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10월 31일 열리는 총선거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각당 후보들의 출사표와 함께, 당수들 간의 TV토론회도 연일 열리고 있다. 정치 일신을 통한 밝고도 희망찬 일본이 기대된다는 말이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국민의 제1 관심사다. 총선이 목전으로 다가왔지만 정작 일본인들이 주목하는 뉴스는 정치 관련 소식이 아니다. 중심에 선 뉴스는 마코(眞子) 공주와 동갑내기 일반인 고무로 게이(小室圭)와의 결혼식이다. 총선보다 4일 앞선, 10월 26일 열릴 예정이다.
마코는 현재 일본 천황 나루히토(徳仁)의 친조카이다. 마코의 아버지 후미히토(文仁)가 천황의 남동생이다. 황실의 혼사라면 1981년 영국의 찰스-다이애나 결혼식이 떠오른다. 2021년 마코-고무로 결혼식은 세계를 흥분시켰던 40년 전 영국 왕실에 대한 기억과는 정반대편에 선 행사다. 일본 특유의 집단의식, 즉 ‘공기(空氣)’라고나 할까? 일본인 90% 정도에 흐르는 지금의 공기는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는 ‘어둠의 결혼식’이라는 평가다. 축복이나 행복이 아니라 모두의 걱정과 불안, 나아가 비난 속에 치러질 이벤트가 곧 전해질 도쿄발 황실 결혼식이다.
추리드라마 같은 마코 공주 결혼
한국에도 해외토픽처럼 전해지고 있는 소식이지만, 마코의 결혼 문제는 이미 5년 전부터 시작된 구문(舊聞)이기도 하다. 가까운 친척 결혼 문제도 수년간 끌 경우 무관심해지기 쉽다. 그러나 마코 결혼 문제의 경우 2017년 9월 약혼 발표 기자회견 이래 지금까지 1억2000만 일본인 모두의 ‘변함없는’ 관심사로 자리 잡아 왔다. 출발점은 5년 전 기자회견 직후 터져나온 한 주간지 보도에 있다. 기사의 핵심은 고무로 집안의 기묘한 내력이다. 고무로가 어릴 때 아버지가 분신자살한 것을 시작으로 고무로의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뒤따라 전부 자살했다. 뚜렷한 이유도 모른다. 도시 괴담으로 느껴질 ‘엽기 가족’의 중심에 선 인물은 고무로의 어머니 고무로 가요(小室佳代)다. 재산이나 특별한 배경도 없고 비정규직 파트타임으로 고무로를 키우고 생계를 꾸려나간 싱글마더다. ‘가난 자랑’에 목청을 돋우는 한국 정치가들이 보면 모두가 부러워할 흙수저 대명사쯤에 해당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터져나온 보도를 보면, 고무로 가요는 남자관계가 복잡하고 평소에 돈 씀씀이도 헤프고 옷차림도 분수에 맞지 않게 화려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자식인 고무로에 대한 ‘맹모삼천’의 모습이다. 엄청난 학비가 소요되는 사립학교와 대학에 아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강습과 같은 과외 활동비도 엄청났다고 한다. 한국이라면 자식에 헌신한 신사임당 어머니로 불릴 듯하지만 일본은 전혀 다르다. 돈이 어디에서 나와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비싼 교육’을 시킬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일본은 투명한 나라다. 일본에서의 일상생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1엔 단위로 빈틈 하나 없이 돌아가는 일상이 보통 일본인의 삶이다. 로또 대박이나 막판 뒤집기는 없다. 시급 1000엔 미만 파트타임으로, 한 달 평균 20만엔 전후 수입이 전부인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런저런 연금을 끌어모은다 해도 보통 일본인에게는 불가능한 생활을 무려 20여년 이상 지속해온 인물이 바로 싱글마더 고무로 가요의 인생이다.
추리드라마는 일본 TV 프로그램의 대명사다. 피바람이 이는 액션이나 극적인 장면도 없고 머리 하나로 풀어가는 집단게임이 일본식 추리드라마의 정수다. 한국인이 보면 1분 만에 채널을 돌릴 듯하지만, 추리드라마는 일본 TV 장수 프로그램에 반드시 들어간다. 드라마 속 탐정처럼, 일본인 모두가 머리를 굴리면서 ‘엽기 가족’의 어제 오늘 내일을 분석하는 중이다. 천편일률 진부한
1차원 추리지만 현재의 추리는 ‘분신자살한 아버지=상해보험금 문제’로 모아진다. 화려한 황실 결혼이 공포와 전율의 무대로 돌변한 것이다.
‘엽기 가족’ 주변에서 들리는 증언이나 증거들도 일시에 쏟아지는 중이다. 고무로 어머니의 재혼 상대로 알려진 남성과의 금전 문제는 ‘엽기 가족’을 악의 화신으로 만든 계기가 된다. 재혼 상대 남성의 육성 증언이 방송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고무로 가족이 주장하는 것처럼 선물성 지원금이 아니라 빌려준 돈이라는 것이다. 액수는 전부 400만엔 정도다. 1조원 부동산 스캔들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껌값 정도로 들리겠지만 일본인 모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400만엔 실체와 관련한 진상규명이 마코 결혼보다 더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다. 급기야 마코 공주의 아버지까지 나서 진상규명을 요구하기에 이르지만, 4년을 넘긴 지금까지 미해결 상태다.
쏟아지는 증언·증거
파트타임 어머니에 이어 자식인 고무로를 파헤치는 파파라치들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과장·왜곡도 많겠지만, 학교 동급생이나 과거 직장 동료가 언급한 고무로의 인성을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신분상승 욕구가 엄청난 인물이란 것이 결론이다. 일본 미디어는 고무로를 ‘바다의 왕자(海の王子)’라 부른다. 학생 시절 도쿄 인근 쇼난(湘南)해수욕장에서 열린 이벤트에 나가 왕자로 뽑힌 뒤 광고 캐릭터로 나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청춘의 상징으로 박수를 칠 만도 하지만 부정적으로 인용되는 별명이다. 일확천금 왕자의 길로 나아가려는 신분상승 욕구가 ‘바다의 왕자’라는 타이틀 속에 투영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무로가 마코와 만난 것은 국제기독교대학(ICU) 재학 당시다. 마코는 20세기 황족의 교육기관이던 가쿠슈인(學習院)대학이 아니라 사립 ICU에서 공부했다. 가쿠슈인대학은 일본 전통 교육에 주목하는 곳이다. 이에 반해 ICU는 외국어 교육에 기초한 예술·종교·철학을 주로 가르친다. ICU는 마코는 물론 일본 명망가 자식들이 모인 21세기 일본 금수저 대학으로 통한다. 비정규직 파트타임 흙수저 가족은 쳐다볼 수도 없는 구름 위의 세계다. 일본 미디어는 ‘ICU=바다의 왕자를 위한 신분상승 도약대’라고 분석한다. 의도적으로 금수저가 모이는 곳만 골라다녔다는 것이다. 고무로가 금수저 여학생들에게 접근한 흔적도 동급생들을 통해 폭로됐다. 특히 마코와 만날 당시 다른 여학생과 교제하다가 상대 부모로부터 교제 중단을 요구받았던 사실도 드러났다. 돈과 권력에 양다리를 걸치다가 결국 마코와의 결혼까지 가게 됐다는 것이 ICU 동급생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