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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3호] 2021.11.15

폴란드 ‘낙태’ 논란 ‘폴렉시트’로 이어지나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 2021-11-14 오후 3:01:37

▲ 지난 11월 6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낙태를 옹호하는 여성들이 자궁에 태아가 있던 상태로 사망한 여성이 낙태금지법의 희생자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동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인 폴란드가 낙태 문제를 놓고 심각한 좌우 갈등을 벌이고 있다.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낙태 금지 판결을 내리자 유럽연합(EU)은 폴란드의 사법부 독립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폴란드 헌재는 지난 10월에도 폴란드 법률이 EU의 조약이나 법률에 우선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폴란드의 보수정권이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한 영국처럼 EU에서 탈퇴하는 ‘폴렉시트(Polexit)’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지난 11월 5일 수만 명의 여성이 한 임산부(30)의 사망을 계기로 낙태금지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사망한 여성이 폴란드 낙태금지법의 첫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병원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는데 자궁에는 22개월 된 태아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변호사가 말했다. 이 사건은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낙태금지 판결을 내린 9개월 만에 발생했다. 폴란드 언론들은 의사들이 낙태 시술을 거부하고 태아가 자궁 내에서 자연사하기를 기다린다고 전했다. “이론적으로는 의사들이 여성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질 경우 임신중절을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처벌이 두려워 태아가 자궁 내에서 자연사하기를 기다린다. 의사들이 일찍 행동했다면, 이 여성은 살았을 것이다”라고 시위에 나선 여성들은 주장했다.
   
   여성단체들은 이와 관련 시위를 폴란드의 70개 도시에서 개최하였다. 일부 단체들은 유럽위원회에 ‘EU의 가치(values)’를 존중하지 않는 폴란드에 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폴란드 우파 인사들은 여성의 사망은 낙태금지법과는 무관하며 EU와 폴란드의 가치가 충돌한다면 폴란드가 EU에서 탈퇴하는 폴렉시트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폴란드의 사실상 실권자인 ‘법과 정의당(PiS)’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의장. photo 뉴시스

   낙태 논란 좌우 갈등으로
   
   폴란드는 국민의 90%가 가톨릭교도로 낙태에 가장 엄격한 나라이다. 냉전시절 가톨릭교회는 반소련·반공산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다. 소련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폴란드에서 낙태가 허용되었다.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즉각 이 문제가 제기되었다. 결국 1993년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낙태는 강간, 근친상간, 여성의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 그리고 태아 장애를 제외하고는 일절 금지되었다. 그러자 대부분의 낙태가 태아 장애를 사유로 시술되었다. 폴란드 보건부에 따르면 2019년 합법적으로 행해진 낙태 1100건 가운데 98%는 태아의 건강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집권한 보수적인 ‘법과 정의당(PiS)’은 낙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다. 지난해 10월 22일 헌법재판소는 태아 장애를 이유로 한 낙태는 헌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폴란드 국내외에서 강력한 반발이 일어났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폴란드 국민의 70%는 이 법에 반대한다. 국내에서는 집권당과 가톨릭교회에 반대하는 시위 및 폭력사태가 빈발했다. 서유럽 언론들은 소련 말기의 반소·반공 민주화시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르샤바, 포즈난, 크라쿠프 등 대도시 주요 광장이나 성당, 집권당 PiS 당사 앞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10월 30일에는 바르샤바에서 15만 인파가 시위를 벌였다. 폴란드의 사실상 실권자로 자타가 인정하는 PiS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의장의 집 앞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여성들은 “내 몸은 내가 다룬다(My body is my business)” “여성투쟁(Women’s strike)”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는 동안에 발생한 시위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최루탄을 발포하는 등 강경대처를 하여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카친스키는 의회에서 야당인 ‘시민플랫폼(Civis Platform)’ 의원들을 향해 “당신들이 지지하는 시위로 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있다. 당신들 손에는 피가 묻어 있다. 당신들은 죄를 저질렀다. 폴란드가 법치주의 국가라면 당신들 중 상당수는 벌써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고 외쳤다.
   
   가톨릭교회에 대한 증오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성당이 훼손되고 신부들이 공격받는 등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사태들이 일어났다. 지난해 10월 27일에는 포즈난, 시체친 등의 성당이 시위대 공격을 받아 파손되었으며 성물이 도난당하기도 했다. 실리지아 지방의 브르제조브카 마을에는 낙태로 태어나지도 못하고 희생당한 아이들을 추모하는 천사의 동상에 누군가 검은색 페인트를 부었다. 올해 2월에는 체스토코바에 있는 폴란드 순교자성당의 성모 마리아상의 두 손이 절단되어 버려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파라디즈에서는 69세의 신부가 저녁 때 성당 문을 닫는 순간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 며칠 후 르제스조브에서도 18세, 20세 청년 두 명이 길에서 술을 마신 뒤 성당에 들어가 신부를 폭행하고, 유리창을 부수고, 신도석을 뒤엎어놓았다.
   
   좌파가 과격화되자 우파도 과격화되는 양상이다. 우파 민간단체인 ‘민족수호대(National Guard)’는 ‘우리는 문명의 가치를 보호한다’는 구호를 앞세워 기금을 모아 경찰 지원에 나섰다. 이 운동을 시작한 로버트 본키에비치는 “우리는 신볼셰비키혁명의 진앙지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문명에 반대하는 세력이 가톨릭교도를 공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가톨릭과 문명을 스스로 지키는 일종의 자위조직을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민족수호대는 합법적인 낙태허용론자들을 적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낙태로 인해 폴란드에서 수백만의 생명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우파는 리버럴들의 교회와 성직자들에 대한 공격에 분노한다. ‘가톨릭의 수호자들’이라는 민간단체도 생겼다.
   
   
▲ 지난 10월 벨기에에서 열린 EU정상회의에 참석한 폴란드의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총리. photo 뉴시스

   유럽의회 폴란드 헌재 판결 비난 결의안
   
   폴란드 바깥의 여론은 보수파에 불리하다. 유럽의회는 지난 10월 26일 폴란드 헌재의 판결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제인권단체들도 헌재 판결을 비판했다. 휴먼라이트워치, 국제사면위원회, 그리고 출산권센터 등은 폴란드 헌재의 판결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냈다. 사면위원회는 “낙태를 법으로 금지한다고 낙태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들이 비밀리에 또는 해외에서 낙태를 하여 필요한 의료조치를 받지 못하게 되어 여성의 건강만 해친다”고 강조했다. 폴란드 비정부기구인 ‘폴란드 가족계획 및 여성의 권리를 위한 연맹’에 따르면 폴란드 여성들이 불법 또는 해외에서 행하는 낙태건수는 매년 10만~15만건에 달한다.
   
   위보르크자신문의 여성판 표지에는 검은 마스크를 한 성모 마리아가 한 손에는 낙태 옹호운동의 상징인 붉은색 번개를, 다른 손에는 낙태 반대운동의 상징인 검은 우산을 들고 있는 그림을 실었는데 총리실 대변인은 이에 대해 “좌파들의 도발이며,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를 믿는 사람들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현재 폴란드의 시위 지도자들은 헌재의 판결은 집권당을 지지하는 보수 유권자들과 가톨릭교도들의 표를 얻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헌재 재판관 대부분이 현 집권당이 임명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올 3월 폴란드의 한 지방법원은 성모 마리아상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입힌 3명의 레즈비언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폴란드에서는 2020년 6월 신앙심을 모욕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196조가 신설되었다. 이에 따르면 최소 2년의 징역을 살게 되는데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아그니에즈카 워홀 판사는 성모상에 무지개색을 입힌 사람들은 신앙심을 모욕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동성애자들 간의 연대를 과시한 것이 목적이었다고 판시했다.
   
   유럽 의회는 즉각 이 결정에 만족한다고 발표했다. 신앙심 모욕 행위를 처벌하는 폴란드 형법 196조가 “민주국가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중세의 유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폴란드 언론들은 워홀 판사가 동성애 운동가인 배우 마리우스 포고노프스키와 동거하는 동성애자라고 보도했다.
   
   폴란드의 PiS 정권은 국내외의 반발을 무릅쓰고 올 1월 헌재의 낙태 금지 판결을 아예 입법화하였다. 그러자 집권당의 사법부 장악에 대한 국제적 비판도 고조되었다. PiS는 2015년 집권 이후 사법부 장악을 추진해왔다. 대법관들에게 은퇴를 종용하는가 하면 친정부적 인물들로 사법부를 채웠다. 지난 3월 유럽재판소(European Court of Justice·ECJ)는 폴란드의 대법관 임명에 관한 새로운 규칙이 폴란드 국법에 우선하는 EU 법률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또 폴란드 정부가 새로운 규칙을 폐기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존중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폴란드의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지난 7월 헌재에 폴란드와 EU 법률 중 어떤 법이 우선하는지 판시해달라고 요청했다.
   
   폴란드 헌재는 지난 10월 7일 폴란드 법률이 우선한다고 판결했다. 헌재는 2004년 폴란드가 EU에 가입했지만 법률적 권한을 EU에 위임한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는 EU의 조약이나 법률 일부가 폴란드 법률에 위배된다고 판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폴란드의 법학자 야쿱 야라제프스키는 “예상치 못한 결과이다. EU의 핵심사상인 EU 법률이 폴란드에서는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이전에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미들섹스대학의 유럽법 교수인 로랑 페시는 이 판결이 “EU의 법질서에 대한 핵폭탄 공격”이라며 “그 판결이 공표되는 순간부터 폴란드의 법관들은 EU 법을 위반할 것인가, 자국 헌법을 위반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폴란드 헌재의 판결은 유럽위원회와 유럽의회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유럽위원회는 “폴란드 당국은 EU의 강력한 대응을 받을 것이며 위원회는 EU의 법적 안정성을 수호하는 조약에 따른 권한을 주저없이 행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폴렉시트가 이미 시작되었다”
   
   EU 고위 관리들은 폴란드 헌재의 판결은 ‘폴렉시트’로 향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고 유로뉴스는 전했다. 한 관리는 “EU 법질서로부터의 폴렉시트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럴 경우 협력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페시 교수는 폴렉시트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폴렉시트는 폴란드가 ECJ의 명령을 거부한 때 시작되었다. 이는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EU 회원국이라는 사실과도 양립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특히 독립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받는 불법적인 헌법재판소에서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는 점이 비판을 받고 있다. 페시 교수는 “폴란드에서 헌재는 꼭두각시 법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헌재는 중요한 법원이 아니다. 헌재는 근본적으로 집권당이 원하는 것을 하는데 지금 집권당은 EU 법률이 폴란드에서 적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폴란드 국민의 80%는 폴란드의 EU 가입을 찬성한다. 폴란드의 실권자인 PiS의 카친스키 의장도 최근 EU 탈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법적 폴렉시트(legal Polexit)’를 우려한다. 폴란드가 EU의 법률적인 영역에서 탈퇴하여 EU의 완전한 회원국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유럽안정기구(European stability initiative)의 게랄드 크나우스 의장은 이는 브렉시트보다 더 나쁜 시나리오라고 우려한다. EU의 법질서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크나우스 의장은 유럽위원회가 “유럽재판소 제소라는 가장 중요한 절차를 이미 시작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유럽재판소를 통해 폴란드가 벌금을 내도록 할 수도 있다. 유럽재판소는 폴란드와 관련 다양한 소송을 다루고 있다. 이를 폴란드 정부와의 사법 협력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유로뉴스는 설명했다.
   
   유럽위원회는 EU의 코로나 회복 펀드도 폴란드에 대한 압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폴란드에 할당된 570억유로도 “헌재의 판결을 보면 지급될 것 같지 않다”고 녹색당의 다니엘 프로인드 의원은 말했다. 유럽위원회는 EU 기금의 집행 조건으로 법치주의나 사법부 독립 등과 같은 중요한 EU 가치를 존중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EU 펀드의 원칙은 사법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나라에는 자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원회는 폴란드에서 사법체제가 적절하게 회복되지 않을 경우 신속하게 자금공급을 중단하고 회수할 수 있다”고 프로인드 의원은 경고했다.
   
   낙태 문제는 폴란드의 사회적 분열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편에는 전통적인 가톨릭교도들이 있고, 반대편에는 새로운 ‘유럽의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역적으로도 유럽지향적인 진영(서부 및 북서부)과 보수적인 진영(동부 및 남동부)으로 분열되어 있다. PiS의 카친스키 의장은 폴란드에서 ‘조용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인정하며, ‘시민플랫폼’으로 대표되는 리버럴에 대해 국가와 전통적인 도덕을 계획적으로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폴란드도 변화하고 있다. 바르샤바의 한 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9년 폴란드 대학생의 55%만이 스스로 가톨릭 신도라고 답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 수치가 75% 수준이었다. 전통적 가톨릭 가치는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인 아르투르 바르키에비치는 집권당 PiS가 “이미 집결한 유권자들을 더욱 집결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떨어져나간 유권자들은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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