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63빌딩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여의도 아파트들. ⓒphoto 뉴시스
서울 63빌딩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여의도 아파트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철학이 ‘드디어’ 노출됐다. 지난 4월 21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나 나눈 대화에서였다. 청와대 오찬에서 오 시장은 대통령에게 서울시장에 취임한 뒤 방문했던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심한 노후도를 언급하며 재건축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심지어 대통령에게 시범아파트 방문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1971년 준공되었으니 지은 지 50년이 됐다. 감정평가업계에서 건물 가치를 산정할 때 적용하는 내용연수는 50년이다. 감정평가의 시각에서 볼 때 시범아파트는 제 수명을 다해 잔존 가치가 없는 건물인 것이다.

그런데 오 시장의 요청에 대한 대통령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재건축 규제 완화를 요청한 오 시장에게 대통령은 “입주자들이 쉽게 재건축을 할 수 있게 하면 아파트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고, 부동산 이익을 위해 멀쩡한 아파트를 재건축하려 할 수 있다. 그러면 낭비 아니냐”라고 응답했다. 한마디로 재건축 규제를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철학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대통령은 왜 새 집에 살려고 하나?

대통령의 답변을 들은 뒤 필자는 비로소 깨달았다. 현 정권에서 4년 내내 부동산 투기 운운하며 각종 규제를 남발하고 공급을 틀어막아 집값 폭등을 불러일으켰던 ‘몸통’이 알고 보니 참모 역할을 했던 김현미, 김수현, 김상조가 아니라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최고통수권자가 저런 철학을 갖고 있는데 장관이나 정책실장이 자리를 걸고 이실직고하지 않는 한 최고 권력의 오판이 바뀌겠는가.

오 시장의 재건축 규제 완화 요청에 대한 답변에서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과 새 집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은 오 시장에게 “멀쩡한 아파트를 재건축하면 낭비 아니냐”라고 말했다. 지은 지 50년이 된 복도식의 낡은 시범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것이 낭비라고 한다면 대통령은 왜 퇴임 이후에 살 집을 새로 짓고 있을까. 현 정권이 출범한 뒤 지금까지 공약 사업이라는 이유로 세금 수십조원을 써가며 올인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을 대통령도 몸소 실천해야 하지 않는가. 대통령도 기존에 살던 집의 담벼락에 벽화나 그리고 살면 될 것이지 왜 세금을 축내가며 경호원을 위한 경호동을 별도로 짓고 있는가. 자신은 새 집에서 편안하게 살려고 하면서 국민은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고 녹물이 나오는 50년 된 아파트에서 살라고 강요하는 이유를 묻고 싶다.

어디 시범아파트뿐인가. 서울에는 시범아파트보다 더 낡고 허름해서 무너지기 직전의 주택이 수십만 채가 널려 있다. 집 지을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 돈을 들여 새 집을 짓겠다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국민들은 대통령처럼 새 집에서 살 수 없는지 정말 궁금하다. 일반 국민은 용이 아니고 붕어, 가재, 개구리이기 때문인가? 이거야말로 내로남불이고 자가당착이 아닌가. 이 발언을 통해 대통령은 국민이 바라는 열악한 주거환경의 개선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 탄로난 것이다.

그날 오찬에서 대통령은 오 시장에게 “정부는 주택가격 안정과 투기 억제, 공급확대를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주택가격의 안정을 바라고 있을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됐다. 대통령과 여당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인식은 오류투성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여당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는 하나같이 주택 규제를 풀면 집값이 상승하고 투기꾼들이 기승을 부릴 거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림1>은 이들의 우려가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함을 설명한다. <그림1>은 필자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서울 집값: 진단과 처방’에 있는 내용이다. <그림1>이 책에 실린 내용과 다른 점은 분석기간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책에서의 분석기간은 2018년 7월에서 2021년 7월까지인 반면 <그림1>은 2017년 1월에서 2023년 7월까지로 기간이 늘어났다. 공동저자인 서울과학기술대 이혁주 교수가 자료를 업데이트했다.

2017년 11월을 기준으로 이 시점의 아파트 값을 100으로 놓고 계산했다. 검은 실선은 실제 서울 아파트값을 가리키는데 검은 실선이 끝나는 2020년 7월 현재 아파트값은 2017년 11월 대비 약 40% 상승했다. 검은 실선을 오른쪽으로 연장한 검은색 파선은 현재의 정부 정책이 지속될 때 나타날 집값의 추정치다. 2020년 7월 말 정부는 임대차 2법, 민간임대주택특별법, 토지거래허가제 등 선진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각종 법령을 통과시켰다. 김현미 전 장관은 얼토당토않은 악법을 통과시키면서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집값은 앞으로도 상승할 것임을 검은색 파선은 가리킨다.

주택보급률 5% 늘리면 집값 2017년 회귀

만약 정부가 철학을 바꿔 주택보급률을 끌어올린다면 서울 아파트값은 어떻게 변할까? 파란 실선은 주택보급률을 현재보다 5% 늘렸을 때 나타날 아파트값 추이다. 주택보급률을 5% 늘리면 집값은 2017년 말 수준으로 돌아간다. 공급이 증가해서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다. 정부는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96%(2019년 기준)라고 말하지만 이 숫자는 거품이다. 정부가 말한 보급률 96%에는 철거 예정인 빈집과 건축법상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 고시원 등 비주거용 건축물이 포함되어 있어서다. 실제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72%다. 게다가 지은 지 20~30년이 넘는 주택은 전체의 50%가 넘는다. 현실은 이러한데 문 대통령은 국민들이 새 집에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낭비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문 대통령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살아야 한다고 필자가 주장하는 이유다.

주택보급률의 확대보다 집값을 효과적으로 낮추는 방법은 용적률의 규제 완화다. <그림1>에서 볼 수 있듯이 서울시 전 지역에서 아파트 단지 전체의 용적률을 5% 확대하면 아파트값은 기준 시점인 2017년 11월 대비 20% 하락한다. 현재의 집값이 2017년 11월보다 40% 이상 오른 것을 고려하면 서울시 전체 아파트의 용적률을 5% 늘렸을 때 아파트값은 단순 계산으로도 지금보다 60% 떨어진다. 용적률의 규제 완화는 집값을 낮출 수 있는 최선,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이 그림은 증명한다.

용적률 5% 늘리면 아파트값 60% 하락

요약하면 현재처럼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에서 오직 ‘일부 지역’에서만 주택을 공급하면 실수요에 더해 가수요인 이른바 투기수요가 나타난다. 대통령과 여당에서 우려하는 대목이다. 새 집은 적고 낡은 집이 대다수이며 수급이 불균형 상태이므로 가수요가 없을 수 없다. 단기적으로 집값이 오르는 현상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집값 상승의 부작용을 우려해 공급을 하지 않으면 2020년 여름 임대차2법, 민간임대주택특별법 시행 이후 발생한 집값 폭등이라는 더 큰 문제가 생긴다. 현 정부의 정책은 구더기가 무서워 장 담그는 것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집값 상승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서울시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공급이라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서울 외곽에 신도시를 만드는 2·4대책은 결코 충격요법이 될 수 없다. 주택 부족이 심각한 서울에 밀도규제 완화라는 충격을 가해야 집값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1>과 관련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해보자. 수많은 이코노미스트들과 경제학 교수들은 신문과 방송 그리고 최근에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돈이 많이 풀려서 집값이 급등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값을 잡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는 기준금리가 연이어 상승하면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과연 그럴까?

<그림1>은 그들의 우려가 한낱 기우에 불과함을 증명한다. 가계 부채, 정확히는 가계 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을 5% 줄이더라도 집값을 낮추는 효과는 보급률이나 용적률의 효과와 비교해 보잘것없다. 이코노미스트, 경제학자들의 주택 시장과 집값에 대한 예측이 대부분 틀리는 이유는 그들이 용적률의 파급 효과나 실제 주택보급률 등 주택 시장의 메커니즘을 모르는 상태에서 오로지 경제학의 시각에서만 부동산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지면을 빌려 그들에게 요청한다. 제발 알지도 못하는 영역에 관해 단정적인 코멘트를 하지 마시라. 공부하기에는 너무나 바쁘신 정치인들이 그대들의 노이즈(noise)에 휘둘려서 오판을 할까 두렵다.

용적률 규제 완화는 전세가도 낮춰

용적률 규제 완화는 아파트 전세가와 연립주택의 매매가도 낮춘다. <그림2>는 용적률을 5% 늘렸을 때 연립주택의 매매가격과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설명한다. <그림1>과 마찬가지로 ‘서울 집값: 진단과 처방’에 있는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분석의 기준시점은 2019년 1월이다. 용적률을 5% 올리면 아파트 전셋값은 현재의 아파트 전셋값 대비 약 30% 하락한다. 용적률을 5% 확대하면 연립주택의 매매가격을 30% 이상 떨어뜨린다.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용적률 규제를 완화하면 연립주택의 매매가격 하락 폭이 아파트의 전세가격 하락 폭보다 크다는 사실이다. 아파트와 연립주택으로 대표되는 저층 공동주택이 완전히 분리된 시장이 아니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림2>는 정부가 용적률 규제를 완화하면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산층뿐만 아니라 연립주택에 거주하는 저소득층들도 주거비 감축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울 전역에서 용적률 규제를 완화하면 중산층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주거비 절감 혜택을 누리는데 현 정부는 무엇이 무서워 용적률 규제를 고집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서민의 이익과 복지를 우선시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용적률 규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속으로는 집값 상승을 즐기고 있는 것인가. 용적률 규제 완화로 제거할 수 있는 주거비 상승을 방치한 탓에 중산층과 서민들이 골병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현 정권은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림3>은 정부가 시행 중인 점진적 공급 정책(‘점진 처방’)과 필자 등이 주장하는 대량 공급(‘충격 처방’)의 효과를 비교한 그림이다. 점 A는 올해 초 기준 서울시의 아파트 재고와 아파트값(한 채당 9.3억원, 국토교통부 2020년 12월 실거래가 평균)을 나타낸다. 얼마 전 물러났던 변창흠 전 장관은 영등포구 문래동, 양평동 등 주택과 공장이 혼재하여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개발하는 방식을 선택해 A에서 B로 조심스럽게 이동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변 전 장관이 개발하려 했던 지역은 선호하는 지역이 아니므로 아파트값을 낮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택공급이 시작되면 일시적으로 가수요에 의한 집값 상승이 나타나므로 집값의 변화 경로는 파선 형태의 종 모양을 그릴 것이다. 여기까지는 정부의 점진적 공급 처방에 따른 결과이고 지금부터는 대규모 공급에 의한 충격 처방에 관한 설명이다. 정부가 서울시내 고밀화를 통해 3기 신도시 물량에 해당하는 주택을 서울에 공급하겠다고 선언한 뒤 관련 제도를 고치고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적극적으로 착수할 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경로다. 정부의 주택공급이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다면 주택 수요 곡선 D0는 D1으로 크게 내려갈 것이다. 아파트를 분양할 때 주변 집값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면 가격은 점 C에서 위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소비자의 신뢰를 많이 얻을수록 주택 수요 곡선은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집값은 들썩이겠지만 가수요, 정부가 말하는 투기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대규모의 주택공급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면 손실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투기수요는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투기수요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금융 규제가 필요하다. 이처럼 대량 공급이 일으키는 집값의 하락 폭이 워낙 크므로 일부 지역에서 나타날 산발적 투기가 초래하는 부작용보다는 공급기반을 대규모로 확충해서 얻게 되는 이득이 훨씬 크다. <그림1>에서 보았듯이 아파트를 고밀화하면 유동성을 줄이는 것보다 가계부채는 더 많이 줄어든다.

수요 규제? 자기 최면에서 벗어나라

오세훈 서울시장은 분주할 것이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재건축 규제 완화를 비롯해 주택을 신속하고 최대한 공급하기 위해 층수 규제, 용적률 규제 완화 등을 실천하려면 바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 시장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강남 집값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비좁은 골목 등 도시 인프라가 낙후된 강북지역을 강남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 강남 집중현상을 누그러뜨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재개발·재건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개발·재건축을 시작하려면 정부와 국회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서울시장의 권한에 속하는 주택공급 규제를 제거하려 해도 민주당이 90%의 의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를 설득해야 한다.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고 몽니를 부리면 현재의 서울 주택 부족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택 정책 목표는 수요 규제를 통한 집값 안정이다. 현 정권은 김현미 전 장관을 해임할 때까지 4년 동안 세제와 각종 규제를 수단으로 집값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김 전 장관의 뒤를 이은 변창흠 전 장관은 주택공급의 필요성을 말했지만 공공주도의 주택공급을 고집했다. 공급을 통한 가격 안정이 정책 목표라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반드시 공공주도일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공공이 공급을 독점할 때 태생적으로 성과보상제도가 빈약한 공공 부문에서 공급 속도는 느리고 효율성은 떨어진다. 초등학생들이 LH의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에 사는 동료를 ‘휴거’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단적인 사례다.

공공주택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공공이 공급한 아파트의 품질이 민간 아파트보다 처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공 부문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적극적이며 막대한 자본을 갖춘 민간 부문을 제쳐두고 후손들이 갚아야 할 부채를 일으켜가며 공공이 나 홀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정부 권력의 독점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욕심으로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부가 공공주도 개발을 고수하는 모습은 현 정권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친다. 어디 그뿐인가? 말로는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알고 보면 자신들이 가진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서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 같은 현상이 거의 모든 정권에서 반복되는 이유는 정권을 쥔 권력자와 그 주변 인물들이 국민에게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아서다. 정부는 하루빨리 용적률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공공과 민간이 동시에 공급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집값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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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서울 집값: 진단과 처방’의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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