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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8호]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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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혁명의 서막]‘부익부 빈익빈’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2021-10-14 오전 8:43:08

▲ 2012년 9월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photo 뉴시스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를 위해 교환의 매개체로 등장한 게 돈이다. 그런데 1971년 닉슨쇼크 이후 금과의 고리가 끊어진 달러 스스로가 자가증식을 통해 그 성장 속도가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곧 세계 GDP보다 몇 배 이상 빠르게 불어났다. 이것이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를 잉태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 글로벌 금융자산의 증가 속도가 세계 경제성장률을 너무 크게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연 3~4%인 데 비해 세계 금융자산 증가율은 그 서너 배인 평균 15% 안팎이었다. 지나친 오버슈팅이었다.
   
   
▲ 신자유주의와 감세정책을 추진한 레이건 전 대통령. photo 뉴시스

   경제성장률 앞지른 금융자산 증가율
   
   게다가 주주 자본주의의 극성으로 근로자에 대한 분배는 1972년 이후 생산성 향상 대비 크게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부의 편중, 곧 빈부 격차가 극심해졌다.
   
   1970년까지만 해도 세계 금융자산 규모는 세계 총생산 규모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러다 1971년 8월 15일 닉슨쇼크 이후 달러가 근원인플레이션이 허용되는 한도 내에서 제약 없이 발행되었다. 이때부터 세계 금융자산의 증가속도가 빨라졌다. 금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달러가 거의 무제한 인쇄되어 전 세계에 뿌려졌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시작인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 뒤 10년 만인 1980년에 이르러 세계 금융자산 규모는 두 배 이상 커졌다. 세계 총생산(GDP) 규모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곧 ‘금융자산을 GDP로 나눈 자본집적도(Financial Depth)’가 109%로 1.09배였다. 이후 미국에서는 레이건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와 감세정책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효율에 맡기자는 정책으로,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금융자유화 그리고 과감한 감세정책으로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이 골자였다. 이후 있는 자들의 부는 급속도로 불어났다. 10년 후 1990년 자본집적도 비중은 무려 263%가 되었다. 불과 20년 만에 GDP 대비 금융자산의 규모가 50%에서 263%로 5배 이상 커진 것이다.
   
   통화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은 국민경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서 통화량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봤다. 프리드먼은 격심한 인플레이션이나 대공황과 같은 심각한 경제교란은 대부분 통화교란, 곧 급격한 통화량의 팽창이나 수축 때문에 발생한다고 했다.
   
   프리드먼이 주장한 통화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일정한 통화증가율을 사전에 공시하고 이를 장기에 걸쳐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다. 특정비율을 정한 규칙이라는 점에서 이를 ‘k% 준칙’이라 부른다. 정부는 이 준칙만 잘 지키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기면 통화량의 급격한 변동, 곧 통화교란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의 혼란(심한 인플레이션이나 대공황)을 예방할 수 있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축소하여 경제주체들이 계획에 입각한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적정 통화증가율은 평균 실질경제성장률보다 약간 높은 수치로 고시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이를 비교적 충실하게 준수한 나라가 서독이다. 하지만 미국은 1970~1980년대 초의 스테그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적극적인 경기부양책과 통화정책을 도입함으로써 ‘K% 준칙’을 도외시했다.
   
   
▲ ‘K% 준칙’을 제안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photo 위키피디아

   ‘K% 준칙’을 도외시한 미국
   
   미국은 다른 나라에도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라 하여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와 금융시스템의 대외 확산전략을 말한다. ‘세계화’와 ‘자유화’라는 용어가 이때 만들어졌다. 신자유주의의 산물이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는 ‘탈규제화, 무역자유화, 자본자유화, 민영화’였다.
   
   이후 미국은 1990년대 들어 강제로 남의 나라 외환시장의 빗장을 열어젖히며 자본 수출에 광분했다. 그 뒤 세계 각국의 외국인 투자 자본의 3분의2는 미국 자본으로 채워졌다. 제조업 비중이 빈약한 미국이 이후 자본 수익으로 세계 경제의 리더 자리를 지켰다.
   
   신자유주의는 양면성이 있다. 정부의 간섭, 곧 관치를 줄이고 시장에 맡긴다는 면에서는 효율적인 제도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금융관치를 몰아낸 일등공신이 신자유주의였다. 하나 속도가 문제였다. 너무 급격한 변화는 시장 자체를 심하게 망가트렸다.
   
   우리의 1997년 IMF 사태도 ‘워싱턴 컨센서스’에 희생된 제물의 하나였다. 이때 우리 은행들의 주식 60% 이상이 그들 손으로 넘어갔다. 은행 3개는 아예 통째로 넘어갔다. 대기업 주식도 상당량 외국인에게 넘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글로벌 금융자본이 주식시장의 3분의1 이상을 장악했다.
   
   게다가 1990년대는 세계경제가 골디락스(goldilocks)를 맞아 금융시장이 호황을 누렸다. 2000년에 세계 자본집적도는 3.10배, 2004년에 3.34배로 증가했다. 금융자산의 증가속도가 세계 총생산 증가속도에 비해 서너 배 이상 빨랐다.
   
   1971년 8월의 닉슨쇼크는 국제 통화시장만 왜곡시킨 게 아니라 많은 경제 관련사항과 경제지표들을 악화시켰다. 주요 통화의 급격한 가치하락이 일어났다. 국제 금값은 급등했다. 미국의 국가 부채 역시 급증했다. 이후 미국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0년간 된 고생을 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노동시장이 가장 크게 불리해졌다. 주주 자본주의의 극성으로 생산성의 향상 대비 근로자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자본집적도의 급격한 증가는 큰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의 산업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는 부의 분배가 기업가와 노동자에게서 주주와 은행 등 금융자본가에게로 쏠리고 있음을 의미했다.
   
   금융자산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축적되어 부가 금융자본가 등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이에 따라 소득불평등도 커졌다. 소득불평등 심화가 단순한 중산층의 몰락이 아니라 최상위 계층의 극소수 집단으로 소득이 집중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상위 10%가 미국 소득의 절반 차지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자본집적도 비중의 증가가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힘든 시기에 가진 자들은 더 많은 부를 움켜쥐었고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중산층의 소비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2014년 발표된 연준 자료를 보면, 소득이 늘어나는 계층은 상위 3%밖에 없다. 상위 3%가 미국 전체 소득의 27%가량을 가져갔다. 그리고 차상위 7%가 전체 소득의 23%가량을 가져갔는데 이들은 소득 정체현상을 보인다. 이 둘을 합하면 상위 10%가 미국 전체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미국 전체 국민의 90%가 나머지 절반을 나누어 갖는데, 이 수치는 불행히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극단적인 소득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중산층이 붕괴되어 하류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이 줄어들면 건전한 자본주의 사회는 지탱하기 어렵다. 1980년대 레이건 정권 때부터 시행한 부자 감세와 금융자유화 정책은 심각한 소득불평등을 불러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거의 50%를 독식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사회의 소비수요가 팍 줄어든다는 게 큰 문제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사실 버는 대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러나 소득과 부가 상위 극소수계층으로 몰리면 그들은 소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소비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산성의 향상으로 상품과 서비스 공급은 넘쳐나는데 ‘수요 부족’으로 소비가 크게 줄어 터진 게 대공황이다.
   
   
   10%가 소득 50%를 독식할 때 공황 발발
   
   놀라운 사실은 최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50%에 육박하면서 1929년 대공황이 발발했고, 2007년 다시 이 비율이 50%에 달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는 점이다. 이는 상위 한 명이 버는 소득이 나머지 9명이 버는 소득과 같았음을 뜻한다. 곧 국민의 90%가 소비력을 잃어버리는 경제 체제는 붕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실물경제 대비 과도한 유동성 증가에 대한 제어 의지나 적절한 제어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유로 지역에서는 화폐수량설에 입각해 정부는 GDP 성장률에 준하는 화폐를 공급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케인스학파의 영향으로 시장이 위태로우면 정부가 개입해서 무제한 화폐를 공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미국은 2008년 신용위기가 나타나자 보란 듯이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늘리는 기민함을 보여주었다. 3차에 걸친 초유의 양적완화 정책의 실시로 많은 돈이 풀렸다. 이는 EU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3대 통화가 다 같이 통화팽창에 적극 가담했다. 이로써 위기 상황을 완화하기는 했으나 문제는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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