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조앤 롤링. 윈스턴 처칠. 모건 월런. 시어도어 수스 가이젤.
(왼쪽부터) 조앤 롤링. 윈스턴 처칠. 모건 월런. 시어도어 수스 가이젤.

미국에서 요즘 문화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좌파진영이 보수적 관점을 가진 문화인이나 캐릭터들을 퇴출하는 이른바 ‘캔슬컬처(cancel culture)’ 운동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캔슬컬처의 대상에는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만화영화 ‘피터팬’과 ‘덤보’를 비롯,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기작가 조앤 롤링,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캔슬컬처에 대해 ‘탈레반’이나 ‘마오쩌둥주의’라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가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친 데 이어 문화계에도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웹스터가 정의한 cancel의 새로운 의미

‘cancel(캔슬)’은 본래 취소하거나 폐기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cancel culture(캔슬컬처)’를 ‘취소 문화’나 ‘문화 폐기’ 등으로 번역하면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1823년부터 간행된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올해 1월에 이 단어를 새로운 용어로 추가하며 인터넷판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cancel은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canceling과 cancel culture는 공인(公人)들의 못마땅한 행동이나 의견에 관한 대응으로 그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캔슬컬처에는 불매운동(boycott)이나 그들의 작품 홍보를 거부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미국에서 성폭력 등을 저지른 유명 연예인들에 대해 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관계를 끊을 때 사용하던 ‘cancel’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좌파의 문화전쟁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3월 초 디즈니사는 스트리밍 중인 만화영화 ‘덤보’와 ‘피터팬’에 대해 인종차별적 고정관념(racial stereotypes)을 담은 내용이 나온다는 이유로 접근제한 조치를 취했다. 영화 ‘스위스의 로빈슨 가족’과 ‘아리스토캣(Aristocats)’은 7세 이하 어린이용 관람 목록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디즈니는 지난해 10월에 “고정관념을 주입시킬 수 있는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나쁘다. 이를 제거하기보다는 그것들이 해악을 끼치는 영향을 인정하여, 그로부터 배우고 논쟁을 불러일으켜 더욱 포용적인 미래로 함께 나아가기를 원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3월 초에는 아예 자사 제작 영화들을 삭제한 것이다. 디즈니가 밝힌 우려되는 고정관념은 다음과 같다.

디즈니 ‘피터팬’ 접근제한 조치

‘피터팬’(1953)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붉은 사람들을 붉게 만드는 것(What Made the Red Man Red)’이라는 삽입곡에 대한 접근제한 조치를 내렸다. ‘스위스의 로빈슨 가족’(1960)에는 갈색 및 노란 피부의 해적들이 이 가족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외국인의 위협을 강조하는 고정관념(stereotypical foreign menace)’이라는 해석이다. ‘아리스토캣’(1970)에는 영어를 서툴게 하는 태국 고양이 슌곤이 젓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치켜올라간 눈매와 뻐드렁니는 아시아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라고 도마에 올랐다. ‘덤보’(1941)에 나오는 까마귀떼는 ‘얼굴을 검게 칠하고 누더기옷을 입고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을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인종차별적 음유시인에 존경을 표한다’는 이유로 문제가 됐다. 까마귀떼의 우두머리인 짐 크로(Jim Crow)는 인종분리를 강제한 법과 이름이 같다. 19세기 말에 제정된 짐크로법은 미국 남부에서 인종분리를 강제하였다.

만화 캐릭터 스컹크 ‘페페’ 논쟁

디즈니에 이어 워너브라더스사는 지난 3월 10일 만화영화 시리즈 ‘루니툰스’의 인기 캐릭터인 ‘페페 르 퓨’를 강간을 방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삭제했다. ‘페페’는 1945년 제작된 캐릭터로 프랑스 출신의 자아도취에 빠진 검은 스컹크이다. 페페는 흰 줄무늬가 있는 검은 고양이 페넬로페를 스컹크로 착각하고 구애하지만 늘 거부당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찰스 블로가 ‘페페 만화가 강간을 방조한다’고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한 직후 워너는 즉각 ‘페페’를 캔슬하며 다시는 이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워너의 조치가 논쟁을 일으키자 찰스 블로는 트위터에 페페가 페넬로페에 키스하는 만화를 링크하며 자신의 비판이 온당하다는 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1. 페페가 그녀가 동의하지 않는데도 강제로 껴안고 키스한다.

2. 그녀가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는다.

3. 그는 그녀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다.”

찰스 블로는 이어 “이는 소년들에게 여성의 ‘no’는 실제로 싫다는 의미가 아니며, 권력투쟁의 출발선에서 벌어지는 ‘game’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을 가르친다. 이 만화영화는 여성의 끊임없는, 육체적인 저항을 무시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존경할 만하며 재미있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심지어 여성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젊은 감독 팀 스콧은 이렇게 비판하고 나섰다.

“‘루니툰스’의 많은 동물 캐릭터는 롤모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가장 비합리적이고, 어리석고, 강박적이고, 괘씸한 행동을 한다. 그러한 성격상의 결점들 때문에 그것들은 비참한 실패를 반복한다. 이 때문에 도덕적으로 용납되며 볼수록 재미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스컹크 페페는 악취를 풍기지만 자신은 이 사실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악취 때문에 곁에 오기를 꺼리는데 자신만은 그 이유를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금방 망각하는 건망증이 심한 캐릭터도 페페라고 팀 스콧은 설명한다. “물론 페페는 혐오스럽다. 그 점이 이 페페라는 캐릭터와 만화의 전체적 관점이다. (NYT의) 해석은 매우 악의적이고 무자비하다.”

영화 ‘사랑과 영혼’으로 유명한 흑인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도 페페 캔슬을 비판했다. “페페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다른 스컹크를 덮쳤다고 쓴 글 몇 줄 때문에 페페를 캔슬하는 게 옳은 일인가.… 나는 당신들이 모든 것을 캔슬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페페를 좋아한다.”

캔슬컬처 대상이 된 만화 캐릭터. 왼쪽이 ‘페페 르 퓨’, 오른쪽이 ‘슌곤’.
캔슬컬처 대상이 된 만화 캐릭터. 왼쪽이 ‘페페 르 퓨’, 오른쪽이 ‘슌곤’.

조앤 롤링이 캔슬되는 이유

캔슬컬처는 방송가도 휩쓸고 있다. 미국 컨트리뮤직의 신성인 모건 월런이 공연 준비 중에 밴드 맴버에게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한 영상이 지난 2월 공개됐다. 그는 즉각 사과했지만, 전국적으로 400여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그의 노래를 방송 목록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그의 음반 판매량은 오히려 열두 배나 급증했다고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스가 보도했다.

출판계에서도 캔슬컬처가 진행 중이다. 미국의 아마존과 이베이는 ‘닥터 수스(Dr Seuss)’로 불리는 아동그림책 작가 시어도어 수스 가이젤(1904~1991)의 책 60여권 가운데 6권을 인종차별적 내용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판매를 중단시켰다. 닥터 수스의 가족이 운영하는 ‘닥터 수스 엔터프라이즈’가 지난 3월 2일 “잘못되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며 판매를 중단한 데 따른 조치이다. 문제의 책은 ‘내가 동물원을 운영한다면’ 등이다. 이 책들에 등장하는 아시아인 머리 위에 올라간 백인 남성, 풀로 만든 치마를 두른 흑인 남성 그림 등이 인종차별적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닥터 수스 시리즈는 100여개국에 판매되고 있으며, 영화나 TV시리즈로 제작된 것들도 많다. 닥터 수스는 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처럼 사후(死後)에도 거액을 벌어들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20년에도 3300만달러가량의 수입을 올렸다.

‘해리포터’ 시리즈로 억만장자가 된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맹렬히 비판했지만 트랜스젠더에 대한 견해 때문에 캔슬컬처의 대상이 되었다. 롤링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sex)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 때문에 비판받고 있다. 2019년부터 롤링의 입장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자 지난해 6월 트윗에 직접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성은 실재한다(Sex is real). 성에 대한 관념을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논란이 되는 젠더(gender)는 다른 문제이다. 트랜스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달거리를 한다.… 나는 트랜스 인간들(Trans people)이 스스로 옳고 편안하다고 느끼는 인생을 살 권리를 존중한다. 트랜스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들과 함께 시위에 나서겠다. 동시에 나의 삶은 여성이라는 사실로 형성되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증오를 조장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자 며칠 후에는 영화 ‘해리포터’에 헤르미온느 역을 맡았던 배우 엠마 왓슨이 이에 반대하는 트윗을 올렸다. “트랜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끊임없는 의문에 굴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누구라고 말하든 간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말하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엠마 왓슨의 이야기는 태어날 때의 성이 아니라 트랜스젠더가 주장하는 성을 받아들이라는 의미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트랜스 여성들이 여성 스포츠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뉴욕의 일부 진보적인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성을 구분한다는 이유로 ‘엄마·아빠(mom·dad)’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류에서 롤링이 캔슬컬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롤링은 캔슬컬처를 비판하는 문화인들의 선언서에 서명했다.

처칠은 앵글로색슨 우월성 주장했나

캔슬컬처는 학계에도 번지고 있다. 지난 2월 11일 영국 케임브리지의 처칠칼리지에서 개최된 ‘처칠의 인종차별 결과’라는 심포지엄이 대표적 사례다. 영국의 역사학자 앤드루 로버츠는 3월 내셔널리뷰 기고에서 “깨시민 비평가(Woke critics)들이 거짓으로 처칠을 더럽히려 한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심포지엄에는 3명의 처칠 비판자가 패널로 참석했는데, 프리얌바다 고팔 의장은 지난해 여름 BLM(Black Lives Matter) 시위 당시 “백인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다(White lives don’t matter)”라고 트윗을 올렸던 인물이다. 앤드루 로버츠는 “심포지엄에서는 기괴하고 비역사적이며 부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공격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케임브리지 같은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는 누구나 객관성과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는 참가자들이 제멋대로 처칠을 증오하는 자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참가자 중 버밍엄대학의 케힌드 앤드루스 교수는 처칠이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고 조롱했다. 그는 “처칠이 나가서 싸웠습니까? 분명히 아닐 겁니다. 그는 분명히 집에서 머물렀을 겁니다”라며 “2차대전은 그가 없었어도 같은 모양으로 끝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앤드루 로버츠는 전쟁이 발발했을 때 처칠의 나이가 65세로 징집연령을 초과했다는 사실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비판한다. 또 처칠은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을 동안 공군사령부 옥상에 올라가 지켜봤으며, 독일 전투기들의 작전 반경 내에서 여행할 정도로 용감했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그는 처칠의 부총리이던 클레멘트 애틀리가 말했듯이 “처칠이 없었으면 영국이 패했을 것”이라며 처칠의 연설이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독일과의 평화협정도 막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처칠 비판자인 케힌드 앤드루스는 “처칠이 당시에 인기가 없었다.… 그는 선거에서 뽑힌 적도 없었으며, 전후에는 낙선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갤럽 여론조사 결과 당시 처칠의 지지도는 전쟁 중에도 80%가 넘었고 세 차례나 93%를 기록하기도 했다. 처칠은 1945년 선거에서는 패했지만, 1951년 선거에서는 73%의 지지를 받고 압승했는데, 앤드루 로버츠는 영국이 대통령제였다면 처칠은 대통령에 무난히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팅엄대학교의 온예카 누비아 박사는 처칠이 백인우월주의자라고 비판했다. 비판자들은 처칠이 젊은 시절에 우생학에 관심을 나타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처칠이 “앵글로색슨의 우월성”을 언급함으로써 나중에 나치독일의 유대인 학살에도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누비아는 처칠이 쓴 37권의 책에서 영국인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은 “앵글로색슨의 우월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처칠이 영국인의 정체성에 관해 쓴 책에서도 피부색에 대해 말한 곳은 없었다고 앤드루 로버츠는 반박한다.

좌파가 주도하는 캔슬컬처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의 경계심은 무척 높다. 3월 초 개최된 보수주의정치행동(CPAC)의 올해 구호는 ‘캔슬되지 않는 미국인(American Uncancelled)’이었다. 캔슬컬처를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결의가 담겨 있는 듯하다. 최근 루이지애나 출신의 팀 스콧 상원의원(공화)도 캔슬컬처에 대해 “당파적 문화전쟁(partisan culture war)”이라고 비판했다. 흑인인 그는 폭스TV와의 인터뷰에서 “깨시민 우월주의(woke supremacy)나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는 인종차별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이 나쁘다”고 강조했다.

뉴욕의 유대인 사립대학 튜로칼리지의 종신교수인 테인 로젠바움은 최근 캔슬컬처를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원리주의 정권이었던 탈레반에 비유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여성에게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색 부르카를 입도록 강제했으며, 불교 유적인 바미얀석불을 폭파하는 등 문화 파괴를 저질렀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의 후손이며 진보적 방송국에 비평가로 나서기도 하는 테인 로젠바움은 캔슬컬처 주동자들이 자신들의 도덕관을 위협과 협박을 통해 사회에 강요한다는 점에서 “연성(軟性) 탈레반(soft version of the Taliban)”이라고 말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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