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씽 김혜연 대표가 모듈형 농장에서 재배한 채소를 들고 있다. 뒤에 보이는 컨테이너동은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다녀온 것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엔씽 김혜연 대표가 모듈형 농장에서 재배한 채소를 들고 있다. 뒤에 보이는 컨테이너동은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다녀온 것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엔씽은?

글로벌 스마트팜 스타트업. 컨테이너 안에 수직 수경재배 농장을 집어넣고 자체 OS로 작물에 맞는 환경을 조절한다. 컨테이너 모듈은 수직·수평으로 연결하면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불모의 땅에서도, 화성에서도 누구나 농부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민간 우주 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50년 내 화성에 이주민 100만명을 보낸다는 계획을 세우고 유인 우주왕복선 ‘스타십’을 개발하고 있다. ‘스타십’ 시제품이 세 차례의 시험 발사에서 폭발했지만 일론 머스크는 화성 프로젝트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한국의 스마트팜 기업인 ‘엔씽’의 김혜연(37) 대표는 이 ‘스타십’에 농장을 실어 보낼 꿈을 꾸고 있다. 김 대표의 꿈이 이뤄지면 화성에서도 로메인이나 버터헤드상추 같은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김혜연 대표에게는 화성에 농장을 보내는 것보다 일론 머스크를 만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중동을 사로잡은 컨테이너 농장

2019년 7월,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낯선 컨테이너 2동이 세워졌다. 평균 기온이 40~50도, 뜨거운 햇볕에 모든 것이 녹아내릴 것 같은 날씨에도 컨테이너 안은 전혀 딴 세상이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싱싱한 진초록의 수직 채소밭이 펼쳐졌다. 엔씽이 수출한 컨테이너 모듈 농장이다.

엔씽은 모듈형 수직 농장을 공급하는 스마트팜 스타트업이다. 컨테이너 모듈 안에 농장을 집어넣고 레고 블록처럼 컨테이너를 수평, 수직으로 쌓아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 컨테이너 농장은 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광합성을 하고, IoT(사물인터넷) 통합 자동화 기술을 통해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한다. 수직 농업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100배 늘리고, 수경재배로 물 사용량은 토양재배보다 98%를 줄였다. 자체 OS(Operating System)를 통해 환경을 통제하기 때문에 농약이나 살충제가 필요 없고 최대 1년에 13번까지 수확할 수 있다. 흙도 햇빛도 필요 없고 날씨와 상관없이 작물에 맞는 환경을 유지할 수 있으니 사막 한가운데서도, 극지에서도 대규모 농장이 가능하다.

농산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중동에서 채소는 고기보다 귀하다. 유럽, 이집트, 요르단 등에서 수입을 하지만 유통기간이 짧다 보니 가격은 비싸고 싱싱한 채소는 기대하기 어렵다. 육식 위주 식단 탓에 비만, 성인병이 문제가 되면서 최근 중동에도 채소 위주의 건강 식단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거기에다 중동 산유국들이 포스트 오일 산업을 키우기 위해 국가 발전 계획으로 밀고 있는 산업이 농업 분야이다. 산업이 되겠다 싶으니 아랍에미리트의 거대 자본들도 엄청난 자본을 쏟아붓기 시작하고 미국 기업들도 발 빠르게 진출했다. 엔씽은 한발 늦게 뛰어들었지만 농장을 구축한 것은 먼저였다. 미국형 모델은 창고형 공장을 통한 대량생산 방식으로 엄청난 땅과 초기 투자비용이 필요한 반면 엔씽은 길이 12m짜리 모듈형 농장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구축이 가능했다.

일부러 혹서기를 택했다. 최악의 조건에서 재배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테스트 과정은 화성 조난 영화 ‘마션’을 찍는 것 같았다. 화성에 혼자 남은 마크 와트니가 지구 귀환을 위해 아슬아슬 위기를 넘듯 아부다비와 서울의 ‘핫라인’도 숨가빴다. 아부다비 농장의 모든 데이터는 한국에 있는 엔씽으로 보내지고 원격으로 제어를 하게 돼 있다.

처음엔 상상도 하지 못한 문제들이 매일 발생했다. 폭염 탓에 농장의 번호키가 녹아내린 일도 있었다. 결과는 ‘마션’의 결말처럼 해피엔딩이었다. 컨테이너 농장에서 자란 채소들을 본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농사 경험 없이 기름으로 도시를 만든 나라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식량안보특임장관이 농장을 방문하고 현지 언론은 이를 보도하느라 바빴다.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아삭아삭한 식감의 채소를 먹어보고 “놀랍다” “퍼펙트”를 외쳤다. 실증 단계로 지난해 2월 8개동을 추가해 채소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량이 아직 적다 보니 왕족 일가와 고급 레스토랑에서 소비되기 바쁘다. 현재 대규모의 농장 수출 계약이 추진 중이다. 현지 파트너사에 농장, 시스템, 트레이닝까지 3가지를 수출하는 형식이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수출, 화제가 된 엔씽의 모듈형 농장. 아랍에미리트의 식량안보특임장관(오른쪽)이 방문하는 등 정부 관계자들의 견학코스가 되고 있다. ⓒphoto 엔씽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수출, 화제가 된 엔씽의 모듈형 농장. 아랍에미리트의 식량안보특임장관(오른쪽)이 방문하는 등 정부 관계자들의 견학코스가 되고 있다. ⓒphoto 엔씽

농장, 가공, 물류를 한곳에서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3월 8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엔씽의 모듈형 농장에서 있었다.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컨테이너 16개동이 2개층으로 쌓여 있는 것 같았지만 외부와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엔씽의 국내 전진기지였다. 컨테이너 농장 안으로 들어가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의류살균기에서 꺼낸 위생모, 위생가운을 걸치고 비닐장갑, 장화까지 신었다. 마스크도 새것으로 바꿔 쓰고 휴대폰은 소독제로 닦아야 했다. 모든 장비를 갖추고 한 사람씩 에어샤워 부스를 통과했다. 외부와 차단된 내부 농장은 바깥 기온보다 따뜻하고 습도가 높았다. 가운데 공간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육묘용, 재배용 컨테이너 모듈이 줄지어 있었다. 작물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육묘용 모듈에서 2~3주 정도 기른 후 재배동으로 옮겨 3~4주면 수확이 가능하다. 육묘용 모듈에는 수경재배용 육묘배지에 수만 개의 새싹이 자라고 있었다.

재배동 문을 여는 순간 감탄사가 나왔다. 좌우 5층 선반 가득 최근 유행하는 유럽형 샐러드 채소 로메인, 버터헤드상추, 바타비아가 싱싱한 잎을 자랑하며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배 작물에 따라 빛, 습도, CO2 농도 등 환경은 전부 다르다. 반대로 같은 작물이라도 환경에 따라 맛, 영양성분 등이 달라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온도가 따뜻하고 빛이 많으면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온도차를 두면 조밀하고 아삭해진다. 마침 육묘 작업에 투입될 로봇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사람 손이 닿을 필요 없이 전자동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에도 컨테이너 방식은 시도됐지만 한 동만으로는 규모의 경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걸 모듈화하고 모듈 안에서 여러 가지 스펙과 생산량을 규격화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더 중요한 점은 농장이면서 생산, 수확, 패키지, 배송이 한곳에서 이뤄진다는 겁니다. 기존에는 밭에서 수확한 후 트럭에 싣고 전처리 공장으로 가서 흙 털고 물류센터로 가서 전국으로 유통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곳은 농장이면서 식품가공 공장이고 물류센터인 셈입니다. 전 과정을 하나로 묶어 씨앗에서 식당까지 한 번에 해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농업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생산된 작물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바로 고객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신선도도 오래간다”고 했다. 그래도 태양광에서 자란 채소가 영양 면에서는 낫지 않을까? 의문을 제기했더니 “노지 재배는 작물이 환경에 맞출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작물에 맞게 환경을 갖춰주기 때문에 영양성분 면에서도 유리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엔씽의 모듈형 농장. 컨테이너 한 동을 단위로 수평·수직으로 연결해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용인에 있는 엔씽의 모듈형 농장. 컨테이너 한 동을 단위로 수평·수직으로 연결해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채소도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균일한 품질은 그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김 대표는 채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왜 농산물은 브랜드가 없을까요? 품질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정 장소, 특정 계절에만 가능하고 날씨 등 외부환경에 따라 질이 너무 다릅니다. 자동차도 스펙이 전부 다르면 브랜드를 보고 살 수 없겠죠. 2차산업인 제조업부터는 브랜드가 가능한 것처럼 농산물도 퀄리티와 가격이 균일하다면 브랜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엔씽의 큐브형 농장과 시스템을 개인도 살 수 있을까. 김 대표는 “문의가 많이 오지만 아직은 B2B(기업 대상) 거래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생산시설보다 판로가 먼저라는 생각 때문이다. 재배가 가능한 작물은 지금까지 50여가지를 테스트했고, 기술적으로는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 김 대표의 말이다. 시설 투자비를 물어보니 “내부 구성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유리 온실 등과 비교해서 비용을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엔씽은 처음부터 국내보다 글로벌 시장에 초점을 맞췄다. 중동 쪽이 농업 기술 수요가 많다 보니 반응이 빠르다. 아랍에미리트를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주변국에서도 제안이 많이 오고 있다고 한다. 엔씽의 중동시장 목표는 5년 이내 매출 1조원, 점유율 30%이다.

엔씽의 가능성을 확인한 대형 사건이 있었다. 엔씽은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 컨테이너 모듈 농장을 출품했다. 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전시장에 자리 잡은 엔씽의 농장은 단연 화제였다. 한국 스타트업 최초, 농업 분야 최초로 CES 대상에 해당하는 스마트시티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삼성, LG, 두산과 함께 4곳이 수상 명단에 올랐다. 현지 언론에도 CES에서 꼭 봐야 할 부스로 소개됐다.

어린 시절 그에게 세상은 호기심 천국이었다. 궁금한 것은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 호기심 리스트에 농업은 없었다. 그는 한양대 전자공학과에 적을 두고 있다. 학교 다니면서 딴짓을 많이 하다 보니 아직 졸업은 못 했다. 중학교 때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한국에 강연 온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을 졸라 수업에 빠지고 강연장으로 달려갔고, 별똥쇼를 보자며 한밤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을 불러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주변 동네 가게들에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용돈을 벌었다. 20대 때 모토는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자!’였다. 군대 다녀와서는 웹서비스를 기획하고 쇼핑몰을 만들면서 창업을 꿈꿨다. 엔터테인먼트 회사 홈페이지 만들어주러 갔다 느닷없이 연예인 매니저도 했는데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세 달 만에 끝이 났다.

농업과의 인연은 2010년 무렵이었다. 아이폰이 나오고 세상이 꿈틀거릴 때였다. 학교는 관심 없고 창업 바람이 들어 왔다갔다 했더니 어느 날 농자재 회사를 운영하는 삼촌이 불렀다. 삼촌 회사에서 지게차 운전부터 번역, 막일까지 ‘일당백’으로 일하다 우즈베키스탄 농장까지 떠맡게 됐다. 밖에서 보니 한국의 농업기술이 뛰어났다. 글로벌 시장을 노려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사주’를 받은 삼촌이 창업을 말리려고 부른 일이 오히려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씨앗에서 육묘, 재배가 한곳에서 이뤄진다. 수경재배용 육묘배지에서 2~3주 키운 후 재배동으로 옮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씨앗에서 육묘, 재배가 한곳에서 이뤄진다. 수경재배용 육묘배지에서 2~3주 키운 후 재배동으로 옮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Dream big!

그러나 창업 시장은 냉혹했다. 여러 차례 쓴맛을 본 끝에 2014년 엔씽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처음 아이템은 IoT를 이용한 ‘스마트 화분’이었다. 스타트업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가격 경쟁력이 없었다. 사람도 잃고 혹독한 수업료를 낸 후 2016년 피보팅(사업전환)을 통해 현재의 엔씽이 만들어졌다. 리더는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크루(crew)’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동안 배웠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엔씽의 미션은 ‘세상을 먹여살리자!’이다.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고 누구나 농부가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 꿈은 전 세계 도시를 넘어 화성까지 넘보고 있다. 그의 카카오톡 문패 사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Dream big!’

다음 추천 주자는?

핀테크 스타트업 ‘센트비’ 최성욱 대표

추천 이유 해외 송금 서비스로 국내 외국인 근로자들의 고민을 해결했다. 높은 금융 규제의 벽을 넘어 센트비를 외환 전문 네오뱅크로 키우고 있는 최성욱 대표의 실행력이 어디까지 이뤄낼지 궁금하다.

※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거나 여기를 클릭하면 주간조선이 만난 스타트업의 프런티어들의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황은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