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에게 안방은 휴식처가 아닌 전쟁터다. 안방극장에서 매주 방영되는 드라마 수는 20편이다. 더구나 이 전쟁의 성적표는 실시간으로 나온다. 시청률 50%를 넘기는 국민드라마는 옛말이다. 현재 30% 시청률을 넘기는 드라마는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유일하다. 나머지 월화·수목·금토·주말 드라마는 시청률이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만 넘어가도 축제 분위기다. 현재 두 자릿수 시청률 드라마는 월화에 정려원이 출연하는 KBS ‘마녀의 법정’, 수목에는 하지원이 주연을 맡은 MBC ‘병원선’이 유일하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동시에 아쉬운 소식이다.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다는 것이 반갑고, 이제 ‘한 드라마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가능성이 줄었다는 게 아쉽다. 각자가 보는 드라마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채널도 달라졌다. 거실 TV에서 함께 시청하는 사랑방 드라마는 이제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 정도다. 시청자는 휴대폰으로 혹은 컴퓨터로, 자기 기호에 맞는 드라마를 선택해 보거나 몰아서 본다. 때문에 시청률은 이제 절대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VOD 다시 보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져서다. 어떤 클립 영상은 100만 클릭을 넘기기도 한다. 때문에 점점 더 영향력을 갖게 되는 건 ‘화제성 지수’다. 특히 장르물의 경우 매니아가 대량 생산된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어필하면, 어떤 드라마는 시청률 이상의 입소문이 난다. 얼마 전 종영한 OCN 드라마 ‘구해줘’는 시청률을 넘어선 화제성으로 성공작이 됐다. 사이비종교 집단의 마수에 빠진 첫사랑을 구해내는 이야기는 지상파에서는 좀처럼 다루기 힘든 이야기다. 그럼에도 지상파 황금시간대 시청률을 웃도는 시청률로 종영했다. 9월 24일 종영 당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4.8%였다. 현재 한예슬·김지석 주연의 MBC 월화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의 시청률은 3.5%다. ‘구해줘’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어 KBS 수목드라마의 주연이 된 우도환의 ‘매드독’도 현재 시청률은 4.8%다.

반면 OCN은 수사극 ‘보이스’에 이어 ‘터널’ ‘구해줘’가 연달아 성공하면서 웰메이드 드라마 채널로 거듭나고 있다. 케이블 드라마를 이끌던 양대산맥이 tvN과 jtbc였다면, 여기에 OCN이 가세한 형국이다. 여기에 다른 케이블도 분투하기 시작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도깨비’의 성공으로 케이블 드라마도 두 자릿수 기록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tvN은 최근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문채원·이준기 등의 라인업, 제작비 100억원을 들여 첫 수목드라마로 편성한 ‘크리미널마인드’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1회는 4.2%로 출발했지만 곧 반토막이 났다. 원작을 재해석하는 데 미흡했다는 쓰라린 평을 받았다.

달라진 케이블 드라마의 위상

하반기에는 달라진 모습이다. tvN은 지난 9월 22일 하반기 평일드라마 편성 시간을 오후 10시50분에서 오후 9시30분으로 변경했다. 지상파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을 공략했던 전법을, 지상파 드라마 시작 30분 전으로 옮겨 전면전을 예고했다. 정소민·이민기 주연의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와 이요원·라미란·명세빈이 출연하는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이 그 첫 번째 주자로 지상파 드라마와의 맞대결에 들어갔다. MBC에서 ‘파스타’ ‘미스코리아’ 등을 만들었던 권석장 PD는 ‘부암동 복수자들’ 제작보고회에서 “대진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주연진의 면모만 봐도, 지상파와 케이블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스타 배우의 케이블 출연은 화제가 됐다. 배우 김혜수가 tvN 10주년 드라마 ‘시그널’의 주연을 맡은 게 분기점이 됐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으로 인생 연기를 보여준 서현진이 현재 지상파, 케이블, 광고계를 통틀어 가장 핫한 배우가 된 것도 상징적인 일이다. 공유는 tvN 드라마 ‘도깨비’를 찍으면서 인생작을 경신했고, 전도연도 드라마 복귀작으로 tvN의 ‘굿와이프’를 선택했다. 김희선·김선아 역시 jtbc ‘품위 있는 그녀’로 시청률 반등을 이끌면서 저력을 과시했다. 조승우와 배두나도 tvN ‘비밀의 숲’으로 드라마 현장에 복귀했다.

아직 케이블 드라마는 지상파보다 시청률의 부담이 적다. 작품의 만듦새만 좋다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다. 애초에 지상파에 편성되려고 했던 ‘시그널’이나 ‘미생’이 러브라인이 없다는 이유로 지상파에서 퇴짜를 맞아 케이블로 편성되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서현진처럼 케이블로 의미 있는 연기를 보여준 이들이 스타로 거듭나는 일도 반복됐다.

현재 지상파와 케이블의 주연진은 자웅을 겨루기 어렵다. ‘구해줘’의 우도환, ‘비밀의 숲’의 신혜선은 현재 지상파 드라마의 주연이 됐다. 한편 지상파 드라마에서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고아라, 강소라는 현재 OCN 드라마 ‘블랙’과 tvN 드라마 ‘변혁의 사랑’에서 의미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는 ‘대중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스토리 전개에 한계가 있다. PPL에 의존하는 제작 환경은 ‘장르물’에는 큰 장벽이다. 때문에 스타 작가나 배우가 이제는 지상파 대신 케이블을 선택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KBS에서 ‘태양의 후예’를, 하반기에는 tvN에서 ‘도깨비’를 대흥행시킨 신화를 쓴 김은숙 작가는 차기작을 두고 SBS와 tvN과 조율하다가 최종적으로 tvN과 손을 잡았다. SBS는 김은숙 작가에게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신사의 품격’ ‘시크릿가든’ ‘상속자들’ 등을 함께 만든 친정 같은 곳이다. 그럼에도 새 작품을 tvN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케이블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다채널 시대는 이제 방송과 인터넷의 경계도 없앴다. 인터넷으로 제작하는 웹드라마의 선전과 더불어 넷플릭스 드라마도 속속 제작되고 있다.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는 차기작을 넷플릭스와 함께 진행한다. 그의 차기작 ‘킹덤’은 그가 2011년부터 구상했으나 아직 현실화하지 못한 작품이다. 넷플릭스는 작가의 제작의도를 충실히 반영한다. 경계가 없어진 시대, 시청자의 눈은 점점 더 즐거워지겠지만 소리 없이 사라지는 드라마도 점점 많아진다. 스타 배우도, 전작의 성공도 흥행을 담보해주진 못한다. 배수의 진을 치고 싸워야 하는 백가쟁명의 시대다.

키워드

#방송
유슬기 조선pub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