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4일 스가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다짐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2월 4일 스가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다짐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8년 10월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이후 바닥으로 추락한 한·일 관계가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채 2021년을 맞았다. 지난 2년여간 양국 정부는 사사건건 충돌하며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극히 제한적인 협력만 하는 관계가 돼 버렸다. 올 한 해는 어떨까. 수교 56년을 맞은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4가지 변수를 중심으로 전망해 본다.

1 도쿄올림픽

한·일 양국 정부가 2019년 일본의 반도체부품 등의 수출규제로 격하게 부딪친 후, 처음으로 협력의 접점(接點)을 찾은 것이 도쿄올림픽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은 오는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열리기로 예정돼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은 약 3조엔이 투입되는 도쿄올림픽 성공을 코로나19 극복과 함께 가장 큰 과제로 여기고 있다. 스가 총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도쿄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해 11월 방일, 스가를 만나 올해 개최되는 도쿄올림픽에 대해 한국이 협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어서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3일 만에 다시 스가에게 같은 입장을 전했다. 양국 의원연맹 차원에서 도쿄올림픽 성공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가 합의되기도 했다.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집권세력에서 ‘징용 문제 봉합’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김진표 회장은 “가급적이면 모든 한·일 현안을 일괄 타결하는 것이 좋으나, 그렇지 않으면 징용 문제는 현 상태에서 더 악화되지 않도록 봉합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일본 측에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도 아마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며 ‘재판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도쿄로 초대하는 것도 도와줄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 올림픽을 계기로 양국 간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지 주목된다.

2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오는 1월 20일 제46대 미 대통령에 취임하는 조 바이든은 1980년대부터 한·미·일 3국 관계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년간 한·일 관계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과는 다른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그가 한·미·일 3국 관계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2016년 알려진 바 있다. 당시 바이든은 오바마 정권의 부통령 자격으로 하와이에서 열리는 환태평양 군사훈련(RIMPAC)을 참관하기 위해 하와이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한·미·일 3국 차관협의회가 열리는 것을 알고 일정을 조정, 이 회의에 참석해 연설했다. 미국의 부통령이 2015년부터 열린 이 회의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는 “미국·한국·일본 3국은 기본적인 가치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이 가치를 계속 지켜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2000년대 초반의 한·미·일 3국 대북정책조정그룹(TCOG)을 차관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부활시킨 토니 블링큰이 차기 국무장관에 지명된 것도 한·일 관계의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거침없는 부상(浮上)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간의 화해를 권고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일은 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이 적극 개입하면서 이듬해인 2015년 위안부 합의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 양국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 개선을 ‘권유’할 가능성이 큰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마냥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 10일 스가 일본 총리를 면담한 뒤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는 박지원 국정원장.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10일 스가 일본 총리를 면담한 뒤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는 박지원 국정원장. ⓒphoto 뉴시스

3 한국과 일본의 선거

한국에서는 오는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스가는 중의원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10월 전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스가가 3월쯤 중의원을 해산한다면 이례적으로 한·일 ‘더블 선거’가 될 수도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총리 재임 당시인 2019년 7월 대한(對韓) 수출규제를 취한 것은 20일 앞으로 다가온 참의원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당시 한·일 관계가 선거의 큰 변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 보복조치를 취해주길 바라는 자민당 중장년 당원들을 ‘혐한’ 감정으로 결집시키며 선거에서 승리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민주당은 4·15 총선을 ‘한·일전’으로 규정하며 반일 감정을 적극 활용했다.

올해 양국이 치열한 선거전에 돌입하면 양국의 집권 세력이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을 다시 이용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의석을 현재보다 많이 잃을 경우 스가가 퇴진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코로나19 대책 실패와 리더십 부재로 지난해 12월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 스가의 지지율은 3개월 만에 29%포인트 떨어진 45%를 기록했다. 그가 총리를 1년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50%를 넘어서는 등 점점 궁지로 몰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5월 퇴임하기 전에 세 번째 일본 총리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4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부가 서울에서 주최하려고 했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끝내 무산됐다. 코로나19 문제도 있었지만 스가가 징용배상 판결로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이 현금화되지 않는다고 약속해야 방한(訪韓)할 수 있다는 입장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일본 측이 이같이 강하게 나올 정도로 현금화 문제는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한국의 법원은 언제든지 압류된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자산이 현금화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모두 마친 상태다. “담당 판사의 결정으로 언제든 실행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현금화될 경우 지체 없이 보복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천명해왔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2018년 일본이 취할 보복조치로 무역 재검토, 금융제재, 비자발급 정지, 송금 중단을 언급한 바 있다. 일본의 대일 강경파 의원들이 주축이 된 자민당 외교부회는 보복조치로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과 삼성전자 일본지사 압류를 요구하기도 했다. ‘현금화’는 언제든지 한·일 관계를 소용돌이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올해도 양국 관계를 끊임없이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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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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