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좌초돼 수에즈운하 통행을 일주일간 가로막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3일 좌초돼 수에즈운하 통행을 일주일간 가로막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3일 발생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의 좌초로 중단됐던 수에즈운하의 통행이 일주일 만인 29일 재개되었다. 에버기븐호 좌초로 수에즈운하가 봉쇄되는 동안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해운도 사실상 중단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뜩이나 국제 공급망(supply chain)에 타격이 가해진 상황에서 발생한 에버기븐호 사태는 글로벌 시대의 국제 공급망과 해상운송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보험료 등 해상운송에 드는 비용의 급등과 그에 따른 물가인상 등도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극해항로(NSR·Northern Sea Route)를 수에즈운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수에즈운하 세계 교역량의 12% 차지

수에즈운하가 평시에 발생한 사고로 일주일이나 운영이 중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버기븐호 좌초 직후 이집트 당국은 이틀이면 사고가 수습되어 운하가 재개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런데 구조작업을 맡은 네덜란드의 보스칼리스사는 수 주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도 빨라야 3월 31일에나 수에즈운하 통행이 재개된다고 보도했다. 에버기븐호 구조작업이 어려웠던 이유는 워낙 큰 배의 선수(船首)가 운하의 제방에 파묻혔기 때문이었다. 에비기븐호의 길이는 400m로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높이와 같다. 폭은 60m이며, 컨테이너 2만개, 20만t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다. 에버기븐호에 실린 화물의 총가격은 10억달러에 달한다. 화물선이 대형화할수록 사고가 발생하면 수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좌초한 에버기븐호를 물에 다시 띄우려면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하여 12~16m가량 들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2만개의 컨테이너 중 상당수를 내려야 하는데 사고현장에는 하역장비인 크레인이 없다. 결국 미국 해군까지 동원되어 뱃머리 밑에 있는 모래와 흙 2만㎥를 준설하였다. 때마침 만월(滿月)로 수에즈운하의 바닷물이 불어난 덕분에 배를 다시 물 위에 띄울 수 있었다고 한다.

수에즈운하는 1869년 완공 이후 거의 중단 없이 운영되어 왔다. 수에즈운하는 중동에서 전쟁이 발생했을 때 봉쇄된 적이 있다.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 직후 영국·프랑스·이스라엘 등이 출병(出兵)하였을 때 나세르가 운하의 통행을 막아 1957~1958년에 잠시 통행이 중단되었다. 1967년과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당시에도 수에즈운하는 일시적으로 통행이 중단되었다. 그후 지난 50년 동안은 봉쇄된 적이 없다.

국제화(globalization)가 확산되어 동서양의 교역량이 늘어나면서 수에즈운하의 중요성도 더욱 커졌다. 1980~2019년 동안 국제무역의 규모는 10배가 증가하였다. 2019년 국제무역 규모는 19조5000억달러에 달했다. 화물수송의 80%를 차지하는 해운 화물량도 급증했다.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화물량은 세계 교역량의 10~12%를 차지한다. 수에즈운하 통행 화물이 급증하면서 수에즈운하의 확장과 준설공사도 매년 진행되어 왔다. 수에즈운하 최종 확장공사는 2015년에 끝났다.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당국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화물의 양은 10억t에 달한다. 이는 파나마운하 통과 화물량의 4배이다. 하루에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화물의 가격은 100억달러나 된다. 수에즈운하 당국은 운하 재개 직전에 운하 통과를 위해 대기 중인 화물선은 370여척, 유조선은 25척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수에즈운하의 하루 수입은 1200만~1300만달러에 달했다.

수에즈운하는 유럽과 미국으로 향하는 중동석유가 운송되는 항로이기도 하다. 미국 에너지정보국에 따르면 세계 석유의 10%와 액화천연가스(LNG)의 8%가 수에즈운하를 통해 운송되고 있다. 매일 60만배럴의 석유가 수에즈운하를 통과한다. 반대로 유럽에서 정제된 유류제품도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다시 중동과 아시아로 향한다. 중동에서 출발한 유조선이 수에즈운하를 지나 이탈리아의 정유공장에 도착하는 데 2주일이 걸린다. 특히 수에즈운하는 LNG의 중요 수송로이다. 카타르에서 생산되는 LNG는 수에즈운하를 통해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폴란드로 향한다. 2020년의 경우 카타르에서 출발하여 수에즈운하를 지나 유럽과 터키로 향한 LNG선은 모두 276척이었다.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기존 항로와 북극해항로 비교. ⓒphoto 이코노미스트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기존 항로와 북극해항로 비교. ⓒphoto 이코노미스트

수에즈운하 봉쇄로 시간당 4억달러 피해

무역량이 늘어나면서 운하를 지나는 화물선이나 유조선 등의 크기도 대형화하였다. 에버기븐호처럼 대형 화물선의 통행은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화물 수송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 보험료 등이 급등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등 선진국들의 수입이 급증하면서 해상운송 비용은 이미 인상되었다. 일례로 S&P의 조사에 따르면 40피트 컨테이너 운송가격도 지난해 6월의 1040달러에서 올해 3월 1일 4570달러로 4배나 급등했다. 여기에 보험료와 연료비 등이 더 오르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CNN은 경고했다.

에버기븐호 사고는 대형 화물선을 이용한 화물의 적기(適期) 공급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부품의 적기 공급은 제조업에서 필수이다. 단 한 가지의 부품이라도 적기에 공급되지 않으면 공장은 가동을 중단하고 근로자는 휴무한다. 생산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드리스트는 이번 수에즈운하 봉쇄로 세계경제에는 시간당 4억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수에즈운하가 봉쇄될 경우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인 희망봉을 우회해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럴 경우 항로는 9000㎞가 늘어나고 연료비는 화물선의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40만달러가 추가된다. 현재 카타르에서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여 유럽으로 가는 데는 17일이 걸리지만, 희망봉을 돌아가면 27일이 소요된다. 석유 100만배럴을 선적할 수 있는 수에즈맥스(Suezmax)급 유조선을 빌리는 비용은 하루 1만7000달러 수준이다. 희망봉을 돌아가면 용선료만 20만달러 가까이 더 드는 셈이다.

희망봉항로 용선료만 20만달러 더 들어

뿐만 아니라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 출몰하는 해적의 위험성도 심각하다. 우리나라 국방부도 지난 3월 29일 청해부대를 아덴만 일대로 이동시켜 수에즈운하에서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한국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작전 활동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축함 한 대로 그 많은 선박을 보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가 비용·시간·안전 등의 요인 때문에 여의치 않자 러시아는 북극해항로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북극해항로는 러시아의 북극해 지역인 카라해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베링해협에 이르는 항로이다. 추운 날씨 때문에 일 년 내내 얼음이 얼어 항해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지구온난화로 여름에는 얼음이 녹아 항해가 가능해지면서 새로운 뱃길로 주목을 끌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1년 “북극은 세계 최대의 시장인 유럽과 아시아 태평양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항로”라며 북극해항로가 “비용을 최적화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지난 10년 동안 북극해항로 개발을 위한 쇄빙선 건조, 수색 및 구조장비 제작, 그리고 안전한 항해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수십억달러를 투입했다. 푸틴은 2018년부터 북극해항로를 활용한 시베리아 천연가스 수출을 국책사업으로 선정하고 적극 추진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수에즈운하 봉쇄 사태를 맞아 러시아 당국은 북극해항로 홍보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는 최근에는 북극해가 얼어붙는 겨울에도 항해에 지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북극해를 담당하는 에너지회사 로사톰(Rosatom)은 지난 3월 26일 트위터에 “수에즈운하 사태가 지겨운가. 로사톰은 (수에즈운하의) 대안으로 러시아의 북극해항로를 권장한다”며 북극해의 얼어붙은 바다에서 러시아가 제작한 핵추진 쇄빙선과 아시아로 향하는 대형 유조선이 나란히 항해하는 사진을 올렸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북극해항로는 수에즈운하를 통하는 항로보다 거리가 40%나 짧다. 그렇다고 해서 비용이 40%가 적게 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극해항로는 아직은 수에즈운하는 물론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에도 경쟁이 되지 못한다고 서구 언론들은 전한다. 실제로 러시아 야말에서 생산한 LNG도 수에즈운하를 지나 아시아로 수출된다. 야말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는 여름에는 북극해항로를 통해 아시아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에버기븐호 사태가 발생한 3월 말에도 북극해항로는 얼음으로 막혀 있었다. 야말에서 아시아로 가는 LNG선은 우선 러시아의 쇄빙선을 타고 유럽으로 간 다음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에서 일반 화물선에 옮겨지고 수에즈운하를 통해 아시아의 중국·인도·파키스탄·대만 등으로 향한다. 2020년에 수에즈운하를 통해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한 LNG선은 112척이었는데 가장 많이 사용한 곳도 러시아의 야말 LNG 프로젝트였다.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 등에서 출발한 유조선들도 모두 러시아 야말의 화물이었다.

지난 3월 26일 트위터에 올라온 러시아 쇄빙선과 유조선의 북극해 항해 장면. ⓒphoto 트위터
지난 3월 26일 트위터에 올라온 러시아 쇄빙선과 유조선의 북극해 항해 장면. ⓒphoto 트위터

러시아 LNG선 두 척 겨울 북극해항로 개척

러시아는 오브만(灣)과 야말에서 생산하는 LNG를 1년 열두 달 북극해항로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에 수출하는 것이 숙원이다. 북극해항로를 통한 시베리아의 석유 및 천연가스의 아시아 수출이 러시아의 미래 경제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북극해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항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북극 관련 뉴스사이트인 ‘아틱투데이(Artic Today)’가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의 LNG 생산회사인 노바텍은 지난 3년 동안 항해 시즌인 여름에는 야말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북극해항로를 통해 한국·중국·일본 등으로 운송했다. 그런데 올 1월에는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쇄빙선의 호위 없이 쇄빙 기능을 갖춘 니콜라이 예브게네프 호와 크리스토프 드 마르게리 호 등 LNG선 2척이 시베리아의 사베타항을 출발해 북극해항로를 경유하여 한국과 중국에 도착했다고 한다. 북극해의 항해 시즌은 보통 11월에 끝난다. 그러나 1월 항해에 성공하자 러시아는 1년 내내 북극해항로의 이용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LNG 가격은 동북아시아에서 겨울 동안 가장 높은 시세를 형성하기 때문에 노바텍은 한국·중국에 이어 일본에도 시베리아산 LNG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노바텍은 2030년까지 모두 50척의 LNG선을 건조하여 1년 내내 아시아 수출시장에 투입할 작정이다.

그러나 겨울 북극해 항해가 쉬운 일은 아니다. 니콜라이 예브게네프 호의 한국 항해를 위해서도 수 주에서 수 개월 동안의 치밀한 사전준비가 있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극해 항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마르테크폴라컨설팅의 데이비드 스나이더는 “LNG처럼 값비싼 화물을 실은 배가 바다에 얼어붙으면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항해였던 만큼 러시아 당국이 “항해의 위험성이 낮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후가 아무리 이상적인 조건이라 하더라도 선원들은 하루 24시간을 암흑 속에서 지내야 한다”며 “북극 겨울의 혹한과 암흑 속에서 지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덧붙였다.

얼음바다 항해의 어려움

프랑스 해양연구소의 에르베 바우두 교수는 러시아 LNG선들이 섭씨 영하 52도에서 운항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발효된 국제해양기구의 북극해항해규칙(Polar Code)에 따르면 극지방을 항해하는 선박의 선원들은 얼어붙은 바다 항해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선박들도 얼음바다 항해에 필요한 아이스 레이더와 강력한 서치라이트 등의 특수장비를 갖추어야만 한다. 일반적인 바다 항해는 사전에 정해진 항로를 따라가는 반면에 북극 항해는 실시간으로 항로를 찾아간다. “얼음바다를 항해할 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얼음의 변화에 맞추어가며 항로를 예상하는 일이다. 보통 항해에서는 기상학에 따라 최적의 항로를 예상해낼 수 있지만 얼음바다에서는 일주일 동안 얼음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다”고 에르베 바우두 교수는 설명했다. 러시아는 그러나 인공지능(AI)을 활용하여 얼음바다 항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러시아 노바텍의 LNG선 항해가 성공적이었다 하더라도 일반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선의 북극해 항해는 회의적이다. 덴마크의 매르스크(Maersk)사는 2018년 여름에 컨테이너선 한 척의 북극해항로 시험항해를 실시했다. 이 회사는 시험항해가 끝난 뒤 가까운 장래에 북극해항로를 이용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제환경단체들도 환경오염을 이유로 북극해항로에 반대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2019년 8월 “북극해 항해가 결국에는 인류 모두를 사망에 이르게 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북극해항로가 국제항로가 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 문제 때문이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유엔해양법협정(UNCLOS·UN Convention on the Laws of the Sea)에 따라 국제항로에 대한 군용 선박의 자유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해역이 자국의 안보와 자원 개발 등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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