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억원을 조금 넘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1억원을 넘어서면서 평범한 중산층도 상속세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진은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 ⓒphoto 뉴시스
2013년 5억원을 조금 넘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1억원을 넘어서면서 평범한 중산층도 상속세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진은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 ⓒphoto 뉴시스

상속세는 사망으로 그 재산이 가족이나 친족 등에게 무상으로 이전되는 경우에 그 상속 재산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사람의 사망이 과세의 계기다. 기분 좋은 세금이란 없겠지만 상속세는 더욱 그렇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매겨지는 세금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나쁜 상속세에 유독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것은 상속세 강화를 통해 부의 세대 간 세습을 막아야 하고 땀 흘려 번 것이 아닌 단지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높은 세율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을 근거로 삼는다. 상속세가 가진 소득 재분배 기능의 목적은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조세 원칙에 따라 부의 무상 이전을 막고 소득의 편중을 완화하는 것이다. 명분은 부의 재분배를 통한 구조적 불평등 해소다.

원래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는 명목 상속세율이 무려 90%였다. 정부의 세정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던 시절, 소득세가 촘촘하지 못했던 시기에 어차피 걷어야 할 세금을 살아있을 때 제대로 걷지 못했으니 축적된 부의 상속 시점에 세금을 다시 정산한다는 일종의 ‘사후과세’ 개념이었다. 그 후 정부의 기능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세율은 점차 낮아졌다. 지금의 상속세율은 김대중 정부 때이던 1999년 금액에 따라 5단계로 나누면서 최고세율 50%, 최고세율 적용 구간 30억원 초과로 정해진 이후 20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여기서 다시 상속 재산이 기업 최대 주주의 주식이라면 20%가 할증된다. 최대 주주에게는 경영권이 포함되기 때문에 주식의 가치를 더 비싸게 책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세율은 사실상 60%가 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자산총액 5000억원 미만, 연매출 3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을 위한 가업 상속 공제제도가 있기는 하다.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 혜택을 주고 있지만, 대신에 7년간 고용유지 등의 조건이 부가된다.

대부분 기업과 관련 없는 납세의무자

한국의 상속세율이 가혹할 정도로 높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상속세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주요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을 보면 미국 40%, 독일 30%, 영국 20%다. 세계적 추세는 상속세 부담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는 방향이다. OECD 37개 회원국 중 상속세를 매기지 않는 나라는 15개국, 상속세는 있으나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를 비과세하는 나라가 4개국이다. OECD 37개국 평균 세율은 13.2%다. 싱가포르와 덴마크 등은 최고세율이 20% 미만이고,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30% 안팎이다.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 나라들은 대신 자본이득세가 있다. 상속받은 재산 자체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지만 상속 재산을 처분하는 시점, 즉 상속받은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을 매각하는 시점에 발생하는 이익에 과세하는 것으로 양도소득세와 비슷한 개념이다. 자산이 처분될 때까지 과세가 미뤄지는 것이다. 경제가 일정 규모 이상 발전한 여러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참고로 말하자면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완전 면제고, 일본도 법정 상속 범위 내에서는 면제지만, 한국은 30억원까지만 면제다. 특히 미국을 한국과 비교하자면 미국 연방정부의 증여세와 상속세는 기본적으로 통합세액공제(unified transfer tax credit)라는 제도로 한국보다 면세점(basic exclusion)이 높다. 2018년 이전까지는 상속이나 증여를 할 때 549만달러까지 상속세가 면제됐지만, 2018년부터는 1158만달러로 면세 한도가 늘었고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상향 조정으로 2021년부터는 1170만달러다. 그 이상의 유산에 대해서는 40%의 세금이 부과된다. 특히 배우자가 상속받는 돈이 과세대상이 아닌 것은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빌 게이츠의 이혼으로 멜린다가 가져가는 돈에도, 제프 베이조스가 이혼하면서 매켄지가 가져간 돈에도 세금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에 대한 지적은 주로 기업의 경영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제기되는 경향이 있다. 높은 상속세율이 창업주 사후 경영권을 불안하게 만들고 이 때문에 창업 의욕을 꺾는다는 것이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망 이후에도 같은 문제로 상속세 개정 문제가 논란거리로 등장하고는 했다. 세금 부담 때문에 상속을 포기하고 기업을 내놓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상속세 부담 때문에 매물로 나오는 기업이 300~400곳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높은 상속세 부담이 실제로 기업경쟁력과 국가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면, 상속세 개편은 검토할 가치도 없다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기업의 가족 경영권 유지에 초점을 맞춘 상속세 비판을 합리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높은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을 팔아야 한다고 해도 최대주주가 바뀌는 것뿐이다. 기업이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창업자의 가족이 경영권을 갖는 문제와 기업의 유지 문제는 다르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보면 창업주 가족의 손에서 떠난다고 해도 기업이 유지되기만 한다면 누구의 소유인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창업주나 그 직계가족만이 회사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경영능력이 ‘유전’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기업이든 굳이 창업자의 가족이 물려받아야 그 기업에 더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사모펀드가 인수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펀드는 보통 기업의 수익성을 높여 나중에 다시 더 비싼 값에 기업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사모펀드의 인수를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다. 원칙적으로 본다면 개인이 납세의무자인 상속세를 얘기하면서 경영권 같은 기업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상속세 납세의무자 중 대부분은 기업과의 관련성이 없다.

경제적 효율 저하 vs 부의 재분배

소득 재분배와 기회균등이라는 명분을 생각한다면 상속세는 나름의 역할이 있다. 일단 사회적 분위기도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에 부정적이다. 2000억원의 세금을 내고 30개 계열사를 둔 총자산 30조원의 한진그룹을 물려받거나 11조원의 세금을 내고 총자산 800조원이 넘는 삼성그룹을 물려받는 걸 큰 부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명문 가족기업의 출현과 이를 통한 고용과 성장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세금을 면제해주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사실 상속세가 어느 수준이면 적정한가는 정답이 없다. 정하기 나름이라는 뜻이고 정치적 결정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여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말대로 상속세율 조정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와 스웨덴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스웨덴은 2005년에 상속세법을 폐지했다. 하지만 스웨덴은 조세징수율 98%에 이르는 나라고, 한국은 87%다. GDP 대비 세수는 한국은 26.9%로 34.2%인 OECD 평균에도 못 미칠 뿐만 아니라 36개국 중 하위권인 32위다.

상속세가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적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인 것은 맞는다. 낭비하고 소비를 즐기다가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죽으면 세금이 없지만, 열심히 일해서 벌고 아껴서 모아 놓으면 세금이 부과된다. 높은 상속세율이 초래할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에 주목한다면 상속세는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녀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인간의 욕심을 부정할 수도 없다. 인간의 본성을 외면한 정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합리적 상속세율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사실 상속세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소득과 재산에 이미 세금을 냈는데 상속세를 또 걷는다면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상속세가 없어져도 세수 확보에 큰 차질이 빚어지는 것도 아니다. 상속세로 걷히는 세수는 한 해 5조원 규모다. 2020년에는 총 국세 대비 상속세의 비중이 1.48%를 차지했다. 이것도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별세에 따른 상속세 때문에 다른 해보다 조금 많았던 것일 뿐, 보통의 경우는 전체 세수 대비 1.0% 안팎의 비중에 불과하다.

반면에 상속세를 유지해야 할 이유도 많다. 소득 불평등, 계층 간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특히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는 의미가 있다. 부의 재분배를 통해 빈부격차가 초래하는 사회적 불균형을 극복하는 데 동의한다면 상속세를 낮추거나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하긴 어렵다. 결국 어느 쪽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와 좋은 일자리 창출에 더 도움이 되느냐로 판단하는 것이 옳겠지만, 대기업의 상속세 부담이 고용과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실증적 근거는 부족하다.

단순히 상속세만 따질 게 아니라, 소득세와의 관계를 함께 감안해야 한다는 점도 있다. 우리나라는 소득세 최고세율보다 높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유지하는 유일한 나라다. 상속세와 소득세를 상호보완적 관계로 본다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상속세 부담이 큰 나라로,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소득세 비중이 큰 나라로 볼 수 있다. 자산 축적 시기에 각종 공제 등을 활용해 소득세를 덜 냈다면, 이를 통해 형성된 상속 재산에는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이 형평에 맞는다.

지난 4월 23일 안도걸 기획재정부 차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납주식 매각 활성화 방안 증권분과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물납주식은 납세자가 금전 납부가 불가능한 경우 상속받은 부동산, 유가증권 등으로 조세를 납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3일 안도걸 기획재정부 차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납주식 매각 활성화 방안 증권분과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물납주식은 납세자가 금전 납부가 불가능한 경우 상속받은 부동산, 유가증권 등으로 조세를 납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photo 뉴시스

지금은 1.9%, 앞으로는 늘어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다수 국민이 상속세를 자신과 무관한 세금으로 여기고 있고 이는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2018년 기준으로 상속을 받은 35만6109명 가운데 실제로 상속세를 부과받은 이는 8002명뿐이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들 가운데 1.9%만이 상속세를 냈다. 상황은 조만간 달라질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급등한 부동산 가격 때문이다.

2013년 5억원을 조금 넘던 서울시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이 11억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자산 가격이 올라 평범한 중산층도 상속세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되는 시점이 다가올 것이다.

사실 스웨덴에서 상속세를 폐지한 것도 대기업의 경영권 유지가 어렵다는 문제 때문이 아니라 중산층에서 상속세 부담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높은 세율 때문에 중산층도 세금을 내기 위해 상속받은 재산을 바로 팔거나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비판적인 여론이 커졌고 결국 보수 정권이 아닌 사민당 정권이 상속세 폐지를 추진해야 했다. 우리나라 역시 중산층까지 세금이 부담되는 시점이 오면 상속세는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