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象殿) 신격호(辛格浩)는 1941년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단돈 83엔(830원)으로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을 일군 ‘열정의 개척자’이다. 우유배달 고학생이 78년 만에 자산 115조원, 매출 90조원, 세계 20여개국에 18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을 키운 것이다. 그는 특히 1960년대 이후 우리 산업이 중화학공업과 전자, 자동차 등 대규모 장치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할 때 국민 실생활과 직결되는 유통과 식품, 관광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생활경제를 꽃피운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상전은 1921년 10월 4일 경남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의 농가에서 신진수와 김순필 사이의 5남5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는 말수가 적은 소년이었으나 남다른 상상력을 지녀 머릿속에 새로운 세계를 그리기를 좋아했다. 특히 한 일본인 교사가 간간이 들려주는 일본의 신문물 이야기는 큰 자극을 준 것 같다. 한때 작가가 되는 꿈을 키우기도 했다니 어쩌면 소년 신격호의 상상력은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언양보통학교와 1939년 울산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한 후 함경북도의 명천국립종양장에서 1년간의 연수과정을 마친 상전은 경남도립종축장에 취업한다. 그러나 그는 종축장 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일본에 유학하여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열망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고심 끝에 상전은 1941년 맨몸으로 가출하여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장남이자 가장이라는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보다 큰 세상을 그리며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뱃삯을 내고 나니 겨우 83엔이 남아 있었다. 어렵게 도쿄에 있는 동창생의 자취방을 찾아 여장을 푼 그는 이튿날부터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 진학을 위해 와세다중학 야간부에 편입했다.
공부하고 싶어 맨몸으로 가출해 일본행
천성적으로 책임감이 강한 그는 우유배달을 하는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김없이 배달시간을 지켰다.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신조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신용 있는 청년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의 성실함을 알게 된 고객들로부터 주문이 급증했다.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배달 주문이 늘어나자 그는 직접 배달원을 모집해 ‘배달사업’으로 운영해 나갔다. 그렇게 혼자 힘으로 사업의 방법을 체득해갔다.
6개월 뒤 그는 친구의 방에서 독립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인생의 진로를 바꿔 와세다고등공업학교 화학과(현 와세다대학 이학부) 야간부에 진학했다. 문학을 꿈꾸던 그가 문학과는 동떨어진 화학과를 선택한 것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대학생활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운명적인 만남이 다가왔다. 어느 날 60대 노인이 찾아와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노인은 그가 고물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남다른 성실함과 근면함을 눈여겨보았다가 믿을 수 있는 청년이라는 확신이 들자 일종의 동업을 제안한 것이다.
“지금은 전쟁으로 인해 군수용 커팅오일(금속을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이 품귀 상태인데, 공장을 운영해 볼 생각이 없나? 자금은 내가 대고 수요처도 알선하겠네. 운영은 자네가 알아서 해 보게나.”(‘롯데 5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