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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5호]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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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범의 차이나워치]‘빈과일보’의 눈물과 홍콩 퉁뤄완 호텔의 사람들

지해범  전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hbjee@chosun.com

▲ 지난 6월 24일 비가 오는 가운데 이날 폐간되는 마지막 빈과일보를 사려는 홍콩 시민들이 가판대 앞에 줄을 길게 서 있다. 이날 빈과일보 1면 제목은 ‘홍콩인은 빗속에서 아프게 이별한다’였다. photo 뉴시스
1997년 6월 말 필자는 조선일보 특별취재팀의 일원으로 ‘홍콩 반환’의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 6월 30일 밤 9시, 높다란 철제장벽 위로 나선형 철조망이 휘감은 홍콩 록마차우(落馬洲) 검문소 저편으로부터 군용트럭의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일렬로 다가오더니 검문소 앞에 멈춰 섰다.
   
   간단한 서류 확인과 힘찬 경례 소리에 이어 무거운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철모에 소총으로 무장한 중국 인민해방군 500여명을 태운 39대의 트럭이 선전(深圳) 쪽에서 홍콩 경계선을 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3분이 되지 않았다. 새로운 역사의 한 장이 짧은 순간 지나가는 것에 놀라움과 허무감이 겹쳤던 기억이 난다. 다음 날 새벽까지 진주한 중국 육·해·공군은 모두 5000여명. 이들은 전날 밤 영국군이 떠난 14개 기지를 접수했다.
   
   
   장쩌민 “일국양제와 자유·법치 반드시 유지할 것” 약속
   
   같은 시간 빅토리아항 컨벤션센터에서 벌어진 화려한 축하 행사가 주권 교체의 ‘형식’이었다면, 밤중에 조용히 진행된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진주(進駐)는 영토 접수의 ‘실체’였다. 이들이 홍콩 경계선을 넘는 데는 3분으로 족했지만, 검문소의 철문이 열리는 데는 155년이 걸렸다. 1842년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영국의 신형 전함과 대포 앞에 무릎을 꿇고 홍콩을 할양했던 치욕(恥辱)의 역사가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이다. 당시 검문소 부근에서 만난 30대 시민은 “메이반파(沒辦法·어쩔 수 없다)”란 말로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홍콩의 주인이 바뀌고 공산당 군대가 진주하는 것에 대해 ‘썩 내키진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6월 30일 밤 11시30분 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주권 반환식 행사에는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등 45개국에서 온 4000여 귀빈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은 결단코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2체제) 원칙을 유지해 나가겠으며, 홍콩의 원래의 사회·경제적 자유와 법률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향후 50년간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모든 사안에서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港人治港)’를 보장한 ‘홍콩기본법’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한 것이었다. 이는 ‘일국양제’란 묘책으로 영국과 홍콩 주민을 안심시킨 덩샤오핑(鄧小平)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영국 찰스 왕세자 역시 “홍콩은 동서(東西)가 어떻게 함께 살고 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영국은 홍콩 생활방식의 연속성을 보장한 1984년의 중·영(中英)공동선언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의 진주’ 홍콩이 그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기를 소망한 것이다.
   
   
   시진핑 시대 차례로 무너진 ‘자유’와 ‘자치’
   
   ‘불안과 기대’ 속에서 출발했던 홍콩의 ‘일국양제’ 실험은 장쩌민·후진타오(胡錦濤) 임기에는 그럭저럭 유지됐다. 중국 반환 전후 불안감으로 홍콩을 떠났던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현상도 일어났다. 홍콩의 지위가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시진핑(習近平) 임기(2012~현재)가 시작된 이후부터였다. 2014년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이 시발점이었다.
   
   중국은 홍콩 반환 20년이 되는 2017년까지 행정장관의 직선(直選)을 약속했으나, 베이징의 입맛에 맞는 후보만 출마할 수 있도록 ‘독소조항’을 넣음으로써 홍콩 주민을 실망시켰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가 발표한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은,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친(親)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는 2~3명으로 제한했다. 이로 인해 행정장관이 사실상 베이징 공산당의 꼭두각시가 되고 홍콩인에 의한 ‘고도자치’도 껍데기만 남을 것임을 간파한 홍콩 시민 10만여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경찰이 쏘는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내는 시위대의 모습에서 ‘우산혁명’이란 이름이 붙었다.
   
   2015년 베이징의 권력투쟁을 해부한 책들을 팔던 홍콩 퉁뤄완(銅鑼灣·코즈웨이베이) 서점 주인과 주주, 직원 등 5명이 가족도 모르게 중국 국가안전부(비밀정보기관)에 납치되어 6개월 이상 가혹한 조사를 받은 사건은 홍콩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의 사생활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던 이들은 2015년 10월부터 12월 사이 차례로 종적을 감추었다가 이듬해 3~6월 사이 집으로 돌아왔다. 신체와 정신에 큰 타격을 입은 이들은 중국 모처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홍콩의 ‘언론·출판 자유’에 재갈을 물린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홍콩인들은 공산당의 위협이 언제든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19년 6월부터 반년 이상 지속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 반대 시위는 중국이란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홍콩인들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홍콩 인구(740만)의 3분의1에 달하는 200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자유와 민주를 외쳤지만 실탄을 쏘고, 최루탄을 쏟아부으며, 사냥개를 풀어 추적하고, 성추행도 서슴지 않는 무지막지한 무력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어린이와 여학생이 경찰의 폭력에 쓰러졌다. 평범한 한국 시민으로 홍콩 시위 현장에서 그들의 참혹한 저항을 기록했던 권순목씨는 ‘2019 홍콩 시위 3달의 기록’에서 “그것은 더 이상 시위가 아니었다. 전쟁이었다”고 묘사했다.
   
   
   홍콩보안법, 언론 자유를 말살하다
   
   중국 공산당의 홍콩 장악은 2020년 6월 30일 제정·발효된 ‘홍콩보안법’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것은 그동안 홍콩을 지탱해오던 영국식 사법체계와 ‘고도자치’를 약속한 홍콩기본법, 홍콩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제정한 ‘홍콩인권법’을 깡그리 짓밟는 폭거였다. ‘홍콩 내 반(反)중국 활동’을 처벌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홍콩보안법은 ‘무엇이 반중국 활동이냐’에 대한 해석권조차 중국 공산당이 독점함으로써, 사실상 무소불위의 법이 되었다. 공산당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는 누구든 ‘반중국’ 혐의를 씌워 체포할 수 있게 되었다. 시진핑 정권은 홍콩의 자유로움과 활기를 모두 잃는 한이 있더라도 홍콩이 ‘중국 땅’임을 세계에 확실히 보여주기로 작정한 듯했다.
   
   홍콩보안법의 위력은 곧바로 나타났다. 법 제정 1년 만에 반중국 시위는 완전히 진압되었고 정치인과 언론인, 교수 등 114명이 중국(홍콩)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들 가운데는 홍콩 빈과(蘋果)일보의 창업주 지미 라이(黎智英·73)를 비롯해 홍콩 최대 야당 민주당의 전 주석 우치와이(胡志偉), 2014년 우산혁명을 주도했던 베니 타이(戴耀廷) 전 홍콩대 교수 등이 포함됐다.
   
   처음엔 웃는 얼굴을 보이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과거에 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성난 얼굴로 돌변하는 것이 ‘공산당의 속성’이란 것을 시진핑 정부는 보여주었다.
   
   체포된 민주인사 가운데 지미 라이는 홍콩의 ‘언론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948년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난 그는 홍콩으로 이주해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의 언론인이다. 그는 2살 때인 1949년 중국이 공산화하자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다. 어릴 때부터 창고, 가발공장, 의류회사 등에서 일한 그는 1981년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창업해 큰돈을 벌었다. 그는 스웨터 수출을 위해 20대부터 미국을 출입하면서 ‘자유’의 개념에 눈떴다.
   
   이 시기 그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에 심취하여 책장이 떨어질 때까지 읽었다고 한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가 짓밟히는 것을 목격한 그는 1990년 언론 사업에 뛰어들어 넥스트미디어를 창업하고 본사에 하이에크 동상까지 세웠다.
   
   그가 1995년 창업한 빈과일보는 초기에는 선정적 뉴스로 주목을 끌었지만,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시위를 적극 지지하며 반중 매체의 위상을 굳혔다. 지미 라이 자신도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 베이징 공산당 지도부에 미운털이 박힌 그는 2020년 8월 두 아들과 함께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잠시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넉 달 후인 12월 ‘불법집회 조직 및 참여’ 혐의로 재구속 수감됐다.
   
   그는 현재 징역 20개월형을 받고 수감 중이지만, 홍콩보안법의 ‘외세와의 결탁’ 혐의로 추가 기소돼 언제 석방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눈물 속에 자진 폐간한 홍콩 ‘빈과일보’
   
   지난 6월 24일 빈과일보의 자진 폐간 사태는 지미 라이가 구축한 미디어 제국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압박의 결과였다. 홍콩 당국은 그를 구속한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재산 가운데 5억홍콩달러(약 730억원)를 동결하고 빈과일보의 자산 1800만홍콩달러(약 26억원)도 동결했다. 신문 운영 자금줄을 차단함으로써 자진 폐간을 유도한 것이다.
   
   6월 24일 새벽, 홍콩 신계(新界) 정관오(將軍澳)에 있는 빈과일보 사옥 앞에 수백 명의 독자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1995년 창간 이래 26년 만에 폐간하는 반중(反中) 신문 빈과일보를 사기 위해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렸다. 신문사 직원이 인쇄된 ‘마지막 빈과일보’를 가지고 나오자 기다리던 시민들은 “고마웠습니다. 라이 아저씨(老黎·빈과일보 창업자 지미 라이)”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평소보다 10배 많은 100만부를 발행한 빈과일보의 주요 제목은 ‘홍콩인은 빗속에서 아프게 이별한다(港人雨中痛別)’ ‘우리는 빈과일보를 지지한다’ ‘다시 만나요(再會)’ 등이었다. 이 신문은 ‘홍콩인에게 보내는 고별의 편지(給香港人的告別書)’에서 “보도의 자유는 폭정(暴政)의 희생이 되었다”면서 “우리는 미래 어디에 있든 결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빈과일보의 20대 기자는 일본 니케이(日經)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문사 간부가 체포된 이후 회사 화장실에서 몇 번이나 울었다. 기사를 쓸 때마다 체포되지 않을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비극이다. 그러나 이 일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기자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신문사 본사뿐만 아니라 홍콩 시내 수많은 신문 가판대에서도 종간호를 사려는 긴 행렬이 이어졌다. 이들은 폐간하는 신문을 격려하기 위해 그곳에 모였지만, 그 행렬은 더 이상 ‘자유 언론’을 볼 수 없는 자신들을 위로하고 슬픔을 공유하는 연대의 장이기도 했다.
   
   지난 6월 28일 빈과일보의 논설위원이자 영문판 편집장을 맡았던 펑와이쿵(馮偉光·57)이 영국 런던으로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체포됐다. AP통신에 따르면, 6월 17일부터 약 2주간 빈과일보 편집장, 주필 등 간부와 기자 6명이 체포됐으며, 그는 7번째 피해자가 됐다. 이에 앞서 빈과일보 융칭키(55) 논설위원이 6월 23일 ‘외세와의 결탁’ 혐의로 자택에서 체포됐다. 홍콩 언론계에 피바람이 불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홍콩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사라진 암흑의 땅으로 변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지난 6월 25일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특이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대사관 앞에 목재관을 갖다 놓고 애도의 꽃을 한 송이 놓은 뒤 홍콩 정부가 ‘애플데일리(빈과일보)’를 사지(死地)로 내몬 데 대해 항의했다. RSF는 또 베이징 정부가 전 세계 언론 자유에 대해 가하는 위협에도 항의했다. 이들은 ‘모의 장례식’이란 독특한 방식으로 홍콩 언론 자유의 죽음을 애도하고 항의한 것이다. 크리스토퍼 들루아 RSF 사무총장은 “우리가 오늘 여기 모인 것은, 중국 정부가 홍콩의 독립 언론을 체계적으로 압박할 때 민주 국가들이 계속 수수방관한다면 홍콩의 언론 자유는 사망 위기에 처할 것임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24일 성명을 통해 “오늘은 홍콩과 전 세계 언론 자유에 슬픈 날”이라며 “미국은 홍콩인들과 기본적 자유를 위해 일어선 모든 사람을 돕는 데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인 밥 메넨데스 민주당 의원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빈과일보 폐간은 홍콩 민주주의에 대한 또 한 번의 타격”이라고 개탄했다.
   
   
   누가 홍콩 주민을 감시하나?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지난 6월 말 홍콩보안법 실시 1주년을 맞아 ‘박탈당한 자유’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게재했다. 6월 26일 첫 기사에서 아사히는 ‘홍콩을 침묵시킨 수수께끼의 조직’인 국가안전유지공서(國家安全維持公署)를 추적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홍콩 빅토리아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퉁뤄완의 한 고층 호텔이 지난해 7월 초부터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건물 2층 높이의 전면 유리는 하얀색 아크릴판으로 가려져 있고, 호텔 앞에서는 청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남자들과 권총을 허리에 찬 특수경찰들이 길을 가는 사람들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한다. 오전 8시가 되면 소형버스와 미니밴 등을 타고 온 20~50대 남녀가 호텔 안으로 출근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아사히 보도에 따르면, 이 건물은 지난해 6월 말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지 1주일 후부터 중국 정부의 파견기관인 ‘국가안전유지공서’가 한 동(棟) 전체를 빌려 사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 본토의 공안부와 외국 스파이를 적발하는 국가안전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공서(公署)의 책임자는 정옌슝(鄭雁雄) 서장으로, 2011년 광둥성 우칸(烏坎)촌에서 발생한 농민시위를 진압한 ‘실적’이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부서장인 쑨칭예(孫靑野·별명 孫文淸)는 국가안전부에서 파견된 인물로, 과거 공산주의청년단의 기관지인 중국청년보 기자로 일했고 한때 일본에서도 근무했다고 한다. 이 조직은 퉁뤄완의 고층 호텔뿐만 아니라 건어물가의 빌딩 등 모두 3개의 건물을 사용 중이다. 그만큼 조직이 방대하고 인원이 많다는 뜻이다.
   
   이 기관의 주요 임무는 홍콩에서 국가 안전 정보를 분석·판단하여 전략과 정책을 내고, 홍콩 정부를 ‘감독·지도’하는 일이라고 홍콩보안법은 명시하고 있다. 즉 사실상 홍콩 정부보다 상위 기구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비둘기’ 같은 홍콩 정부 위에서 ‘검독수리’ 같은 중국 정보기관이 발톱으로 짓누르는 듯한 형국이다.
   
   그동안 홍콩은 중국을 들여다보는 창(窓)이자 중국인들이 바깥세상을 향해 호흡하던 숨구멍 같은 존재였다. 경제의 활력과 자유도는 아시아 최고였다. 만약 홍콩의 ‘일국양제’와 ‘고도자치’가 계속 유지되어 서구식 사회·경제 시스템과 중국식 공산주의 정치체제가 공존·융합하는 사회로 발전했더라면, 중국은 세계에 둘도 없는 큰 ‘실험실’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실험실은 세계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고 중국의 발전을 자극하는 ‘보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의심하고 배를 갈랐다. 배에서 나온 것은 황금알이 아니라 홍콩인의 피와 눈물, 고통스러운 탄식, 그리고 공포에 질린 눈빛뿐이었다.
   
   2019년 홍콩을 뜨겁게 달구었던 자유를 향한 열정은 머지않아 역사의 기억 속으로 사그라들 것이다. 빈과일보 폐간 사태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멈추면, 홍콩인들의 슬픔이 무겁게 가라앉은 거리 위로 외국 관광객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하 호호 웃으며 다닐 것이다. 그들 뒤에서 중국 공산당 관계자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거봐, 내가 뭐랬어. 사람들은 금방 잊을 거라고 했잖아.” ‘중국화된 홍콩’에 이런 ‘암흑시대’가 다가오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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