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항 콰이칭컨테이너터미널과 앙촨저우대교(왼쪽). ⓒphoto 홍콩해운항구국(HKMPB)
홍콩항 콰이칭컨테이너터미널과 앙촨저우대교(왼쪽). ⓒphoto 홍콩해운항구국(HKMPB)

지난 2월 26일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와 함께 오는 2030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 중인 가덕도신공항의 주된 추진 논리는 ‘트라이포트(Tri-Port)’다. 해로와 육로, 공로가 모두 합쳐진 항만이 번성한다는 논리다. 여직원 성(性)추행 끝에 지난해 전격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을 비롯해,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등 전직 해양수산부 장관들이 앞장서 펴고 있는 논리다. 부산항이 상하이항 등 주요 경쟁 항만에 밀려 성장세가 정체돼 있는데, 여기에 공항을 추가해 반전시키자는 주장이다. 김영춘 민주당 후보는 “부산을 통해 전 세계의 항로(공로)-해로-육로가 연결되는 트라이포트를 구축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는 4월 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여권이 ‘트라이포트’ 논리를 앞세우자, 야당인 국민의힘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기존의 항만, 도로, 철도, 공항에 한·일 해저터널까지 한데 가덕도로 모으자는 ‘5-포트’를 들고나오기도 했다.

한때 세계 1위서 9위까지 추락

하지만 신공항을 추진했던 홍콩의 사례를 봤을 때, ‘트라이포트’ 논리가 실제로는 허구의 탁상공론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콩은 홍콩 반환 이듬해인 1998년 외곽인 첵랍콕섬 해안을 매립해 조성한 지금의 홍콩국제공항으로 이전했다. 사자산(라이언락·해발 495m) 아래에 바다로 뻗어나온 3400m 활주로 1본(本)을 두고, 빈민가 아파트 빨랫대 위로 항공기가 날아다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으로 악명이 높던 카이탁(啓德)공항을 폐쇄한 직후였다. 한국 조종사들이 ‘계덕’이란 한자음에 착안해 ‘개떡’으로 혹평하던 그 공항이다.

지금의 홍콩국제공항은 3800m 활주로 2본(本)에 2개의 여객터미널을 갖추고, 캐세이퍼시픽항공이 메인허브로 24시간 운영하는 공항이다. 홍콩국제공항은 코로나19 영향 전인 2019년 기준 7141만명의 여객을 처리한 아시아 5위권 공항으로, 국내 최대 인천공항(7120만명)보다 여객처리 인원이 많았다. 같은해 1693만명(국제선 959만명, 국내선 734만명)의 여객을 처리하는 데 그친 부산 김해공항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홍콩국제공항과 홍콩 최대 컨테이너항만인 콰이칭항은 차로 25㎞로, 20분 거리에 불과하다.

‘트라이포트’ 논리가 맞는다면, 아시아 최고의 공항 경쟁력을 갖춘 홍콩은 여전히 최고의 항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98년 홍콩 첵랍콕공항 개항 이후 홍콩의 항만 경쟁력은 계속해서 하락세다. 첵랍콕공항 개항 직후인 2000년까지만 해도 세계 1위였던 홍콩항의 컨테이너물동량 기준 세계 항만 순위는 2005년 2위, 2010년 3위, 2015년 5위, 2020년 9위까지 추락했다. 홍콩항의 라이벌로 지금도 세계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싱가포르항(3687만TEU)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 세계 7위로 밀려난 부산항(2181만TEU)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상대적인 세계 항만 순위를 차치하고, 절대적인 물동량만 놓고 봐도 홍콩항의 컨테이너물동량은 2011년 2438만TEU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하락세다. 2017년 2077만TEU를 처리하며 잠시 반등하는 듯했지만, 코로나19가 강타한 지난해에는 1796만TEU까지 떨어졌다.

홍콩 항만의 추세적 하락세는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고속철과, 마카오와 주하이(珠海)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해상대교와 해저터널이 연이어 놓인 다음에도 큰 변화가 없다. 2018년 9월에는 홍콩 서구룡(西九龍)역에서 중국 선전~광저우~베이징까지 갈 수 있는 고속철이 개통됐다. 홍콩항 콰이칭터미널과 고속철 출발역인 서구룡역까지는 차도로 6.5㎞, 9분 거리다. 같은해 10월에는 홍콩에서 마카오와 주하이까지 갈 수 있는 해상대교와 해저터널(6.7㎞)이 결합된 강주아오(港珠澳·홍콩~주하이~마카오)대교까지 개통됐다. 강주아오대교의 홍콩 측 출입경심사가 이뤄지는 곳은 홍콩국제공항 바로 옆에 조성된 인공섬이다.

홍콩은 항만(콰이칭항)에 도로, 철도, 공항, 해상대교와 해저터널(강주아오대교)까지 한데 결합된 ‘트라이포트’를 넘어서는 ‘5-포트’인 셈이다. 하지만 항만경쟁력만 놓고 보면, 홍콩 항만의 전성기는 세계 유수의 신공항을 갖춘 첵랍콕공항 시절이 아니라, 지금은 크루즈터미널로 바뀐 카이탁공항 위로 항공기가 위험천만하게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던 셈이다.

핵심은 너른 배후부지와 싼 하역비

홍콩의 항만 경쟁력이 추락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꼽힌다. 우선 홍콩항의 비좁은 배후부지와 값비싼 하역료, 지지부진한 자동화 등이 원인이다. 현재 홍콩항 전체 물동량의 80% 이상을 처리하는 콰이칭항도 해안을 매립해 조성한 곳이지만, 컨테이너들을 쌓아둘 만한 너른 배후부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홍콩 도심과 홍콩국제공항을 최단거리로 연결할 목적으로 콰이칭항 8부두와 9부두 사이에 해상교량(앙촨저우대교)이 놓이면서 선박 통행은 더욱 불편해졌다. 부산항만공사(BPA)에 따르면, 항만 경쟁력을 좌우하는 환적하역료는 2019년 기준 부산항을 100으로 했을 때, 홍콩항은 121에 달했다.

홍콩의 주변 항이라고 할 수 있는 선전항은 홍콩항의 물동량을 야금야금 잠식했다. 1989년 선전과 홍콩의 동쪽 경계에 컨테이너터미널로 개장한 옌톈(鹽田)항을 비롯해, 서쪽의 셔커우(蛇口)항, 츠완(赤灣)항, 다찬완(大鏟灣)항 등 홍콩 콰이칭항에 비해 훨씬 넓은 배후부지를 갖추고 있다. 인건비와 물가가 홍콩에 비해 싼 만큼 하역료도 저렴할 수밖에 없다. 선전항이 지난해 처리한 컨테이너물동량은 2655만TEU로 부산항(2181만TEU)은 물론 홍콩항(1796만TEU)을 훨씬 능가한다.

정작 홍콩을 밀어낸 선전 바오안(寶安)공항의 2019년 여객처리량은 5293만명으로 홍콩국제공항(7141만명)보다 적다. 대부분이 국내선에서 발생한 여객이다. 심지어 바오안공항의 국제선 여객은 525만명으로 부산 김해공항(959만명)의 절반 수준이다.

결국 홍콩과 선전의 경우만 놓고 봤을 때, 항만 경쟁력과 공항 경쟁력은 하등의 상관관계가 없는 셈이다. 오히려 1998년 첵랍콕공항 개항과 함께 홍콩의 산업구조 자체가 항공과 관광, 금융으로 재편되면서, 해운물류 허브로서의 기능은 선전, 광저우 등 다른 항만에 넘겨준 측면이 있다는 평가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직후부터 ‘무관세 자유항’의 위상이 계속 위협받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019년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뒤흔든 ‘홍콩 국가안전법’ 사태는 여기에 결정타를 가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항만 당국이 외국 선사의 자국 내 연안 운송을 허용하는 카보타지(Cabotage) 해제를 추진 중인데, 중국 주변부에 있는 부산항과 홍콩항의 위상은 더욱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키워드

#포커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