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국이 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9월 3일 총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의 자민당 총재 불출마 선언에서 촉발된 회오리바람이다. 자민당 내부의 변화지만 집권 여당이란 점과 코로나19 비상사태를 고려하면 일본 전체를 아우르는 정변으로 느껴진다. 누구나 예상했지만 도쿄올림픽이 끝나는 즉시 국회가 해산되고 스가를 중심으로 한 중의원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전망됐다. 싫든 좋든 전염병 위기상황에서 결코 장수를 바꿀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행진 중 갑자기 장수가 스스로 말에서 내리면서 지휘봉을 주변 참모들에게 넘겼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상황이 터진 것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말에서 내려 계급장을 뗀 것은 일본 정치사에서 극히 드문, 자진 사임이다. 하루라도 아니 1분이라도 권력의 단맛에 집착하는 것이 인간이다. 지지율도 낮고 총선 후 자민당 표가 줄어들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전염병 비상시국의 총리 자리는 보장됐다. 그러나 스가는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했다. 늦어질 경우 자신은 물론 자민당도 추락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붙을 수 있겠지만 99% 보장된 총리 자리를 마다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결단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불출마 선언은 사(私)를 넘어선 공(公)의 정치가로서의 모범답안으로 느껴진다.

지역구 반란 조짐에 총리 사퇴 카드

일방통행 권력도 문제지만 텅 빈 권력은 한층 더 위험하다. 권력에 목마른 불나비들의 막장정치가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말에 오르려는 과정에서 당권 분열과 내부 총질로 공도동망(共倒同亡)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스가의 불출마 선언이 터져나오는 순간 자민당 내 7개 파벌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기 총재 자리를 목표로 한 자민당 내 합종연횡(合從連衡)이다.

현재의 중의원 임기는 오는 10월 21일 끝난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임기만료 한 달 전인 9월 29일 치러질 예정이다. 총재 선출 즉시 국회를 해산하고 중의원 총선거 일정이 공표된다. 자민당 신임 총재는 총선거를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이자 간판이다. 전국 선거구를 돌아다니면서 자민당 후보 응원에 나서는 것이 신임 총재의 가장 큰 역할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국민적 지지와 인기가 필요하다. 자민당 후보 지역에서 지원유세에 나설 경우 득표에 플러스가 되어야만 나타날 수 있다. 일본 정치 사상 최장수 총리 기록보유자인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그 같은 역할을 누구보다도 잘해낸 정치가다. 선거 당시 자민당 후보들의 선거지원 구원투수 영순위가 아베였다. 아베의 개인적 인기가 이유겠지만, 유세지원에 나서는 순간 사람이 모이고 득표로 연결됐다. 아베를 ‘맛이 간 극우정치가’로 비하하는 사람들도 많다. 필자가 보면 일본식 풀뿌리민주주의의 증거이자 성과가 바로 아베다.

태양빛이 강하면 눈을 뜰 수가 없다. 아베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겠지만, 후임 스가는 ‘결코’ 최장수 총리와 같은 전설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지만 갑자기 델타 변이가 나타나면서 실패했다. 기대했던 올림픽 열기도 없었다. 일본은 강제 방역이 없는 나라다. 스스로 알아서 행하는 자율 방역이 기본이다. 한국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 강제로 식당 문을 닫는 식의 방역은 시도하기 힘들다. 마스크를 쓰라고 권유는 하지만, 안 써도 법적으로 제재를 안 하고, 못 한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위헌이기 때문이다. 자진해서 업소 문을 닫을 경우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을 거부하고 매일 손님을 받는 업소도 대략 70% 정도다. 사실상 코로나19와의 동거에 들어간 상태라 볼 수 있다. 감염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어떤 총리라 해도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본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된 이상, 비난의 화살은 스가에게 집중된다. 내각 지지율이 떨어지고 국민들도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스가가 지원유세에 나설 경우 거꾸로 표를 깎아먹을 것이란 위기의식이 지역구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심지어 스가의 지역구에서조차 조반(造反)의 깃발이 펼쳐졌다. 스가의 불출마 선언은 지역구 조반이 발표된 지 5시간 만에 이뤄졌다. 자민당 후보 지원은커녕, 자기 선거구에서조차 낙마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았다. 결국 총재 불출마라는 카드로 수습한 것이다.

정치라는 잣대로 살펴보면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여러 각도에서 여러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과거와 미래를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다르다. 한국 정치는 과거를 중시 여긴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재 여야에서 벌어지는 공방을 보자.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별로 안 보인다. 정책 발표회 무대라고 하지만, 토론의 핵심은 과거에 무슨 발언을 했다, 무슨 행적이 있었다에 관한 치고받기 설전에 그친다. 후보자들이 방문하는 곳을 봐도 미래와 관련된 곳이 드물다. 달력에 꽉꽉 채워진 수많은 사건 사태의 추모비, 기념탑, 열사비, 묘지 방문이 우선이다.

일본은 어떨까? 과거는 이미 흘러간 어제의 기억일 뿐이다. 예를 들어 스가에 관한 부분을 보자. 총재 불출마 선언 하루 뒤부터 스가에 관한 얘기 자체가 사라졌다. 스가의 고뇌에 찬 결단이란 식의 그럴듯한 얘기도 나올 수 있지만 국민들은 어제의 잘난 스가보다 앞으로 펼쳐질 경제정책이나 의료복지에 주목한다. 후보로 나설 정치가들은 갖가지 정책들을 재빨리 쏟아낸다. 신문·방송 인터뷰에 적극 응하면서 각자의 색깔을 자민당원과 국민들에게 보여준다. 경쟁 후보자의 과거 행적이나 발언에 대한 비난은 없다. 상대를 비난하면서 권위나 정당성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비전과 리더십을 통해 국민에게 어필한다. 3·11 동일본대지진 참사비 방문이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같은 것도 없다. 총선 일정에 따라 현장 위문 차원에서 3·11 현장에 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과거 대참사에 대한 의례적인 조문은 없다. 일본 국민들에게 3·11은 이미 과거다.

자민당 내 7개 파벌 향방이 좌우

9월 8일 현재 기준으로 자민당 총재 입후보자는 크게 4명이 언급되고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행정개혁담당상,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정무조정회장이다. 대략 고노와 기시다 이파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최종 승자는 자민당 내 7개 파벌정치의 향방에 달려 있다. 한국인이 보면 뭔가 어둡고 복잡하게 보이는 것이 일본의 파벌정치다. 일일이 알 필요도 없지만 ‘파벌정치=사리사욕 분열정치’라는 식의 일방적 예단만은 위험하다. ‘파벌정치=악’이 아니란 말이다. ‘파벌정치=선’은 아니지만, 악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 자민당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전제다.

일본 정치를 보면 차기, 차차기, 차차차기 총리 리스트가 일반 상식처럼 돌아다닌다. 일본 정치부 기자에게 A 정치인에 대해 물어보자. 어떤 배경의 정치가로, 언젠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갈지에 관한 미래 운명감정서가 일목요연하게 제시된다. 정치 관련 다른 전문가에게 물어봐도 A 정치가에 관한 비슷한 내용의 운명감정을 들을 수 있다.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정치가를 보면, 시간의 문제일 뿐 모두가 예상하는 식의 자리에 올라선다.

자민당 파벌정치는 일본 특유의 정치 문화인 세습정치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된다. ‘파벌정치=세습정치’다. 파벌 정치의 핵심이 바로 세습정치가들이기 때문이다. 노포(老鋪)는 외국인이 놀라는 일본 문화의 특징 중 하나다. 시골 작은 마을에 가도 수십 년, 수백 년 된 노포 식당이나 가게가 버티고 있다. 최소한 4~5대(代)로 시작하는 대대손손 가계(家系)가 노포의 주인공이다. 200년 이상 지속된 노포 가게나 기업을 보면, 일본이 세계 톱이다. 상식이지만, 싸고 변치 않는 곳이 노포다. 선대부터 이어온 신뢰 관계는 기본이다. 한순간 대박을 노리는 곳은 결코 노포 리스트에 들어갈 수 없다.

자민당 세습정치가는 바로 노포 경영자에 해당한다. 카리스마 넘치고 머리도 좋고 스펙도 만점인 정치가보다, 대대손손 정치로 살아온 세습정치가를 한층 더 신뢰하고 지지한다. 따라서 선거에 나가면 무조건 당선이다. ‘세습=노포’인 셈이다. 파벌정치의 핵심이 세습정치가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역구 당선이 100% 보장되기 때문에 전국 차원의 정치가로 나설 수 있다. 정치자금은 대대손손 이어온 지역 내 후원회를 통해 조달된다. 부정부패를 불사하며 큰돈에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 부모 때부터 직간접으로 서로 알고 지내면서 세습정치가 사이의 묘한 유대감도 생긴다. 파벌정치의 특징이지만 최종 파이를 파벌의 파워와 영향력에 비례해 공평하게 나눈다. 고노를 총재로 밀어 당선시킬 경우 장관이나 자민당 내 보직에 관한 파벌들의 공평한 배분이 뒤따른다. 당장의 파워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고 멀리 내다본다.

세습정치의 작동원리

세습정치가는 자신만이 아닌 자신의 후대까지 고려하면서 정치를 한다. 도쿄나 오사카(大阪) 같은 대도시는 카리스마·스펙 정치가들의 주무대다. 하지만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반짝할 수는 있지만 더 잘난 스펙과 더 강력한 카리스마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방으로 가면 산전수전 노포 경영자, 세습정치가들이 버티고 있다. 스펙도 약하고 카리스마와 무관한 정치가지만 자자손손 길고도 오래간다.

금수저 정치가를 생리적·유전적으로 싫어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한국 정치가들은 가난 자랑에 목청을 높인다. 일본 국민들은 금수저·흙수저 여부에 관심이 없다. 과거이기 때문이다.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흙수저보다 금수저를 선택한다. 흙수저는 헝그리정신으로 반짝할 수 있다. 그러나 노포 정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개업 1년 만에 미쉐린 원스타에 올랐다가 이듬해 사라지는 식의 트렌드 정치가로 비칠 뿐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16세기 일본 전국시대의 3걸이다. 이들 중 일본인의 비호감 1위는 도요토미다. 오다와 도쿠가와는 지역 내 명문 세력가 출신이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란 의미다. 이에 반해 도요토미는 철저한 흙수저 배경에서 태어났다. 농민 출신으로 오다의 눈에 들어 일약 출세한 인물이다. 가난의 때가 밴 탓이겠지만, 전국시대 실력자로 오른 뒤 금으로 만든 집과 수천 명 여자를 거느리며 호화롭게 살아갔다. 비싸고 귀한 것에 대한 집착이 엄청나다. 일본 역사가들의 평가지만 도요토미가 권력과 힘자랑 수단으로 행한 백해무익 전쟁이 임진왜란이다. 간단히 말해 오다와 도쿠가와는 노포 정치가지만, 도요토미는 근본도 없는 벼락출세 날치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본인들의 인식이다. 대박은 결코 오래 못 간다. 금수저 세습정치가가 자민당 정치의 주역이 되는 이유다.

자민당 총재로 나설 정치가 4명을 보면, 여성인 다카이치를 제외한 남성 세 명 전원이 세습정치가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정치를 직업으로 한 집안의 후손들이다.

뒤틀린 한·일 문제를 고려할 때 누가 자민당 총재에 오르고 총리가 될지 궁금하다. 일본 국민들이 선택할 문제지만 필자 기준에서 보면 누가 되든 한·일 관계를 다루는 총리로서의 입장이나 자세는 동일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치에 관해서는 차이가 많겠지만 대외정책 특히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입장은 후보자 4명 모두 대동소이하다. 크게 두 가지 배경에서 그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세대론이다. 나이를 보면 고노 58세, 다카이치 60세, 이시바 64세, 기시다 64세다. 전부 1980년대 버블의 단맛을 느꼈고 반미·친한·친중의 단카이(団塊) 세대와는 선을 긋는 세대다. 식민지 역사나 중국 침략 문제에 관한 감각이나 의식이 앞선 세대 정치가와 전혀 다르다. 과거사 문제를 꺼내면 중간에 말을 끊고 정면대응할 정치가들이다. 버블 당시 일본의 월등한 경제력으로 미국을 눈 아래로 쳐다본 경험도 갖고 있다. 반미·친미를 넘어서 정신적·물질적으로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전혀 없다. 한·일 역사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관여할 경우 왜 남의 일에 나서냐고 핀잔을 줄 세대다.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없는 세대

둘째는 미국과의 관계다. 이시바는 예외지만 나머지 3명 모두 미국 경험을 갖고 있다. 고노는 워싱턴 조지타운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끝낸 영어가 유창한 정치가다. 워싱턴에 자주 들르기 때문에 미국 내 친구들도 많다. 10여년 전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눈치 안 보고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 소신파 정치가로 비쳤다. 다카이치는 워싱턴 하원의원 사무실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필자의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선배이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당찬 여장부다. 1980년대 미국에 단신으로 건너가 워싱턴에서 일하다가 미국 정치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가로 변신했다. 21세기 이후 상황이지만 미국 내 공공기관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일본인이 넘치고 넘친다. 반일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던 1980년대는 다르다. 필자 판단이지만 워싱턴 정치 최전선에 들어가 활약한 최초의 일본 여성이 다카이치다. 금수저 세습정치가는 아니지만 여성이란 장점을 활용해 언젠가는 총리에 오를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남편도 현직 자민당 의원이다. 기시다는 초등학교 3년간 뉴욕에서 생활하다 돌아온 이른바 귀국자녀다. 당연히 영어가 유창하다. 국내보다 국제정치에 한층 더 어울릴 정치가다.

한국 정치 문화로 보면 영어가 가능해도 특별한 프리미엄이 없다. ‘우리끼리’에 집착하는 우물 안 586 정치가들이 보면 ‘친미 전도사’란 딱지를 붙이며 오히려 적대시할 대상일 수도 있다. 일본은 다르다. 영어 구사능력과 함께 구미 문화에 익숙한지 여부가 총리 자질 중 하나다. 일본 역사가들의 평가지만 영어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총리에 발탁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이토는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한 것은 물론 이후 영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거의 현지인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게 된다. 외국 문물 수입에 급급하던 당시, 일본이 필요로 하는 최적의 통역 전문가가 초대 총리 이토였다. 2021년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공식화된 상태에서 일심동체 동맹 미국과의 관계도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이토2.0’이 될 영어 가능 총리가 최전선 리더로 등장할 것이다.

곧 자민당 총재 선거가 실시되겠지만 누가 되든 자민당 승리가 점쳐진다. 9월 7일 닛케이 주식 지수가 급상승하면서 3만엔을 돌파했다는 것은 자민당 훈풍의 전조다. 총재 후보자들 모두가 정책 발표에 분주하고 일본 미디어 대부분이 자민당 총재 선거 소식을 헤드라인으로 뽑고 있다. 자민당 총재 이벤트의 흥행이 상종가를 달린다는 의미다. 야당이 워낙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식도 오르고 총재 이벤트도 활황세로 접어든 이상 자민당의 내일도 밝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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