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대선을 두고 미국 사회는 반(反)트럼프 진영(왼쪽 사진)과 친(親)트럼프 진영으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photo AP·뉴시스
2020년 미국 대선을 두고 미국 사회는 반(反)트럼프 진영(왼쪽 사진)과 친(親)트럼프 진영으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photo AP·뉴시스

이 정도면 세계적 대혼란이었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마치 스포츠 경기 보듯 지켜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싸움은 엎치락뒤치락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이었다. 미국에는 대통령을 뽑는 50개 주가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초점은 단지 몇몇 주들에 맞춰졌다.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미시간 등은 그곳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손에 카운티 단위로 분해됐다. ‘대도시 개표가 덜 돼서 바이든이 유리하다’ ‘트럼프 우위 지역의 개표가 아직 남아 있다’ ‘우편투표 비율을 더하면 바이든이 역전할 것 같다’는 식이었다.

CNN은 “이번 선거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통령 선거이다. 그리고 이번 대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논쟁이 많은 대선이다”라고 정의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중요한 선거였다. 정부도, 기업도, 심지어 주식을 하는 개미들까지도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글로벌 정책도 변하고 경제 정책도 달라질 것이며 미국인의 선택에 따라 내 통장의 잔고도 변한다. 이런 대선이 논쟁적으로, 혼란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끝나는 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은 우편투표를 거론하며 제도를 믿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미리 이런 논쟁이 가져올 분열을 예상한 사람들은 가게 창문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충돌에 대비했다. 미국 대선이 가져온 결과다.

이미 예견된 선거제도 갈등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은 기다림 때문이었다. 일단 승자가 없고 승복도 없었다. 오히려 일방적인 승리 선언만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4일 오전 2시20분경(한국시각 오후 4시20분) 백악관에서 연설을 갖고 “우리가 선거를 이겼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제도를 걸고넘어졌다. “이번 선거는 미국인들에 대한 사기극이고 투표를 멈추게 하기 위해 연방대법원으로 이 문제를 갖고 갈 계획”이라고 했다.

예상했던 시나리오였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정말로 실행할 줄 몰랐을 뿐이었다. 로런스 더글러스 애머스트대학교 교수가 지난 6월 말에 가디언에 기고한 시나리오는 지금의 상황을 큰 틀에서 정확히 맞혔다. 그의 상상은 이랬다.

‘2020년 11월 3일 미국 대선일의 자정이 되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전국 득표수에서 상당히 앞서지만 선거인단 확보는 빠듯하다. 그는 25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40명을 앞지르게 된다. 하지만 어느 후보도 당선에 필요한 270명에는 부족하다. 모든 시선은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가 보유한 46명의 선거인단 투표에 쏠린다. 이들 3개 주에서 트럼프는 근소한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기에는 우편투표가 대거 빠져 있다. 이곳들은 투표를 마감한 뒤 우편투표를 집계한다. 이런 스윙스테이트들이 개표를 마칠 때까지는 며칠, 심지어 몇 주가 걸릴 수 있다.

트럼프는 우세를 이유로 이미 재선 승리를 선언했다. 보수 매체들은 바이든에게 양보를 요구한다. 바이든은 도시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투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런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스윙스테이트 3개 주의 개표가 지연되면서 법무부의 도움을 받은 트럼프 캠프의 변호인단은 우편투표 수만 장을 무효표로 만들기 위해 다수의 소송을 제기한다. 개표가 조금씩 바이든 쪽으로 쏠리고 선거 후 거의 한 달 뒤쯤 바이든이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마무리에 내전 가능성까지 언급한 더글러스 교수의 시나리오에는 미국 선거제도가 주는 난맥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편투표를 대표적인 선거 방식으로 만들었다. 올해 미국 유권자들은 선거일 전에 약 6400만명 이상이 우편투표를 활용했다. 개표 결과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적어도 앞으로 미국 선거를 재편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모든 주에서 일관성과 통일성이 없는 탓에 공격받고 있다.

미국 선거에서는 ‘주(state)’가 우선이다. 연방은 후순위다. 50개 주가 별도의 정부 역할을 하고, 이 50개 주가 합쳐서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미국 정치제도의 특징 때문에 선거를 둘러싼 입법과 사법적 판단이 주 단위로 이뤄진다. 투표 대상과 투표 방법에 대한 규칙도 주마다 다르다. 그렇다 보니 일관성이 결여되고 빈틈이 생긴다. 많은 주에서는 11월 3일 투표 마감일까지 우편투표 용지가 도착할 수 있도록 요구했지만 일부 주에서는 투표일 소인이 찍힌 용지가 이후에 도착하더라도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이런 시간차는 부정 선거라는 공격으로 활용하기 좋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선거일 3일 후 도착분까지 개표에 포함하기로 했지만 위스콘신주는 선거 당일 오후 8시까지 도착하는 것만 유효표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던진 한 표의 유효기간이 달라진다.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주는 모두 두 후보가 사활을 거는 스윙스테이트다. 중요한 전장에서 게임의 규칙을 두고 서로 다른 결정이 내려진 셈이다. 에드워드 폴리 오하이오주립대 교수는 “이런 지연 탓에 패배한 후보가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축하하기 전까지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주마다 다양성이 선거에도 개입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인 곳이 됐던 펜실베이니아에서도 다른 주들과 마찬가지로 미리 우편투표의 개표를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이곳의 주의회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 우편투표를 미리 처리하자는 주지사의 노력은 의회의 손에 무산됐다. 컨벤션센터 내 12만5000㎡ 규모의 공간에서 대규모로 벌일 예정이던 펜실베이니아의 개표 작업은 다른 주들과 달리 며칠 뒤로 미뤄졌고 결국 선거일이 돼서야 표를 개봉하기 시작했다. 이 틈을 활용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앞서 언급한 기자회견에서 “개표 중단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는데, 만에 하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수많은 사표가 발생할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진행된 우편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약 250만명인데 이 중 민주당 등록 유권자가 160만명이 넘는다.

‘투표하세요(vote)’가 쓰인 독려 운동이 거리에서 벌어질 때 의회에서는 투표권의 장벽을 치기도 했다. 우편투표의 장점은 편리함이다. 하루하루 일 나가기에 바쁜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데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유익한 제도다. 그런데 예측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접근성을 차단한 곳이 있었다.

우편투표를 이용하고 싶을 때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올해 대선에서는 코로나19가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안전한 방법이라는 국가적 동의가 바탕이 됐다. 반면 미르나 페레즈 ‘정의를 위한 브레넌센터’ 국장은 “대부분의 주에서는 누구나 우편투표를 활용할 수 있지만 매우 인색하게 굴고 있는 소수의 주들이 있다”고 말했다. 인색한 곳은 인디애나, 테네시,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텍사스주 등으로 이곳 유권자들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우편투표를 신청할 수 없게 됐다. 우편투표는 유권자의 투표율을 높인다는 점에서 좋은 제도다. 다만 정부의 일관성 대신 주(state)마다의 다양성이 운영에 개입하면서 문제가 생겼고, 그 시스템 자체가 의심을 받으며 소송거리가 됐다.

큰 틀에서 보면 굳이 주 단위의 선거인단 제도가 필요하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2016년 대선이 끝난 뒤 미국의 대선제도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오직 미국만의 전유물이다. 한국의 선거처럼 직선제도 아니고, 영국의 의원내각제처럼 간접선거제도도 아니다. 국민이 뽑은 선거인단이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복잡한 형태다. 1804년 수정헌법을 통해 제정된 미국 건국의 유산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직선제를 향한 요구 높아

선거인단 제도는 합의의 산물이다. 당시 큰 주는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고 인구가 적은 주는 의회에서 뽑는 간선제를 주장했는데 연방을 만들면서 작은 주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쪽으로 합의하면서 이 독특한 제도가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이 제도가 큰 문제 없이 유지된 건 1880~1996년 사이에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과 2016년, 왜곡이 생겼다. 표를 적게 얻은 사람이 선거인단을 많이 획득해 대통령이 되는 일이 생겼다. 힐러리 클린턴보다 280만표나 적게 얻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그 수혜자였다.

2016년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선거제도 변화를 주장했다. 도시와 지방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면서 규모가 작은 주의 유권자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문제 삼았다. 한 표의 가치가 심각하게 왜곡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뉴욕타임스는 “와이오밍 주민의 한 표의 가치가 캘리포니아 주민의 3.6배나 된다. 선거인단 승자독식 제도 때문에 대선은 10여개 스윙스테이트에서만 선거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다른 수천만 유권자는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견해대로라면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인이 원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경합주에서 전략적으로 투표를 실시한 유권자들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번 대선에서도 결국 재검표나 소송으로 가는 곳은 한 표의 가치가 다른 곳보다 큰 스윙스테이트다. 누가 어디에 살든 한 표를 동등하게 대접하는 직선제였다면 이런 소송과 결과 발표 지연, 그로 인한 혼란과 분열 등은 상당수 생기지도 않을 문제였다. 실제로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직선제에 대한 요구가 높다. 시민단체 ‘메이크에브리보트카운트’가 지난해 7월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최다득표를 얻은 사람이 당선되도록 하는 방식에 65%가 찬성해 반대(26%)를 압도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2016년 11월 선거인단을 없애는 개헌에 51%가 찬성했는데 2018년 3월에는 55%가 찬성하며 소폭 증가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단순한 규칙이 혼란의 대선을 치른 미국 사회에서 다시 화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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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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