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21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직후 한·미 양국은 ‘한·미 정상 공동성명’과 ‘한·미 파트너십 설명자료’를 결과문서로 채택했다. 이 한·미 파트너십 설명자료는 ‘기술혁신’과 관련한 한·미 양국의 협력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이 중 주목할 만한 것이 차세대 이동통신인 6G 관련 내용이다. 회담 문서에는 ‘차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6G)에 대한 공동 연구개발을 독려하고, 다양하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지원하기로 약속하며,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언급돼 있다. 한·미 정상은 “이를 위해 미국은 25억달러(약 2조9000억원)를 약속했고, 한국은 10억달러(약 1조1600억원)을 약속했다”고 돼 있다. 양국 합쳐서 4조원이 넘는 투자금액이다.

당시 우리 언론들은 6G와 관련한 이런 내용들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미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6G 개발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6G 관련 합의에서 미·중 기술전쟁에 임하는 미국 측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6G는 초당 100기가바이트(100Gbps) 이상의 전송속도로 5G의 최대 속도 20Gbps보다 5배 빠르다. 6G가 구현되면 5G보다 속도 지연이 훨씬 적은 상태에서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만물인터넷 시대를 열 것이라는 게 업계 기대다. 통상 6G는 2028년에서 2030년쯤 실현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아직 선행연구 개발 단계에 있는 6G 기술이 벌써부터 주목받는 이유는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미·중 간의 경쟁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미 지난 2월 “5G는 잊어라. 미국과 중국은 이미 6G 선점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제목으로 미·중 간의 6G 시장 선점 경쟁을 보도한 바 있다. 6G가 아직 이론적 기술개발 수준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미·중 간 경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는 것이 보도의 요지다. 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술기업들을 타격했음에도 불구하고 5G 시장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중국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는데 이 판세를 뒤집을 방안으로 미국이 6G에 주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1월 물러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역시 재임 시절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6G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as soon as possible)”라고 남긴 바 있다. 업계에서도 “기술 선점을 못한 5G 대신 6G를 선점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라고 보고 있다. 화웨이 장비를 이용해 트럼프 정부에 심한 압박을 받아온 LG유플러스에 대해 더 이상 미국이 압박을 가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통상 5G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글로벌 4개사가 선두에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한국의 삼성전자, 스웨덴의 에릭슨, 핀란드 노키아, 중국의 화웨이 등이다. 미국 회사들은 5G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5G 네트워크에서는 기지국 장비가 가장 중요한데, 이 중 핵심 장비가 무선 안테나다. 무선 안테나를 통해 통신망이 구축되면 여기에 스마트폰 등 단말기들이 연결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보통 삼성전자는 유선이 약하고, 에릭슨과 노키아는 유·무선 할 것 없이 강한 편”이라며 “시스코 등 미국 회사들은 무선에 약한데, 화웨이는 5G망에 들어가는 모든 장비들을 다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5G에서 미국 회사들이 약하다 보니 미국이 6G 시장을 통해 이를 한 번에 타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민관이 협력해 전격적으로 6G 연구개발 투자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6G 전략회의를 개최했는데, 임혜숙 과기부 장관과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대사 대리, 삼성전자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 부사장, SKT 김윤 CTO, LG유플러스 이상민 부사장 등이 참여했다.

한 대기업 통신사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동통신의 세대 구별에는 시간 순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국제표준화기구가 차세대 이동통신의 세대를 지정해 준다고 한다. 현재 가장 대표적인 글로벌 표준화기구가 3GPP이다. 3GPP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3G 때 설립된 단체인데, 현재까지도 글로벌 이동통신의 표준을 정하는 기구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LG유플러스의 한 관계자는 “사실 5G조차도 인증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네트워크 측면에서 보면 6세대 이동통신(6G)이라고 해도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건 아니고, 지금까지 있는 기술을 집대성해서 효율을 좀 더 높이는 정도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6G는 미·중 간 패권 다툼의 전장

이처럼 아직 표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6G 기술과 관련된 수많은 사업자, 예컨대 통신사·스마트폰·컴퓨터·VR기기 등 단말기 제조사, 통신장비 제조사 등 각 사업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을 표준화하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 SK텔레콤, LG전자와 LG유플러스 등 대기업 계열 통신사들이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뛰어든 상태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에 6G와 관련해서 ‘백서(White Paper)’를 낸 바 있다. 삼성전자 연구조직인 리서치팀이 지난해 7월 14일 발간한 이 백서에는 삼성이 제시하는 6G의 조건이 정리돼 있다. 6G의 실현을 위해서는 ‘1. 테라헤르츠(THz) 대역의 주파수를 활용하고, 2. 새로운 안테나를 활용하며, 3. 이중화(Duplex) 혁신 기술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 백서의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백서에서 6G가 구현되면 ‘초실감현실’ ‘디지털 레플리카’ 등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기업 통신사 관계자는 “6G에서는 아직 국제표준이 없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삼성은 개발하겠다’는 의지 표현 정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업계에서 6G를 위해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프라 중 핵심은 위성이다. 현재도 일부 LTE(4세대 이동통신)에는 위성 추가 기능이 있다. 미국 테슬라의 CEO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의 프로젝트 ‘스타링크’가 위성 LTE 기술에 속한다. 하지만 속도나 품질 면에서 지금은 기지국의 도움 없이는 한계가 있다. 한 관계자는 “선박·항공 등에서는 데이터가 2Mbps 수준인 데다 그걸 다시 탑승인원들이 나눠 써야 하니 일반 기지국 통신에 비해 품질이 많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6G에서 제시되는 것이 테라헤르츠 대역의 주파수다. 국가의 자원인 주파수는 이동통신 외에도 이용해야 하는 사업자들이 많고, 이들이 사용할 대역을 국가가 정해준다. 특정 주파수는 민간 사업자들이, 다른 주파수는 공공 영역이 쓸 수 있도록 정해주는 식이다. 용도가 겹치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테라헤르츠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한다면 이동통신 네트워크의 품질과 속도는 비약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다만 이 같은 기술이 구현돼 일반 사용자들에게까지 혜택이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삼성이 2023년쯤에 서비스 신을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사실 3G가 상용화되기 전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일본과 영상통화하는 장면을 선보인 적이 있다”며 “그런데 실제로 영상통화가 대중화된 건 10년쯤 걸리지 않았나. 서비스 자체를 할 수 있냐는 것과 그것을 대중화할 수 있냐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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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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