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0일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photo 뉴시스

중국에서는 매년 두 차례 큰 정치행사가 열린다. 봄철의 ‘양회(兩會)’와 가을의 ‘당대회(黨大會)’가 그것이다. 양회는 두 개의 회의를 말한다. 하나는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약칭 전인대)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 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약칭 정협)이다. 전인대는 법률 제정과 수정의 권한을 가지며, 정부(國務院) 정책을 감독한다. 정협은 당과 정부의 정책 방향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권한이다. 실제로 양회는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다. 전인대든, 정협이든, 공산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법률을 제정, 추인하고 의견을 낼 뿐이다. 그래서 외국에선 양회를 ‘고무도장(rubber stamp)’ 혹은 ‘거수기’라 부른다. 양회 구성원 대부분이 공산당 당원이기 때문에 세 조직은 ‘일심이체(一心異體)’나 다름없다. 형식적이나마 삼권분립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해 한 사람이 역할에 따라 얼굴만 바꾸는 정치 변검술(變臉術)이다.

시진핑에 아부성 제안 쏟아진 양회(兩會)

시진핑 임기 들어 양회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특히 올해는 절대권력자 시진핑의 지도방침을 뒷받침하거나 비위를 맞추려는 제안이 나타났다고 중화권 언론이 전했다. 가령 결혼 허용 연령을 18세(현재 남자는 22세, 여자는 20세)로 낮추자는 제안은 그나마 건설적이었다. 이는 중국의 인구구조가 피라미드형에서 종형(鐘形)으로 바뀜에 따라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진 데 따른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그러나 영어 필수 수업을 폐지하자는 제안은 의도가 너무 뻔해 ‘중공 고위층의 비위를 맞추려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교육의 필요성은 팽개친 채 미국에 대항하는 시진핑 정부의 외교전략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인대가 입법권을 가진 것과 달리, 정협 위원의 제안은 법률적 효력이 없다. 그냥 의견 제시일 뿐이다. 그러나 그 의견이 공감을 일으키면 정부 정책으로 채택될 수도 있다. 지난 3월 4일 정협 위원인 난퉁(南通)대학 총장 스웨이둥(施衛東)이 제안한 내용은 그런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제안 내용은 청(淸)나라 말기인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의 민영기업가 장젠(張謇·1853~1926)의 역사적 기록을 초·중·고 교과서에 싣자는 것이었다. 장젠은 지난해 11월 시진핑이 언급하여 일약 유명해진 인물이다. 스 총장의 제안에 대해 홍콩 빈과일보(苯果日報)는 ‘시진핑의 구두를 닦았다(爲習近平擦鞋)’고 비꼬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중국어 매체 희망지성(希望之聲)은 ‘아부성(馬屁) 제안’이라고 조롱했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중시하는 사안에 대해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안을 재빨리 내놓아 비위를 맞추려 했다는 뜻이다.

‘민족기업가’의 표상으로 내세운 장젠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12일 장쑤성(江蘇省)을 시찰하는 도중 난퉁박물관의 장젠 일대기 전시회를 둘러보았다. 그는 참관 도중 “장젠은 기업을 창업하는 동시에 교육과 사회 공익사업을 일으켜 고향을 부유하게 하고 군중을 도움으로써 민영기업가의 선현(先賢)이자 본보기가 되었다”고 높이 평가하고, “그의 역사적 흔적은 교육적 의의가 큰 만큼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만들어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도록 하고 ‘4개의 자신감’을 키우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4개의 자신감이란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 길과 이론, 제도,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말한다. 즉 중국 청소년들이 서방의 자본주의와 다른 공산당 영도의 중국식 시장경제의 길에 자신감을 갖도록 장젠에 대해 교육하라는 지시이다.

중국 공산당이 어떤 목적을 위해 사회적 캠페인을 시작할 때는 반드시 그 모델이 되는 인물을 찾아 그를 우상화하고 그를 따라 배우자는 국민적 선전 공세에 돌입한다. 이어 그 지침에 따라 먼저 행동하는 조직이 나타나면 다른 조직들이 다투어 그 뒤를 잇게 되고 머지않아 사회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다. 예를 들어 1962년 22세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모범 병사 레이펑(雷鋒) 우상화 작업이 대표적이다. 대약진운동 실패 이후 경제가 피폐해지고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민을 공산혁명의 길로 매진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마오쩌둥은 레이펑을 발굴했다. 그의 일기에 적혀 있다는 ‘나는 국가와 인민을 위해 영원히 녹슬지 않는 작은 나사못이 되겠다’ 등의 내용을 선전하며 ‘레이펑을 따라 배우자”는 국가적 캠페인을 벌였던 것이다.

장젠은 정말 ‘민족기업가’의 표상인가

‘장젠’건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시진핑의 지시가 있은 지 불과 11일 만에 장쑤성 난퉁시 정부는 114년의 역사를 가진 한 초등학교 이름을 ‘장젠 제1초등학교’로 바꾸었다. 난퉁시 정부는 또 올 1월 6일 ‘장젠 기업가학원’을 설립했다. 일종의 경제경영 전문대학인 이 학원은 장젠과 같은 사회적 책임감을 갖춘 새로운 기업가 집단을 배양하는 것을 설립 목표로 삼았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해 12월 2일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제목의 평론에서 “장젠을 본받아 기업 발전과 국가 발전을 결합해 새로운 기술혁명과 산업변혁에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젠이 어떤 인물이기에 시진핑의 공산당이 21세기에 다시 소환한 것일까. 중국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1853년 장쑤성 하이먼(海門)에서 태어나 마흔한 살 되는 1894년 중앙과거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6품으로 한림원 수찬관(修撰官)으로 임명되었다. 2년 후 그는 양강총독(兩江總督) 장즈퉁(張之洞)의 지시를 받고 난퉁 지역에 대생(大生)방직공장을 설립하였고 민자 철도를 깔았으며 증기선을 도입했다. 그가 일생 동안 세운 기업이 20여개나 된다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서방 제국주의의 경제침략에 맞서 민족산업과 민족기업을 일으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장젠은 또 사범대학, 방직학교, 의학원, 농업학교 등 370여개의 학교도 세웠다. 그가 직접 세우거나 창설에 참여한 학교는 국립중앙대학, 난징(南京)대학, 푸단(復旦)대학, 상하이(上海)해사대학, 둥난(東南)대학 등 중국에서 손꼽히는 대학들이다. 이쯤되면 시진핑 정부가 그를 부활시켜 21세기 민족기업가의 모델로 삼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선전 내용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시드니 과학기술대학의 핑충이(馮崇義) 중국학 교수는 자유아시아라디오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헌법을 파괴한 시진핑이 헌정 운동의 아버지인 장젠을 선전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질타했다. 그에 따르면, 장젠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량치차오(梁啓超) 등과 함께 헌정운동과 입헌내각 운동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지고 난징 임시정부가 출범하자, 장젠은 입헌파를 중심으로 공화당을 창당하여 량치차오의 민주당과 연합하는 등 중화민국 개국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중화민국 임시정부에서 공상부장(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공산정권이 수립되기 훨씬 이전에 사망한 장젠이지만, 이런 개인적 배경 때문에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 그의 묘가 홍위병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4가지 구악 적폐’로 몰렸다고 한다. 홍위병들이 무덤을 파헤치는 장면을 목격한 그의 손녀 장뤄우(張柔武)는 무덤에서 나온 장례품이 모자 하나, 안경 하나, 접는 부채, 그리고 치아와 갓난아기 때 머리칼이 든 금속 소반 하나뿐이었다고 기억했다. 이것이 20여개 기업을 설립하고 370여개 학교를 세우고도 홍위병의 핍박을 받은 ‘장원(壯元) 실업가’ 장젠의 참모습이었다.

중국 공산당이 민족기업가의 표상으로 내세운 19세기 기업가 장젠. ⓒphoto 위키피디아
중국 공산당이 민족기업가의 표상으로 내세운 19세기 기업가 장젠. ⓒphoto 위키피디아

시진핑이 역사적 인물을 소환한 숨은 목적

이런 점에서 보면, 중국 공산당이 특정인을 선택해 국가적 캠페인에 활용하는 것은 그 인물의 실제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하다. 그 인물에게 선전 선동에 활용할 요소가 있으면 그것만 취사선택해서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공산당의 캠페인은 겉으로 드러난 명분만 보아서는 그 진의를 알 수 없다. 그 선전 작업이 누군가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인지도 살펴야 한다. 시진핑이 장젠을 소환한 것도 ‘그를 본받자’는 캠페인만 하기 위한 목적은 아닌 듯하다.

시진핑의 난퉁 방문은 공교롭게도 중국 IT기업 알리바바의 마윈(馬云)과 다우(大午)그룹의 쑨다우(孫大午) 등 대표적 민영기업가들이 정부의 핍박을 받던 시기와 겹친다. 마윈은 당시 자신의 금융기업 앤트파이낸셜(螞蟻集團)의 기업공개(IPO)가 취소되자 한동안 잠적해 실종설이 나돌았다. 농·목축업으로 중국 500대 기업에 들어간 다우그룹의 쑨다우는 바른소리를 하다 ‘소란을 일으키고 산업경영을 파괴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시진핑의 행보는 다분히 중국의 대형 민영기업가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중화권 언론은 해석하고 있다.

변화의 시기일수록 시대 흐름을 빨리 읽고 적응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지난 1월 6일 ‘장젠 기업가학원’ 설립 행사에 참석한 쑤닝(蘇寧)그룹 지주회사의 장진둥(張近東) 회장은 “민영기업의 대표로서 볼 때 큰 기업은 큰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이 작으면 개인 것이지만, 기업이 크면 사회의 것이자 국가의 것이다. 따라서 쑤닝이 한걸음 발전할 때마다 사회적 수요에 복무해야 하고, 국가정책에 복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중국어 매체 희망지성은 “알리바바 마윈이 처벌받은 것에서 교훈을 얻은 ‘늦가을 매미 효과(아무 소리를 내지 못하는 매미)’로 볼 수 있다. 자신(장진둥)의 평안을 얻기 위해 공산당에 충성을 맹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양회 기간 난퉁대학 스 총장의 제안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고, 그의 제안대로 장젠의 행적이 초·중·고 교과서에 실린다면, 이는 시진핑 정부의 ‘기업인 길들이기’가 더욱 강화된다는 신호로 봐도 될 것이다.

공산당에 충성 맹세하는 중국 기업인들

양회를 일주일 정도 앞둔 지난 2월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빈곤퇴치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를 표창하는 행사가 열렸다. 표창을 받은 1981명 가운데 기업가는 6명이었고, 그중 유일한 30대는 디디추싱(滴滴出行)의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 청웨이(程維)였다. 디디추싱은 모바일로 차량을 공유하는 서비스의 90% 이상을 점유하며, 3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청웨이는 표창장을 받는 자리에서 “탈빈곤 공격에서 전면적 승리를 거둔 위대한 시대에 산다는 게 너무나 흥분된다. 조국을 위해 당이 이룬 성과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디디추싱은 민영기업임에도 2018년 사내 공산당 조직을 이끌 당서기를 공모하면서 월 2만위안(약 350만원)의 급여조건을 내걸었다. 이는 중국 대졸자 평균 초임 5600위안의 3.6배 수준이다. 대정부 업무를 담당할 공산당원 출신의 직원도 새로 뽑았다. 이런 작업은 모두 민영기업의 ‘당성(黨性)’을 강화하고 인정받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청웨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의 연설을 듣고 가슴이 끓어올랐다. 젊은 IT 기업인으로서 탈빈곤에 참여하고 일정 부분 공헌한 데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서 쑤닝집단의 장진둥 회장 역시 단체 표창을 받았다.

장진둥과 청웨이는 최근 중국에서 부상하는 ‘홍색(紅色) 자본가’를 대표한다. 기업경영과 정치 사이에 거리를 두고자 했던 알리바바의 마윈 같은 1세대 기업인과 달리, 이들 홍색 자본가는 국가와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중시한다. 이들은 중국 공산당이 이룩한 성취에 자부심을 느끼고 중화민족주의 색채를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을 100년 전 제국주의 침략과 같은 도전으로 인식하고 미국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결의에 차 있다. ‘홍색 자본가’란 단어는 20세기 초반에 이미 만들어졌지만, 시진핑이 기업과 기업인을 통제하고 공산당 통치를 경제의 우위에 두기 위해 재소환한 개념이다. 장젠을 부활시킨 것도 같은 목적이다.

이제 중국에서 기업인은 단순히 돈만 벌어서는 안 되는 시대가 왔다. 사회적 책임이란 명분하에 당과 정부의 방침에 충실히 따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기준이 중국 기업뿐 아니라 외자 기업에도 확대 적용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는 시기에, 미국 GM이나 한국 삼성전자 같은 외자 기업이 중국 공산당의 정책 방향과 대외전략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중국 내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런 리스크와 딜레마에 대비해야 할 때이다.

지해범 전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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