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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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나 오늘 집에 안 갈래’ 특집으로 진행된 녹화에 배우 이윤지·정시아·김지우, 개그맨 정주리 등이 출연했다. “결혼 후 아이돌에게 관심이 많아졌다”는 배우 이윤지는, 최근 “강다니엘이 정말 좋다”고 했다. 이 말에 다른 출연진도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자막에는 ‘강다니엘, 꺄아’와 함께 하트 표시가 새겨졌다. 그리곤 ‘라디오스타’의 새로운 MC가 된 차태현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제가 선배님 정말 좋아하는데 그 자리가 원래… (아이돌 자리였다는데…)”라고 말했다. 최근 영화 ‘신과 함께’로 천만배우에 등극한 차태현도, 강다니엘의 인기에 머쓱해진 상황이었다.

강다니엘에 대한 마음을 공개한 연예인은 또 있다. 걸그룹 달샤벳의 세리는 지난해 9월 인터뷰에서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워너원의 강다니엘에게 푹 빠져 있다. 강아지상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비글미(활달하고 장난스러운 모습, 영국의 수렵견 비글에서 따온 신조어)까지 갖춰 완벽하다”고 말했다. 뮤지션 조정치·정인 부부는 지난 10월 SBS 예능 ‘자기야’에 출연했다. 여기서 정인은 워너원의 강다니엘을 이상형으로 꼽았고 남편 조정치는 익숙한 모습이라는 듯 해탈한 미소를 지었다. 이뿐 아니다. 모델 구재이는 헤어숍에서 만난 강다니엘과 인증샷을 찍고 자신의 SNS에 올렸다. ‘#우연히 샵에서 만난 빛나는 #강다니엘 파이팅’이라는 태그와 함께다. SNS를 통해 강다니엘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이들은 또 있다. 개그우먼 이국주는 ‘프로듀스 101 시즌 2’ 방송 당시부터 강다니엘의 귀여운 모습을 캡처해 올리며 강다니엘을 ‘고정픽(pick)’ 해왔음을 숨기지 않았다. 뮤지컬 배우 배다해 역시 자신의 SNS에 “HOT 이후 이런 마음은 처음”이라며 ‘나의 고정픽 강다니엘 오빠가 뜨다니. 설레서 어쩌지’라는 글을 남겼다.

‘효리네 민박’으로 ‘아이유병’을 퍼뜨린 아이유.
‘효리네 민박’으로 ‘아이유병’을 퍼뜨린 아이유.

지드래곤·아이유 꺾고 1위

프로듀스 101 시즌 2가 처음 방송된 건 2017년 4월, 이 중 11명이 가려져 ‘워너원’으로 데뷔한 게 지난 8월이다. 그중 시즌 2, 1위의 왕좌를 차지한 워너원의 센터 강다니엘은 데뷔와 동시에 ‘수퍼스타’가 됐다. 케이블채널 tvN의 ‘명단공개’에서는 강다니엘을 ‘출구 없는 스타’ 1위로 선정했다. 한번 좋아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병에 걸리게 한다는 의미다. 이 병의 특징은 ‘1일 1강다니엘’(하루 한 번 강다니엘을 보는 것), 이를 하지 않을 경우 초조함과 불안감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강단현상(강다니엘+금단현상)’이다. 강다니엘의 매력은 알려진 바 ‘무대 밖에서는 순둥순둥한 얼굴과 귀여운 눈웃음’으로 ‘무대 위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의 반전미다. 실제로 11인조 워너원은 8월 데뷔와 동시에 음악방송 1위는 물론 각종 광고계를 휩쓸었다.

‘스타 전염병’ 유발자 2위에는 가수 겸 배우 아이유가 올랐다. 아이유는 아이유의 의상, 행동, 습관 등을 하나하나 따라하는 ‘아이유병’을 만들었다. JTBC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보인 트레이닝복 의상에 음식을 오물오물 씹는 행동, 멍하니 앉아 있거나 힘없이 걷기, 총총총 뛰어다니기, 초콜릿 꺼내 먹기 등이 주변에 ‘아이유병’을 유발하는 계기가 됐다. 한 코미디프로그램에서는 이를 패러디하며 “전신이나 반신 또는 사지 등 몸의 일부가 아이유의 행동 또는 습관으로 마비되는 질환입니다”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GD병’을 퍼뜨린 지드래곤은 3위를 차지했다. 지드래곤은 데뷔 후 지난 10년 동안 패션, 헤어스타일 등 유행을 선도하는 ‘스웩의 선구자’였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해외의 패션피플과도 폭넓게 교류했다.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지드래곤을 자신의 뮤즈로 대한다. 발렌시아가, 구찌,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에서는 제품을 지드래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가 입고 신으면 ‘지디의 애장품’으로 소개될 뿐 아니라 여지없이 완판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드래곤이나 아이유는 이미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자 ‘뮤즈’였다. 실제로 유희열이나 이효리처럼 대중음악계에 주요한 인물들이 이들과의 작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유희열은 아이유를 향해 “자신이 만든 곡을 가장 잘 연기해 표현해내는 아티스트”라고 극찬했다. 이효리는 “나와는 정말 다른,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아티스트”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드래곤의 파급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국내 인스타그램 계정 중 가장 팔로어 수가 많은 연예인이다. 2017년 연말에도 ‘가장 사랑받은 계정’ 1위에 올랐다. 동료 연예인들은 지드래곤과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감추지 않는다. 방송인 광희가 제주도에 있는 지드래곤의 카페에 가서 인증을 남긴 일화는 유명하다. 한류의 중심에 SNS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요즘, 4년째 선두를 지키고 있는 지드래곤의 영향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놀라운 일은, 강다니엘이 이 두 사람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데뷔 12년 차 지드래곤과 데뷔 10년 차 아이유가 데뷔 6개월 차인 강다니엘의 뒤를 잇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강다니엘이 퍼뜨리는 전염병은 지드래곤에 비하면 소소하다. 지드래곤은 손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지만 강다니엘은 팬들 곁에 있다. ‘강다니엘병’의 증상은 이불 속에서 젤리를 먹고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춤동작을 반복하는 정도다. 하지만 전염성은 강력하다. 이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10대부터 50대까지 전 연령대에 ‘강다니엘 덕후’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로 그가 출연했던 KBS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 워너원 편에서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인물 3인’에 문재인 대통령과 유튜버 도티, 그리고 강다니엘이 뽑혔다며 축하를 받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무명 소속사의 연습생이었던 스물 두 살의 아티스트가 스물세 살에는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다. 연예인이 되기도 어렵지만, 연예인으로서도 독보적인 성취를 해낸 이들은 ‘최종보스’가 된다. 강다니엘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넓은 파급력을 보여준 스타다. 그가 가진 폭발력은 기획사의 지원이 아닌 팬들의 자원으로 이뤄낸 일이다. 국민프로듀서들은 강다니엘이 ‘프로듀스 101’의 후보생이었던 시절부터 그를 지켜봐왔다. 변방에 있던 그의 순위가 드라마틱하게 오르며 결국 센터를 차지하게 된 드라마는 강다니엘이 주인공, 국민프로듀서가 연출이었던 ‘합작 드라마’다. 이들은 여전히 팬이자 프로듀서다. 자신이 키운 스타가 ‘꽃길’만 걷도록 하는 데 화력을 집중한다.

세계 음악계와 패션계의 뮤즈가 된 지드래곤.
세계 음악계와 패션계의 뮤즈가 된 지드래곤.

“우리는 다니엘을 책임져줄 수 있다”

스타에 대한 팬덤이 ‘추종’에서 ‘공감’으로 변화하고 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이에 대해 “높은 위치의 스타보다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스타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일상에서는 우리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던 스타가, 무대에서는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며 자신의 일상에도 도전을 받는다는 의미다. 강다니엘의 드라마가 그 자신의 것만은 아닌 셈이다. 이들이 강다니엘을 바라보는 마음은 동경이라기보다는 ‘동감’이다. 그가 지하 연습실에서 눈물 흘리던 연습생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스타가 된 과정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연예인을 꿈꾸는 10대들에게도 그렇지만 취업준비생에서 수습을 거쳐 다음 단계로 나아갔던 20~30대 직장인도 자신의 삶과 이입해 볼 수 있는 여정이다. 30대의 한 팬은 “강다니엘은 우리 인생을 책임져줄 수 없지만, 우리는 강다니엘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1990년대 HOT와 젝키 등으로 팬덤을 형성해본 경험이 있는 30~40대 팬은 이전보다 막강해진 경제력으로 ‘강다니엘을 위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있다. 이제 강다니엘의 몸집도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7년 하반기 브랜드 미디어지수 1위에 올랐다. 앨범으로만 74억원의 매출을, 음원으로만 10억~20억원, 티켓 매출과 굿즈, 광고 등의 수입으로는 2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가요계 관계자들도 “반년 만에 3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는 건 드문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소속된 기획사 MMO엔터테인먼트까지 날개를 날았다. 이들은 “그룹 워너원으로 활동 중인 강다니엘과 윤지성의 프로젝트 활동이 종료된 후 두 사람의 활동을 전폭 지원하기 위해 독립 레이블을 설립할 예정”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팬들은 강다니엘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린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조공을 바치는 것을 넘어, 강다니엘의 이름으로 ‘기부 조공’을 하는 것이다. 강다니엘의 팬카페 ‘다니엘닷컴’ 회원들은 강다니엘의 생일을 축하하며 굿네이버스의 르완다 식수사업에 800만원을 기부했다. ‘강다니엘 갤러리’는 세이브더칠드런에 4700만원가량의 아동 물품을 후원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등에 기부하는 등 강다니엘의 이름으로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강다니엘의 팬들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999만9000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강다니엘 역시 이들을 후원하는 사회적기업 ‘마리몬드’의 티셔츠를 착용하는 등 마음을 함께했다. 물건을 구입하고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익사이팅 디시-팬샵’에서도 강다니엘의 이름으로 쌓인 기부가 1위를 차지했다. 수익금은 강다니엘의 이름으로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전달됐다. 강다니엘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이들은 “우리가 강다니엘에게 받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따뜻한 감정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애정을 이웃에 대한 관심과 후원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팬덤이 일어나는 모양새다. 이 문화 역시 ‘강다니엘’의 이름 넉 자로 세워지고 있다. ‘연예인 중의 연예인’ 강다니엘과 ‘팬 중의 팬’ 강다니엘 팬들의 아름다운 동행이 주목받는 이유다.

유슬기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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