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벨라루스 내 폴란드 접경 지역에 몰려 있는 중동 난민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15일 벨라루스 내 폴란드 접경 지역에 몰려 있는 중동 난민들. ⓒphoto 뉴시스

중동 난민들이 최근 벨라루스를 통해 유럽연합(EU) 국가인 폴란드로 불법 입국을 시도하면서 두 나라가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과 EU 등 서방 진영은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난민들을 동원하여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을 벌이고 있다며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벨라루스에는 현재 1만5000~2만명의 난민이 EU로 입국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대부분이 중동 출신인 이들은 독일, 프랑스 등 EU국가들로 가기 위해 집단적으로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을 넘으려 시도하고 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은 중동 난민들의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한편 군을 동원해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폴란드 입국에 실패한 중동 난민들은 출발지인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태. 겨울이 다가오자 국경 부근의 무인지대(no man’s land)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다. 벨라루스 정부는 ‘인도주의적 재앙(humatarian disasyer)’이 발생하고 있다며 EU가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EU 측은 벨라루스 정부가 오히려 난민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공격’을 벌이고 있다면서 제재 강화에 나섰다.

2만명의 중동 난민 EU 입국 대기 중

난민에 호의적이었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대행은 과거 “100만 난민을 받아들인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일부 EU 국가들도 좌파정당을 중심으로 난민에 호의적이었다. 실제로 EU 규약에는 EU 영토에 입국한 난민에게는 피난처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실제로 2015년에는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을 통해서 입국하는 난민들에게 일부 EU 회원국들이 피난처를 제공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EU 회원국들이 통제불가능한 이민자들로부터 국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미국의 NBC TV가 지난 11월 15일 보도했다. 벨라루스를 통한 중동 난민 행렬을 벨라루스의 하이브리드 공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으로 인식하는 서방의 입장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재래식 전쟁, 비정규전, 사이버 전쟁 등이 포함된 새로운 군사전략이다. 사이버 공격에는 적국의 군사 및 금융·산업시설 등에 대한 해킹뿐만 아니라 가짜뉴스 공격(fake news)이나 불법 선거개입 등도 포함된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군사동맹인 나토는 비군사적 수단인 역정보(disinformation) 공략 등 정치선동, 사이버 공격, 경제적 압력, 비정규 군사력의 배치와 정규군 동원 등을 포함한 공개 및 비공개 수단 공격을 모두 종합하여 하이브리드 공격이라고 파악한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국가 구성원들이 직접 수행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보호를 받는 민간인들에 의한 사이버 공격,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역정보 공작, 정치인들의 약점 수집 등이 포함된다. 이는 반드시 국가가 할 필요는 없으며 댓글 조작 전문회사인 트롤팩토리(troll factory)나 민간 계약자들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전통적인 군은 재래식 공격에 대응하도록 훈련받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공격에는 대응하기 어렵다. 공격 주체가 그럴싸한 변명으로 부인하는 데다 하이브리드 공격에 재래식 군사력으로 대응하기도 사실 어렵다.

지난해 부정선거 논란 속에 집권을 연장한 벨라루스 루카셴코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해 부정선거 논란 속에 집권을 연장한 벨라루스 루카셴코 대통령. ⓒphoto 뉴시스

깡패국가들의 비대칭적인 보복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해 학자들 간에 공통적으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없다. 다만 하이브리드 공격이 이전의 전쟁처럼 전차, 야포, 전투기 등의 무력이 직접 동원되지는 않지만 전쟁과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실천되고 있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재래식 군사전력은 아니지만 그보다 값싸고 효과적인 방법을 통해 적국(敵國)에 중대한 피해를 입한다는 목적은 같다는 것이다. 1·2차 대전 당시에는 전차나 전투기들이 사용되었지만 현재의 깡패국가들(rogue country)은 비대칭적인 보복(asymmetric reprisal)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밝혀내기가 어렵지만, 벨라루스의 경우는 증거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예외라고 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 벨기에 브뤼셀의 EU 뉴스 전문 미디어인 유로액티브(EUROACTIV.com)는 최근 “지난해 벨라루스에서 부정선거를 통해 집권을 연장하여 서방 측의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독재자 루카셴코의 (중동 난민을 이용한) 대응방식은 하이브리드 전쟁의 전형적인 사례로 교과서에 수록될 만하다”고 보도했다.

1994년 집권한 루카셴코는 2020년 8월의 부정선거를 통해 집권을 연장했다. 벨라루스 국민들은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수개월간 벌였고 루카셴코는 무차별 탄압을 자행하였다. 야당 인사들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등 인접한 EU 국가들로 탈출했다. 당시 선거에서 실질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평가되는 야당 지도자 스베틀라나 치하노스카야는 지난 7월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하기도 했다.

루카셴코는 서방 측의 제재를 불쾌하게 생각해왔고 특히 반정부 지도자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분노를 표해왔다. 급기야 루카셴코의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를 겨냥한 전략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나라가 불법이민자들에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불법이민자들을 몰려들게 만들 계획을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벨라루스 정부로서는 이러한 계획에 비용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짭짤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벨라루스 비밀경찰은 중동의 이민자들에게 ‘유럽으로 오기 위해 더 이상 지중해 바다에서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며, 벨라루스 정부가 리투아니아나 폴란드 입국을 도와준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루카셴코가 중동 난민들에게 벨라루스로 입국하면 독일에 갈 수 있다고 유인하였다”고 최근 보도했다.

‘리틀 바그다드’ 돼버린 민스크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는 중동 출신 사람들이 거의 없던 곳인데 요즘에는 중심가에 이라크 등에서 온 난민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사람들이 민스크를 ‘리틀 바그다드(Little Baghdad)’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현재 벨라루스에 머물며 독일행을 기다리는 중동 난민의 숫자는 1만5000~2만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민스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요즘도 이라크 바그다드, 터키 이스탄불, 두바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등으로부터 매주 50편의 여객기가 중동 난민을 태우고 민스크에 착륙한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난민들은 대부분은 이라크인이지만 시리아인, 아프가니스탄인도 있다.

루카셴코는 지난 수개월 동안 중동 난민들에게 관광객 비자를 발급해 입국을 허용했다. 벨라루스 국립여행사를 통해 이민 희망자들을 모객하기도 하였다. 비자 발급과 항공료, 각종 서류 발급 등에 드는 비용은 3500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 돈은 루카셴코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그러나 벨라루스에 입국한 중동 난민들은 폴란드 국경까지의 차량 비용 수백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다. 이들에게는 이 길이 독일이나 영국 등 서방으로 향하는 ‘벨라루스 루트(Belarus Route)’로 통한다. 서방을 향한 이러한 난민 투척은 루카셴코가 EU회원국들의 분열을 획책하고 서방의 제재에 대한 보복을 위해 신중하게 기획한 것이라고 유럽 언론들은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등은 국경을 넘는 난민들을 모두 돌려보내는 등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EU 규약에 따르면 EU에 발을 디딘 난민들에게는 망명(asylum)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이들은 폴란드 군인에게 망명을 신청하지만 비웃음만 살 뿐 즉각 돌려보내진다. 벨라루스 군경이 이들을 다시 민스크로 데려가지는 않는다. 중동 난민이 민스크 호텔에 머물려면 1박당 숙박비가 80달러에 달한다. 공동생활을 하는 호스텔도 하루 숙박비가 20달러나 든다. 난민들은 “벨라루스가 난민들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큰돈을 벌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벨라루스와의 국경지대 철조망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폴란드 군대. 폴란드는 지난 8월 벨라루스와의 국경지대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photo 뉴시스
벨라루스와의 국경지대 철조망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폴란드 군대. 폴란드는 지난 8월 벨라루스와의 국경지대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photo 뉴시스

국립여행사가 3500달러 받고 난민 모객

자신들이 불법 이민 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수차례 경고한 폴란드는 지난 8월 28일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하였다. 리투아니아도 550㎞ 국경에 4100만유로를 들여 철조망을 신속하게 설치하는 한편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숙박비가 없는 중동 난민들은 대부분 현재 벨라루스 내 폴란드 접경 지역인 이른바 ‘숲속의 무인지대(no-man’s land)’에 머물며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폴란드-벨라루스 국경 사태는 지난 11월 8일 대규모 난민들이 폴란드 국경 부근의 숲으로 이동하면서 격화되었다. 현재 폴란드 국경 부근의 벨라루스 무인지대에는 4000여명의 중동 난민이 노숙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난민들은 국경에 설치된 철조망을 끊으면서 폴란드에 입국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 11월 9일 두 그룹의 난민들이 폴란드 국경을 불법 월경하였지만 모두 체포되어 벨라루스로 송환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11월 9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불법 이민 사태는 “돈을 노린 마피아들이 저지르고 있다”며 “마피아는 폴란드, 독일, 리투아니아인들”이라고 역공을 펼쳤다.

지난 11월 10일 폴란드의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폴란드가 “30년 만에 가장 위험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선언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번 공격 목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EU 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공격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으며, 난민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공격은 폴란드 역사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는 폴란드 국민들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대비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다음날에는 벨라루스가 ‘국경에서 하이브리드 전쟁’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국경을 완전히 봉쇄하겠다고 경고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11월 11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며 “수많은 중동 이민자가 무인지대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현 상황은 벨라루스 정권이 초래한 것이며, 무방비한 사람들을 EU에 대한 하이브리드 공격에 동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스테판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이 말했다.

벨라루스의 블라디미르 마케이 외무장관은 같은 날 벨라루스가 EU를 상대로 하이브리드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태는 벨라루스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의 국가를 파괴하고, 난민을 불러들이고, 피난처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EU의 분별 없는 정책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EU는 갑작스럽게 난민정책을 변경하고 “벨라루스를 징벌하기 위해 벨라루스가 EU를 향해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케이 장관은 “벨라루스가 인구 5억의 EU를 상대로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는 어떤 전쟁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으며 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배후에 있는 회색전쟁

미국도 하이브리드 전쟁을 비판하는 EU를 지원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의장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난 직후 벨라루스 독재정권이 EU 국가들에 “하이브리드 공격”을 벌이고 있으며, 이것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한다”는 데 두 정상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라이엔 의장은 트위터에도 “이것은 난민 위기 사태가 아니라 하이브리드 공격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미국의 미디어 악시오스는 벨라루스의 독재자 루카셴코가 “유럽의 동부전선에 혼란과 인도적 위기를 조장하여 유럽과 동맹국인 미국을 시험하는 ‘회색지대 전쟁(grey zone warfare)’을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는 푸틴이 오랫동안 활용했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회색지대 전쟁은 하이브리드 전쟁과 의미가 비슷하다.

미국 민주당의 진 샤힌 상원의원은 루카셴코의 행동은 “국가가 주도하는 인신매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독재자이며 미국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이민자들을 모집하고 여행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로저 위커 상원의원도 이번 사태가 “미국의 결의를 시험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벨라루스와 러시아 두 나라에 대한 제재를 즉각 강화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도 “루카셴코가 푸틴과의 감독하에 일을 벌이고 있다는 점은 추호도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가 군사력 과시, 에너지 협박, 역정보 공작, 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방식의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인 데 이어 마침내 유럽 국경을 향하는 이민자를 동원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라고 분석한다. 미국 국무부의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최근 “루카셴코 정권의 행동은 안보에 위협이 되며…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서 러시아의 (군사)행동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킨다”고 우려했다.

악시오스는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사태와 최근 드론을 이용하여 이라크 총리를 암살하려는 시도 등을 새로운 유형의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분석했다. 이라크 총리 암살 시도는 이란이 배후에서 조종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악시오스는 “분쟁의 본질이 변화하고 있다”며 “국가 간의 분명한 전쟁은 극히 드물지만, 하이브리드 수단을 통해 국가나 집단이 신기술과 신전략으로 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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