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당선인이 지난 11월 11일 부인 질 여사와 함께 필라델피아의 6·25전쟁 기념비에 경례하고 있다. ⓒphoto AFP
바이든 당선인이 지난 11월 11일 부인 질 여사와 함께 필라델피아의 6·25전쟁 기념비에 경례하고 있다. ⓒphoto AFP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당선인이 재향군인의 날인 지난 11월 11일 부인 질 여사와 함께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6·25전쟁 참전 추모공원을 방문해 추모비에 헌화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또 미국 국기인 성조기와 한국 국기인 태극기가 머리 위로 펄럭이는 가운데 추모비 앞에서 묵념했다. 재향군인의 날은 퇴역군인들의 노력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미국 국경일이며, 필라델피아 6·25전쟁 참전 추모공원은 바이든 당선인의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자택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이곳은 6·25전쟁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622명의 필라델피아 지역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바이든은 트위터에 “나는 자랑스러운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존경하고 봉사를 이해하며, 국방을 위해 그렇게 용감하게 싸운 가치를 결코 배신하지 않는 최고사령관이 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바이든의 이날 행사는 미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봉사를 기리는 목적이지만 미군이 참전한 이라크전 등 각종 전쟁 중에서 공교롭게도 6·25전쟁 참전 추모공원을 찾은 것은 상당한 함의(含意)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참전용사를 기리는 공원은 바이든 당선인의 자택에서 더 가까운 곳에도 많기 때문이다. 윌밍턴에는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기념비가 있는데 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필라델피아에도 각종 전쟁에서 희생된 참전용사를 기리는 추모 장소와 기념비들이 있다.

바이든이 6·25 추모공원 방문한 이유

바이든은 과거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지내면서 한국을 세 차례 방문했다. 바이든은 1998년 11월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로서, 2001년에는 상원 외교위원장으로서 각각 방한했다. 특히 2013년 12월 한·미동맹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 정부의 부통령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바이든은 15세이던 손녀 피네건과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후 헬기를 타고 DMZ(비무장지대) 올렛 초소(GP)도 방문했다. 바이든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연합뉴스에 보낸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이란 제목의 기고문(10월 29일)에서 “손녀 피네건을 옆에 두고 DMZ에서 북한으로부터 100피트(3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며 “나는 6·25전쟁 이후 한반도 분단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바이든은 “한국은 피로 맺어진 동맹”이라면서 6·25전쟁에서 3만6574명의 미군이 전사한 사실도 언급한 뒤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구호인 ‘Katchi Kapshida(같이 갑시다)’라는 영어 철자로 기고문을 마무리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바이든은 미국의 정치인들 중에서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고, 중국의 불법 참전으로 한국군과 미군이 엄청나게 희생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바이든의 6·25전쟁 참전 추모공원 방문은 중국과 한국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혈맹(血盟)인 미국과 한국이 협력해 중국과 북한의 도전을 물리치자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올해 ‘항미원조전쟁’(6·25전쟁을 중국식으로 부르는 명칭)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선전·선동 작업을 벌여왔다. 중국 공산당이 항미원조전쟁 카드를 꺼내든 의도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의 신(新)냉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23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통해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은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하고 중국의 안보를 수호하며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미국의 참전을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규정한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은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 참전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시 주석은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발발했고 미국은 냉전적 사고를 바탕으로 내전에 무력 개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는 중화민족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고 인류 평화, 발전, 진보의 역사에도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면서 “애국주의의 기치 아래 세계가 중국의 힘을 건드릴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12일 청와대에서 바이든 당선인과 첫 통화를 하고 있다. ⓒphoto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12일 청와대에서 바이든 당선인과 첫 통화를 하고 있다. ⓒphoto 청와대

‘항미원조전쟁 70주년’ 대응 카드?

바이든은 6·25전쟁 추모비 헌화와 언론 기고문을 통해 반중(反中)노선을 분명하게 밝힌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이 노선에 동참할 것을 강조했다. 바이든은 지난 11월 12일 문 대통령에게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며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확고히 유지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바이든이 언급한 ‘린치핀’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한·미동맹은 태평양 전체 안보의 린치핀”이라고 처음 규정한 이후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말로 굳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표현을 거의 사용한 적이 없다, 린치핀은 바퀴가 축에서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핀이다. 빼버리면 전체가 무너지는 핵심 부품이다. 바이든은 문 대통령과의 첫 통화부터 이런 용어를 언급함으로써 동맹을 사실상 경제적 거래 상대로 취급했던 트럼프 대통령과는 반대로 혈맹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눈여겨볼 대목은 린치핀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특히 바이든이 언급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은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바꿔 2017년 꺼내든 구상이다. 이 전략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맞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 파트너들과 함께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권은 초당적으로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을 지지하고 있다. 때문에 바이든이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인도·태평양을 강조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견제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전하며 한국의 동참을 요청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바이든은 문 대통령은 물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같은 날 통화에서도 ‘인도·태평양’을 강조했다. 바이든은 스가 총리에게 “미·일동맹 강화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향해 협력해 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고, 모리슨 총리에게도 “미·호주 동맹 강화와 안전하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유지를 포함한 많은 공동과제에 관해 긴밀히 협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과 호주는 미국이 추진하는 4개국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의 일원이다.

‘인도·태평양’ 강조에 담긴 뜻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동맹 강화’와 ‘다자주의’를 외교·안보의 기본 노선으로 삼고 있는 바이든이 내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추진할 인도·태평양 정책은 무엇보다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기 위해 쿼드를 더욱 확대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바이든은 앞으로 ‘인도·태평양판 나토’라고 불리는 쿼드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을 추가로 포함하는 ‘쿼드플러스(Quad Plus)’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3·4월호)에서 “미국은 중국에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동맹 및 파트너와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바이든의 이런 동참 제안을 외면했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에게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긴밀히 소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인도·태평양이란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스가 총리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향해 함께 연대해 나가고 싶다”고 화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바이든이 언급한 인도·태평양은 해당 지역을 지리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는 무관하다”면서 “린치핀이라는 표현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표현 이외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가 바이든이 사용한 인도·태평양을 지리적으로만 한정해 해석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다.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경계하면서 2018년 5월,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태평양사령부’라는 명칭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변경했다.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등을 관할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미국 정부의 쿼드플러스 동참 요청을 거부해왔다. 심지어 강경화 외교장관은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이 앞으로 개최할 계획인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에도 불참하겠다는 뜻인가.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 동맹’을 무시한다면 바이든 정부와의 관계는 크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바이든이 언급한 인도·태평양은 한국의 역할에 대한 특정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서 “바이든 정부는 한국의 역량을 고려해 더 큰 범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photo 청와대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photo 청와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문 정부 참가하나?’

바이든과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기존의 정책인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강조했지만, 바이든은 북핵만을 언급했다. 바이든은 문 대통령이 희망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의 북·미 대화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바이든은 또 문 대통령이 주장해온 한반도 평화 정착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문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해온 ‘종전선언’을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이 북핵만을 강조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문 대통령에게 대북 정책을 원점부터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과의 정상외교를 강력하게 비판해왔다. 실제로 바이든은 지난 10월 22일 대선후보 2차 토론에서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회담을 통해) 북한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며 “핵 능력을 축소한다고 동의하는 조건으로만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이든은 또 북한과 비핵화 실무 대화을 통한 ‘보텀업’ 방식의 협상을 선호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바이든은 트럼프처럼 ‘깜짝 쇼’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 비핵화와 연동되지 않은 종전선언이나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은 미국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유엔 사무총장 시절 바이든과 친분을 맺어온 반 전 총장은 “바이든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한·미 양국의 조율되고 합의된 방식이 도출되기를 바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이다. 바이든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친중 노선을 계속 유지한다면 상당한 불쾌감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 11월 15일 중국이 추진해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서명한 것도 바이든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자신이 부통령 시절 성사시키는 데 공을 들였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재가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인 2017년 2월 TPP에서 탈퇴한 바 있다. 미국의 TPP 탈퇴 이후 일본은 호주 등 다른 국가들과 함께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체결했다. 바이든은 앞으로 CPTPP를 중심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또 트럼프 정부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제재조치를 강화할 방침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견제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화웨이 제재를 거부하고 있고, 일대일로에도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달리 인권 외교에 상당한 비중을 둘 것이 분명하다. 바이든은 “미국은 더 이상 독재자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및 김정은을 싸잡아 ‘불량배(thug)’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중국 공산당의 이슬람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을 ‘인종청소(Genocide)’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홍콩국가보안법을 비판하는 등 동맹국들을 비롯해 국제사회와 연대해 인권 문제로 중국을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하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은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과 홍콩국가보안법은 물론 북한 인권 문제도 침묵해왔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6·25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시 주석의 명백한 역사왜곡에도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튼 시 주석의 방한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미·중 간 어설픈 줄타기가 자칫하면 한·미동맹을 최악의 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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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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