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영국의 현충일에 시민들이 런던 현충탑에 참배하고 있다. 이 현충탑은 ‘빈 무덤’이라는 의미심장한 그리스어 이름(Cenotaph)을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11일 영국의 현충일에 시민들이 런던 현충탑에 참배하고 있다. 이 현충탑은 ‘빈 무덤’이라는 의미심장한 그리스어 이름(Cenotaph)을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영국인들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다. 최근 현충일(11월 11일)을 맞은 영국의 분위기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정말 대단한 행사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사실 영국에는 별다른 국경일이 없다. 1·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도 없고 독립기념일도 없다. 가장 크게, 그리고 중요하게 거행하는 기념일이 바로 이 현충일이다. 축하할 날도 아니고 기쁜 날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랑스러워할 날도 아니지만 그냥 숙연하게 죽은 이들에 대해 산 자가 감사해 하고 기억하자는 날이다.

영국인들은 현충일을 우리처럼 ‘국가에 대한 충성’ 운운하며 거창하고 수사적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죽은 이들을 위해 응당 해야 할 행동인 ‘기억’만을 하자고 내세운다. 단순하게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전사자를 ‘기억하는 날(Remembrance Day)’ 혹은 ‘추모하는 날’이라고 부른다.

영국 최대의 기념일은 현충일

영국인들은 전쟁에 집착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현충일 행사를 비롯해 참전 노병과 현역 군인들에 대해 평소에도 깊은 존경과 애정을 보내는데, 이번 현충일 행사를 전한 언론 기사에 달린 독자들의 댓글과 칼럼니스트들의 글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거기에 반복되는 몇 개의 인상적 문구들을 보면 왜 영국인들이 현충일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는지를 알 수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가 바로 ‘우리들이 잊지 않기 위해(Lest we forget)’라는 것인데, ‘우리가 잊지 말자!’는 다짐과 각오의 문구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잊지 않기 위해’라는 이 문구에는 양차 대전 전사상자는 물론 이후 각종 전투에서 희생된 군인들에 대한 감사와 위로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최근 한 칼럼은 현충일을 기리는 의미를 ‘그들이 우리들의 자유와 삶의 방식(our way of life)을 보호하기 위해 한 봉사와 희생을 기억하는 날’이라고 정의했다. 또 다른 칼럼은 ‘우리 모두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들의 전쟁 사상자 군인들을 기억하는 일이다. 이유는 그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우리들은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리고는 이렇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들이 우리들에게 준 것은 우리들의 자유와 평화이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들이 선택한 정부 아래서 자유와 평화와 전통을 지키고 살 수 없다. 지금 우리들이 누리는 모든 것을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그들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보면 영국인들이 현충일을 국가의 거의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행사로 떠받드는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전몰군인들과 전상자들의 희생에 감사하고 그들의 봉사와 용기를 치하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그다음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전국 수십만 곳에서 행사 열려

원래 가톨릭에서 11월은 모든 돌아가신 영혼을 기리는 위령성월이다. 거기에 맞춘 듯 1차대전은 공교롭게도 1918년 11월 11일 끝났다. 올해 현충일인 11월 11일은 목요일이어서 가장 가까운 일요일인 14일 관련 행사가 있었다. 이날 런던에서만도 서울 태평로처럼 정부 관공서가 모여 있는 시내 중심가인 화이트홀 중앙 현충탑에서 행사가 열렸고, 32개 구청을 중심으로도 기념 행사가 열렸다. 뿐만 아니라 전국 지방 곳곳에서도 행사가 있었다. 전국 대도시의 333개 구청과 소도시는 물론 시골 작은 마을의 성당, 교회까지 치면 전국 수십만 곳에서 행사가 열린 것으로 보인다. 영국인들에게는 참전자가 아직도 생존해 있는 종전 76년의 2차대전은 물론 종전으로부터 100년도 더 넘은 1차대전(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마저도 아직 과거가 아니고 기억해야 할 현재이다.

원래 런던 화이트홀에서 열리는 현충일 행사에는 매년 중앙 현충탑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모습을 나타냈다. 즉위 이후 6번(4번 해외순방, 2번 임신)을 빼고는 매년 참석해 직접 헌화를 해왔다. 그러다가 2017년부터는 찰스 왕세자에게 대권을 물려준다는 의미로 헌화를 대행케 했다. 여왕은 옆 외무부 건물 발코니에서 이를 내려다봤다. 이번에도 여왕이 마지막 순간까지 발코니에서 행사를 지켜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결국 건강을 염려한 의사의 권고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2차대전 당시 운전병으로 직접 참전한 여왕이 현충일 행사에 갖는 관심은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현충일 행사에서 가끔 눈물을 짓기도 한다. 올해는 여왕이 서서 내려다보던 발코니에 왕실 3대의 세 여인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을 중앙에 두고 왼쪽에 찰스 왕세자 부인 카밀라 공작 부인, 오른쪽에 찰스 여동생 앤 공주가 서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헌화는 장교 정복을 입은 찰스 왕세자의 뒤를 이어 역시 군복 차림의 왕세손 윌리엄 왕자도 했다. 보리스 존슨 현 총리도 헌화를 했고 그 뒤를 이어 영국 제1 야당인 노동당 당수 키어 스타머와 전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등이 헌화를 했다. 이때 놓았던 조환(弔環)은 현충일이 지나고 전국 각지의 현충탑에 가면 계속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폭 축소됐던 작년 행사와 달리 올해는 헌화를 마친 뒤 수만 명의 일반인들이 도로 연변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전통적인 ‘감사의 행진(Thank You Procession)’도 이뤄졌다. 붉은 정복을 입은 첼시 참전 노병들 뒤를 현역 군인을 비롯해 사관생도 등 3군 군인들과 예비역 군인, 구급차 운송대, 심지어 구세군까지 따랐다. 1만여명이 ‘영광의 죽음(Glorious Dead)’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현충탑 옆을 행진했다. 이 현충탑은 ‘빈 무덤(empty tomb)’이라는 의미심장한 그리스어 이름(Cenotaph)을 갖고 있다. 영국인들은 1차대전 종전 100주년인 2018년 현충일에는 추첨으로 뽑힌 전국 각지의 1만명이 자신의 자식, 손자, 친구, 부모, 조부모, 심지어는 증조부모를 기리려고 감사행진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말 영국인들은 의식을 최대한 엄숙하게 치르면서 스스로 거기에 취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인간 세상에서 군복과 제복의 위엄이 가지는 의미를 영국인만큼 충분히 활용하는 민족도 드물다.

11월 11일 현충일에 런던 시내서 벌어진 ‘감사의 행진’ ⓒphoto expressdigest.com
11월 11일 현충일에 런던 시내서 벌어진 ‘감사의 행진’ ⓒphoto expressdigest.com

1만여명이 참가한 ‘감사의 행진’

이번 현충일에 필자는 런던 32개 구 중 하나인 서부 런던 해머스미스의 행사에 초대받아 참석했다. 부시 그린(Bush Green)이라는 로터리 중간의 녹지대 한편에 세워진 현충탑 앞에서 열린 행사에는 해머스미스 구청장, 구의회 의장, 구의원, 일반 구민들을 비롯해 정복을 입은 예비역 군인들과 동네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육군 및 경찰 후보생, 초·중·고등 소년 소녀 스카우트단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가장 이색적인 것은 초등학생들의 참석이었다. 교사의 선도로 줄지어 온 초등학생들은 이미 현충일의 의미를 아는 듯 잡담도 안 하고 서서 1시간도 넘게 진행되는 예식 동안 집중해서 행사를 지켜보았다. 종이 개양귀비(poppy)로 만들어진 조환을 들고 기다리다가 자신들의 순서가 되자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현충탑에 헌화했다. 미래 세대들을 참여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현충일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전통을 이어가는 배려가 돋보였다.

영국 현충일 행사는 성공회가 국교인 종교국가답게 단순한 기념 행사가 아니라 종교 행사 방식으로 치러진다. 그래서 해머스미스 행사도 가톨릭과 성공회 두 신부가 공동으로 주재했다. 찬송으로 시작하고 중간중간에 성경에 나오는 문구와 기도를 신부 주도로 참석자가 따라 했다. 그리고는 11시가 되자 군대의 일과 종료 때와 군인 장례식에서 항상 연주되는 ‘마지막 임무’라는 뜻의 ‘라스트 포스트(Last Post)’가 트럼펫으로 독주됐고 참석자들은 2분간 묵념에 들어갔다. 묵념이 끝날 때쯤에는 아침 ‘기상 나팔(Reveille)’ 곡이 연주되었고 두 신부의 강론이 있었다. 가톨릭 신부는 특히 깊은 의미의 말을 강론 중에 했다.

그는 “침묵 없이는 우리는 들을 수가 없고, 듣지 않고는 배울 수가 없다. 그들의 침묵으로 우리는 지금 들을 수 있다(Without silence, we can’t hear. Without hear, we can nor learn. For their silence, we are now can hear)”라고 했다.

이후 육군 후보생 훈련을 받고 있는 동네 고등학생이 1차대전 중 영국 시인 로렌스 비니언이 남긴 ‘죽은 이를 위하여(For The Fallen)’라는 시의 중간 부분인 ‘추모의 송가(Ode of Remembrance)’를 낭송했다.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마냥 늙어가지만, 그들은 결코 늙어가지 않는다.

나이가 그들을 지치게 하지도 않고, 세월이 그들을 초라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태양이 저녁에 지고 아침에 떠오를 때면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리라.’

바로 이어서 현충일 때 반드시 낭송되는 ‘죽은 이를 위하여’ 전문이 낭송되었는데 전문 중 위의 ‘추모의 송가’ 다음 연이 특히 영국인들을 울린다.

‘그들은 폭소를 같이 나눈 전우들과 다시는 어울릴 수 없고

그들은 고향집의 익숙한 식탁에 이제 다시 앉아 보지 못하고

그들은 우리들의 낮 일터에서 맡은 일거리가 없고

그들은 잉글랜드의 보호 거품 밖에서 잠들고 있다.’

그리고는 기도 뒤에 인도에 있는 코히마 전쟁 묘지 전몰장병 추모탑(Kohima Epitaph)에 새겨진 의미심장한 글이 낭송돼 참석자들을 뭉클하게 했다.

‘당신이 집에 가면 그들에게 우리들 이야기를 해 주시게.

당신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우리들의 오늘을 바쳤다고.’

이어서 스코틀랜드 전통의 체크무늬 남자 치마 킬트를 입은 청년이 백파이프 연주를 했다. 이 청년은 의식을 주재한 성공회 신부 아들로 자원봉사자였다. 그리고는 기도와 찬송이 번갈아 이어졌고 결국 의식은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를 참석자 전원이 제창하면서 끝이 났다.

런던 시내 도로를 수놓은 현충일의 상징 개양귀비꽃. ⓒphoto expressdigest.com
런던 시내 도로를 수놓은 현충일의 상징 개양귀비꽃. ⓒphoto expressdigest.com

‘왕립 영국군단’ 주관의 자발적 행사

흥미로운 것은 이 행사를 해머스미스 구청이 아니라 ‘왕립 영국군단(The Royal British Legion·RBL)’이라는 단체가 주관했다는 점이다. 영국 내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현충일 행사 역시 모두 RBL이 주관한다. 현충일 행사에 참석해서 연주를 하고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구청 직원이 아니라 모두 자원봉사자인 동네 주민들이다. 전국에서 열리는 모든 현충일 행사가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치러지는 셈이다. 당연히 국민 혈세는 한 푼도 지출되지 않는다.

올해가 창설 100주년인 RBL은 정부기관이 아니고 전국에 지부를 가진 대형 자선단체이다. RBL의 설립 목적은 정부가 놓치고 있는 부문에서 양차 대전의 전사상자와 제대군인, 그 가족들을 돌보는 일이다. 현재는 출발할 때와는 달리 제대군인만이 아니라 누구든 회원이 될 수 있는데 회원이 18만명이고 11만명의 자원봉사자를 두고 있다. 3억5000만파운드(약 5600억원)의 자산도 보유하고 있다. 2019년 3728명의 붉은 개양귀비 판매원이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4650만파운드(약 744억원)를 거두었다. 그리고 다른 수익자금과 합쳐 2019년 7668명에게 1170만파운드(약 187억원)를 지원했다.

RBL의 상징이자 가장 큰 수입원인 붉은 개양귀비 배지는 추모와 기억과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염원을 상징한다고 RBL은 말한다. 영국인들은 대개 위령의 날(All Souls’ Day)인 11월 2일부터 추모의 일요일까지 가슴에 개양귀비를 단다. 이때쯤 되면 모든 공직자들은 물론 TV에 나오는 방송인을 비롯해 출연자 누구나 가슴에 개양귀비를 꽂는다.

개양귀비의 강렬한 붉은색 꽃잎은 정말 전쟁에서 꽃다운 청춘을 못다 피고 스러져 간 젊은 군인들의 심장 같다고 영국인들은 믿는다. 1차대전 중 벨기에, 룩셈부르크, 서부 프랑스를 포함한 서부전선에서는 독일군과 영국군, 프랑스군의 포탄 수천만 발이 쏟아졌다. 그리고 1g만 호흡해도 숨이 막혀 죽는 염소 독가스 150t이 뿌려졌다. 그렇게 해서 푸르고 비옥해 각종 작물이 자라던 푸른 초원이 폭약과 화학물질의 영향으로 황폐하게 되어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barren ground)가 되어 버렸다. 전투가 끝나고 정적이 찾아온 다음해 봄 플란더스 지방 들판 황무지에는 얼마 전 벌어졌던 살풍경(the bleakness)을 덮으려는 듯 유난히 밝고 붉은 개양귀비가 온통 들판을 덮었다. 너무나 의외의 광경에 경악하고 감동한 지방 사람들은 이 꽃이 전투에 스러진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장이라고 여겨 전사자들을 기억하려는 몸짓의 하나로 가슴에 달기 시작했다. 이런 연유로 11월이 되면 비가 자주 내려 어둡고 침침한 영국 땅에는 피지도 못하고 스러져 간 젊은이들을 기리는 개양귀비가 영국인의 가슴에서 피어난다.

영국인들의 가슴에 담긴 문구들

영국인들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하나둘 세상을 뜨기 시작하면서 비극적인 역사의 교훈을 어떻게든 다음 세대에게 전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이 잊지 않기 위해’라는 문구 다음으로 댓글과 칼럼에 많이 등장하는 문구가 바로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Peace is not free)’라는 문구다.

또 다분히 호전적인 듯하지만 사실은 깊은 철학을 가진 ‘전쟁 없이는 평화도 없다(There can be no peace without war)’도 자주 등장한다. 이런 문구들을 언급한 최근의 한 칼럼은 이런 글로 채워졌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위함이 아니다. 바로 우리를 위함이다. 우리가 미래에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그들을 기억하고 전쟁의 교훈을 배워야 양차 대전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대비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에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 설마 하는 안심은 금물이다. 또 역사에서 ‘만일(if)’은 없다. 그러나 평화로운 미래를 우리가 가지기 위해서는 ‘만일’은 가장 큰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 이 칼럼은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민족은 불행을 반복하기 마련이다”라는 말도 인용했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땅도 아닌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전쟁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대의명분 때문에 참전해 1차대전 87만6000명, 2차대전 45만4000명 등 도합 130만명 이상이 죽거나 다치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종전 직후는 물론이고 지금도 당시의 참전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의견은 잘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그 이유는 영국인들이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들 때문일 것이다. ‘전쟁을 두려워하는 민족은 전쟁을 피할 수 없다(The peoples are afraid of the war, can’t avoid the war)’ ‘전쟁 없이는 평화도 없다(There can be no peace without war)’ ‘자유 없이 지속되는 평화는 없고, 평화 없이 지속되는 자유는 없다(Without freedom there can be no enduring peace and without peace no enduring freedom)’. 아마도 이런 마음가짐 덕분인지 영국은 근대 역사에서 본토를 침입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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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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