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photo 뉴시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photo 뉴시스

삼성이 새해부터 전무와 부사장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했다. 기존 사장과 상무 직급은 그대로 두되, 전무 직급을 부사장 직급에 통합시키는 형태다. 기존의 전무 직급은 사라졌다. CJ 역시 새해부터 사장, 총괄 부사장, 부사장 등 6개의 임원 직급을 모두 사장(경영리더)으로 통일했다.

삼성이 이처럼 전무와 부사장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한 건 일차적으로는 업무성과주의에 따른 조치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업무성과주의는 업무 범위와 성과 정도에 따라 임직원을 평가하는 제도다. 삼성의 한 비금융 계열사 인사담당자는 “성과가 높아 전무가 될 만한 사람들을 아예 부사장으로 높여 더 책임감을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직급이 통합되면 부사장 직급으로 대외에 알려지는 사람은 실제 부사장일 수도 있고, 이전 같으면 전무인 사람도 있다. 이 중 누가 실제 부사장 직급에 해당하는지는 일반 직원들에게도 구별이 안 되도록 설정돼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인사담당자는 “실제 부사장이 누군지, 전무가 누군지는 임원인사 담당자에게만 보이게 설정돼 있다”며 “일종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일반 인사담당자도 누군지 구별할 수가 없다”고 했다.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이렇게 임원 직급을 통합하는 것은 일단 기업의 대외 이미지에 미치는 장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인사담당자는 “‘우리는 40대 부사장이 있는 기업, 40대 여성 부사장이 있는 기업’이란 식으로 발표가 나면 아무래도 외부에서 볼 때 기업이 진취적으로 혁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렇게 새해 들어 대기업들이 임원 직급을 통합하는 데에는 보기보다 복잡한 이유가 있다는 게 일선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설명이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임원 직급을 통합하는 것은 임원들의 평가체계와 연관돼 있다”며 “기존의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넘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크게 보면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로 넘어가는 과정이 이번 임원 직급 통합 관련 움직임의 숨겨진 핵심 포인트라는 것이다.

최근 삼성과 범삼성가에서 시작한 임원 직급 통합 체계는 재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최근 한국생산성본부(KPC)에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들을 상대로 삼성의 임원 직급 통합 체계와 관련한 교육도 실시했다고 한다. 한국생산성본부는 주로 공공기관 상대 교육과 컨설팅 기능을 제공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특수법인이다. 앞서 언급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아무래도 삼성이 뭔가를 바꾸면 전방위적으로 다 영향을 받지 않느냐”며 “실제로 삼성이 바꾼다고 한 만큼 점점 피부로 느껴지는 게 있다”고 말했다.

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는 상대평가의 단점을 ‘강제 할당의 문제’로 요약했다. 특정 직원이 C라는 낮은 등급을 받을 정도의 근무성과는 아닌데, 일정 비율상 누군가는 C등급을 받아야만 하는 구조일 때 주로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상대평가 체제하에서는 올해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성과가 뛰어난 사람인데, 자기 선배가 진급 케이스라 고과를 깔아줘야 하기 때문에 불합리한 평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절대평가의 경우 누구든 자기가 열심히 한 만큼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맡은 바 자기 일을 열심히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인사담당자들의 설명이다. 또 상대평가의 경우 발생하기 쉬운 ‘프리라이더(free rider·무임승차자)’를 방지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삼성 한 금융계열사 관계자는 “상대평가를 하면 프리라이더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어차피 상위 고과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을 대충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절대평가 체제하에서는 무엇보다 직원들 간 협업이 원활해진다는 것이 장점이다. 상대평가 체제하에서는 ‘내가 이번에 S를 받으려면 저 사람은 밟고 올라가야지’라는 식으로 직원들이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 협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정 경우에는 협업이 아예 불가능해지는 사례도 빈번하다.

하지만 절대평가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상대평가에 비해 평가 자체가 훨씬 까다롭다는 것이 대표적 난제다. 정해진 인원 내에서 상대적으로 누가 낫냐를 평가하는 방식이 아닌 만큼 철저히 평가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문화상 정량평가가 불가한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이 난제다. 대표적인 것이 고과권자와의 친밀도, 연공서열 등이다. 앞서 언급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특히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이런 점이 유독 개입이 많이 되는 동양권 문화에 속하지 않느냐”며 “성과 측정에 난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가를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고과권자 개인의 특성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절대평가의 단점으로 꼽힌다. 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는 “고과권자마다 어떤 사람은 팀원들을 평가하는 데 후한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박하기 때문에 평가가 박한 고과권자 아래서 근무하는 인원들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고과권자 개인마다 관대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인사담당자는 “이 경우 평균적으로 평가를 보정하는 산식을 적용하는 것이 필수로 요구된다”고 말했다.

직급 통합·절대평가는 외국서도 대세

이처럼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체제 모두 장단점이 분명하지만, 시대적 흐름상 직급 통합과 절대평가의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속한다는 것이 일선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결국 절대평가 도입에 따른 직급 통합은 불가피한 시대의 흐름이기에 도입시기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도입 시 평가하는 회사와 평가받는 직원 간 합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국도 점점 임원 직급을 통합하는 추세로 가고 있고, 협업이 중요한 일반 기업에서는 이 같은 추세가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다만 외국이 이런 추세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도입하기보다는, 직급 통합에는 평가체계와 보상체계의 변화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만큼 이 같은 점을 선제적으로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일선 인사담당자들의 주문이다.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는 “직급(계급)을 통합하더라도 기존 직무기술(job description)은 똑같은데 계급장을 떼어버린 상태에서 ‘보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쟤보다 힘들게 일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면 누구든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직원들이 해당 직급에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끔 ‘성과평가체계’와 ‘보상체계’를 확실하게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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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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