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최신예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호. ⓒphoto 뉴시스
영국의 최신예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호. ⓒphoto 뉴시스

1837년 영국 동인도회사는 당시 최대 제철소 겸 조선소였던 버컨헤드(Birkenhead) 철공소에 군함 6척을 은밀히 주문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배의 이름은 ‘네메시스(Nemesis)’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여신이다. 정부가 아닌 무역회사가 발주한 이 군함은 두 가지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첫째, 세계 최초로 선체 전부를 철판으로 만든 전함이었다. 둘째, 60마력짜리 증기(蒸氣) 엔진 2대를 장착한 최초의 동력선이었다. 두 개의 돛대도 달아 순풍에는 풍력을 이용하고, 거친 파도에는 증기 엔진을 가동해 7~8노트(시속 13~15㎞)로 항해할 수 있었다. 선체는 길이 56.1m, 폭 8.8m로 요즘 구축함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지만, 32파운드 선회포(旋回砲) 2문, 6파운드 포 4문, 로켓 발사대 1개를 장착,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내부에 방수 격벽(隔壁)을 두어 적의 포탄을 맞아도 큰 타격이 없었으며, 흘수선(吃水線)이 낮아(1.8m) 수심이 얕은 해안이나 강에서도 신속히 움직였다. 네메시스호(號)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의 조선 기술과 무장 능력이 만들어낸 최첨단 군함이었다.

180년 전 중국을 짓밟은 영국 군함

1839년 11월 23일 진수식을 가진 이 군함은 이듬해 3월 영국 포츠머스항을 출항, 남하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서 보급품을 가득 채운 네메시스호는 1840년 11월 말 중국 광둥성 앞바다에 나타났다. 당시 영국은 1차 아편전쟁에서 승리하여 중국으로부터 홍콩의 할양과 600만달러의 배상금 지급을 약속받았지만, 양국 황제(청의 도광제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불만으로 약속은 흐지부지되고 전투는 계속되었다. 1841년 1월 주강(珠江) 삼각주 전투에 투입된 네메시스호는 바람과 조수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해안을 누비며 중국 범선 전함들에 포도탄(9개의 작은 탄환으로 채워진 포탄)과 대포, 로켓포를 퍼부어 침몰시켰다. 300여개의 대포로 3개 방어선을 구축한 중국의 후먼(虎門) 포대도 영국 해군의 함포사격에 무력화되었다. 네메시스호가 다른 군함들을 이끌고 주강을 거슬러 올라 광저우(廣州)로 접근하자 중국인들은 뒤로 나자빠졌다. 서양의 전함이 수심이 얕은 주강으로 진입하는 것을 그들은 처음 보았다. 중국인들은 네메시스호를 ‘복수의 여신호(復仇女神号)’ ‘악마의 배’라 불렀다.

1841년 8월 네메시스호를 앞세운 영국 함대는 북진하여 샤먼(廈門)과 닝보(寧波)를 점령했다. 이듬해 봄 인도에서 지원 병력이 도착하자 영국군은 다시 북상하여 1842년 6월 상하이(上海)를 점령하고 7월에는 전장(鎭江)을 손에 넣었다. 남방의 물자를 베이징으로 실어나르는 대운하와 양쯔강 하류의 수로가 영국군에 의해 봉쇄되었다. 영국 전권대사 헨리 포틴저는 그해 8월 5일 청의 강화(講和) 요구를 묵살하고 명(明)의 수도였던 난징(南京)까지 밀고 올라가 난징 성벽을 포위했다. 다급해진 청(淸) 조정은 평화회담을 제의했고, 1842년 8월 29일 양쯔강에 정박 중인 영국 군함 콘월리스(Cornwallis)호에서 ‘난징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영국이 홍콩섬을 영구히 소유하고, 청은 5개 항구도시(광저우, 푸저우, 샤먼, 닝보, 상하이)를 개항하며 전쟁배상금 1200만달러를 영국에 지불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불평등조약이었다. 이로써 아시아의 패권국 청은 유럽 신흥제국 영국에 무릎을 꿇었고 그 후 100년간 제국주의 열강에 시달렸다. 훗날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19세기 중반 영국에 의해 강제 개항된 5개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먼저 전개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중국인들에게 아편전쟁은 치욕(恥辱)의 역사이다. 중국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 역사를 ‘결산(算賬)’하고자 한다.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첫 번째고, 힘을 길러 서구 열강을 넘어서려는 것이 그 두 번째다. 중국은 1957년 패전의 현장인 광둥성 둥관(東莞)시 후먼(虎門)에 80만㎡(24만평)의 부지를 조성, 아편전쟁박물관과 해전(海戰)박물관, 린쩌쉬(林則徐)기념관을 지어 청소년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도 가르치고 있다. 광시(廣西)사범대학출판사는 아편전쟁 180주년인 2020년 미국의 역사학자 아드리안 G. 마셜이 쓴 ‘NEMESIS-The First Iron Warship and Her world’를 번역, ‘복수의 여신호(復仇女神号)’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치욕을 잊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다. 시진핑이 추구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중국몽(中國夢)은 두 번째 전략이다. ‘위대한 부흥’이란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도약해 과거 서구 열강에 당했던 국치(國恥)를 씻자는 것이다. 그의 중국몽은 강한 군대(强軍夢)와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세계전략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홍콩 민주주의 붕괴에 분노하는 영국

2차 대전 이후 유럽으로 돌아갔던 영국의 군함이 다시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과거 영국군의 아시아 진출이 아편을 팔고 식민지를 개척하는 ‘더러운 전쟁’ 목적이었다면, 2021년 회귀는 ‘자유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의 수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공통점은 그 대상이 모두 ‘중국’이란 점이다. 영국의 향후 외교안보 정책 방향은 올 3월 발표한 국가안보검토보고서(Global Britain in a Competitive Age)에 잘 드러나 있다. 이 보고서에서 영국 정부는 영국 국민을 결속시키는 3가지 근본 국익(주권, 안보, 번영)과 함께 민주주의 가치와 보편적 인권, 법치, 언론과 신앙의 자유, 평등에 대한 약속을 언급했다. 영국은 또 보고서에서 미래 개방된 국제질서의 형성과 개방성이 주는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국내 및 해외에서 안보와 국방을 강화하고,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에서 탄력 회복성(resilience)을 구축할 것을 강조했다. 영국은 또 중국을 경쟁자로 규정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EU에 치중하던 안보의 범위를 인도·태평양지역으로 확대할 것을 다짐했다.

영국의 첫 번째 군사행동은 최신예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호의 아시아 진출이다. 2016년 취역한 이 항모는 올해 여름 네덜란드 구축함과 함께 인도·태평양으로 출동해 미국·일본 등 ‘쿼드(QUAD)’ 국가들과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한 뒤, 9월쯤에는 한국도 방문할 계획이다. 항모 퀸엘리자베스호는 배수량 6만5000t의 재래식 디젤엔진 및 가스터빈 추진 항모로 활주로 길이는 280m이며 최대 60대의 항공기(F-35C 전투기, 치누크 헬기, 아파치 헬기 등)를 탑재할 수 있다.

애너벨 골디 영국 국방부 차관은 지난 4월 7일 박재민 한국 국방부 차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을 ‘주요 지역 파트너 국가’로 언급하고, “한국과 영국이 국방 분야에서 교류 및 협력을 확대하고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서도 협력을 증진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골디 차관은 올 9월 퀸엘리자베스호의 한국 입항계획에 대해서도 한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영국의 한 매체는 영국 정부가 퀸엘리자베스 항모의 체계와 디자인을 한국 측에 제안하는 등 군사협력 의사를 전달해 양국 간 비공식 대화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영국이 아시아에 본격 개입하게 된 것은 지난해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시행한 이후부터다. 영국은 1997년 홍콩 반환 때 중국이 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약속이 이 법으로 인해 깨졌다고 보고 있다. 영국은 지미 라이(黎智英·라이치잉) 같은 비판적 언론인과 홍콩의 민주운동가들이 대거 체포되는 등 홍콩의 ‘영국식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데 분노했다. 영국은 이때부터 중국의 인권침해와 반민주행위, 국제관례의 파괴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武漢)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의 발원지 조사를 미국보다 강하게 요구한 나라도 영국이다.

영국은 지난해 5월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가진 홍콩 주민 31만4000여명에게 원하면 영국 시민권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올 1월 말부터 BNO 여권을 가진 홍콩 주민과 그 가족에게 특별비자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그 대상자는 290만명으로 홍콩 인구(750만명)의 39%에 달한다. 여기에 6개월 단기비자(LOTR)로 영국에 입국할 70만명까지 합치면, 홍콩 주민의 절반이 ‘중국화된 홍콩’을 떠날 수 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영국 국영방송 BBC는 올 2월 중국 신장(新疆)웨이우얼 지역의 강제 재교육시설에서 위구르족 여성에 대한 중국인 남성들의 집단강간 등 인권침해 행위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BBC는 수용시설을 탈출한 위구르족 여성들과 경비원 등의 증언을 토대로, 수용시설 내에서 중국인 남성들이 거의 매일 밤 20대 초반의 젊은 위구르족 여성들을 끌어내 집단강간과 구타, 강제 피임 등의 폭력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의 폭로 이후 영국은 중국국제TV(CGTN)의 방송면허를 취소했고, 중국도 BBC월드뉴스의 중국 내 방영을 금지하는 등 서로 보복 조치를 주고받았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를 보면, 영국인들은 지난해부터 중국을 제대로 상대해주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독일·프랑스 군함도 아시아로 향한다

중국을 겨냥한 유럽 국가는 영국만이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일의 행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13일 일본과 독일은 양국의 외무·국방장관이 참가하는 제1회 2+2 회담을 가졌다. 화상으로 이루어진 이날 회담에서 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증대하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합의를 이뤘다. 합의 내용 중 주목을 끄는 대목은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부문이다. 양국 장관들은 먼저 “무력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일방적 시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법치에 기반한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 사실상 중국을 지목했다. 양국은 이어 동(東)중국해와 남(南)중국해의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고, 일본은 ‘해안경비대법(중국명 海警法)’ 등 중국의 최근 조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홍콩 상황과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독일 정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정책지침을 수립하고, 해군 호위함(구축함)을 배치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점이다. 독일 구축함은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 북한 관련 선박의 불법 환적에 대한 공동 감시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양국이 겉으로는 ‘북한 감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견제용이란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일본과 독일은 방위 장비 분야와 정보 보안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2차 대전 전범국(戰犯國)이었던 양국이 종전 이후 이처럼 긴밀하게 군사협력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독일의 군함 파견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쿼드’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으로 구성된 ‘쿼드’에 영국과 독일·프랑스가 가담한다면 ‘아시아의 나토’, 즉 ‘인도·태평양 조약기구’ 같은 안보협력체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차례나 전쟁을 일으킨 유럽의 강대국 독일이 아시아로 군함을 파견하는 것에 대해 중국 못지않게 러시아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프랑스는 독일보다 더 적극적이다. 지난 4월 5~7일 인도 벵골만에서 진행된 ‘쿼드’의 해상 합동훈련에 프랑스 해군의 강습상륙함인 토네르함과 구축함인 쉬르쿠프함 등 2척이 합류했다. 쿼드 4개국 군사훈련에 다른 나라 군함이 참가한 것은 프랑스가 처음이다. 이번 훈련의 명칭이 ‘라 페루즈’로 정해진 것은 1780년대 인도·태평양 지역을 탐험한 프랑스 해군 장교 라 페루즈 백작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만큼 이번 군사훈련은 프랑스군의 참여에 초점이 맞춰졌다. 인도 주재 프랑스 대사는 “이번 훈련은 뜻을 같이하는 5개국 해군이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전술을 가다듬으며, 해상협력을 증진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군함 2척은 7월까지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되어 남중국해를 통과해 일본으로 향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프랑스의 여성 국방장관 플로랑스 파를리는 지난 2월 자국의 핵잠수함 에메로데함이 남중국해에 진출한 사진을 이례적으로 트위터 계정에 공개했다. 통상 핵잠수함의 활동 범위는 군사기밀에 속한다. 그는 “우리가 어떤 바다를 항해하든, 유효한 유일한 규칙은 ‘국제법’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고 미국이 강조하는 ‘항행의 자유’ 원칙을 지지하는 행동이었다. 또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 4월 13일 인도 델리에서 열린 인도·호주 외무장관과의 3자 회동에 참석했다. 프랑스 정부의 눈길이 아시아로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국제 질서, ‘중국 대 반(反)중국’으로 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12일 화상으로 열린 쿼드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은 모든 국가의 미래에 필수적”이라며 “쿼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협력을 위한 중요한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의 군사력과 경제력 증강에 맞서기 위해 쿼드 참여국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 모든 동맹과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화상회의에 참석한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정상은 올 연말 대면(對面) 정상회의 개최에도 합의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회담 브리핑을 통해 “정상들은 주요 현안에 대한 실무그룹을 출범시키기로 합의했으며, 6G(6세대 이동통신) 같은 핵심 기술의 표준 확립을 위한 그룹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쿼드 플러스(Quad+)’의 협력 분야가 정보통신 등 차세대 기술 분야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래 기술 표준에서 중국이 배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제질서의 흐름이 외교안보, 경제,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 대 반(反)중국’의 구도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국제사회에는 중국의 독단적 행동을 그냥 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중국은 국제법을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국가에는 이빨을 드러내며 보복을 위협하고 있다. 2016년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의 권리를 인정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을 중국이 무시하고 난사군도에 군사기지를 건설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이를 비판하는 국가를 향해 중국의 ‘늑대 전사(戰狼) 외교관’들은 험악한 말로 위협하거나 경제보복을 거론한다. 심지어 중국은 한국의 김치와 한복에 대해 ‘중국 기원설’을 주장하며 ‘문화 패권주의’ 경향마저 드러냈다. 중국이 ‘국제 왕따’가 된 것은 대부분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

중국으로서는 이러한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다. 180년 전의 국치를 씻고 이제 제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 미국 등 강대국의 견제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여론을 움직이는 것은 ‘진영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와 인권, 언론과 종교의 자유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이다. 중국이 홍콩인의 민주적 요구를 짓밟고 위구르족의 생존을 위협하며, 아시아 약소국들을 힘으로 짓누르면서,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대접’을 요구할 수는 없다. 중국의 횡포는 시진핑 시대 들어 더욱 심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강압 외교’가 공산당 전체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말해준다. 즉 중국이 바뀌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중국 견제’도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중국에서 시진핑 일인 독재는 당분간 강화될 전망이다. 중국의 행동도 바뀌기 어렵다는 얘기다.

2021년 이후의 국제질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며 눈에 불을 켠 중국과, 베이징 공산당 정권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해 인도·태평양으로 재집결하는 자유민주진영 간의 힘겨루기로 재편될 전망이다. 이 대변화의 시기에, 국익 측면에서나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나,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지해범 전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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