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6일 출범한 스가 요시히데 내각. 앞줄 가운데가 스가 신임 총리. ⓒphoto 뉴시스
지난 9월 16일 출범한 스가 요시히데 내각. 앞줄 가운데가 스가 신임 총리. ⓒphoto 뉴시스

‘아베 없는 아베 내각 출범’.

지난 9월 16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이 발족한 데 대한 아사히신문의 평가다. 이 신문의 지적대로 20명의 내각 각료 중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상 등 직전 아베 내각의 8명이 유임됐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이 관방장관으로 이동한 것을 포함 3명은 보직만 바꿨다. 다무라 노리히사(田村憲久)를 포함한 4명은 이번에 다시 후생상 등으로 내각에 복귀했다. 스가 내각에서 ‘아베 각료’만 15명으로 4분의 3을 차지한다.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도움으로 총리가 된 후 다나카파 인사들을 대거 기용한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나카소네 내각은 ‘다나카소네(다나카+나카소네)’ 내각으로 불렸다. 다나카는 막후 실력자를 의미하는 야미쇼군(闇將軍)으로 불리며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스가 내각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아베가 퇴임 후에도 상왕(上王)으로 활동하는 ‘아베스(아베+스가)’ 정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왕 모시는 아베스 정권?

최근 아베의 인기가 다시 살아나면서 ‘야미쇼군 아베’ 가능성을 더 높이고 있다. 9월 초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7년8개월간 재임한 아베를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4%는 ‘잘했다’, 17%는 ‘상당히 잘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1%가 아베의 업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에 대한 최종 지지율은 55%로 크게 올랐다. 다른 조사에서는 60%를 넘기도 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수치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 달 전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실책(失策),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으로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졌었다.

아베 지지율 급등 배경에는 병으로 사임한 데 대한 동정 여론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서 그가 7년8개월간 집권하면서 비교적 정치를 안정시키고 현실주의 노선을 유지한 것이 일본인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분위기다. 2007년 아베의 1차 사임 후부터 2012년 2차 집권을 시작하기 전까지 일본의 총리는 모두 5명. 5년간 후쿠다-아소-하토야마-간-노다로 이어지면서 거의 매년 총리가 바뀌다시피했다. 이 기간 동안 정책의 일관성도 없었고 버블경제가 꺼진 일본 사회는 침체기에 들어갔다. 닛케이 평균 주가는 1만엔 선을 밑도는 경우가 많았다. 아베는 자신의 전임자 5명의 재임기간을 합친 것보다 더 오래 총리를 역임하며 정치를 안정시켰다. 연속재임 2822일을 포함, 통산 재임일수 3188일은 앞으로 일본 정치사에서 깨지기 어려운 최장(最長) 재임 기록이다.

‘과감한 금융정책, 기동적인 재정정책, 성장전략’을 핵심으로 하는 아베노믹스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로 인한 가시적 성과는 크게 볼 때 경기 활성화와 취업률 상승 두 가지다. 그가 2차 집권을 시작할 때 닛케이 주가지수는 1만230에 불과했으나 곧 2만대로 올라섰다. 그의 임기 마지막 날인 지난 9월 16일 주가지수는 2만3475로 출범일에 비해 2.3배 올랐다.

일할 의지가 있으면 누구나 직장을 구해서 먹고살 수 있도록 한 것을 높이 평가하는 이도 많다. 2012년 4.1%를 기록했던 완전실업률은 올해 6월 현재 2.8%까지 떨어졌다. 반대로 올 초 대학생 취업률은 97.8%까지 치솟았다. 취업희망자 1인당 일자리를 나타내는 유효구인배율은 같은 기간에 0.82에서 2018년에는 1.63으로 올랐다. 소비세를 2014년 8%로, 2019년 10%로 증세한 것을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치인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소비세 증세를 임기 중에 두 번이나 실현한 총리는 그가 유일하다.

하지만 물가를 점차적으로 상승시켜서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게 하겠다는 전략은 실패했다. 2012년 평균 월급이 26만1547엔에서 올해 26만1554엔으로 거의 변화가 없다. 소비자물가지수도 96.4에서 101.6으로 큰 차이가 없다. 명목GDP(국내총생산)는 492조엔에서 올해 2분기 503조엔으로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일본인들은 아베 집권 기간 중 생활이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아지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돈 뿌리기’ 식의 경제정책은 일본 경제에 큰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아베의 재등판 가능성

일본인이 평가하는 아베의 또 다른 업적은 외교·안보 분야다. 마이니치신문의 최근 조사에서 아베 정권 정책 중 외교·안보 분야는 57%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베는 2009~2012년 민주당 정권하에서 흔들리던 미·일동맹을 굳건히 한 후, 미국의 등에 올라타 세계로 진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일동맹을 염두에 두고 2015년 안보 관련 법을 정비,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주일미군 항공모함 함재기의 이착륙 훈련(FCLP)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가고시마 남단의 마게시마를 160억엔(약 1760억원)에 구입해 제공하기도 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창,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발전시키도록 한 것도 그의 공적이다. 아베의 임기 말에는 미국과 우주에서의 군사활동을 공동 대응으로 모색할 정도로 미·일동맹이 ‘업그레이드’됐다.

국내적으로는 많은 부(負)의 유산을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의 집권이 장기화하고 아베 1강(强) 체제가 굳어지면서 정권을 ‘사물화’한다는 비판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학교법인 모리토모·가케학원을 둘러싼 특혜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제기됐다. 일본의 극우단체인 ‘일본회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일본 사회를 우경화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일본이 앞으로 내리막길을 달려갈 것이라고 전망한 ‘피크 재팬(Peak Japan)’의 저자 브래드 글로서먼은 최근 “아베는 1년마다 바뀌던 전임자들에 비해서는 낫지만 개혁에 실패, 윗사람 눈치를 보는 손타쿠(忖度)가 만연하고, 정치도 파벌정치가 더 활성화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7월 한국의 징용배상 요구에 대한 보복조치로 반도체 부품 등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 양국관계를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한 것은 만행(蠻行)과 같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만약 스가 정권이 실패하고 또다시 경제 위기가 닥친다면 아베가 다시 등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1954년생인 아베는 일본 정치에서 볼 때 아직 젊은 편이다. 98명이 소속된 자민당의 최대 파벌 호소다파의 실제 ‘대주주’이기도 하다. 그가 자민당 총재로 재임하는 동안 6차례의 중·참의원 선거에서 모두 승리, 그의 지지 유세 덕분에 당선된 ‘아베 칠드런’도 적지 않다. 재발한 궤양성대장염 치료를 마치고 건강이 호전된다면 재등판설이 언제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아베는 지난 8년간 일본 사회에 자신을 깊이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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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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