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도쿄에서 열린 쿼드 화상 회의에서 스가 일본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2일 도쿄에서 열린 쿼드 화상 회의에서 스가 일본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월 미국의 조 바이든 민주당 정권 출범 후, 인도·태평양 구상과 짝을 맞추어 자주 회자되는 외교·안보 개념이 쿼드(QUAD)다. 쿼드는 원래 영어로 네 개나 사각형을 뜻하는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의 안보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인다.

쿼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제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에 대항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FOIP)’ 전략을 핵심적으로 이끌어갈 협력체로서 주목받는다.

저작권자는 아베 전 총리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은 쿼드나 인도·태평양 구상 모두 일본이 15년 전부터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사실상 ‘저작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원천기술은 없지만, 외국 제품과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쿼드 및 인도·태평양 구상도 이 같은 일본의 DNA로부터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쿼드는 2004년 약 30만명 가까이 사망한 인도양 지진해일(쓰나미)을 계기로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필요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온 자연재해에 공동대응하자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 같은 논의를 외교·안보적 개념으로 끌어올려 정립한 정치인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다. 2006년 관방장관이었던 아베는 일본의 총리로 직행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준비하면서 미래 구상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国へ)’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당시 수십만 부가 팔릴 정도로 주목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일본, 인도, 호주 그리고 미국과의 연계’라는 장(章)을 만들어 이같이 역설했다.

“일본, 미국, 인도, 호주 4개국의 정상과 외교장관 레벨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전략적 관점에서부터 협의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것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15년 전에 쿼드 정상회의, 쿼드 외교장관 회의를 주창한 것이다. (이 책에 한국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특히 제휴 국가로 인도에 주목했다. 미·일 동맹만으로 중국에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인구 13억이 넘는 인도와의 협력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베는 인도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1957년 인도 방문을 거론하기도 했다. 당시 네루 인도 총리가 기시 총리를 환영하면서 “(인도를 식민지배한) 영국에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래서 우리도 인도의 독립에 일생을 바칠 결심을 했다”며 일본을 높이 평가했다고 썼다.

아베는 2007년 총리 자격으로 인도를 방문, 당시 의회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도 그는 태평양과 인도양의 합류 필요성을 역설하며 쿼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상회담, 외교장관회담까지 포괄하는 쿼드 결성은 아베가 총리 취임 후 건강악화로 1년 만에 사임함으로써 잊히는 듯했지만, 아베는 2012년 2차 집권을 시작하면서 더욱 정교해진 쿼드 아이디어를 들고나왔다. 그는 총리에 취임하기 직전 발표한 논문에 쿼드 구상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일본·인도·호주를 잇는 선을 통해 다이아몬드 모양의 협력체를 만들어 나가자고 했다.

2016년엔 ‘자유롭고 열린 태평양 구상(FOIP)’을 발표하며 ‘자유와 번영의 호(弧·활모양의 지역)’와 가치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베의 쿼드 및 인도·태평양 구상은 2017년 더 늦기 전에 중국을 억눌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을 맞아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아베의 구상을 그대로 받아들여 마치 자신의 정책처럼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와이의 미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명칭을 바꿔서 역할을 확대한 것은 그 서막이었다.

‘아시아로의 귀환’ 영국이 한국 대신 참가?

2017년 쿼드 국장급 회담이 처음 열린 데 이어 2019년 뉴욕에서 첫 외교장관 회담이 개최돼 연대를 과시했다. 지난해부터는 쿼드 국가가 모두 참가한 가운데 군사훈련도 실시됐다.

2020년 10월 도쿄에서 열린 제2회 쿼드 외교장관 회의는 코로나19 사태 중에 열렸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 회의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이같이 선언했다. “우리 4개국은 민주주의, 법치, 자유경제라는 기본적 가치관과 지역의 책임 있는 파트너로서 규칙에 따라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를 강화해간다는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의 바이든 신(新)행정부 출범으로 ‘쿼드 2.0’이 시작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화상회의를 통해 지난 2월 외교장관회담에 이어 지난 3월 12일에는 정상회의를 잇달아 개최했다. 일본의 국책대학인 정책연구대학원대학(GRIPS)의 인도·태평양연구회가 지난해 10월 쿼드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한 지 5개월 만이다. 일각에서는 쿼드가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공식 협의체로 발전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쿼드의 사실상 사무국으로 활동하는 분위기다. 일본은 미국을 대신해서 쿼드에 소극적인 인도를 적극 설득하는 역할을 맡았다. 일본은 유럽의 주요 국가를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데도 적극적이다. 지난 2월 영국과의 외교·국방장관(2+2) 회의를 통해 영국이 올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퀸엘리자베스항모 전단을 파견, 미국과 함께 공동훈련을 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 독일과도 협의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군함을 파견받아 중국 견제에 나서기로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쿼드에 문재인 정부는 부정적이다.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한국이 참여하기를 바라지만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쿼드 참여 논의조차 금기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쿼드가 한국 대신 영국을 포함해 퀸텟(quintet·5인조)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영국 언론은 올 초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인도를 방문할 때 쿼드 참여 문제에 대해 협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영국 보수당에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싱크탱크 ‘폴리시 익스체인지’는 영국의 쿼드 참가를 제언했다. 지난해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새로운 활로를 모색 중인 영국은 ‘아시아로의 귀환’ 정책을 추진 중이어서 쿼드가 영국을 포함한 퀸텟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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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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