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27일 골프 회동에서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photo 트럼프 트위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27일 골프 회동에서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photo 트럼프 트위터

‘론-야스’ 시대 하면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가 서로의 이름을 ‘론’과 ‘야스’라고 각각 부르면서 전후 가장 긴밀한 미·일 동맹을 구축했던 때를 말한다. 일본 도쿄도 니시타마군 히노데(日の出) 마을에서는 지금도 당시 두 정상의 ‘우정’을 뜻하는 ‘론-야스 만주’라는 전통과자를 판매한다. 두 정상이 1983년 11월 총리 별장인 히노데산장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당시 나카소네 총리는 레이건 대통령에게 직접 차를 달여 대접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이후 두 정상은 “미국과 일본은 운명공동체”라며 안보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쌓아나갔다. 히노데산장은 현재 ‘론-야스 기념관’이 됐다. 두 정상의 밀월관계는 일본 외무성이 지난해 12월 기밀해제한 외교문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중거리핵전력조약(INF·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체결 문제를 놓고 유럽에서는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 미사일을 전량 폐기하되, 아시아에서는 우선 50%를 폐기한다는 방침에 따라 협상을 벌였다. 이 조약은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 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그러면 일본이 소련의 핵 위협에 노출된다”면서 “아시아에서도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 미사일을 전량 폐기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과 1987년 12월 INF에 서명했다. 미·소의 첫 핵 군축인 INF에 따라 일본은 소련의 핵 공격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3개월 연속 만남, 65년 미·일 정상회담 사상 처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제2의 론-야스’처럼 구축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과 나카소네 전 총리는 재임하면서 5년간 12번이나 만나 서로 신뢰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두 정상보다 더욱 자주 만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5~28일 일본을 국빈 방문해 새로 즉위한 나루히토 국왕을 만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 국왕이 즉위 이후 처음 만나는 외국 정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빈 방문 기간 중 아베 총리와도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 경우 두 정상은 지난 2년7개월 동안 무려 12번을 만나게 되는 셈이다. ‘론-야스’ 때보다 2배나 많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26일과 27일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6월 28일과 29일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에도 참석한다. 이렇게 되면 두 정상이 3개월 연속 만나게 되는 셈이다. 65년 역사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아베 총리는 2016년 미국 대선 직후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를 방문해 당선인 신분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골프채를 선물하는 등 개인적 친분을 가장 먼저 쌓았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리조트를 두 번이나 방문한 유일한 외국 정상이다.

두 정상은 지난 4월 27일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치며 양국 및 국제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아베 총리의 방미 이틀째 일정으로 마련된 당시 골프 회동은 벌써 네 번째다. 특히 주목할 점은 두 정상이 골프 카트에 통역을 태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교 관례상 정상들이 통역 없이 회담하거나 회동하는 것은 어지간한 친분이 아니고서는 극히 이례적이다. 두 정상은 4시간 반이나 골프를 치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두 정상 이외에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두 정상만의 골프 회동은 친밀한 밀월관계를 상징한다. 말 그대로 ‘돈(도널드의 애칭)-신조’ 관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일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전면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두 정상은 또 일본인 북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는 입장도 확인했으며 북한 비핵화를 위해 대북 제재조치를 유지하는 데도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2월 28일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에서 자신에게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 “언젠가 아베 총리와도 만날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사실을 아베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지지와 협력을 바탕으로 북한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면서 구애의 손을 적극 내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5월 2일자)에서 “김정은과 조건 없이 만나 솔직하게 대화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김정은과의 북·일 정상회담을 가지려는 이유는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재임 시절(2001년 4월~2006년 9월)에 자민당 간사장과 관방장관 등을 지내며 납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납치 문제는 아베 총리가 총리직에 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입신(立身)의 발판이 됐었다.

지난 4월 19일 미국과 일본의 외교와 국방 장관들이 워싱턴에서 2+2 회담을 갖고 있다. ⓒphoto 미국 국무부
지난 4월 19일 미국과 일본의 외교와 국방 장관들이 워싱턴에서 2+2 회담을 갖고 있다. ⓒphoto 미국 국무부

납치 문제 해결해 개헌 의석 확보

일본 정부는 납치 피해자로 17명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5명은 2002년 고이즈미 당시 총리의 방북 직후 귀국했다. 남은 12명에 대해 북한은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북한에 입국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북한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5명의 납치 피해자가 귀국한 이후 한 명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처음으로 대응해온 정치가로서 매우 통탄할 일”이라고 강조해왔다. 아베 총리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는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유엔 인권 이사회의 대북 인권 결의안 공동 발의 국가에서 빠졌다. 일본 정부는 또 4월 23일 발표한 2019년판 외교청서에서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이라는 표현도 삭제했다. 2018년판에는 ‘북한에 모든 수단을 통해 압력을 최대한으로 높여나갈 것’이라는 내용이 적시됐었다. 심지어 일본 정부가 북한에 식량 등 대규모 인도주의적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 5월 4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해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의도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베 총리는 5월 6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양국이 긴밀한 연대를 통해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시험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가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일 정상회담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는 속내는 결국 평화헌법 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베 총리가 필생의 숙원인 개헌을 하려면 오는 7월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을 발의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임기 6년에 정원이 242석인 참의원은 3년에 절반씩 교체된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는 정원이 6석 늘어나 248석이 되는데 그 절반인 124명(지역구 74석+비례 50석)을 새로 뽑는다. 이 때문에 7월 선거 후 새로 개원하는 참의원에서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3분의 2)은 164석이다. 아베 총리로선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의원에선 집권 여당인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파가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개헌안은 중·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 찬성으로 발의되면 국민투표에 부쳐 과반수 찬성이면 통과된다.

아베 총리가 구상하는 개헌 일정의 핵심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새 헌법 체제에서 개최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2020년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1964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독일을 제치고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아베 총리도 1964년 도쿄올림픽과 마찬가지로 2020년 도쿄올림픽을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야심은 나루히토 국왕 등극을 계기로 개헌을 통해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전환한 뒤 미국을 등에 업고 동아시아의 군사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과거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보통국가라는 것은 정치·외교·군사·경제 주권을 확립하고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를 뜻한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말하는 보통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의 일본을 의미한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때문에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없는 비정상국가가 됐다”면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아베 총리로선 아키히토 국왕이 퇴위하고 나루히토 국왕이 즉위하면서 일본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기대감에 편승해 본격적으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헌법기념일(5월 3일)을 맞아 “2020년 헌법 개정을 시행하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아베 총리는 나루히토 국왕의 연호인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으니 헌법도 새롭게 하자는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우선적으로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기 쉬운 자위대에 대한 헌법적 지위 부여 등을 명분으로 내걸어 개헌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아베 총리의 개헌안은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제9조의 1항과 2항을 큰 틀에서 깨지 않되,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한다는 것이다.

미 해군 항모 레이건호(오른쪽)와 일본 해상자위대 경항모 이즈모호가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photo US Navy
미 해군 항모 레이건호(오른쪽)와 일본 해상자위대 경항모 이즈모호가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photo US Navy

일본 무장 강화는 미국에 1석3조

특히 주목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도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정 부담 때문에 ‘세계의 보안관’ 지위를 일부 내려놓길 원하고 있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선 일본이 개헌을 통해 중국과 대등할 정도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 등을 명분으로 이미 2023년까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3%까지 늘릴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1976년 미키 다케오 총리 시절 군사대국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방위비는 GDP의 1% 미만으로 제한한다’는 원칙을 천명했었다. 이 원칙은 1986년 나카소네 전 총리 시절 공식 폐기됐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1983년 레이건 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방위비 증액 문제가 거론되자 “유사시 소련의 잠수함을 일본해(동해)에 가둬놓겠다”면서 “미국과 일본은 운명공동체”라고 강조했다. 이후 나카소네 전 총리는 3년 뒤 ‘방위비 1% 미만 원칙’을 깬 예산을 편성하며 일본의 급속한 군비확장에 불을 댕겼다. 당시 일본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소련 잠수함을 감시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대잠 초계기 P-3C를 100대나 구입했다.

아베 총리도 나카소네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일 동맹 강화를 강력하게 천명해왔다. 아베 총리는 이를 위해선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돼야 하고 이 때문에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할 경우 중국을 견제할 수 있고, 주일 미군을 비롯해 아·태지역의 국방 예산도 줄일 수 있고, 자국의 무기도 대거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1석3조(一石三鳥)의 이득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은 현재 군사일체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한 안보 관련 법률이 2016년 시행된 이후 자위대는 ‘미군은 전투, 자위대는 후방 지원’이란 기존의 군사동맹 체제에서 이제는 미군과 자위대가 함께 전쟁하는 군사일체화를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자위대는 지난해 미·일 합동훈련 때 13건의 미군 보호임무를 수행했다. 주일미군과 자위대는 미래의 전쟁에 대비해 그 어느 때보다 실전과 같은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주일미군과 자위대는 또 단위 부대까지 합동으로 전투하기 위해 통합 작업도 벌이고 있다. 게다가 양국은 사이버 분야까지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지난 4월 19일 워싱턴에서 외교와 국방 장관(2+2) 회담을 갖고 발표한 공동문서에서 일본에 대한 사이버 공격도 미국의 방위 의무를 정한 미·일 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임을 사상 처음으로 확인했다. 미·일 안보조약 제5조는 미국의 대일 방위 의무를 정한 규정으로, 지금까지는 육·해·공 등 눈에 보이는 공격을 적용 대상으로 간주했지만 앞으로는 사이버 공간도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특히 공동문서에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이 미·일의 공통 비전’이란 내용이 담겼다. 미국과 일본이 앞으로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군사적으로 협력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양국은 또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가 안보의 최우선 순위라고 천명하고, 그 대상도 핵무기는 물론 모든 대량파괴무기(WMD)의 전면 폐기임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국빈 방문 기간 중 미국 대통령으로선 사상 최초로 해상자위대 함정에 승선할 계획이다. 이 경우 ‘돈-신조’ 시대의 화려한 출범을 국제사회에 공표하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아베 총리의 노림수인 개헌이 성사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과거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 일본이 이제는 ‘연합군’이 됐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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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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