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개항한 일본 간사이국제공항. ⓒphoto 방시공항
1994년 개항한 일본 간사이국제공항. ⓒphoto 방시공항

지난 2월 26일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의 국회 통과 직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부산시가 오는 2030년을 목표로 가덕도신공항 국제선 개항을 밀어붙이면서 일본 오사카(大阪)의 공항정책 실패를 반복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일본의 제2도시 오사카는 1994년 간사이(關西)공항 개항 직후, 1939년부터 오사카국제공항으로 사용했던 이타미(伊丹)공항 폐쇄에 실패하고 국내선 전용공항으로 남겨뒀다.

결국 간사이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사실상 두 개로 분리되면서 해상매립과 인공섬 건설에 따른 막대한 비용 투자에도 불구하고, 간사이 권역의 아시아권 여객수요 정도만 처리하는 지역 허브공항에 그치고 말았다. 간사이공항은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94년 개항 때 최초 조성비만 당시 돈으로 1조5000억엔(약 15조원)이 투입된 오사카 지역의 최대 토목사업이었다.

이타미 폐쇄 못 해 간사이 실패

2016년 영남권신공항 사전타당성 조사를 수행한 세계 3대 공항설계 전문그룹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역시 간사이공항을 ‘실패 사례’로 간주한 바 있다. ADPi는 당시 보고서에서 “이 프로젝트(간사이공항)는 성공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했다. ADPi가 그 주된 이유로 꼽은 것이 이타미공항의 존재였다. ADPi는 “원래의 계획에 따르면 이타미공항은 간사이공항 개항 후에 폐쇄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91년까지 이타미 주변 지역사회는 공항의 폐쇄를 거부했다. 그래서 이타미는 국내 비행 운항을 유지하였다. 이 변화가 간사이국제공항의 수익성 기대를 위태롭게 했다”고 지적했다.

ADPi의 지적은 코로나19의 영향 직전인 2019년의 여객 통계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019년 기준으로 간사이공항이 처리한 여객은 3191만명으로, 8692만명을 처리한 일본 도쿄 하네다(羽田)공항(도쿄국제공항)의 절반도 안 된다. 간사이공항의 여객처리량은 도쿄권의 국제선 전담공항으로 1978년 ‘신(新)도쿄국제공항’이란 이름으로 개항한 나리타(成田)공항(4434만명)보다도 1000만명 이상 적다. 도쿄권의 양대 공항인 하네다공항과 나리타공항에서 처리한 여객의 합계는 1억3126만명으로, 제2도시 오사카의 양대 공항인 간사이공항(3191만명)과 이타미공항(1650만명)에서 처리한 여객 합계(4841만명)의 거의 3배에 달한다.

게다가 간사이공항이 2019년 처리한 3191만명이란 숫자는 국제선(2493만명)과 국내선(698만명)을 합친 숫자다. 각각 일본의 동서를 대표하는 1, 2도시인 도쿄와 오사카의 직선거리는 400㎞로, 서울과 부산 간 직선거리(340㎞)보다 더 멀다. 도쿄도(都)의 인구는 1400만명, 오사카부(府)의 인구는 880만명이다. 도쿄와 오사카의 인구 및 경제력 격차, 정치적 위상 등을 감안해도, 일본에서조차 양대 허브공항 정책은 사실상 별 효과를 못 보고 있는 셈이다.

항공정보 사이트인 ‘플라이트커넥션’에 따르면, 2021년 현재 간사이공항의 취항지는 22개국 71곳으로 나리타공항(45개국·125곳), 하네다공항(26개국·104곳)에 비해 절대 열세다. 간사이공항 운영사인 ‘방시(VINCI)공항’에 따르면, 간사이공항의 2019년(회계연도) 기준 국제선 여객의 국가별 구성 역시 중국(29%), 한국(18%), 동남아(18%), 홍콩·마카오(11%), 대만(11%) 등으로 근거리 아시아권 여객이 87%에 달하는 지역 허브에 불과했다. 반면 북미(하와이 포함)와 유럽, 대양주(괌 포함)는 각각 5%, 4%, 3%로 모두 합쳐도 12%에 그쳤다.

그나마 간사이공항의 높은 아시아권 의존도는 2019년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한국인 이용객이 전년 대비 33% 급감하며 어느 정도 개선된 수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위안부 합의 무효화’와 ‘징용공 판결’ 등에 맞선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로 한·일 관계 악화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2018년도(회계연도) 기준으로 간사이공항 국제선 여객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1위였다. 그 뒤를 중국(23%), 동남아(16%), 홍콩·마카오(12%), 대만(11%) 등이 따르면서 간사이공항의 전체 아시아권 여객은 89%에 달했다. 2018년 당시도 북미(5%), 유럽(3%), 대양주(2%)의 비중은 10%에 그쳤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유명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간사이공항의 번듯한 외관과 달리 오카사만(灣) 인공섬 위에 지어올린 ‘동네공항’에 불과했던 셈이다.

간사이, 아시아권 이용객이 87%

현재 일본의 국적항공사 가운데도 오사카에 본사를 두고 간사이공항을 허브로 삼는 항공사는 일본 최초 저비용항공사(LCC)인 피치항공이 유일하다. 피치항공은 간사이공항 2단계 확장 부지에 LCC 전용터미널로 조성한 간사이공항 2터미널을 사용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양대 항공사인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는 모두 도쿄에 본사를 두고, 하네다공항과 나리타공항을 메인허브로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다.

4000m와 3500m 활주로 2본(本)을 갖추고 국제선과 국내선을 동시 운영하는 간사이공항의 성적표가 이럴진대, 김해공항의 국내선을 존치한 상태에서 가덕도신공항만 국제선 전용공항으로 육성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지적이다. 간사이공항의 사례처럼, 신공항 개항 이후에도 도심과 가까운 공항을 선호하는 이용객과 항공사의 자연스러운 선호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사카 도심을 기준으로 각각 남과 북으로 나뉜 간사이공항과 이타미공항과 달리, 가덕도신공항과 김해공항은 모두 부산 도심에서 서쪽에 있다. 부산의 지리적 중심인 서면역에서 김해공항까지는 자동차 도로로 14㎞ 떨어져 있는 반면, 가덕도신공항 예정지인 가덕도 대항항(港)까지는 36㎞로 2배가 넘게 멀다.(네이버 지도 기준) 김해공항의 거리상 경쟁력이 가덕도신공항에 비해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다.

부산 도심과 멀리 떨어진 가덕도신공항과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기 위해 지난 3월 4일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로 선출된 박형준 후보의 ‘어반루프’ 같은 초(超)현실적 공약마저 나오는 형편이다. ‘어반루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 미국에서 추진 중인 초고속 이동수단인 ‘하이퍼루프’의 한국식 변형이다. 박형준 후보의 경쟁 상대인 민주당 김영춘 후보는 ‘어반루프’를 “어설픈 귀동냥이 초래한 황당 공약”으로 평가절하한 바 있다.

1939년 개항한 일본 이타미공항(오사카국제공항). ⓒphoto 방시공항
1939년 개항한 일본 이타미공항(오사카국제공항). ⓒphoto 방시공항

가까운 이타미, 국제선 부활 요구도

1939년 개항해 지금도 ‘오사카 국제공항’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이타미공항 역시 당초 항공소음 문제로 공항 폐쇄를 전제로 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오사카 도심과 가까워 공항이용객들이 선호하는 관계로 1994년 간사이신공항 개항 이후에도 국내선 공항으로 살아남았다. 오사카 중심의 오사카역(우메다역)에서 이타미공항까지는 차로 14㎞, 간사이공항까지는 차로 50㎞다.(구글 지도 기준)

간사이공항의 입지적 단점은 2006년 고베공항의 출현도 막지 못했다. 간사이공항은 이름처럼 오사카, 고베, 교토, 나라 등 간사이권 주요 도시의 여객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때 일본 최대 항만으로 비즈니스 수요가 많은 고베는 간사이공항 개항 후 공항 이용이 더 불편해졌다. 고베의 중심인 산노미야역에서 간사이공항까지는 차로 69㎞ 떨어져 있다. 이에 고베시는 1994년 간사이공항 조성 때 후보 부지 중 하나로 검토했던 곳에 역시 인공섬을 조성해 별도 공항을 만들었다. 국내선 공항인 고베공항은 2019년 기준 336만명의 여객을 처리했다. 그 결과 간사이·이타미·고베 등 지역 내 3개 공항은 여객을 삼분하며 모두 이도저도 아닌 공항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9년에는 오사카부(府) 지사와 오사카시장을 지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일본유신회(전 오사카유신회) 대표가 이타미공항을 폐쇄하고 ‘영어 캠퍼스타운’으로 바꾸자는 공약을 내기도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도리어 2018년 9월 태풍 ‘제비’로 간사이공항 활주로가 침수되고, 인공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륙교가 유조선과 충돌해 공항 기능이 약 17일간 부분 정지된 이후부터는 이타미공항의 국제선 부활 요구도 끊임없이 나온다.

결국 가덕도신공항 역시 오는 2030년 부산월드엑스포(유치 예정)를 목표로 국제선 전용 공항으로 출범시키더라도, 부산 도심과 가까운 김해공항의 전면 폐쇄 없이는 국제선 부활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김해공항은 2019년 기준으로 이타미공항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여객을 처리할 정도의 시설용량을 갖추고 있다. 2019년 이타미공항이 처리한 여객은 1650만명, 김해공항이 처리한 여객은 1693만명으로 김해공항이 조금 더 많다.

2006년 개항한 일본 고베공항. ⓒphoto 방시공항
2006년 개항한 일본 고베공항. ⓒphoto 방시공항

간사이·이타미·고베 통합 후 민영화

지금도 이타미공항과 고베공항 등 국내선 공항들은 같은 오사카권의 간사이공항이 아닌 일본 도쿄권의 하네다공항과 나리타공항으로 여객을 몰아주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오사카와 고베 도심의 국제선 이용객이 간사이보다 가까운 이타미와 고베에서 국내선을 이용해 노선과 시간대가 더 다양한 하네다공항과 나리타공항에서 환승하는 방식으로 국제선을 이용하면서다.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 등 일본 양대 항공사를 비롯 도쿄 하네다공항을 허브로 하는 LCC인 스카이마크항공은 이타미~하네다·나리타, 고베~하네다 간의 국내선을 수시로 띄운다.

그나마 간사이·이타미·고베 등 오사카권 3개 공항은 단일 운영사가 통합경영을 하고 있다. 1994년 간사이공항 개항 후에도 인근 3개 공항의 제 살 깎아 먹기 식 경쟁으로 인한 거듭되는 적자에 인근 간사이와 이타미공항의 경영을 우선 통합하고, 2016년 일본 최초의 공항 민영화를 단행한 결과 통합경영이 가능해졌다. 2018년에는 고베공항의 경영까지 추가로 통합했다.

현재 간사이공항을 비롯 오사카권 3개 공항을 경영하는 운영사업자는 프랑스의 건설인프라기업인 방시(VINCI)와 일본의 금융기업인 오릭스(ORIX)의 합작사다. 방시와 오릭스 컨소시엄은 2016년 2조2000억엔(약 23조원)에 오는 2060년까지의 44년간 운영권을 취득했다. 이명박 정부 때 인천공항 민영화를 추진했다가, ‘공항 민영화’란 말조차 금기어가 된 한국에서 가덕도신공항과 김해공항이 이 같은 전례를 따를 리는 만무하다.

간사이, 4000m 활주로에도 별무효과

간사이공항의 사례는 단순히 활주로가 길다고 ‘허브공항’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보여준다. 간사이공항은 일본에서 가장 긴 4000m와 3500m 활주로 2본을 갖췄다.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가장 긴 활주로(3360m)보다 700m가량이나 더 길다. 하지만 간사이공항의 2019년 여객처리량은 3191만명으로 하네다공항(8692만명)의 절반이 안된다. 이타미공항은 3000m와 1800m 활주로 2본만 갖추고도 오사카권의 공항이용객을 1650만명이나 잠식하고 있다. 김해공항의 활주로는 최장 3200m로 이타미공항에 비해서도 200m나 더 길고 소음피해권역 역시 훨씬 협소해 여건이 더 좋은 편이다.

부산시의 계획대로 3500m 활주로 1본을 놓고 국제선만으로 가덕도신공항을 개항할 경우 활주로가 조금 길어질 수는 있어도, 활주로 3본을 갖추고 국제선과 국내선이 결합된 김해공항 확장안보다 못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현재 김해공항은 3200m와 2743m 활주로 2본을 갖추고 있는데, 국토교통부는 당초 김해공항 확장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여기에 3200m 활주로 1본을 추가할 계획이었다. 활주로 3본을 갖춘 공항은 현재 국내에서 인천공항이 유일하다.

해상에 활주로를 갖추면 소음피해가 없어 24시간 운영이야 가능하겠지만, 실제로 여객과 화물 수요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사카시를 포함한 오사카부의 인구는 880만명으로 부산, 울산, 경남을 합친 인구(780만명)보다도 100만명가량 더 많다. 하지만 간사이공항은 24시간 운영가능한 해상공항에, 일본에서 가장 긴 4000m 활주로와 국제선·국내선 기능을 모두 갖추고도, 2019년 기준 일본 내 국제항공화물 처리비중이 20.1%에 그친다. 나리타(55.3%), 하네다(15.2%) 등 도쿄권 공항의 3분의 1이 채 안 된다.

결국 인천공항을 앞세운 수도권(서울·인천·경기)과 가덕도신공항을 앞세운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의 양대 허브공항 전략, 이른바 ‘투포트 정책’ 역시 선거용 미사여구에 그칠 뿐 실제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지난 3월 6일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선출된 김영춘 후보는 “국제선 활주로 하나 만들어서 김해공항과 함께 잘 활용할 수 있다”면서 “가덕도신공항은 부산을 동북아시아의 싱가포르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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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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