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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9호] 20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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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혁명의 서막]이캐시의 실패와 진정한 세계화폐의 탄생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2021-12-25 오후 2:54:35

▲ 2014년 3월 14일 자 뉴스위크 표지이미지. 당시 표지 기사에 뉴스위크는 ‘비트코인의 얼굴’ ‘가상화폐 뒤의 미스터리 맨’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인류의 역사는 화폐 발명 이후 크게 두 방향의 흐름으로 진행되어 왔다. 첫 번째 흐름은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역할이다. 화폐의 발명으로 사람들은 원시경제에서 벗어나 협업과 분업으로 축적을 시작해,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수렵·채취의 자급생산 경제에서 벗어났다. 이후 화폐는 인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두 번째 흐름은 화폐 사용의 생활화에 따른 사용영역의 확장이다. 화폐의 세계화 같은 개념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후 수천 년간 화폐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도구로서의 기능보다는 오히려 힘과 정보를 가진 자에게 봉사하는 기능에 충실해왔다.
   
   정보와 지식의 공유를 통한 자유의 증진, 권리의 확대가 가상자산, 곧 암호화폐와 함께 다시 태동하고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당사자 간 일대일로 운영되는 새로운 전자통화 시스템’을 생각하게 된 것은 화폐 중개인이 경제 권력이 되고, 그 경제 권력이 정치·사회 권력과 또 다른 관계를 맺는, 곧 있는 자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통화시스템에 강한 반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권정치가 대표적 사례이다. 암호화폐는 그런 점에서 기성 화폐의 존재 이유, 지금껏 행사해온 갑을적 경제체제에 돌직구를 던지고 있다.
   
   
   새로운 화폐들의 각축 시대가 열리다
   
   가상자산, 곧 암호화폐는 지금 그 자체만으로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다. 명색이 화폐임에도 화폐의 본원적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변동성이 심하다. 그렇다 보니 교환매체로서의 안정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뿐 아니다.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가치척도 수단으로서도 적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암호화폐는 사기다”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또 비트코인 같은 경우 아직까지는 전혀 실용적이지 못하다. 지불 시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든가, 처리용량이 형편없이 적다든가, 소액지불에도 많은 수수료가 붙는 것 등은 굉장히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며 부당하다.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들이 가상자산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것일까? 다시 강조하건대 이 연재는 이 물음에 대한 시계열적 해석이자 역사의 눈으로 본 화폐의 미래에 대한 탐구이다. 가상자산, 곧 암호화폐는 화폐의 역사와 금융자본주의의 문제에 비추어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또 미시경제학적 접근이 아닌 큰 흐름의 거시경제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가상자산이 갖는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화폐의 세계는 지금의 법정통화, 앞으로 나올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가상자산, 그리고 법정통화와 가상자산을 연계하는 스테이블코인 등이 함께 어울려 경쟁하며 충돌하는 새로운 화폐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분권화와 다양화가 그것이다. 또한 통화시장의 주인이 바뀔 것이다. 패권적 공급자 중심 시대에서 소비자 중심 시대의 도래가 그것이다.
   
   지금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이와 같다. 첫째, 모든 아날로그는 디지털화할 수 있다. 둘째, 모든 중앙화는 궁극적으로 모두 탈중앙화할 수 있다. 셋째, 중앙집중적 경제가 플랫폼 경제를 거쳐 프로토콜 경제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메타버스, NFT, 디파이 등이 주도하는 가상자산 세계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암호화폐의 맥락은 오늘이 아니라 미래로 향한 변화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보다 명료하게 잡힐 수 있다. 일단 암호화폐가 태동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로 돌아가보자.
   
   
   금융위기 속에서 서둘러 암호화폐 발표
   
   2008년 9월 15일 자본의 탐욕이 만들어낸 투기 버블이 터지던 날, 세계 4대 투자은행 가운데 두 개가 침몰해 세계를 경악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냈으며,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팔린 날이다. 이를 기점으로 예금주들이 은행을 못 믿고, 은행이 은행을 못 믿는 신용위기의 공포가 세상을 덮쳤다. 파생상품에서 문제가 터졌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CDO(부채담보부증권)와 CDS(신용부도스와프) 파생상품은 거래소가 아닌 장외거래 상품이라 누가 파생상품과 부실채권을 얼마만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신용경색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신용위기로 인해 전 세계가 순식간에 글로벌 금융위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서로를 못 믿어 돈이 돌지 않는 신용위기를 맞자 당시 암호학자들은 개발하고 있던 암호화폐 발표 계획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현대 통화제도의 모순과 금융자본주의의 적폐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나라의 화폐인 달러의 신용경색이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고 많은 사람을 고통의 늪으로 떨어트리는 이러한 화폐제도는 이제 변해야 한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이렇듯 암호학자들의 끈질긴 도전이 결실을 맺게 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이 시기에 출현한 비트코인은 정부 통제를 피하려는 사이퍼펑크 반항아들이 30여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물로서 탄생한 것이다.
   
   암호학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러한 공포와 혼란 시기가 암호화폐 발표의 적기라 생각했다. 그래서 리먼쇼크 다음 달인 10월 말에 비트코인 백서를 암호화폐 매니아들을 대상으로 추적 불가능한 크립토그래피 메일링을 통해 공개했다. 여기서 그는 “저는 신뢰할 만한 제3의 중개인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히 당사자 간 일대일(P2P)로 운영되는 새로운 전자통화 시스템을 연구해오고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9쪽짜리 백서를 내려(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를 보냈다. 그리고 그 통화시스템을 비트코인이라고 불렀다.
   
   
   비트코인 백서에 담긴 뜻
   
   그가 ‘비트코인 일대일 전자화폐 시스템(Bitcoin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백서에서 제시한 비트코인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제껏 인터넷은 정보 교환의 통로였지 부(富)의 교환 통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암호화폐가 은행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개인 간에 직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발행 수량을 2100만개로 한정해 인플레이션과 통화 교란을 원천 봉쇄했다. 셋째, 블록체인 기술과 P2P 네트워크를 통해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하고 해킹을 방지했다. 넷째, 사전에 정해진 규칙, 곧 프로토콜에 의해 자동 발행됨으로써, 조폐제도 또는 여타의 중앙기관을 배제하여 제3의 신뢰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신뢰를 창조했다. 다섯째, 참여자의 익명성을 보장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했다. 여섯째, 해시캐시 기반의 작업증명을 통한 화폐 발행으로 채굴에 큰 비용이 들어가 ‘디지털 골드’로서의 가치를 갖게 되었으며, 화폐 발행량과 발행 시기를 사전에 알 수 있도록 했다.
   
   이 비트코인은 1990년대 데이비드 차움과 닉 재보가 개발했던 이캐시의 실패를 거울 삼아 문제점을 분석한 토대 위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캐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로 분석됐다. △보안에 취약, 해킹이 너무 쉬웠다. △이캐시를 은행과 연계하다 보니 제3자의 가치에 신뢰를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감시와 검열에 노출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생명력에 문제를 일으켰다.
   
   암호학자들은 제3자, 곧 은행의 신뢰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암호화폐 개발의 필요성을 깨달아 이런 이캐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만약 새로 개발한다면 탈중앙화 암호화폐는 다음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째 우발적인 분실 및 도난으로부터 안전해야 하며, 둘째 그 가치는 위조할 수 없을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들어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셋째 그 값은 간단한 관찰이나 측정으로 정확하게 근사되어야 한다.
   
   이후 닉 재보는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게서 영감을 받아 인간 사회의 기반이 대개 국가가 일반적으로 시행하는 규정 및 계약과 같은 조건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무국적, 비폭력, 사이버 대안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조건을 온라인 도메인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한 개인 은행이 특정 국가나 주에 구속되지 않는 자체 통화를 발행하자는 하이에크의 자유 은행 옹호론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한 시스템하에서 사용할 돈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유시장에 달려 있었다.
   
   
   이캐시 한계 극복한 진정한 세계화폐의 등장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캐시의 실패가 보여준 이러한 문제점들을 ‘블록체인 기술’과 ‘P2P 네트워크’, ‘해시캐시 기반 작업증명’으로 해결했다. 무엇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생태계를 넓히고 발전시키기 위해 집단지성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는 2009년 1월 3일 3만1000항으로 이루어진 비트코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첫 번째 비트코인 제네시스(창세기) 블록이 탄생했다. 사토시는 그가 채굴한 첫 번째 비트코인 일부를 유대인 암호학자 할 피니에게 전송했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 P2P(peer-to-peer network) 방식으로 비트코인을 보낸 것이다.
   
   원래 P2P는 인터넷에서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되어 파일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주로 대학생들이 즐겨 사용했던 자료 공유 방법이었다. 미국의 냅스터(napstar), 토렌트(torrent), 한국의 소리바다 등이 대표적인 P2P 방식이다. 이를 통하면 개인과 개인을 직접 연결하고, 중간 서버 없이 파일 공유가 가능하며,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
   
   사토시는 첫 비트코인을 채굴해 세상에 내놓으며, 제네시스 블록이라 불리는 첫 블록에 메시지를 담았다. ‘The Times 3 January 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더타임스 2009년 1월 3일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
   
   이는 그가 비트코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발표한 날인 2009년 1월 3일 영국 더타임스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었다. 영국 재무장관이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수십억파운드의 긴급 구제금융 자금을 추가로 투입할지를 고려 중이라는 내용으로, 사토시는 이처럼 기존 화폐의 문제를 첫 블록 속에 영원히 기록해두었다.
   
   이렇게 해서 개인 간에 은행을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화폐, 이른바 중앙집중 방식에서 탈피한 ‘탈중앙화’ 화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은행에 귀속되지 않은 진정한 ‘세계화폐’가 탄생한 것이다.
   
   그 뒤 사토시는 동료 개발자 할 피니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할 피니가 지적한 버그를 수정한 후 1월 9일 제네시스 블록 다음의 1번 블록을 만들어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그때부터 평균 10분에 하나씩 새로운 블록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토시는 인플레이션이야말로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를 낳는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이자 시대의 적으로 간주했다. 역사가 이를 증명했다. 그리스·로마제국의 멸망 역시 인플레이션에서 시작된 초인플레이션이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통화시장이 붕괴되면서 비극이 초래되었다. 동양의 원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극심한 혼란을 일으키며 히틀러라는 괴물을 탄생시켰고 2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이처럼 초인플레이션은 제국도 한순간에 멸망시켰으며 세계적 재앙인 세계대전도 불러왔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원천봉쇄되도록 설계되었다.
   
   비트코인이 은행을 거치지 않는다는 의미는 탈중앙화를 뜻했다.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지킬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자유주의자들에게 비트코인의 등장은 그야말로 진정한 금융자유주의로의 진화를 뜻했다.
   
   
▲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동료 개발자 마르티 말미. 비트코인 0.2 버전 개발에 참여했다. photo u.today

   사토시와 마르티 말미의 합작품
   
   사토시와 함께 비트코인 개발사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로는 마르티 말미도 있다. 그는 비트코인 백서가 공개된 지 2개월이 안 되어 비트코인 0.2 버전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사토시가 최초로 직접 이름을 언급하고 감사를 표한 동료 개발자이다. 마르티 말미 역시 현행 화폐와 통화제도에 대한 불신을 여러 사이트에서 표현하고는 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적 무정부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다. 그는 비트코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뒤 무정부주의 사이트 ‘anti-state.com’에 글을 써 인플레이션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나타냈다. 그리고 사토시가 도메인 명의를 그에게 양도한 ‘Bitcoin.org’ 사이트에 올린 그의 글 ‘왜 나는 비트코인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글에서 현행 금융시스템의 통화정책과 신용창출에 대해 비판했다.
   
   “비트코인은 독점적인 중앙은행의 불공정한 통화정책과 중앙집권의 통화 공급으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안전합니다. 비트코인 시스템 통화 공급의 제한된 인플레이션은 은행 엘리트로부터 독점되지 않고 네트워크 전체에 균등하게 배분됩니다.” “비트코인은 부분지급준비제도와 중앙은행의 나쁜 정책으로 인한 불안정으로부터 안전한 화폐입니다.”
   
   이는 비트코인 개발팀들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시중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개발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구절들이다. 마르티 말미는 비트코인 공식홈페이지와 비트코인 포럼의 디자인을 전면 수정하고 개발했다. 사토시는 까다롭고 복잡한 코드들로 사이트 설명을 구성한 반면, 마티는 이를 전부 지우고 깔끔하고 누구든지 알아보기 쉬운 방식으로 전면 수정했다.
   
   비트코인이 안정적으로만 운영되어왔던 것은 아니었다. 2010년 7월 7일 비트코인 버전 0.3이 출시된 후인 그해 8월 15일 비트코인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이용해 1840억비트코인을 생성하는 일이 생겨났다. 이 돈은 두 개의 계좌에 나뉘어 전송됐다. 이 사태가 발생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거래기록에서 이 거래들이 지워졌고 버그가 수정된 비트코인 프로토콜이 업데이트됐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때까지만 해도 다른 프로그래머, 암호학자들과 질문을 주고받았으며 비트코인의 문제점을 보완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그의 개발 동료 개빈 앤드리슨을 비트코인 프로그램 관리자로 지정하고 2선으로 물러났다. 앤드리슨은 동료 개발자 4명에게 코드 접근 권한을 나눠줬다. 그 뒤 FBI가 앤드리슨에게 보자고 하며 접근하자 사토시는 모습을 감췄다.
   
   비트코인은 사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상황 예측에 실패한 설계상의 결함으로 기록용량, 처리속도, 불합리한 수수료 등 많은 면에서 화폐의 본원적 기능을 전혀 못 하고 있다. 사토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오픈소스로 공개한 것이다. 이렇게 개선이 시급함에도 커뮤니티 집단 내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왔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한 알트코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갈 길이 먼 가상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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