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의 바람대로 이번 개막식에는 가부키 배우인 이치가와 에비조의 출연해 재즈 피아니스트의 반주에 맞춰 공연을 했다. ⓒphoto. 뉴시스
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의 바람대로 이번 개막식에는 가부키 배우인 이치가와 에비조의 출연해 재즈 피아니스트의 반주에 맞춰 공연을 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일본 시사주간지 '주간문춘(이하 문춘)'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기사가 문제였다. 조직위원회는 세 가지를 편집부에 요구했다. 주간문춘 4월 8일자의 회수와 판매 중단, 문제가 된 기사의 온라인 삭제, 보유하고 있는 조직위원회 내부 자료의 폐기와 재공개 금지였다. 주간문춘은 조직위원회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렇게 갈등을 빚은 뒤 맞은 도쿄올림픽. 7월 23일의 개막식이 끝나자마자 이 기사는 다시 일본 온라인에서 핫이슈가 되며 점점 퍼져나갔다. 문춘은 생명력을 얻은 이 기사를 다시 홈페이지의 메인에 올렸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기에 수개월이 지난 기사가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기사는 도쿄올림픽 개막식 준비 과정의 부조리함을 지적했다. 도쿄올림픽의 개막식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박하다. 국내에서는 2018년 개최된 평창올림픽 개막식의 훌륭함이 재부각됐다. 해외언론의 반응도 한결같았다. 즐겁고 설레야 할 개막식이 장례식장 같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막식이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 뿐인가요?" 60년 경력의 데린 힌치가 글을 적자 호주의 기자가 댓글을 달았다. "리허설 같아요. 보고 있기 힘드네요."

문춘의 폭로, “개막식 연출자의 부당한 교체”

개막식은 왜 그렇게 엉망이 됐을까. 원래 개막식의 연출가는 2019년 6월 3일 임명된 안무가 출신인 미키코라는 여성이었다. 미키코씨의 연출 기획안은 IOC에 이미 제출된 상태였고 호평을 받았다. 기획안대로라면 이번 개막식에 등장하지 않아 아쉬웠던 게임캐릭터 슈퍼마리오나 만화주인공 아키라 등이 등장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연출가가 사사키 히로시(2021년 3월 여성 방송인의 외모를 비하해 물러나게 된다)로 갑자기 교체된다. 그는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츠 출신의 CM제작자이다. 덴츠는 일본 내에서 거스를 경우 광고 바닥에서 일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돌 정도의 위상을 가진 회사다. 도쿄올림픽 공식 마케팅 에이전시가 바로 덴츠였다.

미키코에서 사사키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그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없었다. 그동안 원안대로 개막식을 준비하던 500명의 스태프들도 붕 떠버렸다. 코로나19로 인해 올림픽도 1년 뒤로 연기된 상황이었다. 덴츠는 미키코와 그 어떤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미키코는 덴츠 쪽에 메일을 보냈다. 미키코는 주간문춘에 "지난해 10월 다른 스태프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용기를 내 덴츠에 문의했다. 그런데 이미 다른 연출가가 개막식을 맡았고 새로운 기획안도 IOC에 제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춘은 "2019년 9월 연출가였던 미키코씨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고 전했다. 정치가의 개입 때문이었다. 모리 요시로 당시 조직위원장(2021년 2월 여성 비하 발언으로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은 가부키 배우인 이치가와 에비조의 출연을 원했다. 이치가와는 2020년 5월 선조의 이름을 계승해 제13대 이치카와 단주로(市川團十郞)가 되는 의식을 치르기로 돼 있었다. 일본 전통예술계에서 선조의 이름을 계승하는 것은 영광스런 자리다. 모리가 그를 원한 이유는 단순했다. 문춘은 "그의 단주로 계승을 축하해주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69대 요코즈나인 하쿠호 쇼와 락밴드 X-JAPAN의 리더였던 요시키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모두 모리 위원장과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다. 개막식에서는 모리 위원장의 바람대로 이치가와가 재즈 피아니스트 히로미의 반주에 맞춰 무대에 올라 그의 가부키 대표작 중 하나인 '시바라쿠'의 일부 장면을 선보였다.

올림픽이 열리는 곳은 도쿄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요구도 빠지지 않았다. "불끄기와 나무심기를 반드기 연출에 넣어달라." 그녀의 독특한 부탁은 일본 소방 문화의 시초라 불리는 에도의 소방 문화를 담아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속사정이 있었다.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때 자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코이케 지사를 지지해 준 곳이 '에도(江戶) 소방기념사업회'였다. 올림픽 퍼포먼스는 과거 지지에 대한 정치인들의 보답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개막식에서는 에도 시대 목수로 분한 공연자들이 동그란 나무를 운반하며 오륜기를 만들었다.

개막식 연출을 맡은 사사키도 나름 할 말은 있었다. 그는 문춘과의 인터뷰에서 예산 부족을 언급했다. "내가 책임자가 됐을 때 지금 예산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10억엔이라고 했다. 올림픽 연기 전에 책정된 예산이 130억엔이었다. 적어도 80억엔 정도는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전임 연출가였던 미키코는 이미 연출에 120억엔이라는 거액을 투자됐다는 뜻이 된다. 이쯤되면 이전의 연출안을 살리는 게 맞지만 사사키는 처음부터 개막식을 다시 리셋해 연출했다. 앞선 정치인들의 부탁은 개막식에서 모두 현실이 됐다.

문춘의 기사는 엉성했던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갖는 세간의 의문에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했다. 뭐든 선을 넘으면 안 되는 법이다. 정치인의 개입이 개막식의 문제로만 끝나면 좋으련만, 아직 폐막식이 남았다는 게 문제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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