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의 컨테이너 야적장. ⓒphoto 뉴시스
부산항의 컨테이너 야적장. ⓒphoto 뉴시스

코로나19는 여전하고, 겨울에 다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실물경제는 완연한 회복세다. 미국 등 주요국의 경제회복과 빠른 백신 공급으로 세계는 80년 만에 가장 강력한 ‘불황 후 경제 성장 속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부문은 변화된 환경에 상당히 적응했고 거의 정상을 찾았다. 세계적으로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의 델타변이 바이러스 확산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6.0%로 유지했다. 내년은 4.9%를 예상했다.

세계은행의 전망도 낙관적이다.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5.6%, 내년에는 4.3%를 예상한다. 심지어 다른 지역보다 경기회복이 늦었던 유럽도 지난 4월 이후 빠른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2분기 유로 지역 성장률은 2.2%를 기록해 1분기의 -0.3%에서 괄목할 만한 개선을 보였다. 유럽중앙은행은 올해 유로 지역 성장률을 기존의 4.6%에서 5.0%로 상향 조정했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물동량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던 세계의 해상물동량은 올해 예년 수준으로 회복됐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지표인 상하이 컨테이너선 운임지수(SCFI)는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주요 공항의 항공 화물량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제조업 부문의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는 물동량의 증가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코로나19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완전히 붕괴하지는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경기순환에서는 경기가 나빠지면 취약한 업체들이 빚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면서 생산기반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상황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유례없이 쏟아낸 유동성 덕택일 것이다.

경제 호황기 끝물에 만난 코로나19

주요 20개국 국가들이 지금까지 시행한 경기부양책 규모는 약 12조달러 수준이다. 일본과 독일, 프랑스의 GDP(국내총생산)를 모두 합한 것에 버금가는 규모다. 미국은 정부의 연간 재정적자가 GDP의 15%를 초과하고 총부채는 GDP의 120%를 초과한다. 이전 같으면 이 같은 수준의 부채비율은 채무위기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이번에는 다르다. 세계 각국의 기준금리는 지금 사상 최저 수준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지만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아직 1%를 넘지 못한다. 부채는 급증하고 있다. 2021년 6월 말 기준 가계 빚은 1805조9000억원에 달했다.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10.3%가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이런 금융 환경이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코로나19가 진정될수록 미국 연준의 테이퍼링(자산매입축소) 시기도 가까워진다. 연준은 2020년 6월부터 매달 국채 800억달러, 주택저당증권(MBS) 400억달러 등 1200억달러의 채권을 매입하며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미국 연준의 테이퍼링 개시는 금리인상의 전조로 해석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준 것은 물론이다. 흔히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변화는 이미 코로나19 이전에 시작됐다. 이쯤에서 코로나19 이전의 세계경제를 다시 돌아보자. 코로나19가 등장하기 직전, IMF가 꼽은 세계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기업 부실채권의 증가였다. 2018년 말 기준 글로벌 회사채 발행 잔액은 13조5000억달러였다. 세계경제는 당시에도 이미 부채의 늪에 빠져 있었다. 사실 미국 주가는 코로나19 이전에도 너무 뛰었다. 코로나19 발발 직전, 미국 주식시장의 주요 지수들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다. 미국 경제가 좋다고는 해도 주가를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감염병은 공교롭게도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미국 경제 최장기 호황 국면이 끝나가는 시점에 발생했다. 2018년 2.9%를 기록했던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2019년 2.3%로 떨어졌다.

미국만이 아니었다. 일본 경제는 이미 2019년 하반기부터 소비세 인상의 영향으로 경기 둔화를 겪고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산업 활동도 비정상적으로 약세였고 중국도 천안문사태가 일어났던 1990년 이후 가장 성장률이 낮았다. 3%를 넘던 세계의 경제 성장률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에는 2.0%로 떨어졌다.

코로나19 이전 세계경제는 이미 추락하고 있었다. 저금리와 부채로 연명하던 세계는 다시 더 낮은 금리와 더 많은 부채로 코로나19 시대를 살아남아야 했다. 지난 한 해 늘어난 부채는 기업이 5조4000억달러, 은행이 3조9000억달러, 가계가 2조6000억달러다. 유동성의 홍수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자산시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급격한 회복과 급등세를 보여줬다. 코로나19 이전까지 4년 동안 60%가 올랐던 나스닥지수는 코로나19 이후 다시 그 이전 최고점의 두 배로 뛰었다.

그러나 순조로워 보이는 경기회복 과정의 뒤에는 벼랑 끝에서 대출 연장과 정부의 지원만으로 버티는 기업이 많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제조업체 등 비금융사들은 전 세계적으로 올 상반기에도 3조3600억달러를 순차입했다고 한다. 많은 기업이 특혜를 받아 생존하고 있지만, 영업이익으로 정상적인 이자를 갚기 어려운 이른바 ‘좀비기업’들이다. 좀비기업들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은행은 앞으로 상당 기간 부실채권 문제를 안고 씨름해야 한다. 세계은행의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조용한 금융위기’라고 부른다.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은 성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전국자영업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0월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전국자영업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0월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세계경제 전반의 ‘일본화’

성장의 원동력은 항상 같다. 생산가능인구가 늘든가 기술개발로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IT 혁명의 생산성 제고 효과는 아직 기대만큼 뚜렷하지 않고 인구감소와 베이비붐 세대의 노령화는 세계적 현상이다. 경기부양에 정부의 역할도 제한적이다. 남아있는 재정적인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 각국 정부가 기록할 재정적자는 11조달러에 이른다. 물론 어떤 나라의 정부도 쉽게 긴축재정으로 전환하지는 못할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좀비기업도 생존이 가능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일부에서는 이를 세계경제의 좀비화(Global Zombie Economy)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 많은 부채’를 의미하는 일본화(Japanification)가 세계경제 전반에 걸쳐 일상이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일반적인 추세는 코로나19 이전의 흐름처럼 세계적인 저성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팬데믹이 가져온 가장 결정적인 영향은 속도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는 코로나19 이전에 시작되었으나 지체되고 있었던 구조적 변화를 촉진했다. 개인과 사회, 정부와 비즈니스의 모든 영역에서 10년에 걸쳐 일어날 변화가 1년 만에 이루어졌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가 가파르게 진전되고 있었지만, 기업과 사회 전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핵심축은 이미 ICT 서비스로 이동했다. 비대면 서비스나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과 게임 서비스 수요는 급증했다. 과거 비대면 서비스는 젊은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코로나19는 이를 ‘반강제적으로’ 소비자 전체로 확산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다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업들은 효율성을 높이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로봇을 포함한 신기술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당연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나올 것이다. 재택근무가 일상화하면 도심 공간의 모습도 바뀐다.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되더라도 여행 산업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기업 출장의 4분의1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고객 접촉이 많은 서비스 부문의 저임금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이 팬데믹 기간 동안 20% 감소했다.

“개발도상국, 향후 10년 내 더 뒤처질 수도”

정부의 경제적 역할은 확대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 역량의 중요성이 다시 확인됐다. 보편적인 건강보험, 노동시장 보호, 국내 공급 시스템의 유지에 대한 정치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자연스럽게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로 이어진다. 이미 코로나19 이전에도 생산기반의 회귀현상은 나타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해외 직접투자 유입액(Foreign Direct Investment Inflow)은 2015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세계 각국은 지역 간의 봉쇄(lock down)와 시설들의 폐쇄(shut down)를 경험했다. 이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리쇼어링 정책을 더욱 강하게 추진하면서 이른바 글로벌 밸류 체인(Global Value Chain)상의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 속에서 나타나는 세계화의 후퇴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더욱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다.

승자 독식과 패자의 도태로 이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순화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양극화는 국가 간의 경쟁에서도 두드러질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현재의 개발도상국들이 향후 10년 내 더 뒤처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확대한 재정지출과 금리인하, 자산매입 등의 정책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금융시장과 경제에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무난한 저성장도 조기에 균형 잡힌 정책 운용이 있어야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남아 있는 수단도 별로 많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맞이할 저성장 시대의 특징은 재정도, 금리도 더 이상은 유효한 정책수단이 되기 어려워 경기순환에 대비할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이 될 것이다. 정부로서는 거품을 가라앉히면서 경기를 진정시키되 침체까지는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다. 재정정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면서 급격한 통화정책 전환은 피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하지만, 정상화를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긴 시간이 필요한 정상화도 전제가 있다. 지금의 팬데믹이 끝나고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 선에서 인류와 공존하는 상황이어야 한다. 만약 또 다른 형태의 팬데믹이 다시 발생한다면 얘기는 좀 달라질 것이다.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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