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유대인 단체 모임에서 한 여성이 ‘유대인들은 트럼프를 거부한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photo affinitymagazine
미국의 한 유대인 단체 모임에서 한 여성이 ‘유대인들은 트럼프를 거부한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photo affinitymagazine

미국의 46대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의 승리를 이끈 핵심 지지층은 누구였을까.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난 11월 6일 트위터를 통해 “청년, 유색인종, 노동계층의 지지를 받아 바이든이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NN이 인종별 대선후보 지지율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백인의 트럼프 지지율은 57%로 2016년 당시와 같은 수준이었다. 반면 히스패닉은 28%에서 32%, 흑인은 8%에서 12%, 아시아계는 27%에서 31%로 오히려 증가하였다.

이는 지난 4년간 미국 경제가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집권 기간 경제 상황이 호전되면서 유색인종이 오히려 트럼프 지지로 많이 돌아섰다는 얘기다. 결국 트럼프는 이런 호재를 살리지 못하고 자기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안이한 대응,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이은 대규모 BLM(Black Lives Matter) 시위에 대한 편가르기식 반응, 지나친 미국 제일주의와 거듭된 음모론에 대한 피로감 등으로 자멸했다고 CNN은 분석했다.

바이든의 승리는 결국 민주당의 승리인데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것이 유대인들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75% 이상의 유대인들이 바이든을 지지하였다고 미국과 이스라엘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미국 유대인 중 75%가 바이든 지지

미국에서 최대 700만명으로 평가되는 유대인들은 이전부터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다. 현재 연방 상원의원 중 9명이 유대인인데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하원의원 중에서도 유대인 27명 중 26명이 민주당 소속이고 공화당 소속은 단 1명뿐이다.

민주당 소속 유대인 정치인들은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을 위해 주요 길목에서 활약하였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79) 상원의원이 대표적으로, 그는 반(反)트럼프 정서에 불을 질렀다. 뉴욕시장을 지낸 거부 마이클 블룸버그(78) 역시 반트럼프 캠페인에 1억달러를 지원하였다.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할 경우 안보보좌관으로 확실시되는 인물인 앤서니 블링켄(58) 전 국무차관 등 주요 참모들 가운데도 유대인이 많다. 심지어 최초의 여성 유색인 부통령이 될 카멀라 해리스(55) 상원의원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55)도 유대인이다.

트럼프 비판의 선봉에 섰던 CNN의 제이크 태퍼, 울프 블리처를 비롯,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의 중견 언론인 가운데에도 유대인이 많다.

우편투표에 관여한 유대인들

트럼프가 부정선거의 원인이라며 비난하는 우편투표제도와 관련해서도 유대인들의 ‘손길’이 드러난다. 유대인 변호사 마크 엘리어스(51)가 바로 부재자투표와 우편투표 확대를 고안해낸 인물이다. 선거 관련 소송을 전담해온 변호사인 그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선거법 자문을 하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바이든 후보의 러닝 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의 보좌역으로 활동하였다. 최근에는 바이든 후보의 선거 관련 특별소송팀을 이끌고 있다.

엘리아스 변호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유로 사전투표제와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는 우편투표제 확대 등을 지난 4월 5일 제안했다. 그의 주장을 민주당이 적극 수용한 결과 이번 대선에서 무려 1억100만장의 사전투표가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2016년 4700만장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개표과정에서 펜실베이니아주는 불법시비로 끝까지 논란이 되었다. 개표 첫날 60만표를 앞서던 트럼프는 우편투표가 개표되면서 역전패하자 주정부가 불법적으로 개표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런데 펜실베이니아주는 2019년 1월 유대인 여성 변호사 캐시 부크바(52)가 주 국무장관에 취임하며 선거 현대화 등을 명목으로 선거법 수정작업을 주도하였다. 부크바는 민주당 소속 좌파 정치인이다. 펜실베이니아주는 특히 이번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유로 선거일 이후에 도착하는 투표지도 유효하게 처리하도록 개표 관련 규칙을 수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 헌법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급기야 지난 11월 6일에는 연방대법원 새뮤얼 앨리토 대법관이 투표일 오후 8시 이후에 도착한 투표지는 별도로 분리해 보관하라는 긴급지시를 내렸다. 부크바는 이번 대선에서 개표작업도 총괄했는데 공화당 참관인을 허용하지 않는 불투명한 작업 등을 두고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공화당 측은 부크바가 이번 대선 개표과정에서 “펜실베니이아주의 선거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펜실베이니아 선거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며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11월 6일 트위터에 펜실베이니아 선거는 “불법적으로” 실시되었다며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바로잡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유대인 법무장관 조슈아 샤피로(47)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이다. 보수적 유대교도인 그는 투표가 실시되기도 전인 10월 31일 “모든 표가 개표되면 트럼프는 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가 일찍부터 선거결과를 “훔치려 했다”며 일체의 선거 관련 사무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와 관련된 기사를 트위터에 공유했다.

트럼프가 제기한 선거소송이 연방대법원까지 갈 경우 이를 심의하게 될 9명의 대법관 중에도 진보파로 분류되는 2명은 유대인이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왜 똘똘 뭉쳐서 트럼프를 반대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트럼프가 유대인들에 반하는 정책을 취한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트럼프는 미국 내 유대인들의 지원을 받기 위하여 공을 들였다. 트럼프의 사위, 즉 딸 이방카 트럼프의 남편인 재러드 쿠슈너(39)가 유대인이다. 그는 쿠슈너를 백악관에 보좌관으로 기용하여 중동정책 등에 관여하도록 하였다. 그가 신뢰하는 므누신 재무장관도 유대인이다.

보수 성향의 트럼프는 오히려 적극적인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추진했다. 이스라엘의 숙원이었던 현지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도 결정했다. 이스라엘 안보에 큰 위협이 되었던 이란을 상대로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핵협상을 폐기하고 제재를 강화하기도 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등 아랍 국가들과의 수교도 주선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한다고 이스라엘 언론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은 트럼프 비난에 집중한 미국 언론들로부터는 외면당했다.

미국 내 유대인들이 트럼프를 반대하는 이유는 2019년 12월 폴 크루그먼(67) MIT 경제학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 잘 드러난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크루그먼 역시 벨라루스 출신 유대인 후손이다. 그는 ‘트럼프는 왜 유대인에게는 나쁜 사람인가?’라는 노골적인 제목의 글에서 트럼프를 백인우월주의자이며 반유대주의자로 단정하였다.

(왼쪽부터) 마크 엘리어스, 제이크 태퍼, 조슈아 샤피로, 캐시 부크바, 폴 크루그먼
(왼쪽부터) 마크 엘리어스, 제이크 태퍼, 조슈아 샤피로, 캐시 부크바, 폴 크루그먼

“트럼프는 반유대주의”

크루그먼은 이 글에서 트럼프가 2019년 12월 미국 내 유대인 단체인 ‘이스라엘-미국 위원회’에서 연설한 내용을 주목했다. 당시 트럼프는 민주당이 세금을 올리기 때문에 “부유한 유대인은 자신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크루그먼은 이에 대해 “유대인을 악착같이 돈만 긁어모으는 사람들로 묘사하는 전형적인 반유대주의”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2015년에도 유대인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가 유대인들의 돈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며 ‘유대인들이 정치인들을 통제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는 아주 잘못된 반유대주의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미국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경제 상황에 비하면 훨씬 더 리버럴하다.”

크루그먼은 2018년 중간선거 당시 연소득 20만달러가 넘는 사람들의 52%, 5만달러 이하 소득자의 38%가 각각 공화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난 사실과 유대인들을 비교한다. 그는 “저명한 억만장자들 가운데에도 리버럴한 사람들이 있지만 대개는 소득이 높을수록 우파정당으로의 쏠림은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평균보다 상당히 부유한 유대인들은 17%만이 공화당을 지지하였다”고 강조했다.

“미국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특별히 탐욕스럽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이 특별히 공익(公益)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도 잘못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도덕적 기준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다.”

크루그먼은 트럼프를 인종에 대한 편견(bigotry)을 가진 백인우월주의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유대인들은 인종에 대한 편견이 유행하면 자신들도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의심의 여지없이 반민주적, 백인우월주의 정권이다. 아직 분명하게 반유대주의적인 시각이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지지자들 가운데에는 많다.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는 (트럼프가 말하는) ‘아주 좋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우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상황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반유대주의적 사건들이 아주 많이 발생하고 있다.

크루그먼은 트럼프의 재집권을 용인하면 유대인들도 차별을 받게 된다는 우려도 했다.

“증오에 바탕을 둔 정치를 하면서 소수인종을 향해 ‘인종차별은 무시하고 당신이 받는 세금혜택을 고맙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경멸적인 태도이다. 일부는 그런 경멸을 받을 만하다. 돈 많은 유대인들 중에는 백인우월주의 정부하에서도 번영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단견의 무식하거나 오만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은 트럼프가 유대인에게는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크루그먼과 미국 내 유대인 다수의 소망대로 트럼프는 이번 대선 ‘불복’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7100만표)를 하고도 낙선한 후보가 되는 셈이다. 트럼프는 2016년보다 800만표 이상 더 받기도 했다. 연방의회나 주 단위의 선거에서 공화당이 선전한 것도 트럼프 지지층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트럼프의 트위터 팔로어는 9000만명이다. 선거 소송과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정치적 영향력은 엄존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가 4년 뒤 다시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이는 민주당은 물론 미국 유대인들에게도 악몽이 될 수 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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