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연정의 두 주역. 왼쪽이 원내 2당인 예시아티드당의 야이르 라피드 당수, 오른쪽은 극우 성향의 야미나당을 이끄는 나프탈리 베네트 전 국방장관. ⓒphoto 뉴시스
이스라엘 연정의 두 주역. 왼쪽이 원내 2당인 예시아티드당의 야이르 라피드 당수, 오른쪽은 극우 성향의 야미나당을 이끄는 나프탈리 베네트 전 국방장관. ⓒphoto 뉴시스

우리나라 성인이라면 은근히 ‘이스라엘 스트레스’를 한 번씩 경험했을 것이다. 1948년에 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과 국가를 재건한 이스라엘의 동류의식이랄까, 경쟁의식이랄까.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와 모샤브를 벤치마킹하자는 분위기가 뜨거웠다. 북한의 무력 도발이 잦아지자 “전쟁 나면 이스라엘 유학생은 귀국하지만 아랍 유학생은 도망가 버린다”는 스토리텔링이 회자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유대인 천재 교육법을 배워야 한다며 이름도 생소한 ‘탈무드’나 ‘하브루타’ 같은 단어를 알은척했다. 직장에 들어가니 ‘창조경제에 후츠파 정신으로 무장한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을 배우자’는 구호가 한창이었다. 중동의 먼 나라 이스라엘은 늘 그렇게 우리를 ‘압박’하곤 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아이언 돔으로 거뜬히 막아내는 국방력은 곧잘 우리나라 군대와 비교되었다. 또 가장 먼저 마스크를 벗는 백신 모범국 모습까지 보여줘 우리 당국을 부끄럽게 했다.

이런 이스라엘이 국내 정치에서는 이색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모범사례가 될지, 따라 하면 안 될 반면교사가 될지 주목된다.

2년간 4번의 총선, 사실상 무정부 상태

지난 6월 3일 ‘15년2개월이나 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몰아내자’는 구호 아래 극우와 중도와 좌파는 물론 심지어 아랍계까지 뭉친 연립정부가 구성됐다. 6월 14일 이전까지 신임투표를 거치면 최종 확정되고 네타냐후(71)는 완전히 실각하게 된다.

최근 2년간 4번의 총선을 치르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에서 연정(聯政) 발표가 있기까지 합종연횡(合縱連衡), 이합집산(離合集散), 백가쟁명(百家爭鳴), 막후교섭(幕後交涉) 등 온갖 사자성어가 살아 꿈틀거렸다. 그러나 ‘무지개 연정’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고 네타냐후와 보수 측 반발이 거세 연정이 언제 와해될 지도 모른다.

흔히 이스라엘 의회를 크네세트(Knesset)라고 부른다. 크네세트는 BC 5세기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소집한 유대인 대표기구였던 ‘크네세트 하그돌라’에서 명칭과 숫자를 따왔다. 이스라엘 의회는 1948년 이후 줄곧 120석이다.

이스라엘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배경에는 초대 대통령인 하임 바이츠만의 영향도 컸다고 본다. 화학자이면서 시온주의자인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폭약 제조에 필요한 아세톤의 대량생산법을 개발해 영국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영국 측이 대영제국훈장을 주려고 했으나 그는 대신 조상의 땅에다 유대인 나라를 세워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 배경 등으로 영국식 의원내각제가 도입됐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 의원내각제는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인 정당별 비례대표제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누는 구조인데, 의석 확보에 필요한 최소득표율이 3.25%로 낮아 소규모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과반수 정당이 나오기 힘든 구조여서 항상 연정 논의가 벌어졌다.

네타냐후 몰아내기 위해 손잡은 8개 정당

최근 2년간은 4번의 총선이 실시되면서 혼란이 극에 달했다. 2019년 4월 총선을 실시했는데 연정 구성을 못 했고, 9월에 다시 총선을 치렀으나 거듭 연정에 실패했다. 검찰은 그해 11월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네타냐후를 뇌물 및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이듬해인 2020년 3월 총선에서 겨우 연정 구성에 성공하는가 싶었으나 두 달 뒤 네타냐후가 재판에 처음 출석하는 등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12월이 되자 리쿠드당과 청백당(靑白黨)의 연정이 파국을 맞았다.

결국 네타냐후는 2019년부터 연정 구성을 하지 못한 무정부 과도내각 상태로 이스라엘을 통치해온 셈이다. 네타냐후가 이끈 과도내각은 거의 비상대책위원회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면 된다. 그러던 중 드디어 올해 3월 새로운 연정 구성을 위한 총선이 실시됐고, 의석을 차지한 13개 정당 중 8개가 네타냐후를 몰아내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8개의 연정 참여 정당은 중도우파 성향의 원내 2당인 예시아티드(Yesh Atid·17석)를 중심으로 중도인 청백당(Blue & White·8석), 극우 성향인 야미나(Yamina·7석), 중도우파인 이스라엘 베이테이누(Yisrael Beiteinu·7석), 좌파인 노동당(Labor·7석), 우파 성향의 뉴호프(New Hope·6석), 사회민주주의 계열 온건좌파인 메레츠(Meretz·6석) 등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사상 처음으로 연정에 참여한 아랍계 정당 라암(Raam·4석)이다.

이렇게 모두 62석이 손을 잡을 듯 보였지만, 야미나에서 니르 오바치 의원이 연정 참여를 거부하면서 61명으로 간신히 과반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파격적인 정치 쇼를 진행하는 주인공은 TV 앵커 출신인 야이르 라피드(57). 법무부 장관을 지낸 아버지와 소설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2012년 중도 성향의 예시아티드를 세워 정계에 입문했다. 전쟁과 경제난으로 네타냐후의 인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예시 아티드는 2013년 총선에서 19석을 획득해 원내 2당으로 올랐고 라피드 자신은 재무장관을 맡기도 했다. 이번에도 예시아티드의 대표로서 종횡무진 협상을 통해 무지개 연정을 이끌어냈다.

사실상 베네트-라피드 정권

라피드는 특히 네타냐후의 최측근이었다가 장관직 기용과 팔레스타인 대처 등을 두고 네타냐후와 결별한 나프탈리 베네트(49) 전 국방장관이 이끄는 야미나로 하여금 지난 5월 30일 연정에 합류토록 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두 사람은 4년 임기의 총리직을 놓고 먼저 베네트가 총리를 맡고 라피드가 외교장관을 맡은 뒤, 2년 뒤엔 둘이 자리를 맞바꾸기로 했다. 확실한 베네트-라피드 정권인 셈이다. 예루살렘포스트(Jerusalem Post)에 따르면 두 사람은 4년 동안 주요 의사결정이나 입법과정에 항상 동등한 파워를 갖기로 합의했다. 연정에 참여한 덕분에 현 국방장관인 베니 간츠(62) 청백당 대표는 장관직을 유지한다.

당장 화제의 인물은 총리가 될 극우파 베네트. 팔레스타인에서 악명 높은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사이렛매트칼의 장교 출신이다. 1990년부터 다수 작전에 참여했고, 2006년엔 예비군으로 레바논전쟁에도 참전했다.

그는 한때 미국으로 건너가 소프트웨어 회사인 사이오타를 키우고 매각해 젊은 거부의 대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스라엘로 금의환향하여 네타냐후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네타냐후 밑에서 여러 장관직을 맡았지만 2018년에 갈라섰다. 국방장관직을 맡겠다고 나섰다가 네타냐후가 들어주지 않자 결별을 선언한 것. 베네트가 국방장관을 원했던 것은 그의 극우 강경 성향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베네트가 소속한 야미나 자체가 극우 종교 세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베네트는 팔레스타인 하마스를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번 펼쳤고, 지난해 TV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이스라엘 땅 1㎝도 아랍인들에게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문제는 이렇게 극우 성향인 베네트가 좌파와 아랍계가 포함된 연정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배신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베네트는 이런 논란에 대해 방송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이 나라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하지만 2년간 4번의 선거를 겪은 정치적 혼란을 더이상 볼 수 없어 연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무지개 연정이 아슬아슬 출범한다는 관측도 있지만, 금방 붕괴되고 5차 총선을 치르게 된다는 전망도 만만찮다.

“무지개 연정은 희대의 사기극”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의 나다브 아르가만 국장이 이례적으로 “폭력적이고 선동적인 담론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물리적 피해를 초래하는 폭력과 불법 활동이 용인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강력한 경고를 했다. 확실한 테러 정보를 포착했다는 방증이다. 신베트는 베네트에게 총리급 경호를 제공하기로 했는데, 이는 26년 전 이츠하크 라빈 총리에 대한 극우파 유대인 청년의 암살 테러 악몽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측은 우파 의원들을 상대로 연정 탈퇴를 부추기는 한편, “무지개 연정은 희대의 사기극”이라며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실권하면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입장이어서 연정 와해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를 두고 트럼프의 선거 불복과 너무 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BBC 방송은 “연정에 참여한 정파들을 묶은 동력이 네타냐후를 권좌에서 제거하겠다는 욕구밖에 없다”며 조기 붕괴를 우려했다.

연정 출범과 관련, 2015년 오바마 때 합의했다가 2018년 트럼프 정부가 깨트렸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복원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네타냐후는 “위험한 좌파 정부는 우리의 최대 위협으로 떠오른 이란의 핵합의 복귀에 저항할 수 없다”면서 지금도 미국의 이란 핵합의 복원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무지개 연정의 핵심 정당인 예시아티드와 청백당 등은 이란 핵합의 복원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의 강력한 반대가 껄끄러웠던 미국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한결 어깨가 가벼워지는 셈이다. 이란 핵합의가 복원되면 당장 100만배럴 이상의 이란산 석유가 풀려 국제유가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편 이번 연정의 성패에 상관없이, 그간 ‘2등 국민’ 소리를 들었던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들이 향후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무지개 연정의 아랍계 정당인 라암은 이번에 장관을 배출하지는 못했으나, 네타냐후 집권 내내 설움을 받아온 아랍계 주민 지원을 위한 163억달러(약 18조200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현재 이스라엘 의회에는 무지개 연정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반(反)네타냐후에는 동의하는 아랍계 민족주의 정당 연합인 공동명단(Joint List·6석)도 별도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 아랍계 정당들이 100% 팔레스타인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극우파인 베네트가 유대인 정착촌 문제 등을 놓고 아랍 정당들과 갈등을 빚을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극우파 베네트 아랍 정당과 갈등 빚나?

올해 이스라엘 독립 73주년을 맞아 중앙통계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총인구는 932만7000여명. 이 중 유대인은 689만4000여명으로 74%, 아랍인(Israeli Arabs)은 199만6000여명으로 21.1%를 차지한다. 아랍인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여서 2030년에는 국민 4명 중 1명이 아랍인이라고 이스라엘 중앙통계국이 전망했다.

이들은 여권상으로는 이스라엘(State of Israel) 국민이지만, 혈통과 정서는 아랍 사람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 정부가 아랍계 주민에게 차별적 대우를 한다고 비판했으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다만 징병법을 보면 유대인은 징병제인 반면, 아랍인은 징병제가 아니다. 군대를 다녀와야 취업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그들은 출발부터 2등 시민이 되는 셈이다.

히브리대 박사 출신인 신성윤 ICB(이스라엘성서대학) 교수는 “이번에 네타냐후를 배제하려고 극우파 그룹이 기꺼이 아랍 정당과 손을 잡았다”면서 “아랍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유대국가를 천명하는 이스라엘 정부로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디아스포라) 유대인 귀환(알리야)을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홍섭 자유기고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