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허난성 중부에 내린 기록적 폭우로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 가운데 지난 7월 27일 정저우의 한 지하철역 입구 앞에 주민들이 갖다놓은 추모 꽃다발이 놓여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중국 허난성 중부에 내린 기록적 폭우로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 가운데 지난 7월 27일 정저우의 한 지하철역 입구 앞에 주민들이 갖다놓은 추모 꽃다발이 놓여 있다. ⓒphoto 뉴시스

“창밖의 물이 불어나더니 지하철 문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의 물도 점점 올라왔다. 우리는 모두 의자 위로 올라섰지만, 물이 목까지 차올랐다. 정말 무서웠다.”

지난 7월 20일 중국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 지하철 5호선 수몰사고 현장에서 탈출한 생존자의 말이다. 당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은 500여명.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정저우 지하철 5호선은 이날 오후 5시45분쯤 시내 중심부 구간에서 멈춰 섰다. 도로에서 넘친 물이 지하철 입구를 타고 폭포처럼 쏟아져 열차를 세운 것이다. 물은 빠르게 열차 안으로 스며들면서 차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차내 스피커에서 “승객들은 즉시 떠나라”는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은 탈출하기 위해 열차 맨 앞과 뒤쪽으로 몰렸다. 하지만 물이 깊어 터널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탈출한 승객들도 물이 가슴까지 올라오자 호흡조차 힘들었다. 열차 밖으로 나간 한 승객은 선로에서 미끄러져 급류에 떠내려갔다.

열차 수몰 3시간 뒤에 나타난 구조대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나 노인들은 물이 차오르는 지하철 안에서 좌석 위로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예감한 승객들은 위챗(중국판 대화앱)으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다급한 상황을 알렸다. 이들이 찍어 올린 영상을 보면, 수위는 상승해 좌석이 모두 잠기고 어른 가슴까지 차올랐다. 한 어린이는 지하철 기둥을 잡고 매달려 있었다. 한 여성은 마지막 순간에 대비하려는 듯 자신의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전화로 은행 계좌 정보를 가족에게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열차 안의 전등과 환기시스템이 꺼지고 산소마저 희박해지자, 문틈에 얼굴을 대고 숨을 쉬는 승객도 있었다.

참다못한 일부 승객들이 소화기를 찾아 유리창을 내려치고 탈출을 시도했다. 열차가 멈춰 선 지 3시간쯤 지나서야 구조대가 도착했다. 생존 승객이 모두 구조된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이날 지하철 매몰사고로 숨진 승객은 12명, 실종자는 2명, 부상자는 5명이라고 당국은 밝혔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중국인은 많지 않다. 정저우 시민들은 실제 사망자가 ‘그보다 많아도 한참 많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정저우는 인구 1260만명으로 허난성의 도청 소재지다. 베이징을 출발해 광저우~마카오로 가는 총장 1835㎞의 징광아오(京廣澳) 고속도로를 비롯, 중국을 종횡(縱橫)으로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바둑판처럼 뻗어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지난 7월 17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정저우에 내린 비는 617.1㎜로 연간 평균 강수량(640.8㎜)에 육박했다. 지하철 침수사고가 발생한 20일에는 시간당 최대 201.9㎜가 퍼부었다. 중국의 기상학자들은 “1000년에 한 번 만날(千年一遇) 수재(水災)”라며 대비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1975년 10여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허난성 판차오(板橋) 홍수 때보다는 강수량이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록적인 폭우로 허난성 내 133개 현(縣·한국의 군에 해당), 306개 향(鄕·한국의 면에 해당)에서 757만명이 수해를 입었고 58만명이 대피했다. 중국 정부는 7월 28일까지 사망 63명, 실종 5명이라고 발표했다.

대도시인 정저우는 순식간에 도로가 물에 잠기고 자동차들이 둥둥 떠다녔다. 더 큰 문제는 지하도였다. 정저우 기차역 앞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징광북로(京廣北路)의 터널 구간은 총길이 1.835㎞, 왕복 6차선이다. 이 터널이 지난 7월 20일 오후 폭우로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시민은 “지하도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일부 승용차 운전자들은 차를 버리고 도망쳤고, 잘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팔을 잡고 끌어냈다. 대략 15분 만에 터널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고 했다. 15분 안에 도망치지 못한 사람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필사적인 물빼기 작업이 끝난 지난 7월 24일 터널 안에서 265대의 차량이 뒤엉킨 채 발견됐다. 정저우시 도시관리국은 “사망자는 4명 발견됐다. 다른 운전자들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탈출한 것 같다”고 발표했다.

정저우시는 2017년 만든 도시계획에 따라 2018~2020년 총 534억8000만위안(약 9조5000억원)을 투입, ‘스펀지 도시(海綿城市)’를 건설해왔다. 도시의 홍수방지와 배수능력을 확대하여 폭우가 쏟아져도 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인다는 계획이다. 작년 말까지 도시 면적의 23.6%가 ‘스펀지 도시’로 변했다. 중국 관영 매체는 올 5월 “징광로 터널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말할 뿐 아니라 각종 설비 문제와 기상악화 등 돌발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다”며 “정저우에서 가장 완벽한 ‘인공지능 터널(智能隧道)”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이런 첨단 기능도 이번 폭우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한 시민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인공지능 도시라든가 스펀지 도시라는 개념은 모두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것”이라며 “지금의 홍수방지 시설이 송(宋)·원(元)나라 때보다 못하다”고 조롱했다. 닝보(寧波) 노팅엄대학 지리학과의 천자신(陳加信) 교수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스펀지 도시 계획은 24시간 동안 180~200㎜의 강수량에 대응하는 설비여서, 이번처럼 극단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저우 시민들은 이번 재난이 당국의 무능함에서 비롯된 ‘인재(人災)’라고 비판한다. 징광북로 터널은 최근 5년간 매년 1회꼴로 침수가 발생했는데도 시 정부는 이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터널 입구에 도로의 물이 흘러넘쳐 유입되는 것을 막는 계단이나 벽을 보강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7월 20일 당일 폭우 적색경보가 발령됐는데도 교통 당국은 터널을 봉쇄하거나 교통통제를 하지 않았다. 죽음이 다가오는 터널 속으로 시민들이 자동차를 몰고 들어가도록 당국은 방치한 것이다. 또 지하철 운행도 막지 않아 인명사고를 불렀다.

진실 은폐하고 여론 조작하는 中 공산당

민주 국가에서 정부의 무능과 태만으로 피해가 커졌다면 정치지도자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사과는커녕 정저우 폭우 피해와 관련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차단해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또 피해 상황보다는 당국의 구조활동을 부각시켜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외국 언론의 취재를 막는 등 ‘여론 조작’에 들어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영국 가디언 등은 지난 7월 22일 중국 당국이 정저우 홍수 피해를 전하는 사진, 동영상, 글 등을 인터넷에서 검열·삭제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필자가 7월 27일 오후 중국의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서 ‘정저우 수재’란 키워드로 사진을 검색했더니, 물에 잠긴 도로와 침수된 차량, 수재 현장에서 활동하는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들 사진뿐이었다. 물이 목까지 차오른 정저우 지하철 5호선 내부의 긴박했던 상황이나 징광북로 터널 속에 뒤엉킨 차량 사진은 모두 삭제됐는지 발견할 수 없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삭제 전 관련 사진을 공유했던 게시물에는 “적대적 외국에 의해 조작될 수 있으므로 삭제하라”는 명령조의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또 수몰 지하철에 갇혔던 피해자들의 경험담도 모두 삭제되고 있다. 5호선 지하철에서 의식이 혼미해지던 상황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고 정신을 차렸다는 한 여성의 글은 웨이보(微波)에서 사라졌다. 정저우의 한 변호사는, 지하철 승객들이 대피하는 상황에서 행정 당국이 개찰구를 개방하지 않고 카드를 대야만 열리도록 놔둔 것을 비판하며 “대만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하철 개찰구를 개방한 것과 비교된다”는 글을 블로그에 썼다가 당국으로부터 삭제 지시를 받았다. 중국의 한 신문기자(익명)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상부로부터)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재난에 대한 보도는 축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외국 언론 취재도 교묘하게 방해

중국 정부는 외국 매체의 현장 취재도 교묘하게 막고 있다.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DW)의 베이징 특파원인 마티아스 베링거는 7월 22일부터 정저우에서 수재 현장을 취재했으나 현지 청년들의 강한 항의와 물리적 제지를 받았다. 청년들은 베링거 기자를 둘러싸고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촬영할 수 없다. 영상을 통해 중국을 먹칠하고(抹黑中國) 정저우를 먹칠하려 한다. 경찰을 불러 당신이 무엇을 촬영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경찰이나 정부 요원이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현지 청년과 주민을 동원해 취재를 방해하는 방식이다. 이날 사태는 LA타임스의 중국계 기자인 앨리스 수(중국명 蘇奕安)의 중재로 마무리됐지만,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주중(駐中) 외국기자협회(FCCC)는 지난 7월 27일 이 사태에 대해 중국 정부에 공식 항의하고 ‘외국 기자의 자유로운 취재와 신변안전 보호’를 중국 측에 요구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BBC와 독일의소리(DW), 알자지라, CNN, AFP, AP 등 많은 외국 매체들이 중국에서 취재 도중 방해와 위협을 받았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외국 기자의 취재 사실을 알고 이를 방해하는 사람은 평범한 시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은 정보기관원이거나 당국의 지시를 받은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민간인을 동원해 외국 언론을 위협·압박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취재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꼼수’이다. 중국이 외국 언론의 현장 취재를 막는 것도 진실을 은폐하고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목적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때도 여론을 조작해 ‘실패’를 ‘성공’으로 둔갑시킨 적이 있다. 중국 당국은 2020년 초 용감한 고발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입을 공권력으로 틀어막아 바이러스 확산을 사실상 방치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초기 대응에 실패했지만, 오히려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작했다. 중국은 2020년 여름부터 아예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를 발표하지 않거나 숫자를 조작했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 관한 일체의 보도도 틀어막았다. 미국에서 사망자가 급증할 때도 중국은 관련 정보를 모두 차단해, 마치 중국이 미국보다 대응을 잘하는 것처럼 국제사회에 비치게 했다. 그러나 지난 5월 발표된 중국의 인구 통계에서 후난성(湖南省)의 2020년 인구(6644만4864명)가 2019년(6918만3800명) 대비 274만명(약 4%) 감소하는 등 1년 사이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의심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저우 수재 사태도 머지않아 정부의 무능과 실패담, 비극적 사건의 진실은 묻히고, 공산당과 국민이 힘을 합쳐 재난을 극복했다는 ‘미담 기사’가 언론을 도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진실이라고 믿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공산당의 선전선동술 뒤에서 중국의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대중)들만 고통을 삼키고 있다.

지해범 전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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