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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8호]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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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LBGTQI 보호와 1만8000개의 골판지 침대… 도쿄올림픽의 시대정신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중국의 쿼드러플 스컬 조정팀 여자 선수들이 일본 현지에서 훈련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도쿄올림픽이 시작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모든 걸 불확실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개막식 직전까지도 개최 자체가 의문시됐다. 바이러스 공포를 감안할 때 ‘한 번쯤 건너뛰는 것도 괜찮을 텐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올림픽=서방의 세계관을 압축한 글로벌 이벤트’란 점을 간과한 지극히 ‘동양적인’ 생각이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올림픽은 동양이 아닌 서방이 창조하고 주도해온 글로벌 이벤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핵심 인물들도 유럽과 앵글로색슨 서방인들이다. 글로벌 축제로서의 올림픽은 바이러스 하나로 인해 중단될 정도의 어설픈 이벤트가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 계약관계가 이어져 있다. 신(神)이 아닌 한, 전부를 중단시키거나 단칼에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런 능력이나 권위를 가진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는 세계관은 올림픽 개최의 필연성을 설명해주는 최적의 말이다. 19세기 영국 서커스 업계에서 탄생한 이 말은 당장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원래 계획대로 나아간다는 태도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피에로가 감기에 걸리든, 코끼리가 죽든, 조련사가 다리 부상으로 쓰러지든 말든 서커스 쇼는 계속돼야만 한다. 표를 끊고 들어온 관객들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동양이라면 권위나 파워를 가진 누군가가 나서 쇼를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관객들도 수긍하고 자리를 떠날 수 있다. 서양의 서커스 쇼는 다르다. 환불을 해준다고 해도 따르질 않는다. 시간이나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면서 더 큰 요구를 한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아닌 한, 일단 예정된 쇼는 ‘반드시’ 열려야만 한다. 올림픽은 서커스 쇼보다 수천수만 배 더 복잡하다. 초대형 규모로 얽힌 글로벌 계약 이벤트라 할 수 있다.
   
   1920년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을 보자.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열린 ‘최악의 스포츠 이벤트’로 기록돼 있다. 전쟁 종결을 전후해 1918년 창궐한 스페인독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당시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무려 5000만명에 달했다. 하루에도 수만 명씩 저세상으로 가던 시대에 치러진 글로벌 쇼가 앤트워프올림픽이다. 29개국 참가자들은 마스크는커녕 백신도 없는 상황에서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이벤트였다. 백신도 있고 사망자도 400만명에 ‘불과한’ 2021년 코로나19 올림픽은 그때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스페인독감에도 열렸던 ‘죽음의 올림픽’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에서 보듯 테러리스트가 올림픽 선수촌에 난입해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고 살인극을 벌이는 동안에도 쇼는 계속됐다. 인도·남아공·브라질을 넘나드는 변이 바이러스 공포에도 불구하고, 수만 관중이 참가한 유로컵(Euro Cup) 축구대회가 강행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일단 결정된 이상, 올림픽 개최는 그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철칙’이다.
   
   올림픽의 의미와 가치는 기록 경신이나 금메달 획득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나 할까? 당대와 미래를 지배할 ‘정치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 동향’에 관한 부분이 올림픽 행사를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문을 연 이상 ‘반드시’ 뭔가를 보여줘야만 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 올림픽은 ‘글로벌 그랜드 쇼’인 동시에 국가적 위신을 가늠하는 경연장이다. 그러나 올림픽 내면으로 들어가면 다른 부분이 보인다. ‘시대정신을 일깨워주는 나침반=올림픽’이라는 점이다. 올림픽 주최국의 몫이지만, 당대와 미래의 시대정신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주최국의 자신감과 자랑거리를 전 세계에 연출하는 것이 쇼의 주류겠지만, 시대정신에 기초한 인류의 오늘과 내일에 관한 비전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2021년 도쿄올림픽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보는 각도에 따라 관심영역에 따라 수많은 좌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이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성소수자와 지속가능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이하 SDGs)에 관한 문제다.
   
   성소수자와 SDGs 문제를 도쿄올림픽의 시대정신으로 연결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둘 다 이미 귀에 익숙한 개념이기에 뭔가 ‘한물간’ 이슈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 문제가 역사상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1972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회의 ‘로마클럽’을 통해서였다. 무려 5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CO2 저감 문제가 법제화되기 시작했다. 성소수자와 SDGs 문제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차원의 화제가 된 것은 21세기 들어서부터다. 도쿄올림픽은 간헐적으로 논의되던 성소수자와 SDGs 문제를 2021년 이후 인류의 핵심 테마, 즉 시대정신으로 진화시키는 현장이다.
   
   
   남녀 참가자 비율 50 대 50이 목표
   
   지난 2월 12일 모리 요시히로(森喜朗)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사임 소식이 전 세계에 긴급뉴스로 타진됐다. 한국에도 자세히 보도됐지만,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임시 평의원회 여성 이사 증원 문제에 관한 발언이 화근이었다.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JOC 내 여성 이사 증원에 거부감을 나타낸 말이다. 발언 즉시 일본 미디어는 물론 전 세계가 모리를 비판했다. ‘여성 비하’라는 것이 전 세계의 공통 인식이었다. 83세의 모리는 자민당 중진으로 2000년에 총리까지 지낸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가다. 말 한마디에도 정치적 해석을 붙이면서 행하는 인물이지만 ‘여성을 비하하는 시대착오 꼰대’라는 오명과 함께 도쿄올림픽 최고 수장 자리에서 한순간에 사라진다. 도쿄올림픽이 어떤 위상의 제전이 될지를 가늠케 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원래 올림픽은 남성만의 제전이었다. 고대 그리스올림픽 참가자는 남성에 국한됐다. 경기장 관람도 남성에게만 허락됐다.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몸매를 신에게 다시 보여주기 위해 나체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00년 파리올림픽 때부터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부활한 제1회 근대 올림픽에 이은 제2회 대회였다. 따라서 아테네올림픽 당시 여성 참가자 숫자는 제로다. 파리올림픽 때 참가 선수는 전부 997명으로, 여성은 22명에 불과했다. 여성 참여 확대는 20세기 올림픽 전체를 가늠하는 시대정신에 해당한다.
   
   남녀 참가자 비율을 50 대 50으로 똑같이 만들자는 것이 IOC의 주장이자 사명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참가자 규모가 달라질 듯하지만, 도쿄올림픽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참가자 비율이 비슷한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IOC에 따르면 전체 선수 가운데 남성이 51%, 여성이 49%가 될 것이라고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참가자는 남성이 6197명, 여성이 2194명이었다. 남녀 비율이 대략 7 대 3이었다. 파리올림픽 때부터 시작한다면, 남녀 비율 5 대 5까지 오는 데 121년이 걸린 셈이다. 여성 참가자 확대는 올림픽 시대정신으로 정착돼 왔다. 올림픽 여성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올림픽 밖에서의 여성인권과 사회진출도 높아진다는 의미다. 한국 올림픽 선수단은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당시 전체 205명 가운데 남성이 103명, 여성이 102명으로 성평등 최선진국에 이미 진입했다.
   
   성소수자 문제는 남녀 간 성평등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등장한 올림픽의 새로운 과제이자 시대정신이다. 도쿄올림픽은 성소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글로벌 현장이 될 전망이다. 성소수자 문제에 무심하더라도 LGBT란 말은 귀에 익을 듯하다. 레즈비언(Lesbian)·게이(Gay)·양성애자(Bisexual)·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합친 말이다. 주의할 부분이지만, 요즘은 거기다 두 개의 범주를 더 붙여 퀴어(Queer)와 간성(間性·Intersex)을 포함한 LBGTQI가 성소수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도쿄올림픽은 LBGTQI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문화하고 있다. ‘다양성과 조화’라는 공식 슬로건을 통한 LBGTQI 보호 캠페인이 도쿄올림픽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실 LBGTQI 문제가 올림픽에서 본격 논의된 것은 2016년부터였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당시 50명 이상의 선수가 경기를 전후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Coming Out)했다고 한다. IOC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앞선 2014년, 자체 헌장을 개정해 LBGTQI 보호에 나섰다. 개정 올림픽 헌장의 핵심은 ‘성적 지향의 차별금지’에 관한 부분이다. LBGTQI 자체에 대한 차별금지는 물론 개개인이 LBGTQI임을 밝힐 경우 거기에 맞는 성소수자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 IOC의 공식 방침이다.
   
   
▲ 참가국 국기가 내걸린 도쿄올림픽 선수촌. photo 뉴시스

   남성 외모의 여성 레슬러
   
   주위에서 보면 남성으로 보이지만, 스스로가 여성이라고 말할 경우 여성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 IOC 개정 헌장의 핵심이다. 따라서 턱수염을 가진 선수가 스스로 양성애자라고 말하면서 여성 경기에 참가한다고 해도 불법이 아닌 합법이다. 개개인 스스로가 밝힌 성의 판단을 120% 존중해 올림픽 경기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의미다. LBGTQI 문화에 부정적인 이슬람권 국가들이 보면 간단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남성인데 왜 여성 레슬링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하는가’라는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이제 시대정신에 반하는 시대착오에 불과하다. 도쿄올림픽은 남성·여성에 기초한 기존의 성 구별을 넘어선 ‘남녀+LBGTQI’의 제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SDGs 문제는 도쿄올림픽을 통해 글로벌 상식으로 자리 잡을 분야다. LBGTQI가 IOC를 비롯한 외부에서 분 바람이라고 할 때, SDGs는 일본 스스로 자가발전을 하면서 세계에 알리려는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할 듯하지만, SDGs는 현재 일본이 국민 총력전으로 펼치는 생존 전략 전술에 해당한다. 국가·기업·학교·개인이 총출동해 SDGs 선진국 진입에 주력하고 있다. SDGs는 이념인 동시에 구체적인 비즈니스의 대상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SDGs는 어떤 각도에서 접근하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도쿄올림픽에서 통하는 SDGs의 핵심은, 환경·재활용·재생에너지·CO2문제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올림픽 개최 직전 화제가 된 골판지 침대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도쿄올림픽의 시대정신을 외국에 알린 최적의 본보기 중 하나다. 일명 ‘안티섹스(Anti-Sex)’ 침대로 불리면서 두 사람이 올라설 경우 무너질 만큼 취약하다고 전해졌지만 곧바로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나중에 무게 200㎏도 견디는 초고강도 종이 침대라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올라서서 흔들어도 끄떡없다는 의미다. 덕분에 안티섹스가 아니라 ‘오케이섹스(OK-Sex)’ 침대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오케이섹스’로 판명된 골판지 침대
   
   골판지 침대는 3·11 동일본대지진 후 활용된 간이용 도구다. 가볍고 이동에도 편리한 것은 물론 재생자원을 활용한 침대이기도 하다. 침대 사용 후 통째로 버려도 재생종이로 처리되기 때문에 환경친화적이기도 하다. JOC는 하계올림픽의 경우 선수와 관계자 1만8000명분, 패럴림픽은 8000명분의 골판지 침대를 준비해둔 상태다. 올림픽 종료 후에는 종이로 회수해 처리하거나 중고로 외부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올림픽 기간 중 하나씩 등장하겠지만, JOC는 SDGs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결과물을 선보일 전망이다. 재활용플라스틱으로 만든 올림픽 시상대, 모바일과 가전제품 속 광물을 활용한 이른바 ‘도시광산 채굴’을 통한 금·은·동메달 제작, CO2 배출과 무관한 수소에너지 사용 차량과 전자기기 사용은 도쿄올림픽 SDGs 프로젝트 중 일부분이다.
   
   올림픽에서 SDGs 문제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2012년 런던올림픽 때부터다.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 자전거 경기장의 벨로드롬(Velodrome)을 환경친화적인 목재로 만들면서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검증 제도를 전 세계에 선보여 화제가 됐다. FSC 검증은 환경문제를 비롯해 목재 생산지 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인증제도다. 특정 집단의 이익만 고려한다거나 무차별 벌목이 이뤄질 경우 FSC 검증을 얻기 어렵다. FSC 검증은 독일에서 시작된 이래 현재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FSC 검증 과정은 무료가 아니다. 따라서 FSC 검증을 ‘봉이 김선달’ 스타일의 비즈니스 차원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와 같은 무차별 벌목을 방지할 견제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도쿄올림픽은 원목과 관련한 물건의 경우 FSC 검증을 필수로 하고 있다. 영국에서 선보인 벨로드롬 모델이 9년 만에 상식화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쿄올림픽에 등장한 SDGs 관련 각종 프로젝트도 가까운 시일 내 보편적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을 듯하다. 금메달을 얼마나 따느냐는 관심도 중요하지만, 도쿄올림픽이 보여주는 시대정신의 구체적인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2021 글로벌 쇼의 묘미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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