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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1호] 2021.01.11

美 헤지펀드의 경고장… ‘상법 개정안’ 역풍 우려 현실로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 2021-01-13 오후 5:05:20

▲ 지난해 12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 photo 뉴시스
지난해 12월 14일 LG그룹의 지주사인 ㈜LG 이사회는 미국계 헤지펀드인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가 발송한 서한 한 통을 받았다. 화이트박스는 ㈜LG의 지분 1%가량을 3년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서한에는 “가족경영권 승계를 위한 LG그룹의 계열분리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LG그룹 이사회는 구광모 체제 출범 후인 지난해 11월 26일, LG상사를 비롯 실리콘웍스, LG하우시스, LG MMA 등 4곳을 분할해 신규 지주사인 ‘㈜LG신설지주’를 설립하는 계획을 통과시킨 바 있다.
   
   LG그룹은 재벌그룹 경영권 승계의 모범사례라고 알려진 가업승계 전통에 따라, 신설 회사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고문(전 LG그룹 부회장)이 맡아 독립할 계획이었다. 구본준 고문은 구광모 현 LG그룹 회장의 삼촌이다. 하지만 미국계 헤지펀드인 화이트박스가 LG그룹의 가업승계 전통에 제동을 걸고 나선 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사이먼 왁슬리 화이트박스 대표는 삼성물산과 현대차 경영권 공격으로 유명세를 떨친 엘리엇펀드 출신”이라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 통과 헤지펀드와 전운
   
   연초 주요 대기업의 주주총회가 잇따라 예정돼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LG그룹의 사례는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商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9일 정기국회 마지막날 국회 본회의를 전격 통과하면서다. 그간 재계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감사위원 분리 선임’에 대해 특히 우려해왔다. 기업경영 전반을 감독하는 이사회 감사위원 선임에 있어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행사 지분을 3%로 제한하는 등 경영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외국계 헤지펀드가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국내 기업 이사회에 마구잡이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려 든다면 기업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날(12월 9일)로부터 일주일도 안 돼 LG그룹 앞으로 날아든 화이트박스의 경고장은 이 같은 우려가 기우(杞憂)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말 개정된 상법과 함께 2021년 새해를 맞이한 재계의 우려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부작용이나 문제가 생길 경우 의결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지난해 12월 8일 경고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일부 정치인의 무리한 입법 끝에 국내 기업에 경영 리스크가 초래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해외 경쟁사에 기업 기밀 유출과 각종 소송 남발로 기업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값 폭등 등 민심이반으로 최근 단행된 청와대와 내각 물갈이에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대로 유임되는 등 정책 기조가 크게 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그간 재계는 지난해 6월 법무부 입법예고부터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불과 6개월 만에 상법 개정안 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배경에는 당·정·청 차원의 밀어붙이기는 물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승승장구해온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역할이 크다고 봐왔다.
   
   경제개혁연대 소장 출신으로 소위 ‘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려온 김상조 정책실장은 한성대 교수 시절인 2016년 8월 언론 인터뷰에서 “시장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명확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상법과 자본시장법을 개선해야만 근본적인 경제민주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주요 언론사 편집국장, 부장단과 잇따라 만나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상조 정책실장은 “재계에서 법 개정 시 헤지펀드의 놀이터가 된다고 하는데 과장된 면이 크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종인 눈치 보는 국민의힘 무대응
   
   재계는 야당인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초선)이 자유시장연구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과 함께 세미나를 개최해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으나, 지난해 연말 여당의 ‘상법 개정안’ 일방 독주에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당초 국민의힘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과 함께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필리버스터는커녕 반대 토론조차 나서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들은 야당의 저지 동력이 약화된 근본 원인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서 찾고 있다. ‘합산 3%룰’이 포함된 ‘감사위원 분리 선임’ 규정이 반영된 상법 개정안은 사실 2012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먼저 제시한 바 있다. 2012년 12월 18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영입했던 김종인 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3대 경제과제로 ‘경제민주화’를 제시했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주주권 침해와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의 악용에 대한 재계의 우려로 당·정·청은 상법 개정안의 재검토에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2013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대 기업 회장단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상법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알고 있다”며 “정부가 신중히 추진하고 많은 의견을 청취해 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결국 당시 법무부도 2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했지만, 해당 법안을 끝내 회기 내 제출하지 않았다.
   
   이 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틀어진 김종인 위원장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에 의해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돼 비대위원장까지 맡으면서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은 시대적 과제로 법·제도적 장치를 통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상법 개정안 재추진에 불을 지핀 바 있다. 같은 해 7월 김종인 당시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민주당 107명을 비롯해 의원 122명과 함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종인 위원장이 16년간 의정활동 중 유일하게 대표 발의한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와 민주당은 수차례 공청회를 열었다고 하지만 재계 입장을 듣는 시늉에 그쳤고, 야당 역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해외 투기자본에 의한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입법에 대한 검토가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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