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의 전세난이 지속되면서 지난 8월 반전세 등 월세를 낀 임대차 거래가 올 들어 처음으로 40%를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photo 뉴시스
서울 아파트의 전세난이 지속되면서 지난 8월 반전세 등 월세를 낀 임대차 거래가 올 들어 처음으로 40%를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photo 뉴시스

“전세 두 건이면 사실상 한도가 다 차는 거다.” 서울에 위치한 우리은행 한 지점에서 가계대출을 상담하는 A씨의 말대로라면 커뮤니티에 떠도는 ‘전세대출이 막혀간다’는 건 헛소문이 아니었다. “원래는 분기별로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큼직큼직하게 줬다. 그런데 9월 말 들어서 지점 한도 따로, SR(대출상담사) 한도 따로 배정을 하더라. 우리 지점이 좀 큰 지점인 편인데 10월 한도가 10억원이다. 이거면 전세대출 두 건이면 끝이다. SR 한도도 4억~5억원 정도다. 전세 계약 한 건이면 그분들도 한도가 차버린다.”

A씨는 전세대출 규제 소식을 듣고 가능 여부를 타진하는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매일 듣고 있다. “다음 달에는 더 줄어든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만기 연장은 잘 되고 있다. 신규 대출이나 신규에 준해서 관리하는 대출 증액이 문제다. 한때는 신한은행이 한도가 좀 많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리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거기도 빡빡한 상태라고 들었다. 요즘은 기업은행 상황이 상대적으로 나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10월 6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6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올해까지는 전세대출 유연하게 대응”

전세대출을 두고 당국에서 직접 규제책을 내놓진 않은 대신 규제를 시사하는 냄새를 풍겼다. 그러자 은행들은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대출 총량을 관리한다며 긴축에 들어갔고, 전세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의 민심은 흉흉했다.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 ‘전세대출’로 검색만 해봐도 걱정과 분노를 넘나드는 글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전세대출은 건드리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전세=서민’이라는 등식은 단순히 부채관리의 영역을 넘어 정치의 영역에서 건드려야 할 문제다. 그런데 이제는 ‘전세’가 대출 규제의 핵심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세 실수요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할 것을 주문했지만 지난 10월 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는 그런 대통령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전세대출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날 국감에서 정치인들은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모두 금융당국의 대출 총량 규제로 인한 실수요자들의 자금 경색 문제를 질타했다. 대출 한파가 가져올 여론의 역풍에 여의도는 예민하다. 내년 3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특히 여당은 “다주택자를 넘어 서민까지 잡는다”는 프레임에 곤혹스러워한다. 송두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지적이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전세대출은 890만 무주택 가구를 위한 실수요 시장일 뿐만 아니라 주거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최후의 보루다. 역대 정부에서도 주거사다리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전세대출만큼은 손대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최근 금융·감독·재정·통화 당국의 행보를 보면 거의 협박 수준의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위 국감에서도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 위원장이 온 뒤 전격 작전하듯 하다 보니 시장이 엄청나게 흔들린다”고 말했다. 반면 고 위원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가계부채 증가의 대부분이 실수요자 대출”이라며 “이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상환 능력 범위 안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계속 내보냈다.

고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지난 8월 이후 금융위에서는 지속적으로 전세대출 규제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고 위원장이 직접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서 10월 중에 발표할 가계부채 대책에 전세대출 규제 내용이 구체적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금융권에서 나온다. 실제로 고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각종 공문과 지침으로 이전보다 훨씬 바빠졌다는 게 은행들의 분위기다.

일단 이런 흉흉한 분위기는 잠시나마 소강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10월 14일 고 위원장은 “전세대출이 중단되지 않도록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전세대출 증가로 가계대출 잔액 증가율 목표가 6%대를 초과하더라도 용인하겠다는 얘기도 꺼냈다. 단 전제는 붙였다. “올해 10~12월 전세대출에 대해서 총량 관리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게 금융위의 생각이다.

고 위원장은 대표적인 매파(통화긴축 선호파)다. 금융위원장이 되기 전부터 여러 강연에서 민간부채나 부동산금융의 증가속도가 빨라지는 데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특히 가계의 신용대출이 빨라지는 것에 대해서 우려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통 재무관료 출신인 그는 2003~2016년 금융위원회에 있으면서 가계대출 부실과 금융권 감독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사 부실 사태와 저축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를 직접 관리했던 경험이 있다. 고 위원장을 아는 한 금융권 인사는 “원래는 비둘기파로 볼 수 있는 사람인데 금융위원회에 있으면서 주로 수술대에서 메스를 잡는 역할을 했고 특히 가계부채가 금융리스크로 번지는 위기를 관리해왔다. 그런 경험이 매파적 시각을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이 설계를 주도했던 대표적 작품이 2005년 8·31 대책 당시 등장했던 DTI(총부채상환비율)다.

정부가 전세대출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12월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었지만 소문이 퍼지고 여론이 나빠지자 철회한 적이 있다. 정부는 집값 상승을 이끄는 부동산시장 유동성의 상당부분이 전세대출 때문이라고 본다. 특히 중저가 아파트(3억원 초과 9억원 이하)의 투기성 수요의 중심에 갭투자가 있고 그 갭을 좁히고 있는 전세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 정부는 도달했다. 고 위원장 역시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갭투자를 막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임대차법 2년째 월세 전환 가속화할 수도”

우리는 전세대출에 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갭투자의 정확한 규모나 위험 수준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맞다. 그나마 이번 국감에서 하나둘 관련 통계가 소개되고 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갭투자를 둘러싼 네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일단 갭투자로 신고한 거래 건수 비중이 서울 기준 2020년 35.6%였는데 2021년에는 7월까지 43.5%로 상승했다. 갭투자가 주택 거래의 일반적인 행태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실제 집값 대비 임대보증금 비중이 70%를 넘는 거래가 전체 갭투자의 절반을 넘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보다 위험도가 높았다. 그리고 주택 거래를 위한 자금조달 비중에서 임대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52.2%로 전체의 절반을 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2030세대의 투자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서 연구위원은 “갭투자가 부동산 버블을 초래하고, 가계부채 위험을 키우는 주범이라는 추정을 확인해 주었다. 더욱이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때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규모와 위험 수준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전세대출 규제는 유동성을 회수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겼다. 그러면 유동성이 회수되면 주택시장이 안정될 수 있을까. 한 업계 관계자는 개정된 임대차법을 변수로 봤다. “내년 8월 임대차법이 2년째가 된다. 집주인들이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인데 이때는 세입자를 바꾸면서 보증금을 상한 없이 증액할 수 있다. 주변 전셋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에 한 번에 올리는 폭이 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지금처럼 전세대출이 잠겨 있다면 집주인들이 그걸 고려해 어떤 선택을 할까. 전셋값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드니까 가격을 낮출 리는 없고 결국 반전세로 가게 될 거다. 보증금을 올렸는데 세입자가 그만큼 대출을 일으킬 수 없다면 보증금만큼 월세로 돌리면 된다.

매번 월세화 위기 맞는 세대

원래 전세는 한국형 주거사다리에서 고리 역할을 해왔다. 월세와 자가가구의 주거이동의 연쇄고리는 전세의 존재로 더 강하게 연결돼 왔다. 우리네 주거사다리를 보여주는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보자. 2020년 조사에서 보증금 없는 월세 가구는 월세보조금을, 보증금 있는 월세 가구는 전세자금 대출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세 사는 가구는 전세자금 지원과 자가로 가기 위한 주택구입 자금 대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상향식 사다리에서 전세대출 규제가 작동하면 월세 가구와 전세 가구가 가장 필요하다고 말하는 지원책이 사라진다. 위로 올라갈 길도 막힌다. 정부의 규제가 주거사다리를 부숴버리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아버린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문제는 ‘서민’이라는 키워드에 있다. ‘전세=서민’ 등식이 보편화돼 있는 상황에서 서민형 대출에 규제를 가했을 경우 생길 반발 심리는 선거를 앞둔 정치권 앞에 난제다. 자산은 상승하는데 미처 뛰어들지 못한 사람은 레버리지 기회를 놓치고 원망과 안타까움을 표출한다. 금융위원회와 여당이 대립하고, 청와대가 나서서 우려를 표하고, 결국 한발 물러서는 일이 반복되는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는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레버리지 효과를 상쇄하려고 노력했지만 대출 규제가 나올 때마다 결국 ‘레버리지를 확보하기 위해 먼저 뛰어든 사람이 승자’라는 게 정답이 됐다.

게다가 이렇게 대출을 잠글수록 그 피해 양상은 ‘특정 세대’에 집중된다. 2019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34세 이하인 청년가구 중 1인가구의 비중이 59.2%인데 이들 대부분은 자가가 아닌 임차(77.4%)로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청년가구의 임차 중 월세 비중이 65%로 전세 비중 35%를 크게 앞서고 있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층 대부분은 자가(77%)에 거주하고 일부분만이 월세(11.5%)에 거주한다. 같은 시간의 흐름 안에서 다른 주택시장을 경험하고 있는 이 두 세대는 전세대출을 잠근다는 시그널이 만들어낼 월세 전환 현상에서 한쪽은 임대인으로, 한쪽은 임차인으로 만날 가능성이 큰 세대다.

일단 올해는 이대로 넘어갈 수 있다. 실수요자를 위해 전세대출을 유연하게 다루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럼 내년은 어떨까. 일단 금융위원장의 강한 어조도, 현 정부의 주택정책도 결국 전세 대출을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 역시 결과적으로 집값의 안정을 위해 월세 대중화를 피하지 않는다. 정부 입장에서도 월세는 관리가 용이하지만 전세는 관리가 어렵다.

정부는 편해질지 몰라도 이렇게 전세대출을 잠근다는 신호가 나올 때마다 수요자들의 마음은 급해진다. 대출이 막히기 전 전세 물건부터 구한 뒤 일단 계약부터 하려는 일들이 이번에도 벌어졌다. 그나마 이들은 낫다. 전세로 점프하지 못하는 세대는 매번 월세화의 위기를 정면에서 맞을 수밖에 없다.

키워드

#이슈
김회권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