이 완치되고 자동차부품처럼 병든 장기를 새로운 장기로 교체하는 일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변화는 다름 아닌 코스피나 나스닥 같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여러 기업이 주도할 것이 틀림없다.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급등하면, 이 기업들의 주가도 급등한다. 이런 기업의 주주가 되는 것은 개인투자자에게도 더 나은 삶을 누릴 기회가 된다. “미래를 선도할 초우량기업의 주식을 사서 묻어두라”라는 말은 이런 논리에서 나온다.

주가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많지만, ‘정부’는 ‘매우 중대한 변수’로 꼽힌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관련 종목의 주가는 직접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 나아가 해당 산업 자체의 미래가 바뀐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은 얼마 전 공개석상에서 중국 정부 측 고위인사들을 앞에 놓고 쓴소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알리바바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반독점 혐의 조사가 개시됐다. 알리바바는 많은 수익을 내어온 금융업을 접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몰렸다. 나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 주가는 하루 새 13%포인트 곤두박질쳤다.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소셜미디어계의 공룡이다. 독점 규제를 내세우는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자 페이스북 주가는 주춤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몇몇 기업들은 전기차의 핵심인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적 강자가 됐다. 현대차는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놓고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와 경쟁한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모두 전기차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우리 전기차 산업에 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전기차는 저절로 움직이지 않으며 전기 충전으로 움직인다. 국내 한 자동차 대기업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전기료가 많이 오르면 전기차의 효용성은 떨어진다.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나 관련 업체들의 국제경쟁력 유지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기료가 인상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탈원전은 주식에 ‘독’

ARKK를 운영하는 ‘아크 인베스트’의 CEO 캐서린 우드는 “파괴적 혁신”을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은행이 사라질 수 있고 철도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다. 디지털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산업계 전체가 요동치는 시기에 어떤 기업도 기득권을 주장하지 못한다. 자칫하면 LG화학도 현대차도 삼성전자도 파괴적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리 상장기업들은 탈원전이라는 무거운 짐을 안고 경쟁해야 한다. 전기료 인상은 원가상승과 가격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탈원전은 거의 모든 상장기업엔 독과 같다.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당연히 주가 하락으로 개인 투자자들도 피해를 본다.

여권 주도로 ‘공정경제 3법’이 통과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경제 3법이 기업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건강하게 하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업에 부담이 되는 법안”이라면서 “굉장히 서운했다”라고 했다.

상법 개정안은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침해 가능성을 높인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으로 기업들은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기업의 역량이 이래저래 분산될 수밖에 없다. 56개 상장사가 처분할 주식 규모는 1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여당이 처리하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기업 경영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으로 재계는 판단한다.

우리나라 일부 상장기업들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자사 주가를 누르는 등 편법을 일삼았다. 개선돼야 할 기업 제도와 문화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상장기업의 주가가 올라 동학개미가 부자가 되는 것이 진정한 경제민주화다. 편향된 이념과 상상에 근거한 정책이 상장기업의 발목을 잡도록 해선 안 된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절실한 동기를 갖고 주식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주식시장의 리스크인지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부교수ㆍ전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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