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참패한 직후 보리스 존슨 총리와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왼쪽). 둘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photo AP·뉴시스
2019년 12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참패한 직후 보리스 존슨 총리와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왼쪽). 둘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photo AP·뉴시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념? 현실? 신념은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를 말함이고, 현실은 표를 주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바이다. 그 둘이 합쳐져 있으면 가장 행복한 상황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정말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창당 120년이 된 영국 제1 야당 노동당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말하고자 꺼낸 서두이다.

현재 영국은 코로나19 사태 끝에 와 있다. 영국인들이 ‘자유의 날(Freedom Day)’이라고 부른 지난 7월 19일을 기점으로 영국 내에서는 더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와 실내 마스크 착용을 안 해도 된다. 또 외국 여행에서 돌아와도 의무적 자가격리를 하지 않는 등 정상적인 일상이 시작되었다. 최근 변종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매일 확진자가 4만~5만명을 넘는데도 불구하고 일상을 정상으로 돌린 이유는 바로 지난 7월 19일 기준 영국 성인의 88%가 1차, 68.8%가 2차 백신을 접종해 방역에 자신이 있어서다.

그러나 이런 일상의 시작이 영국 집권 여당인 보수당 특히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는 위기의 시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작년 중반부터 시작된 정계, 언론계를 비롯한 영국 사회의 ‘코비드 청문회’ 요구를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존슨은 청문회를 내년 초로 미루자고 하원에서 발언했지만 압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 7월 20일 저녁 BBC가 존슨의 제일 측근이었다가 작년 11월 사임한 이후 재직 시 총리실 내의 비사(秘史)를 폭로해온 도미닉 커밍스 전 수석보좌관과의 인터뷰를 방영해 사태에 더욱 불이 붙고 있다. 커밍스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때 존슨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자가 배로 늘었다고 주장하는 등 존슨 정부의 난맥상을 들춰내고 있다.

코로나 초기 실정에도 보수당 지지

존슨 정부가 백신 조기 확보와 신속 접종으로 코로나19 사태를 세계에서도 거의 선두로 진화했음을 영국인들도 인정한다. 그러나 초기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은 청문회만 열리면 불거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보수당의 인기는 별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거의 1년 반에 걸쳐 코로나19 사태로 온갖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내일이라도 총선이 있으면 어느 당에 표를 주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보수당과 노동당의 차이는 많이는 13%포인트(44 대 31), 적게는 5%포인트(40 대 35) 벌어져 있다. 다들 보수당의 우세로 노동당의 다음 총선 패배를 예상하고 있다.

아직 총선이 거의 3년 반이나 남아 있지만 노동당의 장래 전망은 이처럼 밝지 않다. 노동당은 1997년 토니 블레어의 총선 승리로 시작된 14년 정권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때인 2010년 총선 패배로 잃었다. 그 후 2015년, 2017년, 2019년 총선의 연이은 패배로 지금까지 11년간 야당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개혁을 이뤄내지 못해 보수당의 인기를 위협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지리멸렬해 있는 상태다. 노동당은 2010년 이후 안되는 쪽으로만 당이 돌아가고 있다.

전문가들과 언론은 노동당이 여론조사에서 부진한 이유를 2010년 패배 이후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한다. 정체성 혼란이 와서 전통의 지지자를 다 잃었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자는 당명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노동당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1900년 2월 27일 창당 때부터 지금까지 노동당은 노동조합을 매개로 한 노동자들의 권익과 권리 추구가 당의 존재 이유였다. 거기에 따라 정강정책을 만들어 당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신들의 전통적 권력기반인 노동자들을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서 노동당이 ‘지방 산업지역 노동자’의 당이 아니라 ‘대도시 지식 중산층(urban intellectual middle class)’ 정당이 되어버렸다는 평이다. 거기다가 지도부가 노동자들의 정서를 전혀 모르는 좌파 지식인들, 소위 말하는 ‘샴페인 사회주의자(Champagne Socialist)’들로 채워져 전통의 노동자들이 노동당을 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 전문가들은 노동당의 현재 위치를 ‘득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진보적 편견에 사로잡힌 대도시 대학 출신 중산층 지지자의 정당’이라고 표현한다.

노동자가 지지하지 않는 노동당

그 결과 노동당은 2019년 11월 조기총선에서 충격의 참패를 당했다. 당시 보수당은 직전 총선(2017년 6월)보다 48석을 더 확보했는데 노동당은 무려 60석을 잃었다. 보수당은 2000년대 들어 최대 의석인, 반수 325석에서 40석을 넘는 쾌거를 거두어 자신들이 원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당의 참패 원인은 전통의 텃밭인 잉글랜드 동부와 북부 지방 산업지대, 소위 ‘적색방벽(Red Wall)’ 지역구를 다 잃은 탓으로 분석됐다. 이제 ‘적색방벽’ 지역구에서 노동당의 상징인 붉은 장미꽃만 꽂으면 무조건 당선되던 시절은 지났다는 말이다. 이 지역 노동자들은 더 이상 교회도 가지 않고 노동당 지구당 클럽에서 사교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이제 동네 펍에서 작은 기업체를 가진 동네 보수당 지지자들과 어울리면서 중산층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가길 원한다.

거기다가 노동당은 노동자들의 변한 정서를 체감하지 못하고 2016년 브렉시트 투표 때 찬반 의사를 분명히 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악수를 두고 말았다. 적색방벽 수백만 명의 노동당 지지자들은 브렉시트를 찬성해 브렉시트 통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결국 이들은 브렉시트의 연장선인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지지하면서 전통의 노동당을 영원히 떠나버렸다. 영국 좌파 언론들은 이를 두고 ‘맥주와 포드(Ford)의 노동자들이 진(Gin)과 재규어(Jaguar)의 보수당 지지자가 되어버렸다’고 한탄한다.

거기다가 과거 노동당의 표밭이던 스코틀랜드에서도 노동당은 독립을 앞세운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선전(48석)으로 겨우 1석을 차지하는 괴멸의 성적을 냈다. 블레어 시절인 1997년만 해도 스코틀랜드의 노동당 의석은 56석이나 됐다. 이렇게 해서 노동당은 런던을 비롯한 잉글랜드 남부와 대도시에서만 지지세를 유지하는 초라한 지역당 신세가 되고 말았다. 노동당은 현재 전체 650석의 3분의1도 안 되는 202석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변화무쌍 보수당의 선전

노동당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사이 보수당은 약삭빠르게도 노동자들의 성향 변화를 눈치채고 그에 대비해왔다. 정책을 우에서 좌로 끌고 가서 중원을 차지하면서 노동당이 움직일 틈을 주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보수당의 전통적인 긴축정책을 과감하게 버리고 1000억파운드가 넘는 예산을 들여 경제 침몰을 막은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노동당의 정책과도 같은 ‘퍼주기’로 중도에 잘 자리 잡은 셈이다. 그리고는 노동당에서 뺏어온 적색방벽 지역에 거의 유권자 매수 수준의 ‘선심성 지역개발 사업(pork-barrel projects)’ 예산을 퍼붓고 있다. 이런데도 노동당은 아무런 대안이 없다. 그냥 “장기적인 국가경제는 생각하지 않고 당장 표에 효과가 나는 선심 정치를 한다”고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이렇게 현실에 맞추어 과감하게 전통의 정책 변경도 마다하지 않는 영국 보수당을 두고 한 언론은 당 이름과는 정반대인 ‘변화무쌍한 정당(protean party)’이라고 평했다. 사실 영국 현대정치의 주역은 보수당이다. 1874년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 정부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147년 동안 94년을 집권한 보수당 장기 집권의 비밀은 바로 생존을 위한 부단한 변화이다. 하지만 보수당도 절치부심의 시간이 있었다. 토니 블레어가 보수당의 정책을 ‘훔쳐와(steal)’ 1997년 왼쪽 끝에 있던 노동당을 중원으로 끌어내 보수당으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들었다. 그 후 보수당은 정체성을 다시 찾아오지 못한 채 헤매면서 결국 14년간을 권력에서 물러나 있었다. 여기서 ‘훔친다’라는 표현은 총선에서 두 차례 패배한 끝에 7년간 권력의 맛을 못 본 보수당 마이클 하워드 당수가 한 말이었다. 그 14년이 보수당이 정권을 놓은 가장 긴 기간이었다. 2010년 드디어 노동당 정책을 차용한 데이비드 캐머런의 활약으로 보수당은 현재까지 11년째 권력을 놓지 않고 있다. 토니 블레어 때 신선한 노동당에 표를 주었던 중도성향의 유권자들도 더 이상 노동당에 표를 주지 않는다. 노동당보다 더 중도성향을 띠는 보수당이 더욱 매력이 있어서다.

사실 노동당이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인기가 없는 이유는 역설적인 요인 때문이기도 하다. 창당 이후 노동조합과 연계해서 노동자들의 권익과 권리를 지난 120년간 획기적으로 개선해왔지만 이제는 모든 노동조건이 잘 갖추어져 더 이상 노동자들이 노동당에 기대할 것이 없다. 소위 말하는 승자의 저주가 나타난 셈이다.

지난 7월 19일(현지시각) 0시를 기해 영국은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완전히 해제됐다. 런던 파링던의 피아노 웍스가 재개장한 후 젊은이들이 ‘자유의 날’ 파티를 열고 춤을 추고 있다. ⓒphoto AP·뉴시스
지난 7월 19일(현지시각) 0시를 기해 영국은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완전히 해제됐다. 런던 파링던의 피아노 웍스가 재개장한 후 젊은이들이 ‘자유의 날’ 파티를 열고 춤을 추고 있다. ⓒphoto AP·뉴시스

승자의 저주?

영국 노동계급은 이제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전통적인 굴뚝산업이 재편되면서 블루칼라(공장노동자) 노동자들이 세분화되어 핑크칼라(서비스산업), 퍼플칼라(숙련기술), 그린칼라(환경산업), 뉴칼라(기술산업), 골드칼라(지식산업) 등으로 갈라져 있다. 문제는 이들이 더 이상 자신들을 고통받는 저임금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하찮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고급기술자임을 자부하고 퍼플칼라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노동자라고 모두 노동조합원이 아닐 뿐더러 노동당 지지자도 더 이상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처럼 노동조합원이면 자동으로 노동당원이 되어 당비를 내는 시절도 지난 지 오래다. 거기다가 마거릿 대처 시절 보수당이 깔아 놓은 밑밥인 주식과 자가주택을 소유해 보수화되기까지 했다. 이젠 노동자들도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에 더욱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통계로 봐도 노동당은 더 이상 노동자의 당이 아니다. 노동당원 49만5000명 중 중산층 출신이 76%다. 노동당 지도부도 노동자가 아닌 중산층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냥 중산층 출신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진보적 편견에 사로잡힌 대도시 대학 출신 중산층’이다. 그래서 이들이 정당 기반인 노동자와 일반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책보다는 1980년대식 사회정의에 더 무게를 두는 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좋은 직장, 쾌적한 주거환경, 높은 수준의 자녀 교육환경, 편리하고 안전한 교통환경, 양호한 공공서비스 같은 것보다는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인권, 환경, 양성 평등, 인종, 난민, 공정무역(fair trading), 반전 문제 같은 사회정의에 과도하게 집중한 것이다. 결국 이런 자세는 전통적인 지지자들이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였다. 거기다가 이들은 일반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영제국 시대의 역사적 빚과 식민지 역사 청산 같은 역사 심판을 거론해서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결국 현실 삶의 문제보다는 하늘에 뜬 구름 같은 고상한 가치관만을 국민들에게 주입하려고 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사회운동가들이 장악한 노동당

원래 영국의 노동당은 노동자가 아닌 중산층 지식인들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만들어진 정당이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노동당 당원들 중에는 자신들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사회운동가들이 아직도 많다. 이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에 반대하는 국민은 무시하고 ‘너희들이 틀렸으니 우리를 따르라’는 우격다짐으로 유권자들을 가르치려는 자세를 보인다.

최근에 미국에서 시작된 ‘흑인들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의 일환으로 벌어진 과거 인물 동상 철거라든지 옥스퍼드대학 내의 거액 기부자 동상 파괴, 건물 파손 등이 바로 이런 식의 사고를 가진 노동당 강성 젊은 지지자들이 벌인 사건이다. 사실 이런 사안들은 전통의 노동당 지지 노동자들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일이다. 지금도 영국에는 소형 튜브에 의지해 도버해협을 건너오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매일 수백 명씩 들어온다.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이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등교육을 못 받은 일반 유권자들도 이제는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어 지적 판단력이 뛰어나다. 이들은 소위 양심적 지식인 출신 ‘각성전사(覺醒戰士·woke warriors)’들이 던져주는 ‘인권, 환경, 양성 평등, 인종, 난민, 공정무역, 반전 문제’ 같은 사회정의와 ‘각성 의제(woke agenda)’에 더 이상 설득당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고단한 삶과는 관련 없는 뜬구름 잡는 사회정의가 가소로울 뿐이다. 또한 사회운동가들의 신념인 ‘민족주의와 애국심 경시’도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 노동당 직전 당수 제러미 코빈이 2차대전 중 벌어진 영국 본토 방위 공중전 기념행사에 정장도 하지 않고 와서 국가도 따라 부르지 않다가 여론의 엄청난 질책을 받아 결국 사과한 것이 이런 여론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지난 3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인터뷰를 하던 장관의 의자 뒤 깃봉에 걸린 영국 국기 유니언잭을 조롱한 BBC 기자 두 명이 여론의 질타로 혼난 일이 있었다. 당시 한 기자는 장관에게 “내 생각에는 당신의 국기는 (우리들의) 정부 각료 인터뷰 기준으로 보면 표준 크기가 아니다. 내 생각에 그것은 그냥 조금 작다.(실제 너무 크다는 빈정거림이다.) 그러나 사실은 당신 부처가 그렇듯이 말이다”라고 빈정댔다. 그러자 같이 있던 다른 기자는 한술 더 떠서 “거기에는 항상 국기가 있다. 그리고 여왕 사진도 함께”라고 여왕 사진까지 끌어들여서 조롱(sneering·영국 언론 표현)했다.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하고 일말의 애국심 표시도 하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진보적 편견에 사로잡힌 대도시 대학 졸업 중산층’ 기자다운 언급을 하다 결국 영국이 들썩일 정도의 비난이 일었다. 그러자 두 기자는 “웃자고 한 가벼운 농담이 이 정도로 물의를 일으킬 줄은 몰랐다”고 사과했다. BBC도 회사 차원에서 공식 사과를 했다.

노동당 진보좌파가 지금 해야 할 일

사과 후에도 여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 보수당 의원은 “BBC는 영국을 증오한다(The BBC hates Britain)”라는 말까지 했다. 전직 BBC 고위 인사도 “BBC는 자신들 이름 첫 자 B(British)가 뭘 뜻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라고 했다. 또 데일리텔레그라프는 ‘BBC와 노동당은 영국인의 애국심을 이해 못 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그들(BBC 기자 및 제작진)은 심지어 영국 국기를 제국주의와 민중선동의 상징으로 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차에는 EU 깃발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영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는 하나하나가 다 범죄의 역사이고 그래서 영국인들 모두는 자신들을 수치스러워해야 한다고 설득하려 한다. 바로 BBC의 기자들과 중산층 지식인 출신 노동당 골수 진보좌파가 영국 여론을 주도해서 영국민 전체가 그렇게 국기와 국가를 우습게 보게 몰아가고 있다.’

필자는 주간조선 2667호에 영국인들의 애국심에 대해 쓴 바 있다. 거기서 ‘영국인들은 애국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애국심을 코에 걸고 있지 않고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인들처럼 야단스럽게 국기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 식은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영국인들은 애국심을 표현한다고 했다.

벌써 11년째 정권을 못 잡고 있는 노동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보수당처럼 잽싸게 자신들의 굳은 신념을 버리고 유권자가 원하는 것을 유권자 앞에 내놓는 것이다. 1997년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의 생명 같았던 ‘모든 산업의 국유화’를 명시한 당헌 4조를 포기하는 식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80%의 영국인이 왕정제 존치를 원한다면 자신들의 왕정제 폐지 신념을 거둬야 한다. 또 영국인들의 애국심을 알았으면 유니언잭도 자주 사용하고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라는 국가도 소리 내어 불러야 한다.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면 굳이 역사 다시 쓰기 같은 불장난은 하지 않는 것이 현실에 발을 디딘 정치인이 할 일이다. 정치는 신념이 아니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창 시작되고 있는 대선주자들의 정책과 역사 논쟁을 보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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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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