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와 압둘(Victoria and Abdul)’에서 빅토리아 여왕으로 출연하는 주디 덴치(82). 빅토리아 여왕은 여왕 즉위 50주년을 맞아 인도에서 예물을 갖고 온 젊은 서기 압둘 카림과 오랜 우정을 지속한다. 주디 덴치와의 인터뷰가 토론토영화제 중인 지난 9월 말 캐나다 토론토의 페어몬트 로열요크호텔에서 있었다.

짧은 은발에 품위를 지닌 덴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재치 있게 질문에 답하며 인터뷰를 즐기는 모습이 마치 소녀 같았다. 안타깝게도 덴치는 시력이 나빠져 부축을 받으며 걸어야 했다. 덴치는 ‘미시즈 브라운’(1997)에서도 빅토리아 여왕으로 나왔고,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1998)에서 엘리자베스 1세로 출연했다.

- 빅토리아 여왕으로 두 번이나 나왔는데, 소감이 특별할 것 같다. “빅토리아 여왕으로 두 번씩이나 나오리라곤 전연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빅토리아와 압둘의 얘기도 몰랐다. 빅토리아의 남편 앨버트에 대한 열정과 함께 남편을 잃은 뒤 겪은 슬픔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매우 정열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정열을 잃고 있을 때 압둘이 나타나 여왕의 내면에서 잠자던 정열을 다시 점화시켜 놓았다. 그것은 마치 꽃이 다시 개화하는 것과도 같다.”

- 80세가 되었을 때 받은 선물은 무엇인가. “내 딸과 함께 닥치는 대로 쇼핑을 하고 있는데, 딸이 갑자기 문신을 새길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 ‘예스’라고 답했다. 그래서 팔목에 ‘카르페 디엠(오늘을 마음껏 살아라)’이라는 문신을 새겼다.”

- ‘카르페 디엠’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매일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만 보려고 팔찌로 문신을 가리긴 했으나 가끔 보면서 그 뜻을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 인도인 압둘이 정복자인 빅토리아에게 ‘여왕 폐하를 섬기는 것은 몸 둘 바를 모르는 특전’이라며 말할 수 있는지…. “그는 예의범절이 매우 바른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섬긴다고 한 것은 단순히 하인 노릇을 한다기보다 영화에서 보다시피 여왕에게 우루드어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 그의 섬김으로 인해 여왕은 희망을 갖게 되고 또 매일 아침 일어날 그 무언가를 갖게 된 것이다.”

- 영화는 각기 다른 두 문화가 서로를 알게 되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요즘 상황과 시의적절하다고 보나. “그렇다. 아주 적당한 시기에 나왔다고 본다. 압둘은 회교도이고, 빅토리아 여왕은 기독교도이지만 서로 이해하고 사랑했다. 요즘처럼 서로 다른 종교가 갈등하는 때 이보다 더 좋은 교훈도 없을 것이다.”

- 빅토리아 여왕은 편지를 많이 썼는데, 당신도 펜으로 글을 쓰는가. “난 늘 편지와 엽서를 많이 썼는데 이젠 시력이 나빠져 그렇게 많이 쓰지 못한다. 그것은 큰 손실이다. 나는 이 인터뷰에 오기 전에 편지를 썼는데 눈이 안 보여 애를 먹었다.”

- 보수적인 빅토리아 여왕이 어떻게 해서 회교도에게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있었다고 보나. “여왕은 고지식하고 엄격하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원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다. 이 영화가 흥미 있는 까닭은 그런 여왕이 놀랍게도 내면에 애정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왕은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또 그것을 교환할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모든 것이 격식 위주인 삶에서 마음놓고 함께 웃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왕의 내면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이 영화가 흥미 있는 까닭이다.”

‘빅토리아와 압둘’
‘빅토리아와 압둘’

- 배우로서 80 생애를 돌아볼 때 무언가 다른 걸 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없나. “난 원래 무대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러나 1950년대 스트래트포드의 무대에 설치된 ‘리어왕’의 디자인을 보고 내겐 저런 상상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배우가 됐고 그 결정에 대해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종종 무대디자인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 압둘로 나온 알리 파잘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는가. “촬영에 들어가기 이틀 전에 만났는데 즉시 일체감을 느꼈다. 그는 유머감각이 많은 사람으로 처음 보는데도 긴장감이나 서먹서먹한 느낌이 전연 없었다. 그는 아주 멋쟁이로 함께 일하기가 정말 좋았다.”

-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에도 나오는데. “별로 대사도 많지 않고 그저 화려한 장신구에 잘 차려입고 열차에 앉아 있기만 하면 돼서 즐거웠다. 그리고 내 친한 친구인 케네스 브라나가 감독해 더 좋았다. 그와 나는 이번으로 열 번째 함께 일하는 것이다. 브라나는 감독일 뿐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인 탐정 포와로로도 나온다.”

- 연극을 연출한 적이 있는데 영화감독을 할 생각은 없는지. “케네스 브라나가 주연하는 연극을 두 편 연출했다. 그런데 그 일이 너무 힘들었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더 이상 연극도 연출할 생각이 없다.”

- 영화에서 여왕과 압둘은 만나는 즉시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돼는데,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는가. “몇 차례 있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도 이해하고 또 느낌으로 금방 가까워질 수가 있는데 그것은 어떤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내가 함께 일한 감독들 중에도 더러 그런 사람이 있는데 이 영화를 만든 스티븐 프리어스도 그중 한 사람이다. 프리어스는 과묵한 사람이지만 우린 별 말이 없어도 서로 잘 이해할 수 있었다.”

-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시력이 나빠져 잘 볼 수는 없지만 그림을 좀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만난다. 난 늘 친구, 특히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 모두 함께 모여 카드를 하고 게임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 가장 즐겁다.”

- 여왕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나 사실은 자유도 없고 자기가 살고픈 대로 살지도 못하는데. “그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자리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도 표현됐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것을 스케줄에 따라 해야 한다. 매일같이 그렇게 산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막중한 책임을 잘 수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치하할 만한 일이다.”

- 운동을 하나. “두 무릎을 다 수술해 하루에 10분을 속보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시력이 나빠져 이제 운전도 못 한다. 운전면허증이 발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스포츠카가 있었는데 그것을 몰고 어딘가를 가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로 유감이다. 시력이 호전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 자신에게 있어 매일은 날마다 다른가. “바라건대 매일이 다 달랐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루해 죽을 것이다. 난 지금까지 60년을 무대에서 활동했는데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운이 좋았다. 특히 이 직업에서 이 나이에 아직도 고용될 수 있다는 것은 진짜로 운이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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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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